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없는 이 세상에서

 

예수님 없는 이 세상에서




1. 예수님은 제자들과의 이별 만찬 석상에서 고별의 말씀을 나누셨다. 그러니까 그것은 유언의 말씀이기도 하다.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우선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에게 찾아와서 함께 살겠다고 하십니다. 제자들과 이별을 하시면 서도 함께 계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당신의 부재중에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함께 계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은 아버지 하느님께서 보내주시는 성령께서 당신의 말씀을 우리에게 다시 생각나게 해 주실 것이라 약속하십니다. 


 


2. 이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평화를 남기고 떠나가신다고 하십니다. 평화는 그러니까 제자들에게 물려주시는 예수님의 상속 재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꾸로 평화를 상속받지 못한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라고 할 수 없겠습니다. 그런데 이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고 하십니다.


 


3.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당신이 떠나가신다고 해서 제자들이 심란해지거나 겁내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스승이 가고 없는 마당에서 방향 감각을 잃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은 제자로서 취할 태도가 아니라는 뜻이겠습니다. 한마디로 성숙해지라는 말씀이겠습니다.


 


4. 예수님께서 가시고 없는 세상은 제자들의 세상입니다. 그렇다고 세상 만났다고 제멋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가시고 없는 세상은 제자들이 책임져야 할 세상입니다. 책임은 성인에게만 물을 수 있습니다. 예수가 가고 없는 세상이라는 상황 변화는 제자들에게 성숙성과 책임을 요구합니다. 갑자기 어른이 되면 불안하고 미숙할 수밖에 없겠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성숙한 제자, 책임 질 줄 아는 제자가 되기 위해 몇 가지 지침을 내리십니다.


 


5. 첫째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면 그 말씀을 지켜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 말씀은 그분이 가고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성령께서 일깨워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성령은 우리가 예수 없는 세상에서 그분의 제자로서 살아가기 위한 지침으로서 그분의 말씀을 되새겨서 다시 들을 수 있게 하십니다. 예수님의 직제자들은 그분의 말씀을 육성으로 들을 수 있었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한번 들어보지도 못한 그분의 말씀을 되새기고 되 생각할 수 있겠으며 하물며 그 말씀을 지킬 수 있을까요? 물론 없습니다. 우리가 비록 예수의 말씀을 육성으로 들어본 적은 없어도 그분 이야기는 여러 번 들어 익히 알고 있을 정도입니다. 어려서는 어머니 슬하에서, 조금 자라서는 주일 학교에서, 그리고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의 강론과 교리 공부를 통해서, 교회내의 여러 가지 교육과 연수 그리고 피정 동안에 예수님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되 생각나게 해 줄 것이라는 오늘의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읽을 수 있는 기회는 여러 번 있었고 또 여러 가지입니다 마는 우리가 들은 이 모든 예수 이야기는 근원적으로는 예수님의 직제자들의 예수님께 관한 기억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께 관한 기억 곧 그분의 이야기를 나름대로 수집하고 정리하고 편집해서 기록에 남겨 놓은 것이 오늘날 우리가 읽는 복음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서를 포함하는 신약성서에서 우리는 언제나 그리고 그 어느 누구에게보다도 정확하고 풍부하게 예수 이야기를 읽을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울러 성령께서 우리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되 생각나게 해 주시고 싶어도 우리가 한번도 예수님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고 읽은 적도 없다면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예수의 말씀을 되 생각나게 해 줄 수 있기 위한 필수적 전제라고 할 것입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보십시오! 성경 읽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성령 세미나에는 빠져도 상관없지만 성경 일기를 빼놓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은 말씀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부재중에 우리


에게 주신 그분의 현존이고 그분의 임재입니다. 성체성사와 꼭 같습니다. 미사 때 말씀의 식탁과 성찬의 식탁 두 가지가 마련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6. 이렇게 우리가 성경 읽기를 통해서 예수의 말씀을 끊임없이 새로 듣고 성령의 회상 작용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그 말씀을 지켜 나갈 때, 성령과 함께 아버지 하느님이신 성부와 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안에 거처를 마련하시고 우리와 함께 사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이 계시지 않는 동안에도 그분의 현존을 누리고 이로써 우리가 그분의 제자라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 그분을 증언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성숙하고 책임 감 있는 제자로서의 자아상이 아니겠습니까? 그때 또한 우리는 예수님이 남기고 가신 유산 곧 평화를 만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평화는 단순한 마음의 평화, 양심의 평화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평화를 만드는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평화입니다. 혼자만 자만 자족하는 평화가 아니라  많은 인내와 관용, 투쟁과 타협으로 일구어나가는 이웃간의 연대적인 평화입니다.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을 회상하고 되 생각한다는 것은 뜻하지 않게 우리에게 위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지도 못하고 뜻하지도 않은 곳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기습하십니다. 많은 것을 요구하십니다. 아니, 끝내는 우리 자신까지도 요구하십니다. 그렇다고 겁을 먹거나 심란해하지 맙시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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