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 이야기 11 -야곱이 요셉의 아들을 아들로 삼다(창세기 48,1-22)

 

12. 야곱이 요셉의 아들을 아들로 삼다(창세기 48,1-22)


요셉은 아버지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그는 두 아들 므나쎄와 에프라임을 데리고 갔다. 아들 요셉이 왔다고 사람들이 야곱에게 알렸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기운을 내어 침상에서 일어나 앉았다. 성서는 요셉이 왜 두 아들을 데리고 아버지 앞에 갔는지는 말하지 않고 있다. 라비 라쉬에 따르면, 요셉은 이집트 여인에게서 난 두 아이가 아버지의 축복을 받아 유다 혈통에 들어오기를 바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다인은 모계 혈통을 따르기 때문에 이집트 여인에게서 난 요셉의 두 아들은 법적으로는 유다인이 아니었다. 야곱은 요셉의 간절한 바람을 헤아려 줄 뿐 아니라 그 이상의 큰 축복을 내린다.




  1) 에프라임과 므나쎄를 아들로 삼는 이스라엘(야곱)


야곱이 요셉에게 이렇게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하신 말씀을 전한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가나안 땅 루즈에서 나에게 나타나 복을 내려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네가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게 하겠다. 또한 네가 민족들의 무리가 되게 하고, 이 땅을 네 뒤에 오는 후손들에게 영원한 소유로 주겠다.’ (창세기 48,3-4)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그러니 이제 내가 이집트로 너에게 오기 전에, 이집트 땅에서 태어난 너의 두 아들을 내 아들로 삼아야겠다. 에프라임과 므나쎄는 르우벤과 시메온처럼 내 아들이 되는 것이다.(창세기48,5)




즉 이집트 며느리에게서 태어난 두 손자를 명실공히 이스라엘 열두 부족의 족장으로 임명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레아가  낳은 첫 두 아들인 르우벤과 시메온과 똑같은 지위를 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르우벤과 시메온보다 더 큰 축복을 받았다. 출애굽 초기 에프라임과 므나쎄의 남자 후손들을 다 합친 숫자는 72,000(민수1,32-35)인데, 40년 후에는 85,200으로 늘어난다(민수 26,28-37).한편 르우벤과 시메온의 남자 후손들을 합친 수는 출애굽 초기에는 105,800에서 40년 후에는 65,930으로 감소한다.




이것은 요셉에게 두 몫의 유산을 더 준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요셉은 열두 부족에 들어가지 않지만 그 대신, 그의 두 아들이 두 부족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야곱이 이렇게 요셉에게 특혜를 베푼 것은 사실 그의 영원한 연인 라헬에게 특혜를 베푼 것이다. 라헬의 자식이 둘에서 넷으로 늘어난 것이니, 석녀라고 놀림 받던 라헬의 고통스런 날과 그렇게도 원하던 두 번째 아들 벤야민을 낳다가 죽어간 그녀의 슬픈 날을 위해서 나름대로 최대의 보상을 한 것이다.




요셉의 두 아들이 삼촌들과 같은 항렬에 들어감으로써 야곱의 아들은 13명이 된다. 본디 이스라엘은 12지파인데 어떻게 13명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미드라쉬가 대답한다. 레위 지파는 하느님의 일에 종사하는 그룹이 되면서 땅을 분배받은 12지파 명단에서는 빠지게 된다(여호수아14,4 참조)




  2) 아이들에게 축복해주는 이스라엘(야곱)


이스라엘이 요셉의 아들들에게 축복주려고 하였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서 앞을 볼 수 없었다. 요셉이 아이들을 가까이 데려가자, 이스라엘은 그들에게 입 맞추고 끌어안았다.


요셉은 두 아이를 데려다, 에프라임은 오른손으로 이끌어 이스라엘의 왼쪽으로, 므나쎄는 왼손으로 이끌어 이스라엘의 오른쪽으로 가까이 가게 하였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손을 엇갈리게 내밀어, 에프라임이 작은아들인데도 오른손을 에프라임의 머리에 얹고, 므나쎄가 맏아들인데도 왼손을 므나쎄의 머리에 얹었다. 요셉은 아버지가 오른손을 에프라임의 머리 위에 얹은 것을 보고는 못마땅하게 여겨, 아버지의 손을 잡아 에프라임의 머리에서 므나쎄의 머리로 옮기려 하였다. 그러면서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닙니다, 아버지. 이 아이가 맏아들이니, 이 아이 위에 아버지의 오른손을 얹으셔야 합니다.”(창세기48,18)


큰 아들을 오른편에 세운 것은 유다인들에게 그 자리는 힘, 영예, 권력, 영광의 자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유다인들이 이러한 관념을 갖게 된 것은 일반적으로 오른손이 왼손보다 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른손으로 해주는 축복이 더 강력하다고 여긴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야곱이 바꾼 것이다. 요셉은 원치 않았지만 이것은 하느님의 뜻이었다. 야곱은 이제 육신의 눈은 보이지 않지만 영적인 눈이 뜨게 되었다. 이제는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고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축복은 일반 관습의 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확실히 알고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거절하며 말하였다. “아들아, 나도 안다, 나도 알아. 이 아이도 한 겨레를 이루고 크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아우가 그보다 더 크게 되고, 그의 후손은 많은 민족을 이룰 것이다.” 그날 야곱은 그들에게 이렇게 축복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이 너희를 들어 말하며 이렇게 축복하리라. ‘하느님께서 너를 에프라임과 므나쎄처럼 만들어 주시리라.’” 이렇게 그는 에프라임을 므나쎄 앞에 내세웠다. 그러고 나서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말하였다. “자, 나는 이제 죽는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와 함께 계시면서, 너희를 다시 조상들의 땅으로 데려가 주실 것이다. 그리고 나는 너의 형제들보다 너에게, 내 칼과 활로 아모리족의 손에서 뺏은 스켐 하나를 더 준다.” (창세기 48,20-22)


야곱은 두 손자를 축복하면서 실제로 축복하시는 분은 자신이 아니라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 야곱은 삶 안에서 자신을 이끄시는 하느님을 만났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자신에게 다시 약속의 땅으로 데려가 주실 것임을 약속해 주셨다. 야곱은 그것을 굳게 믿고서 손자들에게 축복을 빌어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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