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내에 있어서 각 지방의 지위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제국의 수도였던 로마 도시와 이탈리아 본토가 제일 많은 혜택을 받았을 뿐 아니라, 특수한 지위를 누렸고, 나머지 속주는 원로원 직할주와 황제 직할주로 구분되었다. 원로원 직할주들은 주로 공화정 시대에 로마제국에 합병된 지방들로서 전집정관(Proconsul)이라는 칭호를 가진 원로원의 의원에 의해 통할되었다.
예를 들면 키프로스섬은 주전 22년에 속주가 되어 세르지우스 바울로(Sergius Paulus)라는 전집정관이 다스리고 있었다(사도 13, 4-12). 이외에 사도행전과 관계되는 원로원 직할주로써 마케도니아 속주(사도 16, 9), 아시아속주와 비티니아 속주를 들 수 있다(사도 16, 6-8). 원로원 직할주들은 공세를 내고 있었는데 황제가 파견한 판무관들이 세금을 징수하고 황제 소유 토지를 관리했다. 전집정관의 임기는 2년 밖에 되지 않았다.
황제 직할주들은 정규부대(Legiones)가 주둔하는 속주들이었다. 황제가 임면할 수 있는 원로원의 의원에 의해 통할되었다. 정규 부대를 통솔하는 대장과 조세를 맡은 세무관이 황제 직할주의 총독을 보좌하였다. 시리아를 비롯하여(루가 2, 2), 길리기아(사도 15, 41), 밤피리아(사도 13, 13), 갈라티아(사도 16, 6; 18, 23) 속주들은 황제 직할주들 이었다. 인두세와 토지세를 내는 이 속주들은 실제로 로마 시민들의 공유물이었다.
이 이외의 많이 지방은 로마제국과 조약을 맺어 대내 문제에 있어서는 자치권을 누리고 있었다. 시리아 속주와 관련된 팔레스티나 지방은 황제가 파견한 지사(Praefectus)나 글라디오 황제 때는 판무관(Procurator)이라고 불리우던 기사 계급 출신 정무관이 이 지역을 관리했다. 빌라도 지사, 펠릭스와 페스도 판무관들은 초대 교회의 역사에 등장하는 정무관들이다(사도 24, 27). 이 판무관들은 외원군을 통솔하여 치안을 유지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세금(인두세, 토지세, 관세, 상속세 등)을 징수하고 사법권까지도 행사하였다.
각 지역의 지위가 달랐던 것처럼 각 속주의 여러 도시의 지위도 각양각색이었다. 우선 그 수에 있어서 많지 않은 도시의 시민 전부가 로마시민권을 누리고 있었다. 이 도시들은 ‘로마식민지’라고 흔히 불리웠지만 실은 퇴역 군인들이 정착하였던 곳이었다. 이 도시는 ‘이탈리아 공법’에 따라 다스려졌기 때문에 이탈리아 보호 도시와 별 차이가 없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비시디아의 안티오키아 도시는 아시아 속주에 속하는 퇴역 군인들의 정착도시였고(사도 13, 3), 갈라티아의 이고니움은 글라디오 황제 때 로마군인 정착 도시로 승격되었으며(사도 14, 1), 드로아스(사도 16, 8), 빌리보(16, 12) 역시 유명한 로마 군인 정착 도시로서 로마시민권을 누리고 있었다.
그런데 데살로니까는 시민화와 시정관(Politarkhes)에 의해 다스려진 자유도시였지만 로마 시민권을 누리던 도시는 아니었다(사도 17, 5-6)
황제들은 유서 깊은 도시의 긍지를 살리기 위해-결국 제국의 일치를 보호하기 위하여-행정 권한이 없는 단체를 허용했다. ‘그리스의 들창’이라 불리던 아테네는 비록 그 지위에 있어서는 등급이 낮았지만, 학술과 종교 문제를 검토하던 사정회(Areopagos)가 그 도시의 명성을 유지했다(사도 17, 9). 아사아 속주의 수도였던 에페소는 450명이나 되는 공회의 대의원을 가졌었고(사도 19, 39), 매년 아시아 속주에 속하던 도시들이 선출하던 황제와 로마 보호신을 신봉하는 사제단이 만만치 많은 권위를 누리고 있었다(사도 19, 31). 대제사장들은(Asiarkhes) 현직에서 떠난 다음에는 직명은 보유하고 있었다. 지방 자치단체와 제국 행정기관은 균형을 이루어 평온과 번영을 유지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