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는 왜 또 어떻게 해야하나

 

전교는 왜 또 어떻게 해야하나


1. 이 질문은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른다. 그만큼 우리는 전교, 더 정확히 말해, 직접 전교는 당연시해 왔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최근에 읽은 개신교 발행의 모 잡지에서 한국의 명문 여자 대학에서 근무하는 모 교수는 이런 말을 전한다: 그 대학 학생들이 기독교에 대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바로 지하철 전도라는 사실이라고 한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예수 믿고 천당 가세요. 예수 믿지 않으면 지옥 갑니다. 그러니까 같은 차깐의 다른 목소리가 웨친다: 거기까지만 해! 예수 안 믿으면 지옥간다고 하지마! 그렇게 협박하는 종교는 없어!하고. 그런가 하면 우리 천주교는 이런 가두 전교를 본받아 거리에서 직접 전교하는 시험을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까지 매우 소극적이었던 천주교 전교 방법에 대한 하나의 반발로서 이해할 만하다. 우리는 과연 어떤 방법으로 전교해야 전교의 타당성과 그 효과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까?


 


2. 예수님은 분명 부활하신 다음 갈릴래아의 어느 산에서 제자들에게 전교 명령을 내리셨다: 가서 만민들을 당신의 제자로 삼아 그들에게 세례를 주며 당신의 계명을 지키도록 가르치라고 하셨다. 전교의 당위성을 의심할 터무니는 전혀 없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받들어 모시는 교회는 이 지상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3. 교회는 역사적으로 이 전교 명령을 어떻게 수행해 왔는가? 여기에 답하자면 교회의 전 역사를 뒤돌아 보아야 하겠지만 여기서는 그 중요한 몇 고비만을 짚어보기로 한다. 교회는 313년 콘스탄틴 황제의 밀라노 칙령이 발포될 때까지는 공식 비공식적으로 혹독한 박해를 받아 왔다. 그때부터 6세기말까지는 게르만족을 전교를 하면서 그리스-로마 문화에 길들이기도 했다. 야만족을 문화인으로 만드는 작업이었다. 6세기말부터는 아랍 민족들의 이동이 있었다. 이들을 상대로 해서는 별로 전교할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다. 전반적으로는 이들을 서구 문명을 말살하려는 침략 야만족으로 간주하고 무력으로 퇴치하려했다고 하겠다. 십자군 전쟁 역시 이 아랍 민족-이슬람 종교와의 전쟁의 연장선상에서 수행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대륙이 발견되고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인도에서 일본 중국 한국에 이르는 광대한 아시아 대륙이 알려지면서 전교의 양상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 만큼 일대 변혁을 겪게 된다. 라틴 아메리카의 전교는 원주민 정복과 강제적인 입교와 동시에 이루어졌고 그 후유증은 남미 대륙의 경제적 수탈과 그 낙후성이라는 양상으로 오늘에까지 이른다. 아시아 대륙의 전교 효과는 극히 저조한 편이다. 400년의 역사를 갖는 일본 천주교의 오늘의 교세는 한국만도 못할 정도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중국 역시 2차 대전 종전까지 약 400만의 신도들이 있었을 뿐이다. 그나마 모택동의 공산당 혁명으로 전후 약 50년 이상 침묵의 교회, 지하 교회, 체제 교회로 차례 차례 그 얼굴을 바꿔 오면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 대륙은 천주교 전교의 황금 어장으로 인식되어 있지만 정치적 여건은 직접 전교를 억제하고 제어하며 저해하는 편이라고 하겠다. 러시아의 경우는 공산 체제가 무너진 이후 다소 교회가 숨을 돌려 쉴 수 있게 되었으나 최근의 종교 관련 입법 경향은 이 나라의 종교로 러시아 정교회만을 인정하려 하는 것 같다. 오랜 역사를 갖는 정ㆍ교 일치가 재현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베트남 교회 역시 수많은 순교자들을 배출했지만 공산 월남의 베트남 통일로 현재로서는 완전한 종교 자유를 누린다고 볼 수 없다. 필립핀 만이 유일하게 극동에서 가톨릭 국가로 체면을 유지하고 있으나 많은 수의 냉담 신자들로 해서 활력을 찾지 못하고 있으며 특히 성소 부족 현상은 상당히 심각한 것 같다. 인도는 전통 종교인 힌두교의 확고한 지위로 상당한 전교 성과에도 불구하고 역시 소수 종교의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가난과 사회적 낙후성으로 해서 이에 대처하려는 인두 국민의 노력에 교회가 자선사업의 차원을 넘어 얼마나 창조적으로 그리고 제도적으로 기여할 수 있느냐에 교회의 앞날이 크게 좌우될 듯싶다. 남미도 그렇고 아프리카도 그렇고 아시아 대륙도 마찬가지지만 서구의 탈을 쓰고 있는 백인 지배의 교회와 각 민족의 정치적 독립, 경제적 성장과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느냐가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전교의 효과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된다. 자원, 환경, 무역, 에이즈 등 각종 질환, 식량, 사회복지, 등등 여러 분야에서 제1 세계과 제3 세계 사이에 분쟁과 경쟁이 진행 중에 있고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과정에서 교회가 어떤 입지를 취하고 어떤 선택을 결정할 것인지는 앞으로의 전교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게다가 각 민족 문화에 접목을 시도하는 그리스도교의 토착화 시도의 성패 여부도 21세기 전교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 한반도는 아직 통일이 되어있지 않다. 통일 후 북한의 전교에도 대비해야 한다. 북한에 아직 남아있다고 볼 수 있는 교회의 기득권 문제는 개인들의 경우의 재산권 문제와 무관할 수 없으나 이 점 역시 지금부터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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