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가 말하고자 하는 것
성서의 뼈대는 이스라엘 역사와 예수님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크고 작은 사건들이나 예수님의 생애와 인격과 가르침들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역사적 사실로만 처리된다면, 오늘 21세기 맞은 극동의 한민족에게 성서의 내용들이 어떤 의미를 던져 줄 수 있겠는가?
실제로 이스라엘이라는 조그만 나라의 역사가 고대 근동사 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무시되어도 좋을 만큼 미미하다. 현대의 고고학자들이 밝혀 낸 바에 따르면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같은 고대 근동의 강대국들 틈바구니에 끼어 늘 생존을 위협 당하던 약소민족에 지나지 않았다. 예수님을 두고도 그 시대의 로마나 그리스 역사가들의 저서에 단 몇 줄의 언급 만 있을 뿐 본격적인 기록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도 성서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토록 오랫동안 인류의 정신문화를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성서의 내용이 시공을 뛰어넘어 인류 전체에 커다란 충격을 던지며 인간성 자체를 변화시키기에 충분한 역동적이고 보편적인 진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성서는 두 가지 핵심 주제를 안고 있다. 하느님 소개와 인간 소개가 바로 그것이다. 이 둘은 성서의 어느 대목을 열어 봐도 금방 눈에 띈다. 창세기 처음 몇 장의 신화적 이야기들, 모세와 판관들의 건국 초기의 투쟁사, 예언자들의 정의로운 외침, 예수사건과 그 여파, 사도들의 사목적 활동과 초기 공동체의 모습들, 묵시록의 수수께끼 같은 예언들 등, 이 모든 기록에서 성서저자들은 하느님이 어떤 분이시고 인간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밝힌다.
성서를 태동시킨 이스라엘 민족은 정치나 윤리면에서 결코 뛰어난 민족이 아니었다. 그들은 본디 정처 없이 물과 목초지를 찾아 떠돌던 유목민들고 사회 밑바닥에서 천대 받던 히브리인들의 후예였다. 그러나 그들 조상들이 하느님의 초대를 감사하게 받아들였을 때,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생명의 번영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약속하셨고 실제로 그 약속을 지키셨다. 그러나 히브리 후예들이 자신들을 이집트 종살이에서 끌어내시고 가나안 복지를 차지하게 해주신 하느님을 배반하고 그분의 뜻을 저버리자, 그분께서는 혹독한 시련과 고난의 길을 허락하신다.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이스라엘 민족의 비극적 역사에서, 성서 독자들은 하느님의 상실하고 끈기 있는 초대를 거절한 민족이 겪게 되는 파멸이 얼마나 쓰라린지 배우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이스라엘은 온 인류를 위한 하나의 표본이다. 그들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얼마나 성실한 분이시고 고통 받는 인류를 얼마나 깊이 사랑하시는지를 더 뚜렷하게 보여 주시는 동시에, 그분의 초대를 받아들이거나 거절하는 민족에게 생명과 죽음의 길이 열린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신다. 한 마디로 만민은 선민의 역사를 통하여 본 모습이 드러나고, 선민의 선택은 만민의 구원을 전제로 한다.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의 삶뿐만 아니라 성서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 개개인의 삶도 후대의 인류에게 귀중한 가르침이 된다. 성서에서 고상한 윤리와 영적 가르침만을 기대하는 독자들은 성서가 전해 주는 인간 군상의 부도덕한 이야기들에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성서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온갖 비리와 타락과 죄악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동시에, 온갖 회유와 유혹에 굴하지 않고 성실하시고 자비하신 하느님께 굳은 믿음을 고백한 인물들의 활약상도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생명과 죽음의 길 가운데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를 가르쳐 준다.
성서에 나타난 사건과 인물들은 한마디로 나와 내가 몸담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성서에 담긴 하느님의 말씀은 지금 이 순간 나와 내 가족과 우리 사회를 구원의 길로 이끄시려는 하느님의 부르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