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 이야기 3

 

요셉 이야기 3


  인간만사 새옹지마1)라고 했던가? 하지만 요셉은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자신


의 삶에 최선을 다했다. 비록 모함으로 포티파르의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이지만 그 안에서도 그는 최선을 다한다. 결코 그의 삶에서 포기란 단어는 없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요셉과 늘 함께 하셨다.




          인생의 행·불행은 예측하기 어려워, 행운도 기뻐할 것까지는 없고 또 불행도 슬퍼할 필요는 없다는 것의 비유. 옛날 중국의 북쪽 변방 국경의 성채에 사는 한 노인의 말이 어느 날 호(胡)나라로 도망갔는데 몇 개월 후 호나라의 명마를 데리고 돌아왔다. 얼마 뒤 노인의 아들이 그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으나, 그로 인하여 호나라와의 전쟁에 나가지 않게 되었다는 《회남자(淮南子)》 <인간훈(人間訓)>의 고사에서 유래되었다.




4. 요셉이 감옥에서 꿈 풀이하다(창세40,1,23).


요셉은 감옥에서 모든 죄수들을 맡아서 책임을 졌다. 교도소장(전옥)은 요셉의 손에 맡긴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았다. 주님께서 요셉과 함께 계셨으며, 요셉이 하는 일마나 주님께서 잘 이루어주셨기 때문이다.




  1) 파라오의 두 시종장


그런데 이집트 임금의 헌작 시종과 제빵 시종이 임금에게 잘못을 저지른 일이 발생했다. 그래서 파라오는 진노하여 그들을 경호대장 집에 있는 감옥에 가두었는데, 그곳은 요셉이 갇혀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 당시 상황을 모른다면 헌작 시종장(술잔을 드리는 시종장은 연회 전반을 책임지는 시종장)과 제빵 시종장(음식 전반을 책임지는 시종장)을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독살 음모가 횡행했던 고대국가에서 파라오는 가장 신임하는 부하에게 자신이 마시는 술과 먹는 음식을 책임지게 했다. 이들은 오늘날 장관에 해당되는 인물들이다. 이 점은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한 이스라엘의 통치자 느헤미야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는 바빌론 왕 아르닥사싸에게 술을 따르는 시종장, 곧 장관이었다(느헤 1,11;2,1).


이렇게 파라오에게 절대적 신임을 얻고 영향력을 행사하던 두 인물이 요셉과 같은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요셉을 위하여 무엇인가 행동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하지만 하느님의 움직임이 있다고 해서 요셉의 처지가 금방 변화되는 것은 아니다. 요셉은 적어도 2년 넘게 아무 희망도 없이 감옥에 갇혀 있어야 했다.



        ① 그런데 두 시종장은 왜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까?


성서는 두 시종장이 왜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지 않는다. 그저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는 막연한 정보만 전해 줄 뿐이다. 그런데 전체적인 내용을 보면 연회를 책임진 시종장은 큰 잘못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나중에 그는 석방되는데, 만일 연회를 책임진 시종장에게 어떤 잘못이 있었다면 파라오가 그를 본래 자리에 복직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연회를 책임진 시종장은 모함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연회를 책임진 시종장은(헌작 시종장)은 업무상 음식을 책임진 시종장(제빵 시종장)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었다. 누군가가 왕의 음식이나 술에 독을 넣었다면 가장 먼저 연회를 책임진 시종장이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음식을 책임진 시종장(제빵 시종장)이 파라오에게 죄를 지어 감옥에 갇히자 업무상 밀접히 연결되어 있던 연회를 책임진 시종장(헌작 시종장)도 함께 연루되어 감옥에 갇힌 것이다.




        ② 두 시종장의 꿈(창세40,9-23)


“우리가 꿈을 꾸었는데 아무도 풀어줄 사람이 없소”라는 두 시종장의 말은 고대 이집트 인들이 꿈에 큰 의미를 두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꿈을 통해서 다른 세계, 죽은 이들은 물론 신들과 직접 접촉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었다. 또 꿈이 자신들의 미래 운명을 예고한다고 믿었다. 두 시종장은 꿈을 꾸었는데 자신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 지에 대해서 궁금해 졌다. 이상한 꿈을 꾸었는데 해석할 방법이 없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헌작 시종장은 요셉에게 자기 꿈을 들려주었다.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 한 그루가 있었네. 그 포도나무에는 가지가 셋이 있었는데, 싹이 돋자마자 꽃이 피어오르고 포도송이들이 익더군. 그런데 내 손에는 파라오의 술잔이 들려 있었다네. 그래서 내가 그 포도송이들을 따서 파라오의 술잔에다 짜 넣고는, 그 술잔을 파라오의 손에 올려 드렸네.”(창세40,9-11)


그러자 요셉은 이렇게 꿈을 풀이해 준다. 가지 셋은 사흘을 뜻하고, 사흘이 지나면 파라오가 당신을 불러올려 다시 복직시켜 줄 것이라고, 그러면 다시 전처럼 파라오의 손에 술잔을 올리게 될 것이라고 말해준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청한다.




요셉이 좋게 꿈을 풀이해 주는 것을 들은 제빵 시종장은 요셉에게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한다.


“나도 꿈에 보니 내 머리 위에 과자 바구니가 세 개 있었네. 제일 윗 바구니에는 파라오께 드릴 온갖 구운 빵이 들어 있었는데, 새들이 내 머리 위에 있는 그 바구니에서 그것들을 쪼아 먹고 있었네.”(창세40,16-17)


그러자 요셉은 그의 꿈을 풀이해 준다. 바구니 셋은 사흘을 뜻하고, 사흘이 지나면 교수형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준다. 그런데 요셉은 왜 충격적인 이야기를 꾸밈없이 이야기 해 주었을까? 만약 요셉이 듣기 좋은 말로 꿈을 해몽해 주었다면 그 제빵 시종장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을 것이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죽음을 준비할 수 있도록 3일의 시간이 주어졌기에 제빵 시종장은 많은 준비를 했으리라 생각된다.



하느님의 참된 봉사자는 때로 하기 어려운 말이라 할지라도 해야 된다. 비록 사람들이 상처를 받는다 해도 꼭 필요하다면 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그러셨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감정을 상하게 할까 염려하기보다는 그들의 영혼이 파멸되는 것을 더 염려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펄쩍 뛰는 베드로를 향해서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장애물이다.”(마태16,23)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할 수 있고, 진실에 대해서는 칭찬할 수 있는 그런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일이 있은 후 사흘째 되는 날, 파라오의 생일잔치에 헌작 시종장과 제빵 시종장은 불려나왔다. 그리고 헌작 시종장은 요셉이 말한 것처럼 다시 복직되었고, 제빵 시종장도 요셉이 말한 것처럼 나무에 매달려 죽게 된다.


하지만 헌작 시종장은 요셉을 기억하지 않았다. 요셉을 잊어 버렸던 것이다.


 


        ③ 헌작 시종장에게 청원하는 요셉


요셉은 헌작 시종장의 꿈을 풀이해 주면서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청한다. 그런데 그는 형제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왔다고 이야기 하지 않고 “저는 히브리인들의 땅에서 붙들려 왔습니다. 그리고 여기서도 저는 이런 구덩이에 들어올 일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창세40,15)라고 말한다. 요셉은 사실대로 말하지는 않았다. 형들의 죄나, 포티파르의 아내의 모함 등에 대해서 변명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의 무죄와,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청한다. 진실을 이야기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모든 진실을 이야기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또한 십계명에도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였지만 모든 거짓말이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선한 사람을 죽이기 위한 거짓말은 죽을 죄 이지만, 선한 사람을 살리기 위한 거짓말은 꼭 나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 더 생각해야 할 것은 요셉의 입의 무거움이다. 내가 그런 일을 당했다면 동네방네 다 소문내고, 평생 형제들과 포티파르의 아내를 욕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에게 죄를 지은 사람에 대해서 좀더 너그러워 졌으면 좋겠다. 요셉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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