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심에서부터 1차 전도여행 직전까지 (36-45년경)

 

개심에서부터 1차 전도여행 직전까지 (36-45년경)




바울로는 개심한 다음 주로 해외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의 신앙노선을 따랐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그는 개심한 다음 다마스커스 교회를 방문하여 세례를 받고 설교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편지에 의하면 개종 후 그는 아라비아의 나바테아 왕국으로 갔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그들의 미움을 사서 다마스커스로 피신하였고, 그들이 다마스커스 총독을 시켜 체포하려 하자 비상수단을 동원해서 극적으로 탈출, 예루살렘으로 상경해서 보름동안 게파와 함께 지냈다(소명을 받은지 3년 뒤인 39년경). 그후 그는 시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으로 가서 한동안(39-43년경) 전도했다.


       그로부터 약 4년후(43-44년경) 다르소에 있는 그를 찾아온 안티오키아 교회의 창립자 바르나바와 함께 안티오키아로 가서 만 일년 동안 선교활동을 하였다. 안티오키아는 시리아의 수도로서 로마 제국 내에서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다음으로 큰 도시였다. 이 때부터 안티오키아는 예루살렘과 더불어 초대교회의 근거지가 되며 이곳을 중심으로 한 이방계 신자들은 팔레스티나 본토의 유대계 신자들과는 달리 율법 준수에 있어 자유로운 태도를 취했다. 또한 그리스도교라는 명칭도 안티오키아 신자들에 의해 처음으로 얻게 된 것이다. 바울로는 이도시를 이방인 선교의 발판으로 삼아 당대의 세계를 종횡무진하는 선교사가 된다.


안티오키아 교회의 교회사적 중요성 ;


   ① 안티오키아에서 처음으로 공공연히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 결과 안티오키아에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 구성된 혼성교회가 생겨났다.


   ② 바울로는 세차례의 전도여행의 거점으로 안티오키아를 삼는다. 


   ③ 안티오키아 시민들이 예수를 신봉하는 교도들을 처음으로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불렀다. 


   ④ 사도교부 이냐시오가 이곳의 주교로 재직하다가 로마에서 순교했고, 4세기에는 로마와 알


      렉산드리아 다음으로 중요한 총주교좌가 되었다.




이 글은 카테고리: 신약성경이야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