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바꾹

 

하바꾹




아람족에 속해 있는 갈대아인이 기원전 8세기경부터 바빌론에 침투하여 아람족에 속해 있는  갈대아인이 힘을 모으기 시작하였다. 바빌론이 약해진 틈을 타서 이들은 신바빌론왕국을 건설  하였다(626-539).


612년에는 신바빌론의 왕이 이란 부족국가인 메데왕과 함께 니느웨를 파괴하고 606년에는    앗시리아제국을 멸망시킨다. 또한 605년에 바빌론왕 느부갓네살은 유프라테스 강변 갈르그미스 전투에서 에집트왕 느고의 군대를 쳐부숨으로써 앗시리아 제국의 옛 영토를 모두 장악한다.    느부갓네살이 옛 앗시리아 영토를 모두 회복함에 따라 앗시리아의 식민지에 속해 있던 시리아와 팔레스티나 전역이 느브갓네살의 패권에 속하게 된다(예레미야 46장 2절 참조).


따라서 유다왕국은 압정에 시달리게 되고 그 결과로 예루살렘은 597년에 공격당하여 1차유배로 끌려가고 587-586년에 완전히 함락당했다. 하바꾹서는 이 비극의 역사적 전환점에 생겨난   예언서이다. 하바꾹서에서는 유다를 압박하는 폭군의 횡포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나훔예언서와 같은 시기에 속한다. 그러나 차이점이 있다면, 나훔예언서는 이미 그 폭군으로부터의 해방을 예견하고 있는 반면에, 하바꾹서는 그 고통을 언급하고 있다. 또한 나훔은 하느님을 찬양하는 시로 예언서를 시작하고 있는 반면에, 하바꾹은 개인적인 탄원시로 시작하고 있다. 이 개인적   탄원시에는 백성전체의 고통이 암시되어 있고 이러한 분위기는 하바꾹서 전체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


다니엘 14장 33절 이하에는 하바꾹서의 교훈적인 설명이 등장하지만, 그러나 이 예언자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다. 혹자는 하바꾹서 1장 1-4절의 탄원적 성격이 시편의 탄원시와 비슷하여 성전에서 시를 읊던 그런 종류의 시인과 연결하려는 이도 있으나, 그것은 가설에 불과하다.




※ 구조와 내용


가. 예언자의 탄원과 하느님의 선언의 말씀


① 탄식(1,2-4.12-13) : 유다왕국에서 자행되고 있는 바빌론의 약탈과 억압에 대한 탄식, 그리고 하느님께 대한 의지를 고백하고 있다. 결국 탄원시나 탄식시에 대한 목표는 아픔의 고백과 함께 하느님께 대한 신뢰, 그리고 그분의 도우심을 간청하는 내용이 될 것이다.


② 말씀에 대한 선언(1,5-11.14-17) : 유다백성을 징계하기 위하여 바빌론왕을 선택하셨다는  놀라운 표현도 발견되지만, 동시에 불경스러운 이교도의 착취와 만행이 합당치 못하다는 것을   하느님께 호소하는 내용도 나온다.




나. 하느님의 응답(2,1 – 4)


하바꾹의 호소에 대해 하느님은 바빌론이 멸망하고 정의를 사랑하는 백성은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이행하는 한 생존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구원의 때를 참고 기다리라고 강조한다.  예)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기 보다 내 영혼이 더 기다리나이다.”


다. 압제자에 대한 저주(2,5 – 19)




라. 하느님께 대한 예언자의 신뢰(2,20)


압제자에 대한 저주는 잔악한 정복자에 대한 다섯 가지의 저주가 선포된다. 권력과 국익을   위해서는 인간, 동물, 물질 등을 가리지 않고 악용하는 자들이 보복을 받을 것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의 처벌이다.




마. 하느님의 현현(내려오심) (3,1 – 15)


2,14절에 하느님께서 약속의 실현을 위해 친히 개입하시겠다는 내용이 나옴을 우리는 보았다. 그 내용은 하느님의 현현에서도 또한 나타나고 있다. 3장 15절에서 하느님의 내려오심은 우주를 진동시키지만 그 목적을 주의 백성인 친히 기름 부은 자들을 구원하러 오셨다는 13절의 고백에 잘 표현되고 있다.




바. 예언자의 응답(3,16 – 19) : 하느님의 손길을 기다리면서 하느님께 대한 찬미로 그의 탄원을 끝맺고 있다.




하바꾹서의 메시지 : 유다왕국이 처한 역사적 현실을 예언자적인 관점에서 명상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즉 하느님께서 행하신 역사적 위업을 상기시키면서 그 당시 원수들에게도 하느님이 개입하실 것이기 때문에 그들도 머지 않아서 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게 한다.




하바꾹서에서는 의인과 악인의 문제


하바꾹서에서는 의인과 악인의 문제가 언급된다. 의인이라는 것은 이교도의 침입으로 실의에 빠져있는 유다민족을 말하고, 악인은 바빌론을 말한다고 즉시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이 이러한   절망과 실의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주님께 충성을 다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이 메시지는 구원받기 위하여 하느님께 충성하고 신뢰하라는 이사야의 메시지를 재천명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사야서 7장 9절에서 아하즈왕에게 한 이사야의 말에서 잘 나타나 있다. 예언자의 메시지는   하느님의 정의, 사랑, 신뢰 등으로 거의 일맥 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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