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 이야기 4
파라오의 선택! 과연 훌륭한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외국인이며 노예이며 죄수였던 요셉을 재상으로 임명할 수 있는 파격적인 사람! 그가 바로 파라오였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함께 해 주지 않으셨다면 요셉은 결코 재상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즉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없는 것이다.
이제 요셉은 재상이 되어 이집트를 다스리게 되는데…,
4) 파라오의 선택과 재상이 된 요셉(창세41,37-49).
① 파라오의 선택
파라오는 현명한 선택을 한다. 그는 앞으로 있을 난국의 실상을 정확하게 알려주고 그 난국을 극복할 해결책까지 명확하게 제시하는 요셉의 현명한 통찰력에 크게 감동한다. 동시에 요셉에게 그러한 통찰력을 주신 하느님께 대해서도 매력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파라오는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을 한다.
“이 사람처럼 하느님의 영을 지닌 사람을 우리가 또 찾을 수 있겠소?”(창세41,38)
파라오는 요셉에게 감탄하였다. 파라오는 요셉의 꿈 해석 능력과 미래 사태에 대한 의견 제시가 다 하느님의 지혜와 분별력에서 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1)
파라오는 요셉의 말에서 요셉의 됨됨이를 알아보았을 것이다. 대제국의 우두머리로서 많은 사람들을 대해본 파라오는 요셉의 탁월한 충성심과 겸손을 알아보았다. 입신출세의 문턱에 들어서 있으면서도 자신이 얼마나 뛰어난 존재인지 과시하기보다는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요셉의 충성스럽고 겸손한 자세 앞에서, 파라오는 요셉과 같은 사람이라면 재상이라는 절대권한을 받는다 하여도 남용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한 것이다.
② 재상이 된 요셉
파라오는 요셉에게 말하였다. “하느님께서 그대에게 이 모든 것을 알려 주셨으니, 그대처럼 슬기롭고 지혜로운 사람이 또 있을 수 없소. 내 집을 그대 손아래 두겠소. 내 모든 백성은 그대 명령을 따를 것이오. 나는 왕좌 하나로만 그대보다 높을 따름이오…이제 내가 이집트 온 땅을 그대 손 아래 두오.”(창세41,39-41)
파라오는 요셉에게 절대 권력을 준다.
그런 다음 파라오는 손에서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워 주고는, 아마 옷을 입히고2) 목에 금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그리고 자기의 두 번째 병거에 타게 하니, 그 앞에서 사람들이 “무릎을 꿇어라!”하고 외쳤다. 이렇게 파라오는 이집트 온 땅을 요셉의 손아래 두었다.3) 파라오가 다시 요셉에게 말하였다. “나는 파라오요. 그대의 허락 없이는 이집트 온 땅에서 그 누구도 손 하나 발 하나 움직이지 못하오(창세41,42-44).
요셉이 파라오에게 제시한 것은 슬기롭고 지혜로운 사람 하나를 농림부 장관으로 세워 식량 배급을 관리하라는 것이었는데, 파라오는 그 지위를 높여 요셉을 재상(국무총리)로 세운다. 이방인이요, 죄수일 뿐만 아니라 과거 어떤 정치적 경력도 없는 요셉을 이집트 대제국을 다스릴 재상으로 삼은 것이다. 그리고 요셉의 손에 옥새 반지를 끼워주고, 몸에는 고운 모시옷을 입혀주고, 목에는 금 목걸이를 걸어주면서 요셉을 제국의 재상으로 임명한다.
임금의 인장은 때로 관리 임명 때 수여되기도 하였다. 이와는 달리 의복과 금목걸이는 일반적으로 임무 수행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졌다. 그러나 재상의 의복은 특별히 제작되었으며, 이러한 의복의 착용은 상징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③ 파라오의 현명한 처신과 요셉 신분의 변화
파라오는 요셉의 이름을 “차프낫 파네아”라고 하고, 온의 사제 포티 페라의 딸 “아스낫”을 아내로 주었다. 그의 이름은 “하느님께서 그가 살아 계신다고 말씀하신다.”란 뜻이다. 라틴어 번역에서는 “세상을 구해 주실 주님” 곧 구세주라 풀이했다. 그 밖에 여러 가지 뜻으로 본 견해가 많다. “온”의 그리스어 이름은 “헬리오폴리스”(태양의 도시). 카이로 북동쪽 12킬로미터 지점에 있고, 태양신“레”를 섬기는 유명한 신전이 있었다. 이 곳 사제단은 이집트 국정에 참여했고 영향력도 컸다. 어쨌든 파라오는 요셉에게 이집트 통치에 큰 권력을 가지고 있는 유력한 집안과 인연을 맺어준 것이다.
파라오는 현명한 사람이었다. 그는 이집트 귀족 출신이 아닌 요셉을 백성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요셉의 식량수급 정책이 효과적으로 추진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이집트 사람들은 종교적 이유에서 이방인들, 특히 히브리인들을 꺼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호대장 포티파르의 아내가 요셉을 성폭행자로 고발할 때 요셉을 ‘히브리인’이라고 불렀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그나저나 포티파르의 아내는 요셉이 재상이 되었으니 얼마나 두려울까? 하지만 요셉이 보복을 했다는 이야기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파라오는 히브리인 요셉을 이집트 귀족으로 만들기 위해 최대한의 배려를 해 준다. 먼저 위에서도 이야기 한 것처럼 요셉의 이름을 “차프낫 파네아”라고 내리는데, 그 의미는 세상의 구세주라는 뜻이다. 그런데 스스로 신의 아들이라고 칭했던 파라오가 요셉에게 “세상의 구세주”란 의미의 이름을 부여한 것은 요셉을 통해서 드러나는 신적 능력을 그만큼 인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파라오는 요셉이 온의 사제 포티 페라의 딸 “아스낫”과 혼인 할 수 있도록 주선해 주었다. 온은 대양숭배의 중심지였고, 그곳의 사제는 부와 권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당시는 정치와 종교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던 시기였기에 영향력 있는 종교 지도자의 딸과 결혼함으로써 부와 권력의 핵심부에 들어선 것이다. 익명의 노예요, 무기수에 불과했던 요셉이 사회적으로는 이집트 최고의 상류층 귀족으로서, 정치적으로는 파라오 다음 가는 최고 권력자로서 우뚝 선 것이다.
하느님의 지혜와, 하느님의 섭리와 이끄심으로 요셉은 결국 우뚝 선 것이다. 13년이라는 긴 시련의 시간을 잘 인내한 요셉에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축복을 베풀어 주신다. 당신의 뜻을 펼치신다. 하느님께서는 요셉에게 때가 무르익기를 바라시다가 그 때가 무르익자 순식간에 열매를 맺게 하신다.
나 또한 내 삶에 최선을 다하면서 충실하게 살아갈 때, 하느님께서는 순식간에 나를 바꿔 주실 것이다. 축복의 삶을 살도록 이끌어 주실 것이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니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것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④ 겸손한 통치자 요셉
이집트 재상이 되었을 때 요셉의 나이는 서른이었다. 열일곱에 형들에 의해 팔려와 13년을 모진 시련 속에서 살아온 요셉. 하지만 그는 사랑받고 자랐기에 사랑할 수 있었고,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있었기에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도 서른에 공생활을 시작하셨는데 우연히도 요셉도 그렇게 서른에 유명해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세상 모든 백성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빵을 나눠 주시기 위해 공생활을 시작하셨는데(구원을 주시려고), 요셉이 세상 사람들에게 육신의 빵을 나눠주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것이(공직에 오른 것도) 예수님처럼 서른이었다.4)
성서에서 서른이란 나이는 세상에서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 필요한 나이였다. 다윗은 어린 나이에 기름 부음을 받았지만(1사무16,11-13) 나이 서른이 되어서야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2사무5,4). 레위인들은 하느님의 성막에서 봉사하기 위하여 어려서부터 그 준비를 하지만 실제로 봉사를 시작하는 것은 서른이 되면서부터 이다(민수4,46-47).
그리고 사제들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신학교에 간다면 1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즉 30이 되서야 사제서품을 받게 된다.
그런데 하룻밤 사이에 유명해진, 그래서 이집트의 넘버 투가 된 요셉의 태도는 모범적이다. 그는 원한에 사로잡혀 복수하기보다는 사랑과 용서의 길을 걸었다. 요셉이 복수했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 만일 내가 그 자리에 있게 되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먼저 포티파르의 아내를 불러서 사과를 받아내지는 않았을까? 헌작 시종장을 불러 왜 그 당시 도움을 주지 않았느냐고 하면서 “책임감 없는 사람. 신의를 저버리는 사람”으로 몰아세우지는 않았을까? 형들이 곡식을 사러 왔을 때 분노를 터뜨리며 복수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하느님께서 요셉을 부르신 이유는 복수를 하도록 부르신 것이 아니다. 당신 백성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시려고 부르신 것이다. 당신의 자녀들을 살리시기 위해서 요셉에게 시련을 허락하신 것이다. 상과 벌은 하느님이 내리시는 것이지 사람이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아버지 야곱이 죽자 형들이 울면서 “이제 우리는 아우님의 종들일세!”하며 머리를 조아릴 때에도 형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면서 “두려워하지들 마십시오. 내가 하느님의 자리에라도 있다는 말입니까?”(창세50,19)하면서 하느님의 선하신 계획을 설명해 주었던 것이다.
또한 요셉은 절대 권력을 쥐었음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겸손했다. 권력을 쥐게 되면 목이 뻣뻣해지고, 혀가 반 토막으로 바뀌게 되는데 요셉에게서는 그런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다.5) 미드라쉬에 따르면 요셉은 파라오에게 종 100명과 완성하는 데 3년이 걸린 넓은 저택을 선물 받았다고 한다. 금과 은과 대리석으로 꾸민 호화로운 저택에서 살면서 요셉은 권력의 맛에 취해서 살았을까? 하지만 성서 어디에서도 그런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다. 요셉은 어떤 처지에서도 하느님께 눈을 뗀 적이 없다. 죄는 인간이 하느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나 세상 사물이라는 표적을 바라보는 것이다. 요셉이 성공과 출세를 자기 인생의 최우선으로 삼았다면 재상이 되고 나서는 더 이상 하느님을 바라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교만으로 오만방자해지고 권력을 남용하는 일은 시간 문제였을 것이다. 하지만 요셉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하느님만을 바라보는 사람이었다.
⑤ 탁월한 통치자, 요셉- 그는 성공과 사명을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요셉은 파라오의 앞에서 물러나와 이집트 전국을 순찰하였다(창세41,46). 즉 책상에 앉아서 펜만 굴리고 말만 한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고, 발로 뛰는 그런 통치자였던 것이다. 현실 감각에 맞는 정치를 한 것이다. 그런데 갓 결혼한 새신랑이 신혼의 달콤함을 맛볼 겨를도 없이 전국을 순찰하는 모습은, 요셉이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즉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출세를 이기적으로 즐기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하느님을 섬기기로 한 것이다. 사실 성공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성공 자체가 목적이 될 때에는 성공한 후에 공허와 쾌락의 죄에 빠지게 된다. 성공은 성공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디딤돌이다. 요셉은 성공과 사명을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사실 요셉에게는 지금의 칠년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칠년이 지나면 흉년이 들기 때문이다. 요셉은 이집트 땅에 대풍이 든 일곱 해 동안, 모든 양식들을 거두어 성읍들에 저장하였다. 얼마나 많은 곡식을 쌓아 놓았는지 성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요셉은 바다의 모래처럼 엄청난 곡식을 쌓아, 헤아리는 것조차 그만두었다. 헤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창세41,49)
5) 요셉의 아들들(창세41,50-52).
흉년이 들기 전에 요셉은 두 아들을 낳았다. 요셉은 “하느님께서 나의 모든 고생과 내 아버지의 집안조차 모두 잊게 해 주셨구나!” 하면서 맏아들의 이름을 “므나쎄”라고 하였다. 므나쎄는 잊게 해 주는 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내 고난의 땅에서 나에게 자식을 낳게 해 주셨구나”하면서 둘째 아들의 이름을 “에프라임”이라고 하였다. 에프라임은 ‘자식을 많이 낳게 해 주다’는 동사로 설명된다.
① 므나쎄와 에프라임
요셉이 맏아들을 낳고 붙인 “하느님께서 나의 온갖 쓰라림과 아버지의 집 생각을 잊게 하셨다”는 이름의 뜻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자. 요셉이 아버지의 집 생각을 잊어버렸다는 것은 글자 그대로 아버지와 다른 형제들을 잊었다는 말이 아니다. 또 형들의 행위를 잊었다는 말도 아니다. 그것은 그러한 체험으로 겪었던 상처와 아픔을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더 이상 한을 품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그동안 과거의 상처와 계속해서 싸우며 살아 왔다는 말이 된다. 므나쎄가 태어나기 전까지 20여 년 동안 요셉은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잊으려고 애를 썼다는 것이다. 요셉의 치유는 세월이 낫게 해 준 것이 결코 아니다. 세월이 약이라고 하지만 어찌 그 아픔을 잊을 수 있겠는가? 요셉의 상처가 아물고 그 상처가 더 이상 아픔이 되지 않았던 것은 그의 피붙이가 태어나고부터다.
하긴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형제들에게 버림받고, 그래서 노예살이를 하고, 더 나아가 무고하게 감옥에 갇혔던 13년이라는 시간들을…, 요셉은 하느님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용서하고 열심히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괴로워했을 것이고, 그때마다 그는 하느님께 기도했을 것이다.
용서라는 것.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요셉처럼 그렇게 기도하면서 노력한다면 가능하게 될 것이다.
②요셉의 하느님께 대한 항구함
두 아들의 이름을 보면서 다시 한번 요셉이 얼마나 하느님께 충실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그가 이집트에서 산지가 20여년의 시간이 되어가고, 또 이집트 태양신을 섬기는 사제 집안의 처녀와 혼인해서 이집트 종교에 노출되어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두 아들의 이름은 하느님과 연관해서, 하느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지은 이름이다. 이것은 요셉이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하느님의 뜻을 언제나 헤아리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③ 생각해 봅시다.
1. 내가 만일 요셉이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요? 나는 잠을 잘 수 있었을까요? 혹시 나는 삶을 포기 하지는 않았을까요?
2. 참된 용서란 가능한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누가 오른뺨을 때리거든 왼뺨마저 돌려대라고 말씀하시는데, 그것이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용서가 가능할까요?
3. 옛날에 아내가 가진 돈을 다 가지고 다른 남자와 잠적해 버린 사건이 있었다. 남자는 너무도 당황했고, 술로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그만 죽고 말았다. 내가 만일 그 남자였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런데 어떤 사람은 보증을 잘못 서 주어서 모든 것을 날리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지금 당장 나를 가슴 아프게 한 사람을 용서할 필요는 없다. 지금 즉시 용서해야 된다는 생각도 버렸으면 좋겠다. 하지만 내가 받은 상처와 싸울 때 그 상처만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분노와 원한의 노예가 되어 몸과 마음이 망가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고통 속에서도 나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잊지 말고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해야 한다.
6) 흉년이 시작되다(창세41,53-57).
이집트 땅에 들었던 칠 년 대풍이 끝나고 이제 칠 년 기근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집트 온 땅에는 빵이 있었다. 백성들이 파라오에게 빵을 달라고 부르짖자 파라오는 이렇게 말하였다. “요셉에게 가서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창세 41,44)
기근이 온 땅에 퍼지자, 요셉은 곡식 창고를 모두 열고 이집트인들에게 곡식을 팔았다. 그리고 다른 나라 사람들도 곡식을 사려고 이집트로 몰려들었는데 이것은 형들과 요셉이 만나게 되는 계기가 되고, 요셉의 현명한 통치력이 돋보이는 계기가 되고, 파라오의 왕권이 강화가 되는 계기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