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 이야기 13 -야곱의 장례와 요셉의 죽음(창세기 50,1-26)

 

14. 야곱의 장례와 요셉의 죽음(창세기 50,1-26)


  1)야곱의 장례(창세기 50,1-14)


야곱이 죽자 요셉은 아버지의 얼굴에 엎드려 울며 입을 맞추었다. 그런 다음 요셉이 자기 시의들에게 아버지의 몸을 방부 처리하도록 명령하자, 시의들이 이스라엘의 몸을 방부 처리하였다. 그들이 이 일을 하는 데에 사십 일이 걸렸다. 방부 처리를 하는 데에는 그만큼 시일이 걸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집트인들은 야곱의 죽음을 애도하며 칠십 일 동안 곡을 하였다.


본시 방부처리는 사후 여행을 믿고 있던 이집트인들의 장례관습이다. 그런ㄹ데도 요셉이 그렇게 한 것은 시신을 잘 보존해서 가나안 막벨라 가족 무덤1)까지 모셔가기 위해서였다. 애도기간이 무려 70일인데다 가나안 땅까지 시신을 이송해야 했기에 방부처리를 하지 않으면 곤란했을 것이다.




      요셉은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러 올라갔다. 그와 함께 파라오의 모든 신하와 파라오 궁궐의 원로들과 이집트 땅의 모든 원로, 그리고 요셉의 온 집안과 그의 형제들과 아버지의 집안사람들이 올라갔다. 그들의 아이들과 양 떼와 소 떼만 고센 지방에 남겨 두었다. 또 병거와 기병까지 요셉과 함께 올라가니, 그것은 굉장한 행렬이었다(창세기50,7-9).


이것은 야곱의 장례가 국장으로 치러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야곱을 위한 애도기간은 파라오가 죽었을 때 애도하는 72일에서 이틀이 적은 70일이었다. 파라오를 비롯한 이집트 백성들은 요셉과 한 마음이 되어서 70일 동안 야곱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그리고 가나안 땅을 향한 장례 행렬에 많은 이들이 참례하였다. 이것은 이집트 백성 모두가 그들의 구원자 요셉에 대해 감사와 애정을 표현한 것이었다.


그 지방에 사는 가나안족은 고렌 아탓2)에서 애도하는 것을 보고, “이것이 이집트인들의 장엄한 애도로구나.” 하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그곳의 이름을 아벨 미츠라임이라 하였다.


야곱의 아들들은 아버지가 분부한 대로 아버지의 주검을 가나안 땅으로 모셔다, 막펠라 밭에 있는 동굴에 안장하였다. 아버지의 장사를 지낸 다음 요셉은 형제들과 또 자기와 함께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러 올라왔던 사람들과 더불어 이집트로 돌아갔다.




  2)불안해하는 형제들과 형들을 안심시키는 요셉(창세기 50,15-21)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을 보고, “요셉이 우리에게 적개심을 품고, 우리가 그에게 저지른 모든 악을 되갚을지도 모르지.” 하면서, 요셉에게 말을 전하게 하였다.




   “아우님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이렇게 분부하셨네. ‘너희는 요셉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너의 형들이 네게 악을 저질렀지만, 제발 형들의 잘못과 죄악을 용서해 주어라.′’ 그러니 아우님은 그대 아버지의 하느님의 이 종들이 저지른 잘못을 용서해 주게.”(창세기 50,16-17)




요셉의 형들이 얼마나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들은 요셉을 감히 쳐다볼 생각도 못하고, 요셉 앞에 나설 용기도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어 용서를 청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을 먼저 보내어 용서를 청하고, 형제들도 직접 와서 그 앞에 엎드려 자신들은 요셉의 종이라고 말한다.


        “이제 우리는 아우님의 종들일세.”(창세기50,18)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이제 자신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분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버지 때문에 복수하지 않았지만 이제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상 자신들에게 복수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형제들은 아버지의 유언의 말씀을 전하면서 자신들을 반드시 용서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즉 아버지가 요셉에게 직접 한 유언이니 반드시 그 유언을 따라야 한다는 부담을 주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그렇게 말했다는 신빙성은 없다. 야곱이 필요했다면 스스로 요셉에게 했을 것이다. 창세기 어디에도 형제들이 자신의 소행을 아버지 야곱에게 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요셉이 자신이 당한 일을 아버지에게 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그러니 이것은 형제들이 꾸며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것은 요셉의 마음이 아니다. 요셉은 형제들을 용서했다. 그리고 화해를 했다. 요셉은 그들이 자기에게 이렇게 말한 것을 듣고 울었다.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기에 그런 것이다. 요셉은 형제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두려워하지들 마십시오. 내가 하느님의 자리에라도 있다는 말입니까? 형님들은 나에게 악을 꾸몄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그것은 오늘 그분께서 이루신 것처럼, 큰 백성을 살리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두려워하지들 마십시오. 내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아이들을 부양하겠습니다.” (창세기50,19-21)


이렇게 요셉은 그들을 위로하며 다정하게 이야기하였다. 성사를 보신 분들이 또 그 죄 때문에 다시 성사를 보는 경우가 있다. 자꾸 들춰내어 자신의 죄를 살피는 것이다. 아픈 곳을 수술하여 꿰매놨는데 다시 열어보고 다시 꿰맨다는 것은 고통만 남을 뿐이다. 한번 수술하고 꿰맸으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이제 그 상처만 아물면 되는 것이다. 하긴 그래서 죄 짓고는 못산다고 한 것이다.


또한 사람을 판단하고 벌을 주는 것은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 하느님만이 혼돈을 질서로 만드실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 혼돈을 질서와 조화로 만들려고 칼을 들게 되면 그것은 더 큰 혼돈을 초래할 뿐이다. 요셉은 형제들을 안심시키며 자신이 가족들을 부양할 것을 약속한다. 참으로 멋진 요셉이다. 참으로 성숙한 신앙인이다.




  3) 요셉이 죽다(창세기50,22-26)


요셉은 백십 년을 살았다. 그렇게 살면서 많은 자손들을 보게 되었다. 요셉은 에프라임에게서 삼 대를 보았다. 므나쎄의 아들 마키르의 아들들도 태어나 요셉 무릎에 안겼다. 한생을 하느님 안에서 흔들림 없이 살아온 요셉은 죽게 된다. 죽음 앞에서 요셉은 자기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요셉이 자기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이제 죽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여러분을 찾아오셔서, 여러분을 이 땅에서 이끌어 내시어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실 것입니다.” 요셉은 이스라엘의 아들들에게 맹세하게 하면서 일렀다. “하느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을 찾아오실 것입니다. 그때 여기서 내 유골을 가지고 올라가십시오.” (창세기 50,24-25)


요셉은 이스라엘 후손들이 이집트에서 사는 동안 하느님의 돌보심이 계속될 것과 언젠가는 하느님께서 반드시 그들을 찾아오시어 약속의 땅으로 인도할 것임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때 자신의 유골을 가지고 올라갈 것을 다짐 받는다. 요셉은 하느님께서 찾아오시어 이스라엘 후손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기 전까지는 자신의 뼈를 고향 땅에 묻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야곱은 자기 시신을 고향 땅에 묻어 달라고 했고, 그래서 자녀들은 야곱의 시신을 가나안 땅에 묻었다. 요셉도 그렇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의 후손들이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게 될 그날까지 지하에서 그들과 함께 하려 했기 때문이다. 요셉을 통해서 이집트로 내려왔으니 요셉이 함께 이집트를 떠나야 하는 것이다.


  요셉이 백열 살에 죽자, 사람들이 그의 몸을 방부 처리하고 관에 넣어 이집트에 모셨다. 이제 이집트를 탈출하게 될 때, 요셉도 함께 이집트를 떠나게 될 것이다.










이 글은 카테고리: 구약성경이야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