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체험과 호세아의 중요 메시지>
1장부터 3장까지 개인적인 체험과 호세아의 예언 메시지가 나온다. 이 부분의 중요 내용은 다음 여섯가지로 구분해서 살펴보겠다.
1. Text의 구성
2. Text의 의미
3. 설화신학
4. Text의 형태
5. 신학적 손질
6. 종합
이중 text의 구성, text의 의미, 그리고 text의 형태를 연결시켜 살펴 볼 것이다. 그 밖의 것은 항목별로 다루겠다. 여기서 던져질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일 것이다. 호세아서 1장부터 3장을 메시지로 읽어야 하는가 개인적인 이야기 즉 생애형태를 갖춘 예언설교로 이해해햐 하는가 혹은 예언자 자신의 메시지가 그 안에 담겨있는 진정한 의미의 개인적인 체험을 다루고 있는가의 문제이다.
1. Text의 구성
여기서 우리는 호세 1-3장이 단일한 text를 구성하고 있는지 살펴 볼 것이다. 과연 1-3장을 하나의 단락으로 보게끔하는 어떤 요인이 있는가, 혹은 text표면에 이 text를 하나로 보게하는 관점이 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호세아서 전체 제목과 머릿말에 속하는 부분이 호세아 1,1-2 중반에 나와 있다.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내린 야훼의 말씀, 유다에서 우찌야와 요담과 아하즈와 히즈키야가 왕노릇하던 때요, 이스라엘에서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왕노릇하던 때였다. 야훼께서 호세아를 시켜 하신 말씀은 이렇게 시작되었다.」(1,1-2a)
호세 1,2b부터 9절까지 하나의 소단락으로 나누어 살펴보겠다.
1) 1,2b~9
1,2b부터 9절까지는 이 부분을 하나의 체계적인 text로 보게하고 있다.
תꚆꔞ ꗘꗡ־הꙍ ꗗꗝ ꘞꚅוֹה־לꔟ הꕯהꖾ רꗮאꗄꕰ 2b
ויꗚꔞ הꕯהꖾ רꗮאꗄꕰ 4a
אוּהꖺ תיꔲ־לꘞ לא꘡ꙣꖅꖹ יꗭꕖ … יꗑ 4bα
לꔞꙜꚉꖹ תיꔲ 4bβ
לꔞꙜꙺꖹ תꚆꙐ 5b
הꗪꖎꙢ אꗟ הּꗪꚉ אꙜꙓ 6b וֹל רꗮאꗄꕰ 6a
רꗮאꗄꕰ 9a
ןꔲ וֹל דꗞꚞꕰ רꕘꚜꕰ 3b
לא꘡ꙣꖅꖹ וֹמꚉ אꙜꙓ 4b
תꔰ דꗞꚞꕰ דוֹע רꕘꚜꕰ 6a
יꗴꘞ אꗟ וֹמꚉ אꙜꙎ 9a
לꔞꙝשׂꖹ תꔲ יꗑ도 4b, 5a, 6a에 나타난다. 똑같은 것이 계속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어떤 체계적인 text의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이런 것이 공시적인 방법인데 어휘, 어체, 문법 등을 text에 적용하는 것으로 하나의 text임을 보여준다. 외적인 현상으로 볼때 적어도 이 text는 하나로 보아야 한다.
1,2b-9는 단일성을 이루는 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야훼께서 호세아(그)에게 말씀하셨다. 둘째, 연계형과 이유를 설명하고 세째, 이름과 관계되는 메시지가 전달되는 외형적인 공통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1,2b-9는 단순하고도 분명하게 세 아이의 출생순서에 따라 세장면으로 나누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텍스트(1,2b-9)가 모두가 이스라엘의 같은 역사적 시기를 다루는 것은 아닌게 확실하다. 왜냐하면 호세아는 북조 출신 예언자인데 7절을 보면 유다가문이 언급되고 있고 반면에 4-6절은 단지 이스라엘 가문만 언급되기 때문이다. 또한 7bβ(전쟁이나 병마로 구원하지 않을 것이다)는 손질되지 않은 듯한 인상을 주며 7bα에 나오는 활이나 칼은 5절에 나오는 활과 대조를 이룬다.또한 텍스트 전체가 이스라엘을 단죄하고 있는 데, 여기서는 유다에 대한 구원을 언급한다.
5절의 ‘그날이 오면’(אוהה מויב היהו)은 유배 혹은 유배후를 암시하는 선언으로 보인다(동사의 과거형+ו는 미래시제가 된다). 예를 들어 יהיו ……한편 이즈르엘이란 지정학적 장소는 아이의 이름으로 바뀐다.
1,2b의 יכ 에 해당되는 용어는 신명기 학파의 용어라 볼 수 있겠다.
“왜냐하면” – 서 인석 신부님은 “왜냐하면 이 나라는 주님을 등지고 매음을 일삼기 떄문이다.”라고 번역하고 있다. 이것도 손질된 듯한 인상을 준다. 이러한 신명기 학파의 용어는 창세기 34,15에도 나오고 있다. 이밖에 신명 31,16과 판관 2,17;8,33을 참조(성서 본문 참조할 것)할 수 있다. 여기서 이 본문들은 잡신 숭배를 음행으로 비유하고 있다. 이 본문들에는 서 인석 신부님이 번역하셨듯이 “왜냐하면”(키)이라는 신학적 설명이 나오고 있다. 이것은 텍스트가 쓰여진 현재상황에 대한 언급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즉 자녀들의 이름을 설명하는 경우처럼 미래상황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텍스트가 쓰여진 그 상황을 묘사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키’와 함께 주어지는 신학적 해설은 텍스트의 전반적인 설명안에서 1-3장이 창출하고 있는 어떤 긴장을 파괴하면서 너무 빨리 결론을 도달하는 인상을 받는다. 따라서 바로 같은 시대적 상황을 1,2b-9까지의 이 부분이 다루고 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참고로 자녀들 아기들을 목적어로 같는 ‘아내, 여자를 취하다’ ‘누구를 자식으로 삼다, 취하다’의 의미인 ?가 쓰이고 있다. 1장도 하나의 단일성을 분명히 갖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다른 시기에 쓰여진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의 모래와 같이 셀 수도 없고 젤 수도 없이 되리라…”
그 짤막한 세 구절은 호세아서 1,2b-9에 나오는 아기들의 이름의 반대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로루하마(המחוראל)는 2,3의 루하마(המהר, 사랑받는다)와 반대되며 로암미(ימyאל)는 암미(ימy, 나의 백성)와 반대된다. 1장에선 ‘로’가 붙었지만 여기서는 없어지면서 ‘사랑받는 자’ ‘나의 백성’이라는 반대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1장과 2장이 반대되는 개념으로 사용. 따라서 그 느낌이 근본적으로 바뀌게 된다. 1장에서는 미래가 야훼의 결정에 달려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