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는
이스라엘을 통한 야훼 하느님의 인류 구원 역사를 ‘신앙의 눈’을 통해 보고,
그것을 신앙 고백적으로 증언해 놓은 책이다.
모세오경
모세오경은 희랍어로 다섯 두루마리, 혹은 책들을 뜻한다. 즉 성서의 처음 다섯 권(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을 말한다. 이 다섯 권의 책은 토라, 혹은 ‘율법서’라고도 불린다.
창세기
1. 들어가기
창세기는 세상의 기원,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시는 하느님 활동의 시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창세기는 통상 두 부분으로 나뉜다.
장, 절 구별된 것은 중세에 와서 이루어졌다. 1226년 파리 대학의 학장 Etienne Langton이 성서를 장으로 구별. 그 후에 도미니꼬회 Hugo신부가 절 구분을 시도하였다. 그 후 파리의 인쇄업자 호베르 에띠앙이 1551년에 발표한 것이 성서학회에서 이용되기 시작해서 우리가 사용. 이들이 시도한 장, 절 구분은 항상 본문의 뜻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의미를 알아듣기 위하여 이 장, 절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함께 성서를 찾을 때 너무도 유용하다.
1. 창세기 1장1) – 11장 :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에 살게 된 인류의 시작
2. 창세기 12장 – 50장 :
① 아브라함 이야기: 창세기 12장 – 25장
② 이사악과 야곱 이야기 : 창세기 26장 – 36장
③ 요셉 이야기 : 창세기 37장 – 50장
2. 살펴보기
1. 창세기 1,1-2,25절 : 위대한 조화 – 하느님께서 세상을 만드시다.
진화론자들은 세상이 우연히 만들어 졌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들 모습을 바라보면 내가 우연히 이렇게 진화되었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완벽하다. 지구가 자전이나 공전을 하는 것도 그렇고, 우주의 별들이 제각기 길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는 것도 그렇다.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완벽하지 않은가? 신앙인들은 이 모든 것을 하느님께서 만드셨다고 고백한다.
생각해 볼 문제
①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야 하는 우리들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우리들은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야 한다. 남자와 여자, 인간과 동물, 인간과 자연은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야 한다. 모든 생명은 동물의 생명이든, 인간의 생명이든 간에 반드시 존중되어야 한다. 인간은 땅을 가는 충실한 관리자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얼마만큼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이웃과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는지, 가족과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는지…,
그리고 더 나아가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② 주일(안식일)을 거룩히 지내야 한다.
안식일에 하느님께서 하신 세 가지 행동은 쉬시고, 축복하시고, 거룩한 날로 삼으신 것이다. 지금 우리의 안식일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이다. 이는 인간이 원죄로 말미암아 깨뜨린 하느님과의 조화를 하느님께서 당신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다시 회복시키신 날인 것이다.
우리들은 대부분 주일을 미사참례하고 남은 시간은 평소에 못했던 것을 보충한다거나, 다음 한 주간을 더 열심히 일하기 위한 휴식이나 기분전환 내지 스트레스 해소의 날로 생각해 왔다. 즉 평일의 연장이나 보충, 혹은 평일을 위하여 존재하는 날로 주일을 생각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주일(안식일)은 주간의 수단이 아니고 주간의 목적이다. 이 날을 성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시간 속에서 영원을 준비하는 방법임과 동시에 우리의 삶에 창조의 질서와 하느님의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 된다.
2. 창세기 3,1-6,4절 : 손상된 조화 – 하느님의 뜻을 거스리는 인간
3장 – 인간의 죄와 벌(죄의 발생 – 죄의 결과 – 죄에 대한 하느님의 반응)
인간은 하느님과 같아지고자 하는 욕망에서 선악과를 따 먹게 된다. 선과 악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하느님께서는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셨다. 인간이 선과 악을 판단하면서 얼마나 많은 악이 선으로 둔갑을 하는가?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남을 판단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죄는 하느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심에서 나온 것이다. 하느님은 사랑을 주셨고, 인간은 하느님께 불순종과 교만을 드렸다.
원죄–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를 원죄라고 합니다. 그 죄의 결과로 벌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을 때 이 원죄를 사함 받게 된다.
4장 – 카인과 아벨(카인이 아벨을 죽이다)
형인 카인이 동생인 아벨을 죽인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형제지간의 사랑이지 질투나 미움이 아니다. 이기심과 교만이 내 마음에 가득 차면 나는 그렇게 관계를 파괴하고 결국 죄를 짓게 된다.
5장 – 홍수 이전의 족장들
구약에서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풍족하게 사는 것을 뜻했다. 나이를 강조함으로써 죄악이 성행할수록 인간은 덜 행복해지고 수명이 단축된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한다. 홍수 이전에는 사람들이 칠백 살에서 천 살을 살았고(창세11,10-26참조), 아브라함에서부터는 백 살에서 이백 살을 살았고(창세 23,1 참조), 그로부터 한참 뒤에는 칠십 살에서 팔십 살을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시편90,10 참조)
6장 1절-4절 – 하느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의 결혼
이 장의 말씀은 이해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인간의 교만이 최고조로 달했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인간이 스스로를 신 혹은 반신(半神)으로 여기기 시작한다. 하느님의 계획에서 벗어난 초인이 되려고 한다. 당신 피조물이 그토록 일그러지는 것을 보시고 야훼 하느님께서는 차라리 인간을 없애 버리기로 작정하신다. 하느님께서는 노아를 통해서 새로운 세상을 준비하신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기득권을 가진 인간이 자신이 살기 위해 자신을 복제하여 장기를 이식 받는 다는지, 복제된 인간을 연구한다든지 하는 그런 시도들이 모두 하느님과 같아지고자 하는 욕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자신의 삶을 개척한다는 미명아래 다른 생명을 밟고 없애는 행동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좌우지간 성서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경계선을 말살하고 인간이 신이 되고자 함으로써 창조주를 모독하는 극도의 오만에 이르게 된 인간들의 상태를 묘사함으로써 홍수의 무대를 설정한다.
문득 인간 과학이 발전되면 발전될수록 감당할 수 없는 질병들이 밀려오는 것들이 연상된다.
생각해 볼 문제
① 선과 악의 문제
하느님께서 아름답게 창조하신 세상에 왜 악이 존재할까요? 왜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악을 행할까요? 이 악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또한 세상에 선을 확장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3. 창세기 6,5-8,22 : 창조의 붕괴 – 노아의 홍수2)
노아의 홍수를 대할 때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과연 세상에 노아의 홍수가 있었느냐? 하지만 이 질문보다도 “어떻게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당신 보시기 아름답게 창조한 세상을 망가뜨릴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이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바로 혼돈 속에서도 하느님께서는 정의로운 사람들을 통하여 당신의 역사를 계속 펼쳐 나간다는 것이다. 정의로운 사람들은 그런 재앙을 식별할 줄 알고 살아 남아서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태도를 취할 줄 안다는 것이다. 즉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혼인잔치의 “예복”도, 신랑을 기다리는 슬기로운 처녀들의 “기름”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비유로 말씀해 주시고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 들어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우리 또한 들을 귀가 있어야 한다. 식별할 줄 알아야 한다. 무엇이 옳은 삶인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삶인지를…,
생각해 볼 문제
① 하느님의 심판
하느님께서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신 후에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자비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 로봇으로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가슴이 아프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자유의지를 존중해 주십니다. 우리가 죄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굳은 결심을 해야 하겠습니다.
4. 창세기 9,1-27 : 새로운 세상 – 노아와 계약을 맺으시는 하느님
비가 온 뒤에 나타나는 무지개가 하느님이 세상전체와 맺으시는 계약의 표지가 된다. 이 계약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만민과 만백성에게 생명을 보장하신다. 이제 하느님께서는 세상 끝날 까지 당신의 심판의 손길을 펴지 않으실 것이다. 이제 인류 역사 가운데서 나타나는 그 어떤 파괴도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잘못으로 발생되는 것이고, 인간이 책임져야 한다.
생각해 볼 문제
① 하느님과 인간의 계약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과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다시는 물로 벌하시지 않겠다고. 그런데 지금 세계 곳곳에서는 물로 수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거나, 죽음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뜻일까요? 아니면 인간이 책임져야 할 일 일까요?
또한 하느님께서 이제 세상 끝날까지는 심판하지 않으실 것이니 안심하고 죄를 짓고 죄의 상황을 방관해도 된다는 것일까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에서 하느님마음에 드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은 요기까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