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3,22에서 바울로가 말한 믿음이란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무런 차별도 없이 당신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십니다.” 말하자면 하느님과 바른 관계를 가질수 있는 예수께서 하느님께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모두 진리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예수께서 하느님의 자비에 우리자신을 맡기셨듯이 우리도 하느님의 자비에 우리 자신을 맡기고 전적으로 믿는 것이다. 그러나 로마서 3,25에서 바울로는 다른 사상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는 그의 피 안에서 믿음을 통한 속죄의 제물을 드리고 있다. 그러면 속죄의 제물이란 무엇인가? 속죄의 제물이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잃어버린 관계를 회복시켜 주는 희생이다. 인간이 죄를 범했다. 그 죄는 그와 하느님 사이에 분열을 가져오게 했다. 그러한 분열은 겸손하고 통회하는 심정으로 희생을 바치면 메꾸어 진다. 그래서 바울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잃어버린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피, 십자가를 댓가로 지불하여야만 했다. 따라서 믿음이란 예수께서 그의 生과 죽음을 통해 우리에게 하느님께 나가는 길을 열어 주셨다는것을 철저하게 믿는 것이다.
로마 1,16-17은 로마서 전체의 주제이다. 이 말씀은 “과연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믿는 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먼저 유대인 그 다음에로 헬라인도 구원으로 인도하는 하느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실상 이(복음) 안에 하느님의 의로움이 신앙에서 신앙으로 계시됩니다. 신앙으로 말미암은 의인은 살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말은, 복음은 모든 민족에게 귀천의 차별없이 전파될 것이나 영생 구원의 유업은 오로지 믿는 자에게만 소유될 것이라고 하는 조건의 선언이라 하겠다. 이것을 소극적으로 말해서 영생의 구원은 믿는 길 외에는 얻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들면 구약의 할례나 신약의 세례나 율법이나 또 어떤 행위로나 구실로써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진리를 선포한 것이다. 다시말해서, 믿음을 떠나서 혹은 믿음이 없이는 구원이 없다는 것과 신자의 모든 행위만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말하면 믿음만을 통해서 하느님의 구원의 능력, 곧 은총이 임하게 된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3,16에 기록된 말씀이 바로 그것이며, 요한복음 14,16이 이것을 증언하고있다. 그러므로 믿음은 구원을 원하는 자에게 첫번째 조건이며 동시에 이것이 마지막 사건이라고 하겠다.1) 왜냐하면 하느님은 의로우시므로 죄를 사하시고 용서하시며 죄인을 의롭게 하시기위해 당신의 외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시어 속량의 값을 치루게하셨다.그러나 그와 대조적으로 아무 구별없이 누구나 의롭다고 하심이 아니라 하느님의 외 아들 곧 죄인을 대속해주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진 자를 ‘의롭다 하신다’는 엄격한 진리를 말씀하셨기 때문이다.2)
구원은 첫째로 하느님의 은총이지만 둘째로 이 은총이란 믿는 자들에게만 미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구원은 믿음으로 얻어진다. 인류에게 필요한 구원의 공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셨고 이 구원의 공로가 내것이 되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인 성서는 말하기를 다만 그 은총으로 인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다. 은총은 구원의 근원이고 믿음은 구원의 방편인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구원을 은총으로 주시는데 그 구원을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게 된다. 그래서 믿음은 구원을 얻는 방편인 것이다. 따라서 바울로는 이 믿음이 하느님의 구속의 언약에 있어서 인간에게 주어지는 하나의 요구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믿음이라는 것은 하느님이 하느님의 義를 예수 그리그도의 대속 안에서 나타내셨는데 바로 이 義로 인하여 예수를 믿는 자를 또한 의롭다고 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시고 성취하신 구속사업의 객관적이며 역사적인 사실을 믿는 그 믿음을 소유한 자를 의롭다고 하는 것이다.3)
구원을 도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은총 ꠏꠏꠏꠏꠏꠏꠏꠏ>구원<ꠏꠏꠏꠏꠏꠏꠏ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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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인간

구약성서는 “살아있는 그 어떤 사람도 하느님 앞에 올바르지 않다”(시편 143,2).라고 하였다. 다시말해서 하느님의 눈 앞에서 스스로 무죄의 상태를 이룰 수 없다고 가르친다(열왕상 8,46; 욥서 9,2; 시편 130,3-4; 이사 64,6). 인간의 의화는 장차 오실 구속자께서 가져다 주실 것으로 기대되었다(이사 59,15-20). 그런데 사도 바울로는 의화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을 통하여 이미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바울로는 인간의 의화가 이미 이루어졌음을 강조할 뿐 아니라, 그 의화는 완전히 무상의 은총임을 역설한다. 의화는 오로지 하느님께로부터 온다. “실상 모든 이가 범죄하였고 그래서 하느님의 영광을 빼앗겼으나(로마 3,23), 하느님께서 순전히 당신의 호의를 베푸시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이 하느님 앞에 올바로 설수 있게 해 주셨다. 이 의화의 결과로 그리스도 신자는 의로운자가 되는 것이다. 그는 단순히 의롭다고 인정받거나 선언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의로운 자가 되는 것이다(참조: 로마 5,19).
2.구원과 율법, 믿음, 은총과의 관계
바울로사도의 의화의 개념을 통해 율법이 구원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은총으로 인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알수있다. 인류 구원을 오직 하느님의 자비의 소산으로 보는 바울로는, 같은 이유로 믿음의 구원 능력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바울로는 유대인들이 주장하는 율법 준수를 통한 의화 개념에서 벗어나 하느님은 오직 신앙으로 달아드는 자에게 당신 구원의 은총을 베푸신다고 역설한다. 즉 인간은 율법으로써가 아니라 믿음으로써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바울로가 선행을 강조하는 야고보 2,14-19와 반대 입장을 취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등을 역설하는 이면에는 믿음이 단순히 이론적인 것이 아닌 실천적인 것임을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갈라 5, 22; 필립 1,11; 에페 5,9; 골로 1,10 등).
2.1.구원과 율법
율법에 관한 바울로의 사상은 다소 복잡하고 다양하다. 바울로에 의하면 하느님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율법을 주셨다고 한다. 하나는 시나이산에서 주어진 돌판에 새겨진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음에 쓰여진 것이다(참조: 로마 2,14-15).
이방인의 양심에 쓰여진 율법은 인간을 구원하는데 무력한 것이다. 양심이 선악을 판단하기는 하나 선악의 절대적인 법정이 될 수 없으며, 양심의 법과 하느님의 의지가 동일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울로는 율법의 義를 두 가지로 들고 있다. 그에 의하며 첫째, 율법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것이다(참조: 로마 7,12). 유대교 전승에 의하면 율법이란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것으로 천사를 통하여 (갈라 3,19)주신 하느님의 은총의 선물로 간주 되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바울로는 율법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것으로 이해하고 권위있게 사용한다. 둘째, 율법은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엄한 훈육 교사 이다(참조: 갈라 3,24).
여기서 바울로는 율법이 임시적이며 한계성을 지닌 기능임을 보여주고 있다. 즉 율법은 인간을 구원해 줄 수 없다. 율법은 죄를 인식케 하는 기능을 갖고(참조: 로마 3,20), 그것을 통하여 인간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여 구원을 얻도록 하는 것이다. .
인간이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으나(로마 5,13) 율법이 모든 인간에게 죄가 있음을 알려 주었다. 결국 율법이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것이며, 인간에게 죄를 깨닫게 하여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것이다.
바울로는 바리사이인으로서 어느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율법종교에 헌신적이었다(갈라 1,14). 율법종교는 인간의 노력에 의한 구원의 교리를 가르친다. 인간은 마지막에 하느님께 받아들여지기 위한 소망 가운데 끊임없는 도덕적 삶을 사는 노고를 쌓는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 세상과 육과 악마와 싸워야만 한다. 그러나 그는 바벨탑을 쌓는 결과에 이르고 하느님께 가까이 갈수 없다. 아무도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 율법을 성취할 수 없는 원인은 인간의 육에 자리잡고 있는 죄의 힘 때문이다(로마 7,18).
누구보다도 율법을 철저히 지켰던 사도 바울로가 율법을 죄와 동일시한 이유는 바로 율법 자체는 인간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선물이지만, 아담의 범죄 이후 인간은 누구나 타락한 본성을 지니게 되었으며 그 타락한 본성의 결과로 인간은 필연적인 ‘有限性’을 지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바오로의 의견은 바리사이들의 주장을 거슬러 타락하고 유한한 인간이기에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채울 수 없음을 강조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율법을 완전히 채울 수 있다고 과신하는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공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율법과 인간의 실존 사이에는 엄연한 간극이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바울로는 자신의 체험을 통하여 율법이 인간을 구원할 수 없고, 율법의 마침이 되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참조: 로마 3,28 ; 10,4).
2.2.구원과 믿음
바울로의 서간들을 읽기만 하면 바울로에게 있어서 믿음이란 말이 그리스도교의 핵심을 요약 해주는 말인 것을 알게 된다.
사도 바울로는 인간이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룩하신 구원을 얻는 사실과 방법에 대하여 말할 때는 항상 “믿음”에 관하여 언급한다. 그에 따르면 구원에 이르는 길은 “믿음”뿐이라는 것이다(참조: 로마 3,25; 5,1; 갈라디아 2,16 등).
믿음의 내용(대상)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참조: 갈라디아 2,16; 로마 3,22.26; 필립비 3,9)와 하느님이시다(1데살로니카 1,8). 그리고 믿음의 내용은 구원의 소식(복음)전체를 의미하기도 한다(참조: 1데살로니카 1,9-10; 1고린토 15,1-8).
그러므로 사도 바울로에 있어서 “믿음”1)은 본질적으로 대상(내용)과 관계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이룩하신 하느님 구원의 계시를 “진실로 받아들이는 행위”이다.
인간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과 접함으로써 그 복음과 접하게 되고, 믿음은 그 복음을 전해 들음으로써 생기는 것이다(참조: 로마서 10,17). 그리고 믿음은 복음을 받아들이기로 결단하는 행위임으로, 그 복음을 진실로 믿고 자기의 전존재와 생애를 그 복음으로 규정하는 행위이다. 여기에 비로소 믿는 이의 신뢰가 솟아난다(참조: 갈라디아 3,6; 로마 4,3). 또한 복음은 미래에 관한 것이고 미래에 완성될 것에 관한 것이므로 믿음은 미래와의 연관에서 “희망”과 동일시할 수 있다(Rom 4,18-25).
“믿음”이라는 개념 대신에 사도 바울로는 “안다”(οιδα)를 쓰기도 한다. 즉 믿는 사람은 예수는 죽음으로부터 살아나셨다는 것과 다시는 죽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며(참조: 로마 6,9), 주 예수를 죽음으로부터 부활시키신 이가 우리도 부활시키시리라는 것(참조: 2고린토 4,14 등)을 알기 때문이다.
로마서 3,22에서 바울로가 말한 믿음이란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무런 차별도 없이 당신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십니다.” 말하자면 하느님과 바른 관계를 가질수 있는 예수께서 하느님께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모두 진리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예수께서 하느님의 자비에 우리자신을 맡기셨듯이 우리도 하느님의 자비에 우리 자신을 맡기고 전적으로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을 떠나서 혹은 믿음이 없이는 구원이 없다는 것과 신자의 모든 행위만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이다. 구원은 첫째로 하느님의 은총이지만 둘째로 이 은총이란 믿는 자들에게만 미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구원은 믿음으로 얻어진다. 인류에게 필요한 구원의 공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셨고 이 구원의 공로가 내것이 되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이다. 은총은 구원의 근원이고 믿음은 구원의 방편인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구원을 은총으로 주시는데 그 구원을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게 된다. 그래서 믿음은 구원을 얻는 방편인 것이다. 따라서 바울로는 이 믿음이 하느님의 구속의 언약에 있어서 인간에게 주어지는 하나의 요구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믿음이라는 것은 하느님이 하느님의 義를 예수 그리그도의 대속 안에서 나타내셨는데 바로 이 義로 인하여 예수를 믿는 자를 또한 의롭다고 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시고 성취하신 구속사업의 객관적이며 역사적인 사실을 믿는 그 믿음을 소유한 자를 의롭다고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