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가. 구조와 내용
(여호 1-12) : 요르단 서편 지역 정복 기사
cf) (민수 22,3-36,13) 요르단 동편 점령.
(여호 1) 땅의 약속의 성취에 관한 신학적 해석이 서론 역할
(여호 23,24) 그 결론 역할
(여호 13-21) 여호수아기의 중심, 각 지파들에게 땅 분배 기사
– 에집트에서 고초를 겪던 이스라엘의 주요 관심사인 약속 성취 순간이다.
(여호 21,43-44) 약속이 성취됨(창세 12,7;28,13)
* 가나안 정착시기를 고고학이 발굴해낸 자료에 의하면(기원전 1250-1220)으로 출애굽의 연대와 비슷하다.
(여호 22) 요르단 동편 지파들의 귀양 기사.
(여호 23,24) – 부록 여호수아의 고별 연사, 세켐에서의 지파 대회. 23장과 더불어 24장은 땅 약속의 성취를 신학적으로 해석함. 신명기적 성격 언어가 확연이 드러난다.
나. 명칭과 주인공 여호수아
전기 예언서의 첫번째 책인 여호수아의 명칭은 이 책의 주인공인 여호수아가 그 저자라는 바빌론 탈무드 전승에서 비롯된다. 이는 모세오경의 각 책이 첫 단어들에서 그 명칭을 취한 것에 비하면 매우 특이하지만 흔히 있는 일이었다. 아래에서 설명하겠지만, 이 책의 저자는 여호수아가 아니다. (전기 예언서, 이홍기, P.17참조)
전기 예언서의 일부로 취급하는 이유는 책속에서 드러나는 인물이 예언자적 이미지로 제시되고, 이 책이 예언자들의 가르침에 입각하여 이스라엘과 하느님과의 계약 충실여부를 기록, 해설하였기 때문이다. 책의 명칭이며 주인공인 여호수아는 모세오경에서 모세와 같이 뛰어난 역할을 하였다. 여호수아는 눈의 아들로서 에프라임 지파에 속한다. 여호수아라는 이 명칭은 “야훼는 구원자시다.”라는 뜻으로 성서 전승에서 여호수아에게 부여된 새로운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원래 호세아로 불리우던 그를 모세가 여호수아라고 고쳐 불렀다한다. 유배이후 책들-역대기 상하, 에즈라, 느헤미야 -에서도 그의 약칭은 ‘예수아(희랍어)’라고 불리우는데 여기에서 근거가 된다. 그의 또 다른 약칭으로 ‘호세아’라 불리우는데 이렇게 불리운 자는 여럿이었는데, 신약시대에 이르러 매우 흔한 이름으로 불리었으며 희랍계 유대인은 이를 예수라 불렀다.
예) ‘명자, 영자’라고 요즈음 흔히 쓰는 이름과 같음.
여호수아는 모세오경에서 주요인물로서 등장하지만, 모세라는 영도자의 그늘에 가리어 부각되지 못하였다. 그는 모세와 함께, 시나이산에 오르고, 장막을 지키며, 이스라엘 군사를 지휘하며 또한 그는 지파의 대표자로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갈렙과 함께 백성이 하느님을 거역하지 못하게 하는 등 에집트를 떠난 세대중 갈렙과 함께 유일하게 가나안에 들어가는 특전을 받는다. 모세는 여호수아를 백성의 영도자로서 물려준다. 여호수아는 하느님의 보호를 받고, 제 2의 모세로서 백성을 지도한다. 그는 모세가 갈대바다를 건너듯이 요르단을 건너며, 그는 모세와 같이, 하느님의 소리를 듣는다. 결국 그는 모세가 시작한 임무를 완수한다.
탈무드 전승에서 (여호수아를 이 책의 저자로 간주하는 문학비평상 볼 수 있듯이 여기서도 모세오경에서) 모세오경의 친저성을 부인할 만한 문제 발생과 비슷하게 나타난다.
cf) midrash : 해설, 설명주석, 히브리성서에 대한 랍비주석을 일컫는데, 랍비들이 실생활과 관련시켜, 교훈적인 특성을 띤다.
* 탈무드 : 이스라엘에서 구전으로 내려오던 법률(법전)의 총체를 글로 남긴 것.
– mishina : 뜻은 ‘반복하다’라는 의미인데, 팔레스티나 유대인에 의해 성서에 수집되지 않은 유대율법을 수집 및 해석한 책.
– gemara : 팔레스티나 유대인 밖의 유대율법의 해설 및 수집 (즉, 다른 지역에서 유래하는 해설서)
폭넓은 의미로 모세오경에서 그의 사상을 근거로 집필했다는 의미에서 모세의 친저성을 인정하듯이 여호수아서도 같은 맥락임, 그러나 좁은 의미의 친저성은 사료로 보아서 될 수 없으며, 공동작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다. 여호수아의 역사성
이스라엘이 정복하려는 가나안 땅은 ‘호른-베텔’까지의 길쭉한 고원도시이다.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의 침투전부터 한 도시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여러 도시국가(성읍국가)가 형성되어 있었다. 이 가나안 땅은 또한 연안 평야를 중심으로 지중해 연안의 비옥한 땅으로서 농경지로 적합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변방지역은 적으로부터의 침입에 대해 무장군인이 있었다. 예) 므기또
이런 상황속에 이스라엘은 에집트 전초기기를 피해가면서 중앙 고원지대를 점령한다. 특히, 갈릴래아로 알려진 고원지대 정복을 신명기계 역사가는 “이 정복은 야훼가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워주었기에 승리했음” 즉 아훼 전쟁, 성전임을 고백한다.
① 여기 야훼 전쟁에 대한 고백으로서 그 당시의 소박한 신앙과 사고가 묘사된다. 또한 이스라엘을 인근 주변국가로부터 보호하는 정책을 말하기도 한다.
② 신명기계 역사가들은 이 승리와 반대로 버림받은 백성의 상태가 어떤 것인가를 대조적으로 여호 5,13-6,27에서 잘 나타내어 주고 있다.
* 여호수아서 역사성에서 4가지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① 출애굽 언급에서 보는 바와 같이, 12지파 모두 에집트에 거주하지 않았으며 또한 에집트 이주 또한 여러차례, 여러 경로로 출발함, 마찬가지로 여호수아에 의해 동부 요르단에서 가나안의 정복은 12지파에 의한 정복이라 말할 수 없다. 출애굽의 경로에서 보듯이 가나안에는 즈블룬, 납달리 지파가 먼저 거주하고 있었다. 이에 대한 증거는 세켐 침공시 무리없이 이동한 것을 보아 알 수 있듯이, 합류하는 형태를 지닌다. 또한 에프라임, 므나쎄, 베냐민 지파간의 알력을 볼 때, 여호수아가 전 지파의 지도자라기보다는 에프라임 지파를 포함한 몇몇 지파의 지도자로 보는 것이 타당한 것 같다.
② 예레미야 1,1-5;3;4 그리고 10장을 볼 때
가나안 점령은 중부 산악을 중심으로 해서 남북부로 점령해 나갔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염두해 두어야 할 것은 조그만한 중부산악 정복을 전체 가나안 정복으로서 묘사하고 있는데 이는 비약적 설명으로서 완전한 정복이 아니다. 여기에 대한 자료는 여호수아의 고별 연설에서 볼 수 있는데 “이 남은 민족도 너희와 함께 남을 것이고, 야훼께서 너희 앞에서 몰아내시지 않을 것이다.”
또한 판관기. 왕정기 시기에도 같이 공존함을 볼때 가나안 전체 정복이 아님을 시사한다.
③ 가나안 정복은 때때로 무력대결로써, 또는 정략결혼내지 평화조약과 동맹으로 흡수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는데 (여호 9장, 판관 1장 참조) 이와 더불어 무력에 의한 정복도 역사적 발굴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나 가나안 정복은 전격적인 공격에 의한 형태라기보다는 점진적 침투에 의해 진행되었다고 본다.
원래 소수 유목민은 자기 방어에 충실한 소극적 자세를 취하는데 이들은 가나안 정착후 혼종혼, 동맹으로써 다른 나라를 정복해 나갔다. 즉 처음에는 게릴라 전법에 의해서, 그 후에는 동맹으로써 침투방법을 전향했다.
④ 가나안 점령은 여호수아 혼자만의 업적이 아니라, 여호수아가 살아있는 동안 여러 부족이 제 각기 승리를 거둔 것이었다. 또한 가나안 정복 설화는 많은 문학적 수식이 가해졌다. 여호수아서에 있어서 신명기 역사가들의 의도는 사실 그대로의 기록이라기 보다는 하느님이 그의 종을 통해 극적인 승리를 거두었음을 이스라엘에게 알리기 위함이었다. 즉, 여러사람의 공을 야훼 신앙에 충실했던 여호수아에게 수렴시켜 정복경위를 압축하고, 그의 공적에 대한 과장적 표현을 통해 그를 돋보이게 했다. 신명기계 역사가는 이스라엘이 야훼 하느님의 뜻에 충실해서 승리를 얻게 되었음을 말하는데 즉 전쟁의 승리가 야훼께 대한 신앙의 결과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신앙으로 무장하여 정복하는 이스라엘을 어떤 민족도 반격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