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파라오의 꿈과 요셉의 꿈 풀이(창세41,1-57).
1) 기다리는 요셉
요셉은 헌작 시종장이 자신을 기억해 줄 것을 희망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헌작 시종장은 요셉을 기억하지 않았다. 그는 당연히 자신이 죄가 없기에 복직 되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니 요셉을 잊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자신에게 안 좋은 추억은 잊으려고 노력한다. 자신의 추한 모습을 본 사람을 기억하고, 그와 함께 하려고 하는 사람은 드물다. 어쩌면 이 헌작 시종장도 그랬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감옥에 갇혔던 것 그 자체를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잊어버리고 싶었던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좌우지간 그는 요셉을 잊었다. 요셉은 기다렸지만 이년 동안 아무 소식이 없었다.
하지만 이 이년은 파라오를 만나기 위한 과정이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노예 신분의 요셉이 이집트 황제 파라오를 만날 수 없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요셉이 파라오를 만날 수 있도록 이끄신다.
여기서 우리는 하느님께 불평을 할 수도 있다. 하느님께서 왜 나의 청을 들어 주시지 않는가? 하느님은 왜 이런 생활을 방관하고 계신가? 그 답은 요셉 이야기에서 잘 나온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위해서 더 큰 것을 준비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렇다. 지금 주어지는 시련을 잘 이겨냈을 때, 다른 것을 받아들일 만한 그릇이 되기 때문이다.
① 신앙이 성숙되는 요셉
신앙이란 마치 땅을 다지고 그 위에 건물을 짓는 것과 같다. 건물을 짓기 위해서 기초공사를 충실히 해야 한다. 멋진 건물이 서 있기 위해서는 기초가 튼튼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모래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사람과 반석위에 집을 짓는 슬기로운 사람”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신앙은 순탄하고 편안한 것이 아니라 시련과 어려움을 통해서 더욱 단단해지고 더욱 굳세어지는 것이다.
또한 신앙은 인간적인 것에 기대하지 않음에 있다. 요셉이 감옥에서 2년을 더 보내야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느님께서는 요셉이 이집트의 재상이 되도록 안배하셨다. 하지만 요셉은 헌작 시종장에게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청했다. 하지만 인간적인 기대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이다. 허무한 것이다. 그리고 욕심이 생기고, 결국 하느님을 원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모든 것의 때는 하느님에 의해서 결정된다. 하느님께서는 때가 무르익을 때를 기다리신다. 하지만 나는 그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해 한다. 그런 조급함은 하느님께 기도하지 못하게 하고, 하느님께 등을 돌리게 될 수도 있다.
성급함은 일을 그르칠 수 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은 늘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려고 노력하고 주님의 뜻이 내 안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 파라오의 꿈
그런데 요셉에게 기회가 왔다. 파라오가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을 해몽할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파라오의 꿈은 이러하다.
“그가 나일 강 가에 서 있는데, 잘생기고 살진 암소 일곱 마리가 나일 강에서 올라와 갈대밭에서 풀을 뜯었다. 그런데 그 뒤를 이어 또 다른 못생기고 야윈 암소 일곱 마리가 나일 강에서 올라와, 강가에 있는 그 암소들 곁으로 가서 섰다. 그러고는 이 못생기고 야윈 암소들이 잘생기고 살진 그 일곱 암소를 잡아먹는 것이었다.”(창세41,1-4)
이집트 땅의 비옥함과 번영은 나일강과 해마다 일어나는 이 강의 범람에 달려 있었다. 그리고 팔레스티나에서 대표적인 사육 동물은 양과 염소이지만, 이집트에서는 소였다. 그리고 일곱은 이집트뿐만 아니라 고대근동 전체의 상징에서 자주 나오는 숫자이다. 성서에서는 완전한 숫자로, 충만한 숫자로 여긴다.
그는 다시 잠이 들어 두 번째 꿈을 꾸었다.
“밀대 하나에서 살지고 좋은 이삭 일곱이 올라왔다. 그 뒤를 이어 야위고 샛바람에 바싹 마른 이삭 일곱이 솟아나는데, 이 야윈 이삭들이 살지고 여문 그 일곱 이삭을 삼켜 버리는 것이었다.”(창세41,5-7)
본디 이집트에서는 건조한 바람이 남쪽에서 불어온다. 여기서는 팔레스티나로 부는 무서운 “샛바람”으로 대체된다.
잠에서 깬 파라오는 마음이 불안해졌다. 그래서 이집트의 모든 요술사와 모든 현인을 불러들였다. 요술사들은 마술을 행하는 사제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고위 관리들이었다. 또한 서기관 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연인들 역시 고위 관리들이었다. 당시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이 파라오의 질문에 대답해 주는 고문 노릇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파라오의 꿈을 해몽하지 못했다. 고대 사회에서 왕의 꿈은 중요하게 취급되었다. 신의 아들로 숭배 받던 왕은 꿈을 통해서 신의 뜻을 전달받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술사들과 현인들이 해몽하지 못하자 파라오는 더욱 불안해졌다.
하느님의 계획을 인간이 알아차리기는 어렵다. 하느님께서 그 계획을 알려주시지 않으면 인간은 그것을 알아차리기가 어렵다. 그래서 요셉이 파라오 앞에 불려왔을 때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저는 할 수 없습니다만, 하느님께서 파라오께 상서로운 대답을 주실 것입니다.”(창세41,16)
즉 하느님께서 알려 주시지 않으면 결코 파라오의 꿈을 해석할 수 없다. 이제 하느님께서는 요셉에게 그 능력을 주심으로써 당신의 계획을 실현시키신다.
아무도 파라오의 꿈을 해석하지 못하자 요셉과 같이 감옥에 갇혔던 파라오의 헌작 시종장이 그 때 있었던 일을 파라오에게 알린다. 그런데 헌작 시종장은 말을 하기 전에 앞서 자신의 죄를 인정한다. “오늘에야 제 잘못이 생각납니다.”(창세41,9)
시종장은 요셉에게 호의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요셉의 부탁을 기억해 내지 못했다. 아니 잊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잊음도 하느님의 계획이었던 것이다. 헌작 시종장의 “그가 풀이한 대로 되었습니다.”(창세41,12)
파라오는 사람들을 보내어 요셉을 불러오게 하였다. 요셉을 데리러 온 사람들은 요셉이 파라오 앞에 나가기 전에 그에게 면도를 시키고 옷을 갈아입힌
다. 면도를 시킨 것은 이집트인들은 팔레스타인이나 메소포타미아 사람들과 달리 수염을 기르지 않았기 때문이고, 옷을 갈아입혔다는 것은 겉옷을 갈아입혔다는 것으로 조만간에 신분 상승이 이루어질 것임을 암시한다.
3) 꿈을 풀이하는 요셉
파라오는 “내가 꿈을 꾸었는데, 그것을 풀이할 자가 하나도 없다. 그런데 너는 꿈 이야기를 듣기만 하면 그것을 풀이한다고 들었다.”(창세41,15)라고 말 하면서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해 준다.
파라오의 꿈 이야기를 들은 요셉은 이렇게 말한다.
“파라오의 꿈은 한 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 앞으로 당신께서 하고자 하시는 바를 파라오께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좋은 암소 일곱 마리는 일곱 해를 뜻합니다. 좋은 이삭 일곱도 일곱 해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그 꿈은 한가지입니다. 그 뒤를 이어 올라온 마르고 흉한 암소 일곱 마리도 일곱 해를 뜻하고, 속이 비고 샛바람에 바싹 마른 이삭도 그러합니다. 이것들은 기근이 들 일곱 해를 뜻합니다. 하느님께서 앞으로 당신께서 하고자 하시는 바를 파라오께 보여 주시는 것이라고 제가 파라오께 아뢴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 앞으로 오게 될 일곱 해 동안, 이집트 온 땅에는 대풍이 들겠습니다. 그러나 그 뒤를 이어 일곱 해 동안은 기근이 들겠습니다. 그러면 이집트 땅에서는 전에 들었던 그 모든 대풍이 잊혀지고, 기근이 이 땅을 고갈시켜 버릴 것입니다.”(창세41,25-30)
요셉은 꿈을 해석해 주고 대책을 알려 준다.
“이렇듯 뒤따라오는 기근이 하도 심하여, 이 땅에 대풍이 든 적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이조차 없을 것입니다. 파라오께서 같은 꿈을 두 번이나 되풀이하여 꾸신 것은, 하느님께서 이 일을 이미 결정하셨고, 지체 없이 그대로 실행하시리라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니 이제 파라오께서는 슬기롭고 지혜로운 사람하나를 가려내시어, 이집트 땅을 그의 손 아래 두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파라오께서는 또 나라의 감독관들을 임명하셔서, 대풍이 드는 일곱 해 동안 이집트 땅에서 거둔 수확의 오분의 일을 받아들이게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사람들이 앞으로 올 좋은 시절 동안 모든 양식을 거두어들이게 하시고, 파라오의 권한으로 성읍들에 곡식을 쌓아 갈무리하게 하십시오. 이양식은 앞으로 이집트 땅에 닥칠 일곱 해 동안의 기근에 대비하여, 나라를 위한 비축 양식으로 남겨 두십시오. 그러면 이 나라는 기근으로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창세41,31-36)
일곱 해 동안 지속되는 기근은 설형문자1)로 쓰인 메소포타미아의 문헌, 페니키아와 후대의 이집트 문학에서도 볼 수 있다.

3) 꿈을 풀이하는 요셉
파라오는 “내가 꿈을 꾸었는데, 그것을 풀이할 자가 하나도 없다. 그런데 너는 꿈 이야기를 듣기만 하면 그것을 풀이한다고 들었다.”(창세41,15)라고 말 하면서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해 준다.
① 요셉의 꿈 풀이
파라오의 꿈 이야기를 들은 요셉은 이렇게 말한다.
“파라오의 꿈은 한 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 앞으로 당신께서 하고자 하시는 바를 파라오께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좋은 암소 일곱 마리는 일곱 해를 뜻합니다. 좋은 이삭 일곱도 일곱 해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그 꿈은 한가지입니다. 그 뒤를 이어 올라온 마르고 흉한 암소 일곱 마리도 일곱 해를 뜻하고, 속이 비고 샛바람에 바싹 마른 이삭도 그러합니다. 이것들은 기근이 들 일곱 해를 뜻합니다. 하느님께서 앞으로 당신께서 하고자 하시는 바를 파라오께 보여 주시는 것이라고 제가 파라오께 아뢴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 앞으로 오게 될 일곱 해 동안, 이집트 온 땅에는 대풍이 들겠습니다. 그러나 그 뒤를 이어 일곱 해 동안은 기근이 들겠습니다. 그러면 이집트 땅에서는 전에 들었던 그 모든 대풍이 잊혀지고, 기근이 이 땅을 고갈시켜 버릴 것입니다.”(창세41,25-30)
요셉은 파라오의 꿈을 자세히 풀이해 주었다. 먼저 두 개의 꿈이 하나의 메시지를 담고 있음을 알려 준 다음, 일곱 마리 암소와 일곱 이삭은 7년을 상징하고 있고, 이어 꿈이 현실에서 어떤 식으로 나타날지를 알려 준다. 곧 7년 동안 연속해서 풍년이 있고, 그 다음 역시 7년 동안 연속해서 흉년이 있을 것임을 알려 준다. 마지막으로 같은 메시지가 담긴 꿈을 두 번 계속해서 꾸게 된 이유는 7년 동안의 풍년과 7년 동안의 흉년이 반드시 일어날 일임을 알려주기 위해서라고 설명해준다.
이렇게 파라오의 꿈을 해석해 주면서 요셉은 꿈의 계시자가 하느님이심을 거듭 강조한다.
“하느님께서 앞으로 당신께서 하고자 하시는 바를 파라오께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창세41,25,) “하느님께서 앞으로 당신께서 하고자 하시는 바를 파라오께 보여 주시는 것이라고 제가 파라오께 아뢴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창세41,28)
“파라오께서 같은 꿈을 두 번이나 되풀이하여 꾸신 것은, 하느님께서 이 일을 이미 결정하셨고 지체 없이 그대로 실행하시리라는 것을 뜻합니다.”(창세41,32)
그리고 요셉이 하는 말에서 알 수 이듯이 이 모든 것의 주체는 파라오가 아니라 하느님이심을 말해 주고 있다.
② 꿈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대안
요셉은 꿈을 해석해 주고 대책을 알려 준다.
“이렇듯 뒤따라오는 기근이 하도 심하여, 이 땅에 대풍이 든 적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이조차 없을 것입니다. 파라오께서 같은 꿈을 두 번이나 되풀이하여 꾸신 것은, 하느님께서 이 일을 이미 결정하셨고, 지체 없이 그대로 실행하시리라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니 이제 파라오께서는 슬기롭고 지혜로운 사람하나를 가려내시어, 이집트 땅을 그의 손아래 두시는 것이 좋겠습니다.1) 파라오께서는 또 나라의 감독관들을 임명하셔서, 대풍이 드는 일곱 해 동안 이집트 땅에서 거둔 수확의 오분의 일을 받아들이게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사람들이 앞으로 올 좋은 시절 동안 모든 양식을 거두어들이게 하시고, 파라오의 권한으로 성읍들에 곡식을 쌓아 갈무리하게 하십시오. 이 양식은 앞으로 이집트 땅에 닥칠 일곱 해 동안의 기근에 대비하여, 나라를 위한 비축 양식으로 남겨 두십시오. 그러면 이 나라는 기근으로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창세41,31-36)
일곱 해 동안 지속되는 기근은 설형문자2)로 쓰인 메소포타미아의 문헌, 페니키아와 후대의 이집트 문학에서도 볼 수 있다.
요셉은 파라오에게 꿈만 해석해 준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앞으로 벌어질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그 구체적 대안까지 제시한다.
요셉이 제시한 대안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이집트 온 땅을 다스릴 슬기롭고 지혜로운 지도자 한 사람을 세울 것.
슬기와 지혜는 모세의 보조자들(신명1,13), 솔로몬(1열왕3,12),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돋아난 햇순(이사11,2)이 갖춘 덕목이기도 하다. 하느님의 영과 함께 주어지는 이 덕들은 백성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재능을 부여해 준다.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슬기와 지혜는 자신의 이익이나 명예를 위해서 헛되이 사용하지 않는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을 위해서 자신의 지식을 사용하고, 결국 그것이 탄로가 나서 망신을 당하고, 세상이 떠들썩하지만 슬기로운 사람은 자신이 맡은 일이 무엇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기에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고, 하느님을 위해서, 그리고 하느님께서 맡겨주신 사람들을 위해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창세기에서는 요셉이 바로 그런 적임자임이 드러난다. 왜냐하면 그의 지혜는 지혜 자체이신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었으며, 자신이 헛된 욕망을 품지 않고 하느님의 도구로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이며, 또 어떻게 식량을 모으고, 언제 풀어야 하는 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그의 명을 받아 일하게 될 감독자들을 각 지역에 세울 것.
사실 일이라는 것은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이 계획을 짜서 실행하려 해도 아랫사람들이 그것을 받쳐 주지 않으면 실행이 안 된다. 대통령이 어떤 일을 하려 해도 아랫사람들이 이런 저런 일들을 저지르면 결국 그것 해결하다가 볼일 다 본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잘 알고 있다.
감독자들의 첫 번째 자격 조건은 지도자의 명을 받아 일하는 것이다. 불리움을 받은 사람은 부른 사람의 말을 듣기 위해서 온 것이지 자신의 뜻을 실행하기 위해 불리움을 받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셋째, 수확량의 오분의 일을 거두어 각 지역 창고에 보관하도록 할 것.
요셉은 닥쳐올 대흉년을 대비해서 수확량의 오분의 일을 거두어 보관할 것을 말한다. 풍족할 때는 여유 있게 쓰려고 하는 것이 사람의 심리이지만 요셉은 반을 보관할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풍요로운 시기에 반을 절약해 놓지 않으면 흉년에 고생하는 것처럼, 신앙생활 열심히 할 수 있을 때 열심히 해야만 나이 들어서도 그것으로 유지하지 않겠는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성경을 읽고, 기도문을 외우고, 교리공부를 해야지 나이 들어서 그것이 귀에 들어오고 머리에 남아있겠는가?
한 할아버지가 나이 들어 영세를 했는데 이렇게 말한다. “제가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과 영광송은 외웠는데 이 사도신경이 안 외워집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외우려고 하는데 그게 당체…,”
할 수 있을 때 하는 것 또한 슬기로움이다.
요셉이 제시한 대로만 하면(물론 이것은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니 하느님의 뜻대로만 따른다면) 파라오는 절대 권력을 가질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렇게 하면 이집트가 어려운 시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음이 분명하다. 파라오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가끔은 명확한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흘려버리는 경우가 있다. 게다가 요셉은 노예가 아닌가? 그것도 감옥에 갇혀 있던 노예. 그런 요셉의 말을 파라오가 들을 것인가?
만일 내가 파라오였다면 과연 요셉의 말에 귀를 기울였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