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는 어떤 사람인가?

 

아모스는 어떤 사람인가?


  이스라엘 남부 유다 출신이며 죽을 때도 유다로 추방이 되어 죽었다.  남쪽의 테코아(Takoa)라는 지역의 출신이며 대개 760년경(여로보암 2세)에 활동했다.  활동기간은 2년 정도 활동했다.  2,13절을 보면 지진 이야기가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 보면 지진 나기 전 2년 전에 활동했음을 알 수 있다.  7장 14절 이하를 보면 알겠지만 소위 제도권 예언자와는 달리 카리스마적인 예언자, 즉 직접 불리움을 받은 예언자이다. 목동 또는 목축업을 하는 사람이었으므로 사도 바울로 처럼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는 것으로서 먹고살지 않았다.  활동한 장소는 대개 베델(하느님의 집 7,10절 이하), 북쪽의 수도 사마리아(3,9;4,1;6,1 참고) 기타 지역으로 추측한다.


   <시대적 배경> : 여로보암 시대는 비교적 이웃 민족에 대해서 군사적으로, 외교적으로 성공한 시대였다(2열왕 14,14절이하 참조).  경제적으로도 굉장히 융성하던 시대로서 얼른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시대였으나 사실 내부적으로는 굉장한 불공평이 있었다.


   불공평의 특성은 Justitia에 반대되는 것이다.  주로 사회적인 부도덕, 사회적인 불의 등이었다.  이 Justitia는 거지, 사기치는 것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  정직성과는 구별된다.  Justitia는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는 공개적인 이러한 삶의 질서이어야 하는데 다른 사람이 참여할 자격을 박탈한다는 의미에서 Justitia가 없다는 것이다. 이 Justitia는 그런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하느님이 구약에서 정의롭다, ‘공의롭다’라고 할 때에 이 정의나 공의는 이런 의미에서 결코 양쪽을 균형을 잡는다는 정의가 아니라 ‘당신이 얘기한 것에 대해서 충실하다’는 의미로서의 정의인 것이다.  그래야 누구든지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하느님의 구원에 대해서 충실하지 않는다면 누구에게는 알려지고 누구에게는 알려지지 않는 거짓이 생기기 때문에 그때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의 Justitia는 경제적인 차원, 사회적인 차원으로 거슬려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 예언자는 경신례에 대한 비판을 혹독히 한다. 이 Justitia가 거슬려 지니까 그것을 메꾸기 위한 여러 가지 겉도는 제사 또는 참례 등이 있었다.  이는 정의가 없는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경신례의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 것이다. 


   아모스가 국내외를 비교하면서 이웃 시리아가 멀리 앗시리아 국가에 의하여 완전히 패망하고 속국이 되는 것을 보고 서서이 이것이 이스라엘에게 다가올 위험이라고 본 것이다.  그 위험에 대한 감지는 정치적인 감각에 의한 것이 아니라 외침에 대해서 내부의 부패 때문에 저항하지 못하고 무너질 것이라는 차원에서 이해한 것이다. 따라서 외부의 외침이 있어도 내부가 강해지면은 문제가 없다는 그런 뜻이겠다.  내부의 문제 중에서도 사회정의문제와 정의에 입각한 경신례 문제를 중시했다.


   개인적인 특성으로 그는 남쪽에서 태어났지만 북쪽의 이스라엘의 과거나 미래에 대해서도 통달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에 대해서도 굉장히 많은 지식을 함축하고 있었다.  H.W.Wolff는 아모스가 지혜문학에 있어서도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아모스서에 나타나는 숫자에 대한 이야기가(1,3참조) 잠언 30,15절처럼 숫자로 그당시 얘기를 펴 나가고 있으니까 그렇지 않을까. – (반대의견은 H.H.Schm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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