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의 전기 설화와 자서전적인 설화
예언자의 전승에는 예언자와 예언과 관련된 saying(토막말)의 수집뿐만 아니라 예언자에 대한 전기 또는 자서전식으로 되어 있는 단편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신명기계 역사서의 저자는 널리 유포되어 있던 선견자, 또는 탈혼자들의 민간 전승을 설화로 기록하였다. 소위 말하는 엘리야 전승, 엘리사 예언자에 관한 것이 그러하다(엘리야에 관계되는 것은 1열왕 17-19장 그리고 21장에 수록되어 있고 엘리사에 관계되는 것은 2열왕 2-9장 13,14-21에 수록되어 있다). 이것은 광범위한 성인전 설화체에서 발췌된 것으로 사려되고 있다. (‘hagiographical narrative’의 hagio는 희랍어의 거룩하다는 뜻이다. hagiographical narrative는 성인전 설화체라고 번역할 수 있을텐데 그 당시 널리 추앙을 받는 사람들의 전기를 기록하는 것을 이 hagiographical narrative 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BC 8세기 초엽 앗시리아 군대의 침입으로 남, 북 이스라엘이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러한 위기에 직면한 그 당시의 공동체는 예언자의 인품이나 됨됨이보다는 그의 메시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전기에 대한 것도 관심이 있었지만 이제 전기가 아니라 메시지에 보다 큰 관심을 표명하게 된다. 이러한 이유에서 예언자의 이야기가 수록된 전기 saying의 수집들, 전기 토막말 내지는 언사의 수집보다 신탁수집에 더 큰 관심을 모으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신탁 수집 안에 예언자의 전기적 요소는 이제 부차적인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그 예로 아모스의 경우, 아모스는 베텔 성소의 사제 아마지야와 자신을 비교하는 부분에서 자신의 이력, 자신의 전기를 소개하고 있다(아모 7.10-17). 이것은 하나의 긴 전기설화에서 발췌하였다는 인상을 주게 된다.
이와 비슷한 상황은 BC 734년 이스라엘의 위기에서도 볼 수있다. 이사 7.1-17에 나오는데 시로-에프라임 전쟁이라고 이야기한다. BC 734년 시리아와 북조 이스라엘이 앗시리아를 반대해서 인접한 도시국가들을 선동하여 하나의 동맹을 맺는다. 반 앗시리아 동맹, 여기에 유다왕 아하즈도 가합할 것을 촉구한다. 그러나 유다왕 아하즈는 이 시리아와 이스라엘에 대해서 반기를 들고 오히려 앗시리아와 손을 잡는다. 그래서 이것이 결국은 이스라엘의 멸망에 어느정도 직, 간접적인 영향을 주게되는데 바로 이 시로-에프라임 전쟁은 아하즈가 시리아와 이스라엘과 손을 잡은 것이 아니라 아시리아와 결탁해서 전쟁이 일어난 것을 말한다.
이 시로-에프라임 전쟁 중에 이사야의 개입을 전하는 이 text는 3인칭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나는 무엇을 보았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사야가 어떻게 어떻게 해가지고 아하즈를 만나 무엇을 전하였다’는 식으로 해서 3인칭으로 전하고 있다. 그래서 사건 보도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사야에 대한 전기 수집은 역사로부터 발췌한 설화군, 즉 이사 36-39장이 여기에서 첨가되고 보충되었다. 또한 이사야서 36-39장은 2열왕 18-20장과 비교해서 살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다 멸망 수십년전 예언자의 개인적 역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게 된다. 다시 이제 예언자에 대한 개인적 역사를 관심있게 바라본다. 그 예로써 예레미야는 아모스나 호세아와는 달리 전기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예레미야서는 이전의 다른 예언자의 예언서들과는 달리 상당히 긴 전기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책의 제목(예레 1,1-3)과 함께 언사들과 수집들을 연대적으로 나열한 흔적이 발견된다. 또한 연대뿐만 아니라 장소에 따라 배치하려고 한 흔적도 발견된다(3,6; 21,1; 22,11; 24,1; 34,1.8-11 참조).
여하튼, 이전에 있었던 예언서들과는 달리 예레미야 예언서는 예언자의 전기와 생애에 상당히 긴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26-29,32과 특히 37-44장에는 예루살렘 멸망 직전과 직후 사건 안에서 그의 역할에 대한 이례적인 보도가 나타나고 있다. 이 긴 전기의 저자가 누구이든지간에(학자들은 아마 그의 서기였던 바룩이 아닌가 이렇게 보고있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신명기 학파에 의해서 유배기간 중에 편집되었음이 학자들 사이에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전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예레미야서는 모세의 전통을 계승하고 그의 방식을 따르는 예언자(신명 18,15-19) 그리고 모세에게서 시작된 예언자단의 마지막 예언자로 예레미야를 제시하려는 의도에서 편집되고 손질된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이러한 의도는 소명사화에도 나타나는데(예레 1,4-10) 이를 모세의 소명사화(출애 3,1-4,17)와 비교해서 연구해 볼 수 있다. 아직 확신하기에는 이르지만 모세가 광야에서 40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의 예언자로 활동하였듯이 예레미야도 유다 백성의 예언자로 40년 동안 봉사하였음을 암시하는 것 같다. 예레 1,2-3에서 그러한 면들을 추적할 수 있는데 BC 627-586까지 약 40년 즉, 광야에서 활동한 모세의 활동이 40년이듯이 바로 예레미야의 활동도 40년으로 연결시키려는 암시를 보는 것 같다.
신명기 학파는 예언자의 참 모습을 모세에게서 찾고 있었으며 또한 예언자의 파견은 심한 반대에 부딪히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하느님으로부터 위로를 받는다는 사실을 심도있게 서술하였다. 그러므로 신명기 역사가가 예레미야서의 마지막 장(52장)을 2열왕 24,18-25,30과 같은 내용으로 마감한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신명기 역사가는 자신의 역사를 모세로부터 시작해서 유배로 마감하였다. 마찬가지로 예레미야 예언서도 유배로 마감되고 있다. 신명기 역사가의 손질을 엿보게 되는 하나의 증거일 것이다.
예레미야의 소명과 파견의 경우처럼 잉태되는 순간부터 원수들에 의해서, 또는 적에 의해서 반대와 박해를 받지만 하느님께서 그를 변호해 주시고 옹호해 주신다는 그러한 도식적인 형태는 다른 여러 곳에서도 발견된다. 특히 이것은 제2이사야서의 종의 노래 즉, 야훼의 종에 관한 시라고 지칭되고 있는 야훼의 종의 노래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첫째 종의 노래: 42,1-7 둘째 종의 노래: 49,1-6 세째 종의 노래: 50,4-11 넷째 종의 노래: 52,13-53,12) 여기서 야훼의 종으로 지칭되는 인물이 어느 구체적 인물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 종은 특별한 사명과 파견을 위해서 선택된 중개자로, 동시에 실패와 반발, 박해를 겪어야만하는 중개자로 묘사되고 있다.
이 종이 누구냐, 이 종에 대한 신원문제 이것은 학계에서 끊임없이 거론되고 있다. 종의 개인적인 성격이 있는가 하면 단체적, 집단적인(collective) 성격도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 물론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물 안에서 이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믿고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그리스도를 믿고 있지 않는 유대교도들의 시각은 여러가지 면에서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예레미야로 보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모세로 보는 사람도 있고, 엘리야로 보는 사람도 있고, 그 다음에는 해방신학적인 입장에서 볼 적에는 2차대전 때 가스실에서 죽어간 그 유대민족 전체를 보는 사람도 있고, 또 역사상에 나타난 유대민족과 연결시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고통당하는 모든 사람과 연계시켜 가지고 이해하려는 그러한 유태계 학자들도 있다.
여하튼간에 이 종의 모습이 어떤 모습으로 발견되든간에 이 종의 처지는 죽은 후에야 변호되고, 또한 죽은 후에야 이 종의 모습이 옹호된다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 종의 익명의 모습에 야훼의 종이라는 호칭이 붙은 것은 일반적으로 예언적 중재 기능에 있어서 종이라는 호칭을 부여하는 신명기계 학파의 상습적인 어투라고 볼 수 있겠다. 야훼의 종, 이것은 바로 신명기 학파가 너무나도 자주 사용한 예언자를 지칭하는 말이다(그 예로써 2열왕 9,7; 17,13.23; 21,.10). 특히 모세에게 종이라는 칭호를 부여한 경우를 민수 12,7-8; 신명 34,5을 통해서 볼 수 있다. 중재라는 의미에서 모세를 종이라고 부르고 있다.
정리하면, 예언자의 전기, 자서전은 처음에는 엘리야, 엘리사 때 부각되었고 BC 8세기 격동기에는 메시지에 관심이 있다가 다시 이제 예언자들의 전기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표명된다. 예언자의 역할, 기능과 함께 전기 설화에 대한 커다란 관심이 표명되는데, 예언은 아직도 단순히 하느님을 대신하여 말하도록 위임받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나, 이 부르심은 이제 개인의 삶 전체를 포함하는 것이 된다. 메시지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삶과 그 사람의 체험 이 모든 것이 하나의 메시지하고 직결된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러한 유형의 예언자의 전기는 희랍, 로마시대에도 발전하였다. 특히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모습 안에서도 잘 묘사되어 나타나고 있는데, 예를 들면 루까 복음에 나타난 시메온과 안나의 이야기를 연결시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