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의 황제들-갈리구라, 글리디오


갈리구라(37-41년)


디베리우스의 계승자인 갈리구라 황제는(Caesar Augustus Germanicus) 체살 가문에 속한 자로서 디베리우스의 양자인 제르마니쿠스의 아들이었다. 갈리구라(Caligula)란 말은 ‘작은 신발’이란 뜻으로서 라인강 군대의 장교들이 지은 별명이다. 37년 온 백성의 환호 속에 즉위한 갈리구라는 불행하게도 즉위 몇 달 후 정신병에(조발성 치매증)에 걸려 과대망상과 잔인함으로 제국을 위태롭게 하였다.


고대 에집트의 군주들처럼 전제 군주로서 제국을 다스리고 자신의 신격화에 사로잡혀 ‘새 태양’이라고 자처했다. 정치에 있어서는 디베리우스와 반대의 정책을 취하였으며 근동 문화에 도취된 나머지 동부 속주까지 로마 정무관들을 지방영주로 교체했다.


이때 유대아의 지사였단 말첼루스 대신 그는 헤로데 대왕의 손자였던 아그리빠 1세에게 팔레스티나를 맡기고 왕의 칭호까지 부여했다(사도 12, 1-9). 여러 차례 구테타의 시도를 막았지만 끝내 피살되고 만다.




④ 글라디오(41-54년)


갈리구라 황제의 피살 후 친위대 장교들은 디베리우스 황제의 양자인 제르마니쿠스의 동생이었던 글라디오(Tiberius Claudius Augustus Germanicus)fm 황제로 옹립했다. 글라디오는 탁월한 인품과 뛰어난 수완을 가졌던 황제로서 중앙 행정기관을 재조직하였을 뿐 아니라, 속주의 많은 도시민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주었다. 또한 브리타니아(현 영국)을 점령하였으며, 북 아프리카(현 알제리아 서부 지방)을 속주로 승격시켰으며, 근동에서 유대아를 합병시켰을 뿐 아니라 소아사아의 리치아(사도 21, 1)를 정복했다.


본처였던 메살리나가 죽은 뒤 조카 딸 아그리삐나와 재혼하였는데, 아그리삐나 의붓아들인 네로를 황제의 양자로 삼게 하고 난 다음 글라디오를 독살함으로써 왕위를 찬탈하여 네로에게 넘겨준다.




글라디오 황제는 사도행전에 두 번 등장한다. 그의 재위기간 중 온 제국에 심한 기근이 들어 안티오키아 교회가 예루살렘 모교회를 돕기 위하여 모금 운동을 전개했다는 기록이 사도행전 11장 28절에 나온다. 이 기근은 46년부터 48년까지 전 제국 곳곳에서 맹위를 떨쳤다. 그리고 사도 18, 2에서는 로마에 정착한 유대인들이 글라디오 황제에 의해 로마에서 추방되었음을 볼 수 있다. 로마의 사학자였던 타치투스(Tacitus 55-120년)와 수에토니우스(Suetonius 69-126?)는 이 추방령을 전해주고 있는데 수에토니우스는 그의 글에 “그리스도란 사람 때문에 소란을 일으켰던 유대인들을 추방시켰다”라고 기록하고 있다(글라디오 생애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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