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리우스(14-37년)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의 계승자인 디베리우스는 자기의 친어머니 리비아가 옥타비아누스와 재혼할 때 황제의 가문에 입적하게 되었다. 주전 13년과 7년에 집정관에 입명되었으며 6년에 호민관직을 맡았다. 주전 11년 옥타비아누스의 명령에 의해 본처인 아그리비나(Agrippina Vipsania)와 이혼하고 황제의 딸 율리아와 재혼하여 주후 4년에 황제의 양자기 되었다.
14년에 옥타비아누스의 계승자가 되었다. 그의 재위 기간 중 갈리아의 반란을 잔혹하게 진압되었으며, 게르마니아를 약화시키는 원정이 잦았으며, 근동에서 가빠도치아가 점령되었으며 시리아 속주가 확대되었다.
제위 말엽에 공포증에 걸린 디베리우스는 테러를 일삼았다. 그는 정무관이었던 세야누스(Sejanus)에게 정사를 일시적으로 맡겼으나 배임 혐의를 걸어 사형에 처한다. 디베리우스는 복음서에 두 번 나오고(루가 3, 1 과 요한 19, 12) 빌라도를 유대아 지사로 임명한 황제이다. 세야누스의 친구였던 빌라도는 26년부터 36년까지 10년간 유대아를 다스렸으며, 세야누스와 빌라도 두 사람 모두 反 유대교 운동의 선종자들이었다. 디베리우스 황제는 37년에 사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