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로 구원관의 특징
바울로 구원관의 특징들을 몇 가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도 바울로는 우리가 그리스인이 된 것은 오로지 하느님의 은총의 결과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에게도 그의 자신의 구원을 위해 공헌할 어떤 여지도 허락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1) 구원은 전적으로 하느님편에서 오는 것이다. 더욱더 중요한 것은 구원은 하느님 편에서 나올 뿐만 아니라 우리들 자신의 처지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에게 오는 것이다. 인간의 어떤 공로도 없이 호의로 된 것이다. 다시말해서 우리의 어떤 것에 의해서 나타나는 하느님의 반응이 결코 아닌 것이다. 구원의 영광은 하느님께서 그 자신의 사랑과 은총과 놀라운 것으로서 우리에게 이러한 구원을 허락하신 것이다. 인간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일 뿐아니라, 인간은 세상 풍속을 좇고, 악령을 따라 죄 가운데서 살았다는 것이다(에페 2,1-7). 또한 육정에 끌려 살았으며, 육과 관능의 욕망대로 행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이 하느님 앞에서 어떤것을 요구 할것인가 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로에 의하면 그러한 존재들은 하느님 앞에서 아무것도 받을 것이 없다고 한다. 따라서 사도 바울로는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를 강조하고 있다. 인간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는 처지에서 하느님은 인간에게 그의 지극히 풍성한 은총을 값없이 주셨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것은 오로지 전적으로 하느님의 은총 때문인 것이다.
둘째 사도 바울로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이 우리의 행업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에페 2,9)라고 말하였다. 왜 그는 이렇게 말하게 되었는가? 그가 회심하기 전에는 자랑할 것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다르소 출신인 그 사람 만큼 자만하거나, 자기 확신에 넘친 사람은 드물었다. 바울로는 모든 방면에서 자신을 자랑했다. 자기의 민족성을 자랑하였고, 그가 태어난 특별한 지파를 자랑했고, 자기가 바리사이인으로서 양육을 받았고, 가므리엘 문하에서 수업을 하였던 사실을 자랑하였다. 또 그의 종교성을 자랑하였고 그의 도덕성과 자기의 지식을 자랑하였다.2) 이것이 사도 바울로의 회심전의 그의 마음의 상태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인이 됨으로써 자기에게서 큰 차이를 가져오게 한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그 모든 것이 자랑할 만한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사실이다. 그래서 그는 그가 자랑했던 그 모든 것을 “그것은 쓰레기”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 구원에 대한 공로를 전적으로 하느님께로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도 바울로는 우리가 자랑하기 쉬운 면을 지적하고 있다. 그것은 행위의 문제이다. “여러분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총으로 구원 받았습니다. 이는 여러분(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이는 행업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에페 2,8-9). 우리가 자랑하기 쉬운 것은 언제나 행위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바리사이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큰 원수들이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들은 단순히 말만 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실제로 어떤 일들을 했던 것이다. 예를들면 “내가 일주일에 두번 금식하며”(루가 18,12) 또한 그들은 자신의 모든 수입의 십분의 일을 철저하게, 정확하게 낸 사실도 강조한다. 바리사이인들은 그저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들은 실제로 행했던 자들이었다. 그들이 그처럼 하느님의 아들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악한 사람을 개종시키기보다, 선한 사람을 개종시키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한다. 사실상 복음적인 신앙의 가장 큰 적수는 선하고 종교적인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교회역사에 있어서 가장 잔인한 박해자들은 바로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사람들이었다. 왜 그런가하면 그것은 행위를 자랑하는 것이나 행한 일에 대해서 교만한 것을 불식시키기 때문이다. 복음은 우리 모두를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든다. 또한 우리 모두를 발가벗긴다.
사도 바울로가 어느 곳에서나 말하듯이 이방인이나 종교적인 유대인이나 하느님이 보시기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 행위는 자랑되어서는 안된다. 우리의 선한 삶, 우리의 선한 행실, 우리는 종교적인 것을 지키는것, 우리가 전례에 참여하는것, 회헌을 지키는것 등을 자랑하기가 쉽다. 사도 바울로는 그 같은 행위에 관해서 말하는 것은 율법 아래로 다시 들어가는 것이 된다고 하였다. “율법의 행업으로 그 어떠한 사람도 그분 앞에서 의롭게 되지 못할 것입니다. 실상 율법으로는 죄를 인식하게 될 뿐 입니다.” 3) 이 말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사람의 가장 훌륭한 행동이라도 하느님 보시기에는 충분한 선이 되지 못한다. 율법은 모든 사람을 정죄한다. “모든 이가 범죄하였고, 그래서 하느님의 영광을 잃어버렸기 때문에”4)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바울로는 강조한다. 어떤 사람의 행동도, 사람의 행동이라는 어떤 것도 하느님 앞에서 그를 의롭다고 할 만큼 충분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행업 아래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다고 보겠다. 하느님께서는 선한 행위를 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였다. 그런데 그리스도교로 인도 하는 것은 선한 행위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리스도교가 선한 행실로 인도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을 만드신다. 그런 다음에서야 그들을 선한 행실을 행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랑은 배격된다. 우리는 우리의 행위를 결코 자랑해서는 안된다. 우리의 선함을 의식한다든지 또한 우리가 행한 어떤 일에 의존하고 있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을 부정하고 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복음과 정반대인 것이다. 그런데 또한 사람들이 자랑으로 삼는 것은 행위나 행실뿐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자랑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여러분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총으로 구원 받았습니다. 이는 여러분(의 힘)으로 이루워진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 입니다”(에페 2,8). 여기에서 사람들은 가끔 믿음을 행위라 한다면 나는 나 자신을 구원한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로는 그것이 여러분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내게서 나온 방식으로 내 믿음을 말해서는 안된다. 만일 그런식으로 그리스도인이 된다면 그것은 나에게 어떤 자랑거리를 만들어 주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로는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에페2,9)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랑은 완전히 배격되어야 한다. 믿음은 결코 구원의 원인이 안된다.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느님의 은총이 구원의 원인이지 믿음이 구원의 원인이 아닌 것이다. 그러면 믿음은 무엇인가? 믿음은 하나의 도구요 그 구원이 나에게 이르는 통로에 불과한 것이다. “여러분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에페 2,8). 믿음은 통로요, 도구요, 하느님의 은총에서 난 이 구원이 나에게 미치는 그러한 수단인 것이다. 믿음은 구원에 이르는 하느님의 은총이 내 생명속에 들어오는데 있어서 중개역할을 하는 매개체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이나 신앙이나 우리의 이해나 행하는 것에 의해서 구원이 이뤄지는 것이 아닌 것이니 걸코 우리는 자랑할 것이 없는 것이다.
세째 우리가 그리스도인 이라는 사실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행위의 결과라는 것이다. 바울로는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이다”(에페 2,10)고 말하고 있다. 어떠한 일을 행하신 이는 하느님이시요 행하시고 계시는 이도 하느님이시라는 것이다. 내편에서 행한 것은 없고, 하느님께서 나에게 행한 어떤 것만이 있을 뿐이라고 바울로는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선행을 하며 살아가도록 미리 마련 하신 것입니다”(에페 2,10)라고 바울로는 말한다. 하느님께서 그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 뿐이다.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피조물이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된 새로운 사람인 것이다. 하느님이 만드신 존재이다.
우리를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것은 교회의(전례)에 참여하는 것도 아니요, 어떠한 의무를 우리가 행하여서도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신 분도 하느님이시고 또 하느님께서는 그 일을 행하신것이다. 하느님은 처음부터 없는 가운데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사람에게 오시어 인간을 새롭게 하셨고, 인간에게 새로운 성품을 주시고 인간을 새 사람으로 만드셨던 것이다.
바울로는 말하기를 만일 여러분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하느님께서 관심을 두시는 행위의 종류에 대해 언급하겠다는 것이다. 즉 본질상 죄의 존재로서 여러분이 할수 있는 일은 비참한 일과 그런 행위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행위는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시는 일인 것이다. 하느님의 행위만이 진정한 구원을 위한 창조의 행위인 것이다. 그것은 자비로부터 나온 행위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 창조된 존재이다.5)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하는 것은 오직 하느님의 일이고, 그분만이 행하실 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인간에게서는 이러한 행위가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구원받고 나서 우리에게 선행이 나타난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은총의 열매이지, 결코 그것이 우리를 위한 무슨 공로는 되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구원을 이루는데 있어서 우리 인간의 어떤 행위가 직접적인 기여를 하는데 있어서는 전혀 무관하다는것이 바울로의 구원관의 특징 이라고 결론을 짓을 수 있겠다.
이제 이러한 사도 바울로의 구원관을 통해서 볼때 우리 그리스도인은 몇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사도 바울로는 로마 3,24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되었습니다”고한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적인 진술의 하나이다. 이 구절의 진술은 세가지 측면에서 그 내용을 보여 주고 있다.즉 속량이란 무엇인가 또 하느님이 베푸신 그 속량이 어떻게 우리의것이 되었고, 하느님께서 그러한 속량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가 있는가를 보여 준다. 따라서 이러한 내용이 우리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 속에 어떻게 적용되는가를 지적하고자 한다. 그러면 먼저 구원이란 무엇인가 바울로는 구원이란 “의롭다 함을 얻는 것” (being justified)이라고 말하고 있다.6) 이것은 참으로 중요하기 그지없는 진술중의 하나이다. 그 의미는 하느님에 의해서 우리가 의롭다고 선포된다는 뜻이다. 그것은 법적인 또는 법정에서 되어지는 일이다. 우리가 의인으로 판단되었다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선포 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화에 대한 이러한 하느님의 선언은 우리들의 행함에서 온 열매가 아니고 우리들에게 주어진 어떤 것이다.7)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께서 우리들을 의롭다고 간주해 주시고 의롭다고 선포하시는 의미에서만 의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다. 이제 두번째로 이 구원이 어떻게 우리것이 될수 있었느냐 하는 것이다. 바울로는 진술하기를 은총으로 거저 우리에게 온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구원이 선물, 즉 전적으로 무상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구원이란 하느님으로부터 온 선물이다 . 따라서 사도 바울로는 그 말 속에서 구원이 우리에게 임하는 방식을 강조한다. 또한 우리 인간은 전혀 그것을 받을 만한 어떤 자격도 없다는 것을 선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점에서 볼때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자신에게 질문 해 볼 것이 있다면 우리는 지금 우리 자신이나, 우리가문의 전통이나, 우리 수도회의 전통과 규칙이나, 교회의 의무를 지켜다는 등 우리에게 있는 어떤 것을 의지하고 있지나 않는지 그 모든 것은 구원과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다. 구원이란 어떤면으로 보든지 전혀 그것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우리에게 임한 하느님의 값없는 선물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로는 은총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이점을 더욱 강조 하고 있다. 무상의 선물은 하느님의 은총의 결과이다. 은총이라는 말보다 더 놀라운 말은 없는 것이다. 그 말은 전혀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준 과분한 총애나 자비를 의미한다. 여기서 다시 순전히 무상이라는 구원의 특징이 떠오르게 된다. 그것은 순전히 하느님만의 자발적인 사랑의 실천에서 나온 결과인 것이다. 구원은 단순한 값없는 선물만이 아니고, 그와 정반대되는 진노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베푸신 값없는 선물인 것이다. 그리고 구원은 우리가 이세상에서 소망도 없고, 하느님도 없이 사는 동안에 우리에게 베풀어진 것이다.
“우리는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의롭다 하신 분은 하느님 자신이시다. 구원의 모든 방법에서 나타낸 바 는 하느님의 義 인것이다. 이것이 복음을 인간의 이해나 지각을 초월하는 것으로 만든다. 복음을 주신분은 오직 하느님 자신이다.
이제까지 우리는 구원의 길에 대해 살펴보았고 또한 구원이 어떻게 우리에게 실제적으로 미치는가를 알아보았기때문에 이제는 무엇이 구원을 가능하게 하는가? 하는것을 다루어야 하겠다. 사도 바울로는 “통하여” 라는 말로써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답변을 하고 있다. “그리스도 예수안에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이말은 중요한 말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을 수단으로(by mean of) … 과 관련하여(in connection with) 라는 뜻이다. 통하여 (through)란 말은 구원은 오직 주님안에서 일어난 모든 일, 즉 그의 완전한 순종 , 십자가의 죽음, 부활을 방편으로 하는 것이며, 우리 주님의 그 모든 일로 말미암는 다는 것을 명백히 제시하고 있다.8)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모든 일을 통해서만 구원은 가능한 것이다.

사도 바울로의 구원관의 특징
사도 바울로의 구원관의 특징을 한줄로 요약한다면 “구원은 하느님의 은총의 결과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사도 바울로는 로마서 3, 24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되었습니다” 고 말씀하신다.
사도 바울로는 우리가 그리스인이 된 것은 하느님의 은총의 결과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아무에게도 그의 자신의 구원을 위해 공헌할 어떤 여지도 허락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느님 편에서 오는 것이다. 더욱더 중요한 것은 구원은 하느님 편에서 나올 뿐만 아니라 인간의 어떤 공로도 없이 호의로 된 것이다. 다시말해서 우리의 어떤 것에 의해서 나타나는 하느님의 반응이 결코 아닌 것이다. 구원의 영광은 하느님께서 그 자신의 사랑과 은총으로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것이다.
또한 사도 바울로는 우리가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이 우리의 행업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에페 2,9)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우리 구원에 대한 공로를 전적으로 하느님께로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로는 우리가 자랑하기 쉬운 면을 지적하고 있다. 그것은 행위의 문제이다. “여러분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총으로 구원 받았습니다. 이는 여러분(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행업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에페 2,8-9). 바리사이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큰 원수들이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들은 단순히 말만 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실제로 어떤 일들을 했고 그것을 자랑하였다. 예를들면 바리사이의 기도에서 보는 것처럼(루가 18,11-12) 바리사이인들은 자신이 단식한 것과 십분의 일을 바치는 것 등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의 도구요 그 구원이 나에게 이르는 통로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이나 신앙이나 우리의 이해나 행하는 것에 의해서 구원이 이뤄지는 것이 아닌 것이니 결코 우리는 자랑할 것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자랑은 모든 면에서 완전히 배격되어야 한다.
4. 나가는 말
사도 바울로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오로지 하느님의 은총이라 했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이 우리에게 어떠한 자랑거리도 제공하지 않는 것이다. 구원에 있어서는 하느님이 (선수)를 취하셨고 인간은 단순히 회개와 믿음의 반응만을 보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행위의 결과인 것이다. 구원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 은총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졌고 이 은총의 영향은 한정된 소수에게만 주어지기로 예정된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에 이른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결국 바울로의 구원관이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 한것이다. 그것은 “아무리 율법적으로 행위가 완전하여도 그리스도가 없는 한 절망”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느님의 그 크신 은총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며, 그것을 통하여 하느님의 영광을 이 세상에 드러내는 삶의 증거자가 되어야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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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Betz,H.D., 로마서, 국제성서주석34, 신학연구소, 1987.
3. 광주 가톨릭대학 편집부, 성서신학사전, 분도출판사, 1984,
4. Barclay, W , 사도성바오로의 사상, 서기산역, 성 요셉출판사, 1992.
5. Fitzmyer,J.A, 바울로의 신학, 김수복역, 분도출판사, 1990.
6. 전경연, 개신교와 의인신앙, 신학전망 32호.
7. 이홍기, 사도 바울로의 생애와 편지, 분도출판사, 1989.
8. 정양모, 사도 바울로의 의화론, 신학전망 43호.
9 .류제옥, 바울로의 구원론, 대구가톨릭대학교, 1993.
10. J. 크리스찬 베커, 사도바울, 장상 역, 한국신학연구소,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