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의 어원과 의미

 

예언자의 어원과 의미




고대의 희랍어에서 사용된 예언이라는 단어는 정상적인 상태에서 이성적인 방법으로 신탁을 주는 것과 관련된다. 또한 여기서 사용된 예언이라는 단어는 황홀경 내지는 무아지경 상태에서 신탁을 남에게 전하는 것과도 관련지을 수 있다. 예를 들면 델피에 있는 옛 성전의 제우스신의 신봉자들은 예언자로 불리우는 성전 참모로부터 크고 작건 간에 어떤 문제에 대해서 자문을 얻었다. 이 예언자를 지칭하는 단어가 두 가지 있다.


προφητηs는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말하는 사람, 주로 신을 대신하여 메시지를 선포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μαντιs는 동사 μαντεω에서 나온 것으로 부드럽게 말하는 사람, 점술가,선견자, 예언자들로 번역할 수 있다. 이 만티스라는 인물은 주로 황홀경에 빠져서 신탁을 전하는 사람과 관련시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옛날 이스라엘에 있어서 예언은 이미 언급한대로 탈혼 상태, 황홀경 상태에 빠져있는 그룹과도 연관되어 나타난다. 성서에 의하면 사무엘 시대에 와서 가나안 사람들의 예언자 길드처럼 어떤 예언자들은 무리를 지어 성서를 중심으로 해서 살았다는 기록이 나온다(1열왕 18,20-40; 신명기 18,9-14). 특히 신명기 18,9-14은 부정적인 예언현상이 다양하게 묘사되고 있다. 예를 들어 마술과 점장이, 술객등이 나타나는데 이 부정적인 내용에서 긍정적인 내용도 끌어 낼 수 있고 이 부정적인 현상 안에서 이렇게 떼를 지어 황홀경 상태에서 전하는 사람이 있었음을 지적할 수 있다.


이처럼 히브리 성서에서 예언자가 비록 황홀경 상태, 또는 점치는 것과 그러한 행동을 취하는 사람과도 연결되고 또한 그들이 예언자 길드나 수련소 등에 소속되어 공동체를 형성하여 사는 점등이 근동지방에 나타나는 또는 희랍에 나타나는 그러한 현상과 유사하다 하더라도 성서의 정경 예언자들은 실신상태에 빠진 가나안의 직업 예언자들 무리와는 엄격히 구별되었다. 사실 탈혼이라는 현상은 동시대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받던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B.C 3 세기에 번역된 70인역이라든가 그 밖에 문헌 등에서 μαντις라는 단어 대신에 προφητης를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스라엘 예언자들과 가나안 지방의 예언자들과 근본적으로 다른점은 하느님과 맺은 계약상의 약속과 요구를 해설한 야훼의 대변자였다는 이스라엘 예언자의 identity였다.




예언자를 지칭하는 히브리어로는 איבꗺ(나비), הꖁꕜ(호제흐), הꔟꙡ(로에흐), מיꕙיꗟꔥ שׁיאּ(이쉬 엘로힘) 등의 단어가 있다.


①איבꗺ(나비)는 그리스어 προφητης에 가장 가까운 표현 중의 하나이다. 하느님의 뜻을 전달하는 사람,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어 번역과 가깝다고 볼 수 있겠다.


②הꖁꕜ(호제흐)는 주로 듣는다는 것에 가까운 그러한 청각적인 의미에서 나온 명사형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 영어에서는 visionary로 번역하고 있다.


③הꔟꙡ(로에흐)는 ‘보다’ 동사에서 나온 것인데, seer, 선견자, 선각자 이러한 의미로 번역할 수 있다.


④מיꕙיꗟꔥ שׁיאּ(이쉬 엘로힘)은 글자 그대로 하느님의 사람이란 뜻이다.




그 중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은 히브리어 동사 אꔧꗺ(나바: 영감을 받다, 예언하다라는 뜻)에서 나온 איבꗺ(나비)가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 אꔧꗺ(나바)동사가 닢알형일 경우 예언적 설계 형태에 많이 등장한다. 힏파엘형일 경우 환상적 행동에 주로 적용된다. 그러나 이 둘이 엄격하게 구별되는 것은 아니다. 두 형태가 서로 교차되어 사용되기 때문에 닢알형만이 예언적 설계의 원형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성급한 경향이 있다.


이 איבꗺ(나비)라는 단어는 논쟁의 여지가 아직은 있지만 많은 학자들이 아카디아어의 nabi’um(나비움)에서 나왔다고 한다. 나비움은 아카디아어의 nabu(나부: 선언하다, 부르다)에서 유래하는 명사형이다. 그러나 능동적인 의미에서 부르는 사람, 선포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수동적인 의미에서 부름을 받은 사람인지 분명치가 않다. 어느 경우든 이 단어는 하느님의 사자로서의 예언자 역할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J.Blenkinsopp은 수동태로 사용된 것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불리움을 받은 사람이란 의미로 이해했다. 하느님을 대신해서 말하기 위해서 불리움을 받았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이 단어는 포괄적인 용어로써 정경예언자 자신들도 자신들에 대해서 איבꗺ(나비)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사무엘시대에 와서 이 단어는 이스라엘사회에서 특수한 계층의 사람, 예를들면, 성전이나 법정에서 전문적으로 종사하는 사람들을 지시하게 되었다. (점성가라든가 그러한 선견자라든가 미아리 고개에 그런 것이 있듯이 마찬가지로 좋은 의미에서 성전주변에 그러한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연결시킬 수 있었을지 모른다. 여하튼 이러한 계통의 사람이나 성전이나 법정에서 전문적으로 종사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의미에서 איבꗺ(나비)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이 단어의 의미는 예언직의 중요함을 상징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에 어원적으로 이 예언자에 대한 의미를 찾기보다는 context안에서 과연 איבꗺ(나비)라는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context들은 그들이 지닌 고유한 장르에 따라서 그리고 그들이 처한 삶의 자리에 따라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성서 예언자는 미래를 내다본다는 의미에서의 예언자(foreteller)가 아니라 위탁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의미에서, 맡겨진 말씀을 전파하도록 영감을 주는 그 말씀을 받아 전한다는 의미에서 예언자이다. 물론 예언자들은 드물게 미래에 대해서 말하기도 했다. 또한 이러한 예고는 맞을 수도 있었고 틀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예고한 이러한 미래는 먼, 아주 까마득하게 후에 일어나는 그러한 미래가 아니라, 이미 현재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 즉, 가까운 미래에 대한 것들이었다. 그러므로 성서적 의미의 예언자는 막스 베버가 이야기하듯이 카리스마를 지닌 종교적 인간으로써 그는 사람들 앞에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하는 사람,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재자로 묘사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예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듯이 이 성서의 예언을 두고 예언자들이 하느님의 뜻을 꿰뚫어 보고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고하는 것처럼 그렇게 점친다는, 미래의 일을 내다본다는 측면에서만 이해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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