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
그런가 하면 2장에서는 안전한 미래에 대한 전망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묘사는 미래에 대한 세가지 전망을 묘사하고 있다.
첫째, 선조들에 대한 약속에 대한 분명한 암시와 함께 백성이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불어날 것이라는 메시지가 있다.
둘째, 살아계신 하느님의 자녀들이라는 표현안에 로암미 즉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이름이 실려있다. 그런데 서신부님은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רשׁא מוקמב(그 곳에서,Which in the place) 머컴-영어의 In. 아셰르 -Which. 서인석 신부님은‘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들이라고 불리울 것이다.’라고 번역하고 있다. 바로 이것을 “그리고 그들이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다.라고 불리우던 그곳에서..”라고 번역하시며 주를 다시길 ‘그곳에서’를 ‘-을 대신해서’라고 번역할 수 없다고 하시는데 이기락 신부님은 이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그곳에서’는 실재적인 장소를 의미하는 가리키는 것을 사막을 의미한다. 서신부님의 말씀. 즉 살아계신 하느님의 자녀들이라는 표현안에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이름에 대한 묘사가 나오고 있는데 רשׁא מוקמב(bimequm asher, in the place which), 이것은 ‘…자리에’를 ‘…대신에’라고 번역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똑같다는 의미의 보다 적합한 표현일 것이다. 로 암미의 바로 그것 대신에 바로 하느님의 자녀들이다로 불리울 것이다인데 이것이 안된다고 서 신부는 말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 바로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표현대신에 ‘살아계신 하느님의 자녀들’이다라고 대치할 수 있다는 것이 이기락 신부의 견해이다.
셋째, 2,1-3 유일한 권위 아래 유다와 이스라엘의 재결합이 묘사되고 있다. 즉 북과 남의 통일, 이스라엘과 유다의 자손들의 재결합이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또 우리는 2절 전반부에 “유다의 자손들과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모여 한 나라를 우두머리로 받들며 이 나라를 덮어 버릴 것이다.”라는 표현을 볼 수 있다. 서신부는 ‘덮어 버릴 것이다’라는 부분을 히브리어로 직역하면 ‘그들은 그 나라에서 올라올 것이다.’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을 봄철땅에서 갑자기 돋아나 온 땅을 덮어버리는 풀에 비유했다. 이 표현은 유배간 이들의 귀향보다는 출애급사건을 연장시킨다라고 서신부는 주를 달았다. 공동번역에서는 2,2절 “유다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이 어울려 한 영도자를 받들고..” 이는 유일한 권위 아래 이스라엘과 유다인들의 재결합을 역시 묘사하고 있다. ‘세상을 지배하리라’ 여기는 지금 언급하고자 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나타나지는 않고 있다.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출애굽기에서 살펴본 내용인데
우 알루 민 하아래츠(צראה־ןמ ולעו)
직역을 하면 ‘그 땅에서 부터 나와 그들은 올라 올 것이다.’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해결책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많은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출애굽기 6장 10절에 나오는 내용을 살펴보았는데- 여기서 어떤 학자들은 이에 대해 ‘예루살렘을 향해 순례한다’라고 이해하려 한다. 이것은 유다와 이스라엘의 정치적인 재결합뿐만이 아니라 전례적인 재결합을 의미하고 따라서 종교적인 재결합도 표현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알라흐(הלy) 동사는 순례의 귀착점을 향해 올라간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1사무 10,3 이사 2,3 출애 34,24 참조.
‘거기에서 다시… 거기에서 그들은 하느님을 예배하기 위해 올라가는..’
‘자 올라가자 야훼의 성으로..’ 이런 측면에서 이런 주장의 학자들은 자신의 해석을 제안하게 된다.
두번째로 에레츠를 죽은 자들의 세계, 영역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상당히 모험적이다. M.Dahood 신부는 두가지 텍스트에서 출발해서 이러한 주장을 펼친다. 이러한 주장은 W.C.Holladay와 메디츠에 의해 계승된다. 그들이 제안하는 번역은 다음과 같다. ‘그들은 지하세계에서 부터 다시 살아날 것이다’. 이 주장은 앞의 정치적인 재결합을 의미하는 콘텍스트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B.Renard는 ‘디아스포라’로 이해하여 ‘디아스포라에서부터 올라오다’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 예로써 에즈라 1,3-5; 2,1; 7,6-7; 느헤미야 7,6; 12,1 등이 있다. “나는 그 하느님께서 너희 가운데 있는 당신의… 유다인들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디아스포라, 즉 유배지에서 올라가는 것으로 이해하여 손질된 과정에서 다른 구체적인 명시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텍스트는 땅의 풍요와 유배에 대한 주제를 연결시키려 한 것같다.
H.Wolff는 ‘그 나라에 적응하다’ 그 나라를 지배하다‘로 해석할 것을 제안한다. 출애굽기1,10이 그러한 예. ‘그 지방에서 나오다’, ‘그 지방을 점령하다, 소유하다’로 공동번역은 두리뭉실하게 번역. 에집트를 떠나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에집트인들도 에집트로부터 나오거나 에집트를 떠나 여행할 수도 있으므로 조금 애매하다. 또한 이스라엘의 상황을 고려해 볼때 과연 에집트를 정복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서 그럴 수 없었으리라 보기때문에 그 지방을 점령하다라는 표현은 적합지 않다고(지난 학기에) 말했었다. 또 알라흐(הלy) 동사를 ‘공격하다, 점령하다’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다른 전치사와 연결되어 사용되고 있으므로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여기서는 전통적인 해석에 입각해서 ‘그 지방에서 나오다’라고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출애굽기의 이 부분도 애매한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그들은 우리 땅을 떠나갈 것이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고 볼프는 밝히고 있다.
또한 이 텍스트는 식물이 성장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서 신부도 ’이 나라를 덮어버릴 것이다’라는 표현을 직역하면 ‘그들은 그 나라에서 올라올 것이다’가 된다고 말한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을 봄철 땅에서 갑자기 돋아나 온땅을 덮어버리는 풀에 비유하고 있는데 이 표현은 유배간 이들의 귀환보다는 출애굽을 연상시킨다라고 말한다. 바로 이것과 연결시켜 식물이 성장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별히 관심있는 부분은 신명기29,22 ‘야훼께서 화를 내시어…풀포기 하나 날 수 없게 뒤엎으신 것을 보고’. 따라서 백성이 야훼께 곡물(?)을 선사할 때 이방인의 눈에 비친 나라의 비참함을 강조하는 모세의 설교이다. 여기서 그 땅은 움트지 않다,성장하지 않다는 두 개념이 짝지어 나타난다.
호세2,2의 ‘그 땅에서부터 성장할 것이다’와 2,1의 ‘이스라엘 백성이 불어 셀 수도 없이 될 것이다’. 이것은 백성의 후손의 번식과 동시에 이방인들의 풍요, 다산에 대한 어떤 은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절의 후반부는 이즈르엘(לאערזי)이라는 단어를 다시 취한다. ‘하느님께서 흐트러뜨리신다’(לא-하느님께서 + ערזי-흐트러 뜨리신다)의 의미로 이해. 이것은 이사야 8,10의 “임마누엘”과 연결시켜 이해할 수 있다. 치로 에프라임 전쟁중에 있었던 아하즈와 이사야의 대화내용의 말미에 나오는 것이다. “아무리 모의를 해보아도 되지 않는일… 야훼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공동번역에는 나와 있다. 임승균 신부님은 (미출간 되었음) ‘계획을 논의해 보아라. 그러나 깨쳐 버리리라. 결심을 말해보아라. 그러나 성사되지 못하리라.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히브리어 ‘임마누(ונמy)’와 ‘엘(לא)’ 여기서는 동사가 없다. ‘임마누’라는 전치사와 ‘엘’이라는 대명사접미사가 붙어 명사적 구실을 한다. 공동번역과 임신부는 동사형태로 번역했다. 그런데 여기서 분명히 앞 부분 7,14;8,8에서는 임마누엘이라는 고유명사로 사용했다. 8,10에서는 그 고유명사의 뜻을 풀어주기 위해서 전치사와 함께 사용된 것이라 보여진다. 마찬가지로 이즈르엘이 1장에 이어서 2,2절 후반부에도 나오고 있는데 ‘이즈라’(yרזי) 이것은 ‘자라’(yרז)라는 ‘흐트러 뜨리다’의 Qal형 미완료 남성 단수 3인칭에서 연유했다. . 그래서 이 단어가 분명 여기서 암시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흐트러뜨리신다’는 것으로 이해한다. 고유명사로 이해하는 것으로 보기보다는 말이다. 그런가 하면 2,3에서는 갑자기 복수명령법이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수취인은 분명치 않다. 서신부는 ‘너희 형제들이 나의 백성이오라고 말하고 너희 자녀들에게 사랑스런 누이여라고 말하여라’라고 번역한다. 이 부분에서는 로암미와 로루하마에서 이제 암미와 르하마로 바뀔 것을 명령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복수명령법이 나온다는 것이다. 루퍼트는 2,1-3절을 두 단계로 나눌 것을 제안한다.
우선 2,1후반부와 2,2후반부. 이것은 유배이전을 언급하고 있지만 호세아의 것인지 밝혀내기 어렵다. 그러나 이 부분외의 것은 유다백성의 유배이후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근거들이 충분히 제시되지는 못하고 있다. 만약 이텍스트가 하나의 단일성을 이루고 있다면 제식적, 종교적인 것으로 소개된 이러한 문제제기는 유배이후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유배는 반드시 바빌론 유배만을 의미한다고 볼 수만은 없다. 이는 치로 에프라임 전쟁의 결과로 기원전 733년 니그랏 블레셋3세의 침략으로 인한 위기의 고조로 연결시켜 볼 수 있다. (치로 에프라임 전쟁은 시리아와 에프라임이 동맹을 맺어 앗시리아에 대항하게 되는데 이때 유다왕 아하즈에게 합세하기를 원했지만 아하즈는 반대하여 앗시리아에 도움을 청하게 되고 앗시리아는 시리아와 이스라엘을 혼내주고 유다를 도운 댓가로 유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된다.땅과 더 많은 조공요구 북조의 쑥대밭 남조의 피해) 이 세아이의 이름을 예언하는 다양한 다른 방법은 2,1-3이 단일단락이라고 생각되는 1,2b-9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하며 분명히 따로 살펴보아야 할 텍스트이다. 이 경우에 2,1-3까지의 저자는 누구인가라는 문제는 개방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호세아에게서 유래하지 않음을 주장하는 논고들은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 즉 호세아에게서 유래함을 배제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두 왕국의 재결합에 대한 염려는 다른 곳에서는 따로따로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에제키엘37,15-22;예레미아3,18을 참조할 수 있다. 에제키엘은 분명히 기원전 597년 제 1차 유배때 여호아킴과 함께 끌려갔던 예언자이다. 여기서는 분명히 유배시기에 쓰여진 것임을 알 수 있다. 결국 북쪽의 한 예언자의 메시지안에 비록 정상적이지는 않을지라도 긍정적인 논조로 유다가 언급되고 있다는 점은 거의 배제할 수가 없을 것이다.
2,2의 שׁאר(우두머리,왕초,족장)은 이스라엘 왕조가 완전히 사라짐을 암시한다. 즉 이는 왕(למ)이라는 칭호가 보이지 않으므로 왕조의 사람짐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그러나 다른 가능성도 있다.우두머리(שׁאר)라는 표현이 왕정시대에도 사용되었음을 지적할 수 있다.예를 들어 이사7,7에서는 왕를 우두머리로 표현하고 있다.그러나 이러한 표현은 예외적인 것이고 여기서는 유배시기라는 것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그러므로 우리는 호세아가 왕정제도를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봐야한다.
호세아서에 보면 ‘사막에서의 사랑의 속삭임’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는 하느님께 반항하면서도 하느님께 돌아가는 사막의 영성을 담고있다.이것 역시 왕정에 대한 부정적 사상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2,1-3의 주석을 위해 중요한 문제는 2,1-3과 1-2장의 관계를 규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여기서 2,18-25과의 관계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2,1에 אוהה מויב היהו란 표현이 2번 나오고 2,18-23에도 나타나고 있다.또한 ‘그날’이란 표현은 2,2에도 나오고 2,20에도 등장한다.또한 2,2에서 이즈르엘과 yרז와 관련된 언어유희가 2,24-25에서도 등장한다.그 다음에 ‘에레츠’라는 표현도 마찬가지이다.이것은 2,15.17과 2,22.20.23.24,25에 나타나며 활,칼,전쟁이란 표현이 2,20과 1,7에서 등장한다.
이렇게 반복되는 어휘,단어를 살펴보는 것을 공시적인 방법이라 한다.그리고 역사비편적 입장에서 텍스트의 구성시기,저자와 독자의 역사적 상황을 살펴보는 것을 통시적인 방법이라 한다.지금 우리는 이 part에서 통시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