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세계

 

성서의 세계


성서가 우리 민족에게 처음 소개된 것은 중국의 한문 서적을 통해서이다. 그 한문 서적은 주일과 축일의 독서와 해설서인 성경직해와, 비슷한 내용을 담았지만 피정 지침서로 엮어진 성경광익 이다 그런데 이 성경직해와 성경광익은 중국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서양 선교사들이 엮은 것이다. 오늘날 우리 눈에 쉽게 띄는 성서 주석서와 참고서, 성서 교재와 프로그램등도 대부분 서양 학자들이나 서양의 사목자들이 만든 것들이다. 말하자면 우리의 성서 전통은 근본적으로 서구 그리스도교의 학문 전통과 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받은 셈이다. 그런 까닭에서 성서를 읽으면서 우리는 늘 동양 문화‧전통과 거리가 먼 책을 대하는 것처럼 느낀다. 그러나 성서는 동양과 서양의 문물을 껴안고 동 서양의 경계를 넘어서서 모든 이에게 열려 있는 책이다.


성서는 아시아에서 태어났다. 아시아는 고대 문명과 종교의 발상지이다. 세계4대 고대 문명인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 문명, 인더스 문명, 중국의 황허 문명의 발상지 가운데 세 곳이 아시아에 속해 있고 이집트도 서양인들에게는 근동 곧 가까운 동방에 속한다.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 유교 등 세계의 대종교들도 모두 아시아에서 나왔다. 서양인들이 동방을 창의적 직관과 명상을 통하여 고유한 정신세계를 구축하고 발전시킨 신비의 땅으로 여겨 온 것은 결코 과장이나 무리가 아니다. 게다가 아시아에서 나온 이 세계 종교들은 모두 경전을 가지고 있어서 시간과 공간을 넘어 온 인류를 진리의 길로 이끈다. 빛은 동방에서 라는 오래 된 서양 격언이 이를 잘 반영한다.


성서는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과 지중해 문명이 어우러진 땅에서 쓰이고 퍼져 나갔다. 구체적으로 이 지역은 소아시아,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을 거쳐 동쪽의 인도 경계까지, 시리아-팔레스티나와 시나이 반도를 거쳐 남쪽의 이집트까지 그리고 서쪽 끝 스페인에서 동쪽의 그리스에 이르는 유럽의 지중해 연안을 포함한다. 기원후 313년 동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는 밀라노 칙령을 반포한 이래 성서는 서구 문명을 발전시킨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스 문명과 로마 문명의 우월성을 주장하고 두 문명의 진정한 상속자로 자처하는 서양인들은 오랫동안 성서를 하느님께서 자신들에게 내려 주신 선물로 여겨왔다. 그러나 그들은 성서가 그리스 문명과 로마 문명보다 훨씬 앞서 생겨난 고대근동문명의 틀 안에서 태어났고, 그 문명을 전하는 매개체라는 사실은 깨닫지 못하였다. 여기서 근동은 유럽에서 가까운 동방의 땅 곧 소아시아, 메소포타미아, 시리아-팔레스티나, 이집트를 가리키는데,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중동이다.


1798년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침략하면서 고대 근동의 잃어버린 문명 좀더 정확한 표현으로는 잊혀진 문명이 사람들 앞에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프랑스인들이 고대 이집트 문화 유적지의 발굴과 탐사를 주도하였지만, 영국인과 독일인과 이탈리아인 등 다른 유럽인 들도 이 일에 뛰어들었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고대 근동에 관한 관심은 이집트뿐 아니라 메소포타미아와 소아시아와 시리아-팔레스티나 전체로 확산되었고, 유럽과 미국의 학자들이 이스라엘, 이집트, 이라크, 이란, 터키, 요르단, 시리아의 학자들과 함께 공동작업을 펼쳐 나갔다. 그들의 고고학적 발굴과 탐사는 옛 신전 터와 왕궁 터에서 발견된 문서들과 수많은 금석문에 쓰인 갖가지 고대 근동의 언어들을 해독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였다.


20여개 이상의 고대 근동어로 쓰인 고문서가 실체를 드러내면서 양식 있는 서양 학자들은 이제 더 이상 그리스-로마 문화의 독창성과 우월성을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고대 근동어를 연구 하는 서양 학자들은 유럽 언어들의 원조로 여겨왔던 그리스어와 라틴어가 동방의 산스크리트어 페르시아어 셈족어와 페니키아 어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하지 못하였다 언어뿐 아니라 문학 양식에서도 서양인들은 동방의 영향을 받았다. 서구의 정신 문화를 이끌어 온 성서는 신화 법전 민담 격언 비유 역사 연가와 애가 예언등 온갖 문학 양식으로 구성되는데, 이런 문학 양식들이 모두 고대 근동의 문헌들 안에서 고스란히 발견되고 내용까지도 비슷하다. 일찍이 그리스 문화의 전도사로 알려진 알렉산더 대왕이 이집트와 페르시아 제국과 인도를 정복하고 나서 자신은 물론 신하들에게 동방 문화를 답습하게 한 것이 역시 그 문화의 가치를 재발견 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성서를 대하면서 낯설게 느끼는 것은 성서가 이처럼 복잡 문화의 토양에 뿌리를 내렸다는 사실을 잊은 채 서구의 성서 해석과 접근 방법에만 매달린 탓이 아닌가 싶다. 그리스도교가 팔레스티나에서 출발하여 소아시아와 그리스를 거쳐 로마에 전해지고 유럽 전역에 퍼져나가 서구 종교로 자리 잡은 다음, 다시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등 세계의 모든 대륙으로 확산되는 동안, 그리스도교의 근본을 이루는 성서도 근동의 문화권을 거쳐 전 세계의 다양한 문화권에 접목되었다. 이 과정에서 서구인들의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고 실용적인 사고방식이 그리스도교를 체계화하고 성서에서 객관적 진리 또는 교의를 끌어내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법은 서방에서’라는 서양 격언이 뜻하는바 그대로 이다.


이제 우리 앞에는 2000여년의 긴 여정을 거쳐 다시 동방으로 돌아온 성서, 하느님께서 온 인류에게 구원의 표지로 주신 귀중한 경전이 놓여 있다. 성서의 세계가 모든 문화권을 포함하고 성서의 메시지가 모든 문화권에 열려 있다는 사실은 여러 문화, 특히 동양 문화와 서양 문화의 상호 존중과 협력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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