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헤립의 침공(702-701)
아하즈가 죽자 그의 아들 히즈키야가 왕좌를 계승하지만 나이가 다섯 살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어린 왕이 어른이 될 때까지 섭정이 대신 다스렸다. 이 사이에 아시리아 왕 데글랏발라살 3세도 죽고 살마나살 5세가 왕위를 잇는다. 이스라엘 왕국과 아람 왕국의 동맹은 팔레스티나를 정벌하기 위하여 군사력을 동원한 아시리아인에 의해서 깨져 버린다.
이사야 시대에 있었던 아시리아의 마지막 침공은 기원전 702-701년, 산헤립의 주도 하에 일어났는데 지금까지의 전쟁 중에서 가장 극적이었다. 적들은 예루살렘성 바로 밑까지 쳐들어 왔고, 도시와 히즈키야가 모든 것을 거의 잃어버릴 것만 같던 순간에 구원을 받기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산헤립의 연대기는 전쟁의 전반기에 거둔 승리만을 칭송하며 그 결말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침묵하고 있다. 이에 반하여 2열왕 18장과 19장의 보고는 이를 침략자의 궁극적인 패배로 강조하고 있다. 2열왕 19,35 이하에서는 이 예기치 않은 상황을 하늘의 개입 탓으로 돌리고 있다.
“그날 밤 야훼의 천사가 나타나 아시리아 진영에서 군인 십팔만 오천 명을 쳤다. 아침이 되어 날이 밝았을 때 그들은 모두 시체로 발견되었다. 아시리아 왕 산헤립은 막사를 걷어 니느웨로 돌아가서 그 곳에 머물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