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 12장
12장은 여로보암의 반란 내용이다. 여로보암의 반란 내용 중에서 솔로몬의 후손인 여로보암과 르호보암과의 왕위계승 과정에서 사회적인 문제가 생긴다. 이는 백성들이 솔로몬 시대에 많은 일을 하고 그럼으로써 억압을 당했다고 생각하니까, 왕권이 바뀔 때 인권을 찾아보고자 하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르호보암이 올바로 판단할 수 없었던 것은 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백성들의 원의에 대해 귀를 막았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여로보암이 떨어져 나갈 때, 나중에 신명기 신학적 요소로 신학적으로 정당화시키는 과정이 있다. 그것이 11,26부터 나오는데, 특별히 11,29~30을 보면 아히야라는 예언자가 자기가 걸쳤던 새옷을 찟어가지고 10조각을 여로보암에게 주고 나머지를 르호보암에게 주는 것이다. 열조각이 유다하고 베냐민을 빼고는 모두 여로보암에게 간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는 신명기 역사 중에서 예언자적 요소 부분(DtrP)이다. 즉 예언적인 요소로서 그것을 정당화 시킨다.
염두해 두어야 할 것은 예언자들 중에는 글을 남긴 예언자도 있지만 글을 남기지 않은 예언자도 여럿 있다. 예를들면 나탄, 갓, 아히야, 열왕기의 미카, 엘리야, 엘리사 등이 있다. 벌써 예언자가 옛날부터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히야라는 예언자가 이런 식으로 해서 신명기 신학 속에서 여로보암의 이야기에서 예언자적 요소를 볼 수 있다. 하느님이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이행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종교적으로 분열되고 정치적으로 갈라져 나감을 볼 수 있다. 8장과 비슷하게 여러 과정을 통해서 된 것이다. 이것을 잘 볼 수 있으면 우리의 남북관계도 볼 수 있다.
이 장은 여러 층으로 되어 있는 텍스트이다. – 학자마다 의견이 다르다. 주로 정치와 종교의 분열이 일어나고 있다. 다윗 솔로몬의 시대가 종말을 고함. 당시의 국가 개념을 반영하고 있다. 즉 왕과 백성의 협약이 이루어진다. 왕이 되기 위해 일정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백성으로부터 왕으로 수용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1) 2열왕 11장도 유사한 내용이 나온다. 결국 국가 개념이 들어 있고 협약의 내용도 들어 있다. 이처럼 중요한 개념들이 들어 있기 때문에 후대인 들에 의하여 새롭게 해석되고 덧붙여진 내용이 많다.
M. Noth. 11,26~28.40; 12,1~19 을 한 텍스트로 봄 – 학계에선 납득이 가지 않음.
Hentschel. 12,1~16 로 일단 끝남 – 기본 텍스트. 후에 오래된 전승을 지닌 18절이 붙고 그후에 19절이 붙음 – 여러 과정을 거쳐 722년 북왕국 망하기 전까지 완성됨. 특히 19절은 남국가의 정치적인 시각이 들어 있다. 그러나 북국가가 있음을 전재로 한다. 18절은 모반의 특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아도람을 죽인 것이 드러낸다. 결국 16절까지는 -북쪽의 관점이 지배적이어서- 이스라엘이 분열됨을 이야기하고, 그 원인을 남쪽의 어리석은 왕 르호보암의 잘못을 들고 나오고, 19절에선 이스라엘의 분열이 모반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18절에서 보듯이 아도람을 죽인 것을 들고 있다.
15절은 신명기 역사학자가 삽입한 것이다.2) 이는 신명기의 예언자적인 요소를 신명기 역사 학자들이 삽입한 것이다. 즉 이는 11장 29 -39 부분이 어떻게 현실화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예곳이다.
2. 3a. 17절은 전체적인 이야기를 방해하고 있는 데 그 이유는 2열왕 10장의 이야기에서 영향을 받아 이곳에 삽입된 것이다.
12절은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방해되는 요소이다.
Würthwein; 여기엔 이야기와 사건의 일기가 겹쳐진 것이다. 즉 실록과 이야기의 두 요소가 들어 있다.
12,2. 20a. 32 : 짧고 역대(연대기)를 가리킨다. 후대에 붙은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이루는 것이다. 70인역에 2절이 1절 보다 앞에 있다.
12,1. 3b~19가 기본적인 텍스트이다. 다윗계승사와 유사하다. 북쪽의 이야기이다. 르호보암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15,19 은 후대에 붙었다. 신명기 역사가가 삽입
21~24 역대기에 나오는 요소가 가미되었다(2역대 10장).
26~30 예루살렘의 시각이 들어 있다. 19절과 유사하다. 19절은 722년 이전에 예로보암의 잘못으로 분리되었음을 이야기하나, 여기에서는 경신례적 차원에서 북국가가 분리해 나간 것임을 이야기해 준다. 신명기 역사학자의 요소가 많이 들어 있다.
32절 이하 : 더 후대의 것. 경신례의 요소도 더 연장시킴. 문체도 규칙적인 요소가 많다.
M. Rehm;
① 3b-16, 18-20 이 이 이야기의 기본 텍스트이다. 그 이유는 이 이야기의 목적이 여로보암의 등극에 있기 때문에, 이 이야기의 결론이 나오는 18-20절까지가 기본 텍스트라는 주장이다.
② 3a. 17은 방해 요소이다. 그리스 역에는 없다. 본문 비판에 있어서도 의심스러운 요소가 있다. 12절 역시 의심의 여지가 있다.
20절 여로보암의 등극 이야기. 이 기본 텍스트 형성지가 북쪽이라는 데에 대하여 Rehm은 의심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현대 학계에선 북쪽 작품으로 보고 있다.
21~24 전쟁 예방에 관한 이야기. 신명기 역사 학자의 작품으로 보지 않고 있다. 이유는 20절과 22절 이하의 내용이 서로 어긋난다.
19절까지 722년 이전에 쓰인 것으로 봄.
32절 : 신명기적인 요소가 있다. 왕정 후대에 덧붙은 것이다.
15. 20b. 30절은 신명기 역사학자의 판단이다.
결 론
첫째, 여로 -르호보암의 이야기는 근본적으로 왕정분열시 부터 있었다.
둘째, 이 이야기는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했기에 여러 번의 신학적인 해석이 덧붙여졌다. 이는 각 시대마다 새롭게 선포할 가치가 있었음을 알려준다. 왕국과 경신례 차원의 분열 이유 그리고 분열이 있었음에도 폭력적인 전쟁이 없었던 이유에 대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폭력이 없었던 이유는 왕과 백성 사이의 제휴와 이를 신학적으로 발전시켜 하느님의 사람이 이를 막았기 때문이다(21절).
12, 1-4
1절; 세겜은 가나안 시대부터 성소였다(창세 34장). 성조 시대부터 중요한 성소가 있는 곳. 판관기 9장에선 아비멜렉이 자신의 왕정을 펴려 하였다. 25절엔 북쪽 국가의 수도가 된다.
“임금으로 삼으려고”는 관용적인 표현으로 이미 언급하였다.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민주국가의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를 그들이 주장하는 근거는 이 표현 즉 “삼으려고”라는 것 때문이다. 즉 이 표현은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여기에선 왕이 될 수 있는 필요조건 즉 자격이나 능력을 지닌다는 것과 이 왕권의 행사에 있어서 백성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충분 조건이 있어야 한다고 보는 견해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북쪽 국가에서도 왕의 세습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표현이 완전히 주권이 백성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적이라거나 세습적이기만은 아니다. 이 두 요소의 결합으로 이루어 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 이유는 구약계에서 주권이 백성으로부터 나온다는 관용구나 상용구가 아직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점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2절; 2절에 앞서 여로보암에 대한 이야기를 알아보자. 그는 셀레다(북쪽의 대표적인 부족) 출신이다. 그에 대한 소개는 11,16~39 까지 나온다. 17절엔 그가 솔로몬을 거슬러 일어나는 이유가 나오기 시작한다. 그는 능력 있는 사람으로 솔로몬도 그를 신하로 삼아 일을 맡긴다. 그 뒤는 신명기 예언자적인 요소가 나온다. 아히야가 옷을 찢어 열두개로 만든 후 열두 지파를 다스릴 것이라고 하였다. 능력이 있고 사람들이 잘 따르기에 신명기 예언자들이 그를 지도자로 정당화 시켜 주었다. 이에 솔로몬이 그를 죽이려 하자 그는 미쓰라임에 가 숨는다.
그의 이야기를 이곳에 배치한 집성자들의 의도는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의 내용을 비교하여 제시함으로서 왕국 분열의 이야기를 해 나가려 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2절에서 20절로 이어진다. 사람들은 그가 돌아온 것을 알고 그를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 다시 이 이야기는 25절로 이어져 여로보암이 세겜과 브누엘을 건설한다.
Würthwein의 견해에 의하면
25절 브누엘(야곱강의 상류)을 세움 – 북쪽국가를 세우고 동쪽에 진지를 마련하기 위해 브누엘이 건설함. cf) 2사무 17,21이하 – 압살롬이 피난한 곳이기도 함.
2~3a : 일반적으로 후대에 삽입된 것으로 본다. 그것은 20절에 이미 여로보암이 북쪽왕국을 지배해, 지도자가 된 것처럼 나오기 때문이다.
Würthwein은 2, 3a, 20, 25절을 여로보암의 실록으로 본다.
4b 무거운 멍에
4,7~9과 5,27 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어떤 일을 하였는가가 나타난다.
이런 것들은 모두 과거의 왕정제도를 도입하면서 생긴 것들이다. 이런 것들은 후에 1사무 8장에서 처럼 신명기 역사학자가 왕정전체를 비판하는 맥락(바탕)과 동일하다. 1사무 5장에서는 다윗이 왕이 되는 것을 백성이 추대하는데 이런 면에서 자업자득이기도 하다. 백성이 잘못 판단하여(왕정을 도입하여) 다른 나라와 같은 꼴(무거운 멍에)이 되었다.
국가 이전의 이스라엘 사회는 평등사회였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왜 평등사회가 국가라는 것에 지배를 받게 되었는가? 국가를 형성한 결과 얻은 것이 무엇인가? 하나의 제도로서의 공동체가 유일한 것인가? 이스라엘 백성이 다윗에게 자기들의 왕이 되어달라고 했다가 이제와서 해체작업을 한다. 요즘 철학자들의 해체작업의 원형을 볼 수 있다.
* 보스니아 문제가 우리나라에서는 심각하게 다루어지지 않고 있는데 남의 나라 문제이기 때문일까? 민족을 말살하는 상황하에서 서방 여러나라는 방관만 하고 있다. 이런 일을 볼 때, 결국 세상은 힘으로만 이루어지며, 국가·민족·형제가 아니라 오직 자기이익만을 추구할 뿐이며, 교황·주교·그리스도교들도 무용지물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약한 이는 결국 설자리가 없음을 느끼게 된다. 민족이나 국가가 평화적 공존의 틀을 마련하지 못하는 것이다. 4절에서처럼 백성이 왕을 위해 멍에를 메고 힘든 일을 하지만, 그렇다고 왕이 백서을 보호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
5~7절 : 5그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떠나가서 사흗날까지 있다가 내게로 돌아오너라」하므로, 그 백성이 떠나가니라. 6이 임금 르호보암은 자기 아버지 솔로몬이 아직 살아 있을 때 그이의 앞에서 모셨던 그 장로들과 의논하며 이르기를 「그대들의 공논으로는 이 백성에게 대답할 바를 어떻게 권하겠느뇨」하니, 7그이에게 저들이 대답하여 아뢰기를 「당신이 만일 오늘 이 백성에게 종이 되어 그들을 섬기고, 그들의 청을 들어주어 그들에게 좋은 말로 대답하면, 그들이 늘 당신께 종들이 되리다」하니라.
장로 ꕵꙏꖆ(zaken) םיꗼꙏꖍ(zekenim) – (제도적 차원) 선대왕들이 지배할 때 같이 참여했던 이들.
종 דꔫ꘡ – 이사야 52,13에서 ‘야훼의 종’이라는 표현에서 똑같은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 단어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신학적·기술적 용어로서, 단순한 노예상태가 아니라 종속적이면서 주인이 아랫 사람을 보호해주는 계약적 차원이다.
왕이 백성에게 종이 되라는 장로들의 의견은 장로들이 그만큼 회개했다거나, 그들이 지닌 국가관이라기 보다는 지혜문학적 요소라고 보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야휘스트가 오래되었다고 하지만 다윗의 계승사도 그만큼 오래된 것이며, 솔로몬 시대에 에집트로부터 들어온 지혜문학도 그만큼 오래되었다.3)
지혜문학은 그 당시 공직자들, 왕계승자들이 행정을 위한 기술로 전개되었다고 본다. 지혜문학의 본 의도도 사는 문제에 있어서, 잘 살고 성공하는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여기에 신학적 요소가 가미되면서 창조와 연결되어, 지혜는 창조때부터 하느님이 숨겨주신 것으로 계속 발굴해내야 하는 것이며 후에 행정적 기술의 차원을 뛰어넘게 되었다.
8~11절 : 8그러나 그이는 그 장로들이 공논하여 그이에게 권한 그 의견을 저버리고, 자기와 함께 자라났고 지금 자기 앞에 모시고 선 그 소년들의 의견을 물으며, 9그들에게 이르기를「너희 공논으로는, 내게『당신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지워 준 이 종질의 멍에를 가볍게하여 주소서』하며 이야기 한 이 백성에게 우리가 무슨 대답을 하기를 권하느뇨」하였더니, 10그이와 같이 자라난 그 소년들이 그이에게 대답하여 오뢰기를「당신께『당신 아버지는 우리의 종질 멍에를 무겁게 만드셨으나 당신은 우리의 종질의 멍에를 가볍게 만들어 주소서』하고 말한 이 백성에게 이렇게 말씀하소서, 저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소서『나의 새씨손가락이 나의 아버지의 허리보다 더 굵으니라. 11그러므로 나의 아버지는 너희에게 무거운 종질 멍에를 지웠으나, 나는 너의 종질 멍에를 더 보태겠노라. 나의 아버지는 너희를 채찍들로 벌하였으나, 나는 너희를 쇠끝 달린 채찍으로 벌하겠노라』고」 하니라.
소년 דלי םיꕉꗚꖾ(yeladim) – 경험이 없는, 미숙한
솔로몬시대부터 지배자로 군림하는 것이 정착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솔로몬시대의 건물·제도·여럿의 부인들 이 모두가 주변국가에는 영광을 드러낸 것 같지만 내부적으로는 장로들이 생각하는 백성들을 섬기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외적인 영광과 내적인 의식은 결코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외국유학을 다녀왔다고 해서 깨닫는가? 진리를 터득하는 것과 외국가서 공부하고, 여행하는 것과는 다르다.
지혜문학적 요소를 배제하는(저버리는)것은 외적으로는 솔로몬을 계승하지만 내적으로는 백성과 단절하는 것이다. 옛날에는 ‘왕’이란 ‘목자’라는 개념이 있었는데, 목자의 개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백성을 섬긴다는 것이 지혜문학, 메소포타미아, 에집트 등에서 왕의 목자라는 개념에 벗어나는 것이다.
왕과 백성과의 내적분열 뿐아니라 경험있는 사람(원로)들과 경험없는 사람(소년)들과의 내적분열로 일어난 것이다. 르호보암은 고통을 더주어야 왕국의 체제가 유지된다고 보았는데, 바로 이것이 지혜롭지 못한 것이고 원로들과 차이가 있는 것이다.
12-16절 : 12「사흗날에 내게로 돌아오라」고 임금이 말한바와 같이, 여로보암과 온 백성이 르호보암에게 오니, 13임금이 그 백성에게 엄하게 대답하며, 저 장로들이 그이에게 권한 의견을 저버리고, 14그 소년들의 의견과 같이 저들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나의 아버지가 너희의 종질 멍에를 무겁게 만들었으나 나는 너희 종질 멍에를 더 보태겠으며, 나의 아버지가 너희를 채찍들로 벌하였으나, 나는 너희를 쇠끝 붙은 채찍들로 벌하겠노라」하니라. 15이렇게 임금은 그 백성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으니, 이는 이것이 야훼께서 이미 쉴로 사람 아히야를 시켜 너바트의 아들 여르벙암에게 약속하신 당신의 말씀을 세우기 위하여 야훼께서 섭리하신 계기였음이니라. 16왕이 자기들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음을 온 이스라엘이 보자, 그 백성이 임금에게 말대답하여 이르기를
「다윗한테 무슨 몫이 우리에게 있느뇨.
그러니 이샤이 아들한테서는 유산이 없도다.
이스라엘이여, 너의 천막들로 돌아들가라.
다윗여, 너의 집안이나 돌보아라」하고, 이스라엘이 자기 천막으로 떠나가니,
16절
왕국이 깨짐을 병행구로 보임- 지혜문학적 요소인데, 이는 다윗의 아버지(이새)까지 소급해서 원초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천막시대(왕정이전)까지 소급해서 원초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천막은 당시의 주거와는 관계가 없고 회담이 결렬되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15절
르호보암이 장로들의 이야기를 들었으면 되었는데, 그렇지 하지 않았다. 신명기계 역사학자는 하느님이 이것을 이렇게 이끌도록 역사하셨다라고 이해하도록 만들고 있다.
신명기계 역사학자는 1사무 9~11장에서 사울의 재능, 자질을 인정하고, 결국 신학적으로 왕이 될 수 있었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또한 1열왕 11장에서도 여로보암이 능력이 있고 그 것은 백성을 다스릴만한 능력이고 이는 예언자를 통해 하느님이 지배자로 만드셨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를 통해 누구든지 힘을 쥐게되면 그것이 ‘하늘로부터 온 것이다’라고 정당화하는 근거를 여기서 볼 수 있다. 또한 권력을 잡으면 자신의 권력을 갖은 수단을 다해 신학화·정당화하며, 백성에게 이념으로 먹혀들어가게 한다. 아히야가 여로보암에게 열 개의 지파를 다스리도록 옷을 잘라준 것은 르호보암이 솔로몬에게 권력을 받았지만 결국은 반대·저항·패망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권력을 잡고 이념화하는 것은 권력을 계속 유지해 나갈 수 있겠지만 내려온 것을 반대하는 패망의 길임을 보여준다. 르호보암은 정당성을 인정받지만 이것 또한 신명기계 역사학자에 의해서 보면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의 정통성을 배반한 것이다.
결국, 신명기계 역사학자는 하느님이 이끌어 간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솔로몬이 왕으로 인정받으나 평가절하되고, 르호보암도 왕으로 인정되나 그 역시 평가절하되고, 여로보암마저도 후에 평가절하됨을 통해 모든 것은 하느님이 이끌어가신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17-19절 : 17유다 읍들안에 살던 이스라엘 후손들은 르호보암이 그들을 다스리니라. 18임금 르호보암이 부역을 주관하던 아도람을 보내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릉 돌로 치매, 그가 죽고, 임금 르호보암은 예루살렘으로 도망하려고 수레를 타기를 서두르니라, 19이렇게 이스라엘이 다윗 왕조를 모반하여 이 오늘에 이르느니라.
17절은 아주 후대에 붙은 것이다.
18절의 아도람은 2사무 20,24에서 처럼 정치적 모반, 저항을 나타낸 것이고 19절에서 다시 한번 후대의 해석이 붙는다.
2절에서 여로보암을 소개하고 20절로 넘어간다. 애초의 이야기는 르호보암과 백성사이의 얘기·대결이었다. 이것이 요점이다. 여로보암과는 상관이 없다. 주인공은 둘이다. 하나는 르호보암(솔로몬을 이어받은 지배자)이고 다른 하나는 백성(다윗과 솔로몬시대부터 늘 왕을 섬겨 온 피지배자)이다. 여기서의 관심은 이 둘의 ‘충돌’이다. 백성과 왕의 대립은 이미 前代에서부터 있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이스라엘이 르호보암에게 요구함에 있어서 조상에게서부터 받은 무거운 짐을 덜어달라는 것이었다.
충돌의 원인은 ‘억압(지배자의 억압)’이다. 이 충돌은 백성과 왕이 공존할 수 없다는 제도의 멸망을 뜻한다. 이 근본적 이야기가 신명기계 역사학자에게는 매력있는 주제였다. 왜냐하면 신명기계 역사학자는 왕정을 실패한 역사로 보기 때문이다. 다윗시대의 구테타와 솔로몬시대의 부귀가 2代 이후에 르호보암때에 와서 백성들로부터 저항을 받게 됨으로써 신명기계 역사학자는 왕정이 억압의 제도였음을 나타내기 위해서 이 이야기를 사용하게 된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국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게 할 방법은 신명 17장의 왕의 권리를 억제하는, 왕이 백성을 섬기는 요소를 받아들이는 것인데 결국 그렇게 하지 못해서 충돌이 생긴 것이다.
20절 : 온 이스라엘이 여로보암이 돌아온 소식을 듣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모임에 불러다가, 온 이스라엘 위에 그를 임금으로 삼으니, 다윗의 왕조를 따른 것은 유다 지파 그 하나밖에 없더라.
이것은 거두절미하고 역사적 사실의 해설로 보기에는 불완전하다. 오직 집성자의 관점에서만이 이해될 뿐이다. 16절에서 다들 자기 천막으로 같기때문에 다시 모일 가능성은 없다고 보았다.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기술했다기 보다는, 역사적 사실(여로보암이 추대되었다는)은 있으나 문헌적으로는 르호보암을 반대한다는 의미가 강하다.4)
백성이 여로보암을 왕으로 추대하는 근거는 11장이다.5) 그러나 실제로 백성이 아히야 예언자가 그를 인정했다는 사실을 알았을까? 오히려 이것은 백성들이 이미 여로보암을 받아들인 이후 신명기계 역사학자가 신학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26절이하는 종교분쟁에 관한 이야기이다. 왕권탈취후 종교적 이념으로 무장하는 것이다. 신명기계 역사학자의 해석 이전에 여로보암은 일을 잘 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있었고 이것을 백성이 알았고 이 때문에 백성이 그를 인정했다. 이것이 여로보암의 역사적 사실이다.
이것을 통해서 볼때, 지배자 또는 모든 이의 권위(Auctoritas)는 밑으로부터 나온다. 솔로몬이 찬탈을 통해 왕권을 얻었으나 밑으로부터 능력이 있는 사람을 막았기에 그의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백성은 능력에 따라서 인정을 하게 된다. 솔로몬이 권위를 지니려면 백성들에 의해 인정받던 여로보암의 능력을 키워주었어야 했다. 그러나 솔로몬은 아히야 예언자의 소리를 듣자 여로보암을 박해했다. 결국 솔로몬은 아히야 예언자를 통한 하느님의 역사·정당성을 부정하는 짓을 한 것이다. 백성으로부터 온 여로보암의 능력을 무시했을 때부터 신학적으로 하느님의 뜻을 부정하는 것이다. 르호보암도 솔로몬과 똑같은 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