가나안 정착-가나안 정착에 관한 다양한 전승

 

가나안 정착에 관한 다양한 전승




  가나안 정착에 관한 성서의 서술과 묘사를 보면 크게 네 가지 전승 또는 가설을 가정할 수 있다. 첫째,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의 지휘 아래 요르단 동쪽부터 가나안의 서읍들을 차례로 점령하기 시작하여 오래지 않아 팔레스티나 전체를 장악하였다는 것이다. 이 때  이스라엘은 이중의 도움을 받았다. 하나는 불레셋인들의 도움인데, 그들은 팔레스티나 남서쪽 해안에 상륙하여 에크론, 아스돗, 아스클론, 갓, 가자 다섯 성읍을 세우고 서로 동맹을 맺어 가나안의 큰 성읍들을 약화시켰다. 다른 하나는 지정학적인 도움이다. 곧 가나안인들은 주로 농사 짓기 좋은 땅을 찾아 서쪽 해안에 모여 살았고, 동쪽 요르단에 가까운 산악지대에는 돌투성이의 메마른 땅에 강우량도 적어서 주민들이 별로 많이 살지 않았다. 가나안 정복 초기에 이스라엘이 공략한 예리고와 베델과 아이와 같은 성읍들(참조: 여호 6-8장)은 모두 요르단 계곡 가까이에 자리잡은 곳이었는데, 이 곳을 정복한 다음 그들은 매우 쉽고 빠르게 내륙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둘째, 이스라엘인들은 양과 염소를 키우는 전문 유목민이므로 처음부터 가나안 토착민들과 자연스럽고 평화롭게 어울려 살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가나안의 왕국들과 이집트에 충성하는 제추들의 지배에서 벗어나 팔레스티나의 산악지대나 건조한 초원지대에서 목축을 하다가 점차 마을을 이루어 농사도 짓고 나중에는 성읍을 건설하게 되었을 것이다. 고고학적 용어를 빌려 이 같은 발전 단계를 표현하자면 ‘천막-오두막-주택’으로의 발전이다. 기원전 1500-1150년의 이집트 문헌에서 이런 유목민들을 ‘샤수’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주로 에돔 남쪽과, 성서에서 미디안으로 더 잘 알려진 아라비아 북쪽에 거주하였던 것 같다. 메렌프타 시대에 이집트인들은 이미 ‘에돔의 샤수’로 불리는 부족의 무리를 인정하였고, 제19왕조가 기록해 놓은 영토 목록에 보면 ‘야훼의 샤수 땅’이라는 지역도 포함되어 있다. 이 목록은 아마도 미디안 땅 호렙/시나이산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신 이스라엘의 주 하느님에 관한 가장 오래된 언급일 것이다.


   셋째, 이스라엘인들은 많은 수가 가나안의 농부들이었는데, 이들이 도시에서 안락하게 살아가는 자기네 주인들에게 반란을 일으켜 팔레스티나의 주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농부들은 앞에서 자주 언급한 아마르나 문서에 나오는 하피루 계층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하피루들은 고향 땅에서 떠나 일정한 토지와 택지가 없이 떠도는 방랑인들로서 자기 자신과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여러 형태로 다른 이들에게 예속될 수밖에 없는 소외 계층이었다. 경제적으로어려운 상황이 닥치거나 사회적으로 불안한 사태가 벌어지면 그들은 어떤 힘센 용사를 중심으로 약탈대를 조직하여 도시의 소수 지배 계층을 공격하며 강도짓을 일삼았다. 이스라엘의 판관이 되기 전 입다의 경우(판관 11장)나 임금이 되기 전 다윗의 경우(1사무 22장)가 그 좋은 예일 것이다.


  마지막 가설은 세 번째 가설과 비슷하지만, 농부들의 반란이 아니라 자발적인 선택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기원전 1200년경 팔레스티나 고원지대에는 상당수 주민들이 모여 사는 마을들이 많이 생겨났는데, 이는 소수 토지 소유자와 다수 소작인들의 관계를 바탕으로 유지되던 되국가의 봉건 제도가 약화되면서 빚어진 현상이었다. 주인들의 횡포와 억압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소작인들은 도시를 떠나 산악지대로 옮겨가 농사와 목출을 하였다. 그들은 경작하기에 알맞은 농토와 가축을 기를 수 있는 초원, 그리고 외세를 쉽게 막아낼 수 있는 천연 요새를 두루 갖춘 고원지대에 주거지를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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