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장
1 야훼 하느님께서 만드신 들짐승 가운데 제일 간교한 것이 뱀이었다. 그 뱀이 여자에게 물었다. “하느님이 너희더러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하나도 따 먹지 말라고 하셨다는데 그것이 정말이냐?”
2 여자가 뱀에게 대답였다. “아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동산에 있는 나무열매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따 먹되,
3 죽지 않으려거든 이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 열매만은 따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
4 그러자 뱀이 여자를 꾀었다. “절대로 죽지 않는다.
5 그 나무 열매를 따 먹기만 하면 너희의 눈이 밝아져서 하느님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이 아시고 그렇게 말하신 것이다.”
6 여자가 그 나무를 쳐다보니 과연 먹음직하고 보기에 탐스러울 뿐더러 사람을 영리하게 해 줄 것 같아서, 그 열매를 따 먹고 같이 사는 남편에게도 따 주었다. 남편도 받아 먹었다.
7 그러자 두 사람은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앞을 가리웠다.

“하느님이 너희더러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하나도 따 먹지 말라고 하셨다는데 그것이 정말이냐?”
뱀의 이 질문에는 이중적인 계략이 숨겨져 있다. 먼저 뱀은 여자가 자기를 반성하고 대답할 겨를을 주지 않는다. 즉 뱀은 질문의 동기에 대한 설명이나 정보를 전혀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질문의 애매모호성은 하느님께서 정원의 모든 나무들 열매를 따먹지 말라고 하신 금령이 사실인가 거짓인가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하느님으로 하여금 <그 무엇도 금지하는 존재> 아니면 적어도 매우 인색하게 조금만 양보하여 <겨우 허락하는 존재>로 나타나게 하는 데 뱀의 속셈이 있는 것이다. 뱀은 하느님의 사랑을 왜곡시키려고 하는데 목적이 있다.
그런데 성서의 법정신은 시대와 상황과는 상관이 없이 언제나 동일하다. 성서는 금령으로서의 어떤 범을 제정하기에 앞서 무엇보다도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은혜로운 업적을 이야기의 문체를 통해 먼적 기록하고 있다. 그 다음에 명령적인 문체를 통해 법이 양식화된다. 성서의 이같은 법정신은 은총이 법을 선해하고 있다는 구조를 전제하고 있다.
그러므로 뱀은 이 질문에서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먼저 베푸신 은혜에 대한 요소를 깡그리 생략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여자는 뱀의 교활함을 보지 못하고 있다.
“아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동산에 있는 나무열매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따 먹되,죽지 않으려거든 이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 열매만은 따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
여자는 뱀의 질문에 의무감같은 것을 느껴 그에게 대답을 한다. 문제는 하와가 뱀의 말을 바보스럽게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에 있다. 여자는 뱀의 말의 뒤에 숨어 있는 저의를 자세히 캐물어야 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원수의 말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인다.
물론 하와의 대답에는 거짓이 없다. 그녀가 하느님께서 금령을 내렸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와의 답변에서 보면 하느님의 은총을 단순히 언급하고 있지만 결국 뱀의 의도대로 금령의 사실만을 상기시키고 있다. 다시 말해 하와는 어느 정도 금령의 사실을 하느님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금단의 열매에 손을대지 말라는 것>
손을 대지 말라는 표현은 하와의 두려움과 공포가 포함되어 있다. 결국 이 대답은 유혹자에게 충분한 공격의 구실을 제공해 준다. 다시 말해 뱀은 하와의 약점을 발견한 것이다. 모든 싸움이 그러하듯이 총사령관은 먼저 스파이들을 보내어 적군의 취약점을 염탐해 오게 하고 작전 계획을 수립한 후에 총공격을 명령한다. 뱀이 하와에게서 얻어낸 정보는 금령과 죽음의 공포인 것이다. 뱀은 이 두 가지 정보를 기초로 하여 하와를 공격한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일상의 대화중에 하와와 같이 그런 헛점을 드러내면서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하느님께 대한 믿음의 대화 안에서 이런 헛점이 보여지게 되면 우리를 유혹하는 유혹자는 즉각 공격에 들어올 것이다.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서…
“절대로 죽지 않는다. 그 나무 열매를 따 먹기만 하면 너희의 눈이 밝아져서 하느님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이 아시고 그렇게 말하신 것이다.”
뱀의 공격은 갑작스럽고도 난폭하다. 약점을일단 발견한 표범이 암사슴을 날쌔게 덮치듯이, 조금도 주저함이 없다. 뱀의 공격을 풀이하여 보자.
<뱀인 내가 너희에게 죽지 않으리라는 진리를 보장했다면 너희는 하느님이 거짓을 말했다는 것을 미덩야 한다. 아니 하느님이 거짓말장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만일 내가 거짓망를 했다면 나도 하느님처럼 거짓말장이요 살인자가 될 것이다. 내가 거짓말장이라면 지니를 말하는 이 뱀, 나 때문에 너희가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하와는 이제 하느님과 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하느님을 거짓말장이와 살인자로 낙인을 찍은 뱀의 말을 믿을 만한 아무런 이유도 없지만 뱀의 충동질은 하와로 하여금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생각 못하게 만들고, 오히려 뱀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게 만들었다.
대화를 하다보면 가끔 본질을 잊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왜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를 때가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알지 못하고, 내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한다면 남이 나에게 해 주는 말이 다 옳은 것이라고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마치 하와처럼…
뱀은 하와를 마구 흔들고 있다. 뱀은 하느님께서 금단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고 하신 그 금령에 대해 전혀 해명을 하고 있지 않다는 핑계를 이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법은 자의적이요 아무런 존재 가치가 없는 무조건의 법이라고 여겨질 수 있게 만들고 있다. 뱀은 아무도 그런 금령이 왜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여자를 유혹한다. 뱀은 “알다”라는 동사를 사용함으로써 하와의 주의력을 분산시키고 또한 실제로 자기 자신도 금령의 이유를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는 데 성공한다. 이제 하와는 금령의 원천에 대해 그 이유를 따져 보아야 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는 않고서 오히려 그것의 기원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뱀으로부터 들으려고 호기심의 귀를 기울인다. 뱀은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라는 표현으로 교묘하게 진실을 가리는데 성공한다.
뱀은 세상과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은총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모르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뱀은 아는 것을 말하지 않고 오히려 모르는 것을 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 또한 내가 모르는 것을 말하고 있다면 나도 뱀처럼 다른 어떤 이를 현혹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른이가 자신도 모르고 있는 것을 아는체 하면서 나에게 다가온다면 그 또한 나를 현혹시키기 위함일 것이다.
유혹자는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으며 또 질투하기 때문에 하는미이 인간에게 베푸신 은총을 애써 지워 버리려고 한다. 혹지 나의 모습이 그렇지는 않은지,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사람의 모습이 그렇지는 않은지…
여자가 그 나무를 쳐다보니 과연 먹음직하고 보기에 탐스러울 뿐더러 사람을 영리하게 해 줄 것 같아서, 그 열매를 따 먹고 같이 사는 남편에게도 따 주었다. 남편도 받아 먹었다.
죄의 시작은 어디일까? 쾌락과 욕망과 탐욕은 거짓스러운 메시지를 진실로 받아들이는데에 있다. 그렇다면 하와가 받아들인 거짓 메시지는 무엇인가? <하느님의 정신은 사랑의 정신이 아니라 오히려 자아 중심적이며 이기주의적인 정신이요 그의 본성은 거짓말장이다>라는 메시지다. 하와가 그 거짓 메시지를 받아들였기에 결국 하느님을 거스리게 되는 것이다. 하와의 가장 큰 죄는 바로 거짓을 믿었다는 것과 하느님의 사랑을 불신했다는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내 죄의 출발점도 거짓말을 퍼뜨리는 것이요 그 거짓말을 바보처럼 믿는 것이다. 그 거짓말을 믿게 되면 사람들은 서로 질투하고 고발하고 싸우며 기타 여러가지 죄들이 연쇄적으로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무서운 죄안은 불신풍조를 조장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뱀은 성공했다. 그리고 그 죄는 전염병처럼 옆 사람에게로 옮겨 졌다. 하와는 뱀의 거짓말을 믿고 선악과를 따 먹으면서 아담에게도 주었다. 바로 그 순간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악마를 숭배하게 되었다.
하느님의 메시지를 불신하거나 그분을 반대한다는 것은 곧 사탄을 믿고 그를 훔숭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또한 하와처럼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을 죄의 늪으로 끌어들이게 되고 사탄을 닮게 만든다. 아주 자연스럽게…
두 사람은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앞을 가리웠다.
죄를 짓고 난 후에야 비로소 아담과 하와는 깨달았습니다. 뱀에게 속았다는 것을. 유행가의 가사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이제와서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지만…..”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이 알몸임을 부끄러워 했습니다. 또한 그들이 알몸을 부끄러워한 것은 머리털 하나 없고 깃털 하나 없는 뱀의 알몸과 자신들의 알몸이 너무나도 서로 닮았다는 것을 의식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아담과 하와는 나체인 뱀의 이미지로 변모한 자신들의 몸을 의식한 것입니다. 하느님을 불신했다는 사실은 잉제 남자와 여자 사이의 신뢰를 불가능하게 하였으므로 그들은 무화과나무 잎사귀로 자기네의 알몸을 가렸습니다.
믿음이 없다면 모든 것이 불가능해 집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의 말씀을 믿었더라면…
사랑과 믿음 그리고 자유를 거부하는 것이 바로 질투입니다. 질투하는 사람ㄹ은 사랑보다도 오히려 지식의 획득에 더 큰 관심을 갖습니다. 자가가 알지 못하면서도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 보다는 오히려 자기가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데 더 열중합니다. 질투하는 인간은 거짓된 지식을 받아들이려는 준비가 되어 있으면 도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보다는 오히려 원수의 말을 더 빨리 신뢰합니다. 그래서 질투의 비밀은 이상하게도 죽음에 매우 큰 매력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질투하는 자는 자기가 사랑하는 자를 죽입니다. 세익스피어의 오델로는 음흉하고도 간악한 인물 이야고의 말을 믿고 자기가 사랑하던 무죄한 아내를 죽여버렸습니다. 사울도 악령의 말을 믿고서 자기가 사랑하던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인간이 죄를 범할 수 있기까지 인간에게 자유를 주신 것은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입니다. 하느님은 자유가 이토록 중대함을 알고 계시기에 인간에게 죄를 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셨기에 자유롭게 당신을 택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너무도 사랑하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