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의 조직
① 중앙행정기관
앞에서 황제들의 역할에 대해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공화정에서 일인통치(一人統治)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황제는 명목상으로는 정무관과 국민들 중에 ‘제일시만’(Princeps)이었지만. 실제로 황제는 한 손에 모든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황제는 행정권과 통수권, 심지어는 종교 지도권까지 행사하였던 영도자였다. 황제는 정무관을 임명하고, 삼십 오만 내지 사십여 만 명에 이르는 정규부대를 통솔하고, 국가 보호신을 신봉하는 최고 사제직을 맡고 있었다.
또한 황제는 온 제국의 l평화와 치안을 유지하는 자로서 국가의 번영과 일치를 보장하는 인물이었다. 따라서 근동 지방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살아온 헬라(그리스) 사상에 따라 황제를 왕(Basileus), 즉 신정(新政)을 맡은 초인으로 여겼다. 바울로가 예수의 왕권을 선포하는 것에 대해서 데살로니카 시민들이 심한 반발을 하였다는 것은(사도 17, 7-8) 이 같은 맥락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이와 반면 공화정 시대 때 실권을 행사하던 원로원은 날이 갈수록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공화정에서 유래한 집정관직(Consulatus)이나 호민관직(Tribunatus)은 유명무실해져 버렸다. 황제들은 행정기관을 재조직하여 로마시의 치안감 등 주요 기간의 장들을 자유자재로 임명하였다. 중앙행정기관은 초대교회에 별다른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② 국민의 신분
로마 제국의 주님 모두가 똑같은 공민권을 누리던 것은 아니었다. 공화정 시대부터 토지를 점유하고 있던 귀족계급이 모든 관직을 장악하고 있었고 그들 중에서 원로원 의원들이 뽑혔다.
제국시대에 와서 귀족 계급 출신들은 원로원 직할주의 총독으로 출세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세네카의 동생인 갈리오는 아키야 속주의 총독으로서 바울로를 재판하였다(사도 18. 2-17). 양민들 중에서 금력이 있던 자들은 기사 계급을 형성하였다. 황제들은 기사계급 중에서 정무관과 황제 직할주에서 황제가 소유하고 토지를 관리하는 판무관을 뽑았다.
기사계급 출신이었던 빌라도를 비롯하여 유대아의 판무관이었던 펠릭스(사도 23, 24 이하)와 페스도(사도 24, 27이하)는 초대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들이다. 일반 양민들은 주로 군인과 농부로서 구성되었다. 이외에 헤아릴 수도 없던 많은 노예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아무런 권리도 갖지 못하는 ‘일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로마는 인구 총수의 삼분의 일이 노예이었고, 백만 인구를 가졌던 아렉산드리아는 대략 칠십만명이 노예였다.
그러나 노예들의 지위는 가지각색이었다. 짐승들의 생활보다 나을 것이 없는 광부들이 있는가 하면 의사, 조리사, 선생 등은 선량한 주님들을 만나면 속량되어 자유민(Liberitinus)이 될 수 있었다. 전쟁포로로 끌려간 유대인들 중에서 자유민이 되어 본국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만만치 않은 영향력을 갖기도 하였다(사도 6, 9).
자유민을 포함한 양민 모두가 같은 권리를 누지는 못하였다. 이탈리아 본토 출신 양민들은 소위 말하는 ‘이탈리아공법(Jus Italicum)’에 따라 로마 시민권을 누렸다. 이들 외에 속주의 양민들은 ‘외인공법(Jus peregrinum)’에 따라 살아야 했다. 속주의 주민들 중에서도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로마 시민권을 돈을 살 수 있었고(사도 22, 28), 한 번 취득한 시민권은 자녀들에게 물려 줄 수 있는 세습적 권리가 되었다. 이 때문에 바울로는 자신이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졌다”라고 자랑할 수 있었다(사도 22, 28).
주전 47년 체살(Julius Caesar) 장군이 본도(Pontus)의 군주였던 파르나스(Pharnace)와 싸울 때 바울로의 고향이었던 길리기아의 많은 유대인들이 협조하여 준 보답으로 그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부여한 적이 있었다. 아마도 이때에 바울로의 아버지도 로마 시민권을 받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외의 방법으로서는 정규 부대에 지원 입대하여 20년(외원군의 경우 25년)을 복무하면 로마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조세 면제의 혜택은 이탈리아 출신 로마 시민들에게 주어졌다. 로마 시민권을 가진 타 지방 출신들은 황제의 관할 재판정에서 직접 상소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