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에 대해서
1-2절
드고아에서 양을 치던 목자 아모스의 예언집. 그는 이스라엘이 어찌 될지 계시를 받고 그대로 예언하였다. 우찌야가 유다에서,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서 왕위에 앉아 있던 때로서 지진이 있기 바로 이 년 전이었다.
아모스가 말했다. 야훼, 시온에서, 예루살렘에서, 큰 소리로 부르짖으시니 양떼 풀 뜯던 목장이 탄다. 가르멜 산 마루의 풀이 시든다.
§원문 : 지진이 있기 이 년 전 이스라엘을 내다 보던 드고아 출신의 아모스 예언집(밑줄 친 부분은 후대에 붙은 내용이다)
。‘아모스가 말했다.’와 같은 표현은 다른 예언서에서 드물다.
。1-2절은 형식으로 보아서 모든 예언서에서 볼 수 있는 서론적인, 전체를 도입하는 글이다.
。사실은 활동한 기간이 2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후대의 텍스트(왕에 대한 것)를 보면 거의 40년동안 활동한 것으로 재해석이 되어있다. 이는 아모스 예언서가 지니고 있는 시대성을 확대한 것이며, 그 시대의 암울한 시대를 분석한 장본인으로서의 아모스를 격상시킨 것이다. 이런 격상시킨 의도 뒤에는 귀양시 자신들의 처지는 아모스가 그 시대를 분석했던 식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의도가 있는 것이다. 즉 부정적인 분석의 대상으로서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런 신학적인 의도의 대표적인 것이 모세오경(모세가 다 한 것으로), 시편(다윗이 다 한 것으로), 지혜서(솔로몬이 다 한 것으로)등이다. 그런 측면에서 아모스의 활동기간을 더 넓게 보았으며, 귀양시대에 와서 우리가 왜 이렇게 벌을 받느냐 하는 것을 인과론적으로 보지 않고 하느님의 개입으로 모기 위한 것이었다. 그 시대의 신학적 조류는 신명기 역사학적 신학이다. 이 신명기 역사학적 신학은 왕정시대의 모든 것들이 부정적으로 판단되는 신학으로 즉 다윗, 에제키아, 요시아를 제외한 모든 왕들을 악당이라고 보는 신학이다. 그런 의미에서 확대해석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양을 치던 목자라는 서문을 앞에다 붙이는 까닭은 예언자가 가지고 있는 위치는 제도권을 통한 예언자가 아니라는 것 즉 카리스마적인 선택을 통한 예언자라는 것을 예비시켜 주는 것이다. 7,14이후에 나오는 산문적인 요소를 예비시켜 준다.
。‘야훼가 시온에서 부르짖는다’ – 그 시온이란 사람들이 생각할 때 구원, 야훼를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전 우주의 중심으로 생각되어져 왔다. ‘야훼께서 시온에서’는 시온신학에 근간이 깔려 있는 것이다.
。1-2절의 문학적 특성 – 1절을 길게 만든 집성자의 의도는 아모스서의 1절에 유다의 왕 우찌아나 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등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 아모스서가 적어도 북쪽뿐이 아니라 남쪽에서 굉장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나타내려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적어도 집성자가 유다를 넣은 것을 보면 처음에 아모스는 북쪽에서 활동한 분이였지만 아모스의 말씀은 이미 유다에서도 널리 알려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 시기는 대개 요시아때였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에 대한 계시를 받았다는 등등의 얘기는 7장 이하에 환시를 예시한다. 그런 환시에 대한 예시를 앞에 넣어서 전체를 집성하려고 하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예언서의 낱낱이 떠돌아다니던 말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이때에는 이미 아모스의 예언이 유다까지 영향을 미쳤을 때이다. 그러면 북쪽의 것이 남쪽에서도 효과를 발휘하고 하는 때는 적어도 이스라엘이 망한 후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망한 후 요시아때라고 볼 수 있다. 북쪽에 근거를 둔 신명기 역사학파가 남쪽에 내려와서 집대성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문학적으로도 그런 흔적이 나타난다.
2절을 문학적인 형태로 나누어 볼 때는 앞의 두 줄 ‘야훼 시온에서 부르짖으시니’와 그 뒤의 두 줄 ‘목장이 탄다’를 볼 때는 야훼의 활동하신 것과, 야훼가 활동하신 결과로 볼 수 있다. 활동하신 장소에 시온, 예루살렘이 나타나는 것은 유다의 왕 우찌아를 집성사적으로 넣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 예언서가 유다에서 현실감있는 말씀이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야훼가 이룩하신 결과가 일반적으로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예언서의 예언자 신탁의 관용구와는 다르다. 왜냐하면 야훼를 3인칭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다른 곳에서는 “나 야훼가 선고한다”라고 야훼가 1인칭으로 나타난다. 보통 예언서의 특징은 야훼가 말씀하시고 예언자가 받아서 일인칭으로 선포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아모스가 말한다”라고 하며 야훼가 3인칭으로 드러나는 문학적 특성이 다르다(예언신탁의 관용구와는 다르다). 또 쟁론과도 다르다. ‘아모스가 말했다’라고 하지만 이것은 하느님이 주신 말씀이 아니라 집성자가 아모스의 신학적인 목적을 나타내기 위해 쓴 구절이다. 2절이 짧긴 하지만 문학적인 특성으로 보아 찬미의 노래, 특별히 하느님의 현현에 관한 찬미의 노래와 비슷한 요소를 볼 수 있다. 하느님의 현현(Theophania)의 특징은 하느님이 오신다는 것 그리고 그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 문학적인 특색이다(판관 5,4; 신명 3,2; 시편 68,8참조). 그런데 보통은 시나이에서 온다는 것이 있다. 그 다음에 활동의 결과는 주로 자연의 현상을 가지고 얘기한다(비바람, 천둥, 번개 등등). 전승적으로는 이스라엘 초기의 어떤 배경에서 나타나느냐 하면 초기에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위해서 싸우실 때 야훼의 승리를 가리키기 위하여 이런 야훼의 현현의 찬미가가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그런 찬미가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1) 하느님의 이름이 나타난다. 2) 어디로부터 온다(from)는 것이 나온다. 3) 하느님의 활동 결과가 이미 종결된 것으로, 과거형으로 나타난다. 4) 이러한 야훼 활동의 결과의 주체는 사람이 아니라 자연의 현상들이다. 그런데 이 2절은 그런 특성을 많이 볼 수 있다. 공통점은 1) 야훼의 이름 2) 시온에서 예루사렘에서 3) 야훼의 활동, 즉 부르짖으신다. 4) 결과로서는 목장이 타고, 풀이 시드는 자연의 결과가 나타난다. 이러한 기본적인 공통요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이점도 있다. 1) 보통 다른 찬미가에서는 야훼에 대해서 부정법이나 분사나 또는 과거형과 연결되어서 나오는데 2절에서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다른 찬미가에서는 이미 하느님의 활동이 끝난 것으로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렇지 않다. 여기는 반과거형으로 ‘부르짖고 계신다’로 표현되며 아직도 활동하고 계시는 것으로 나타난다(신명 33,2;시편 41,7 참조). 2) 어디서부터 ‘온다’는 얘기가 없다. 보통 다른 찬미가에는 ‘오신다, 나오신다’가 많이 나오는데 ‘부르짖는다’라는 것을 봐서는 다른 현현의 찬미가와 똑같지는 않다. 3) 다른 찬미가에서는 보통 하느님이 오시면 천둥, 번개를 동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도 물론 하느님이 ‘목소리를 내신다’, ‘부르짖는다’ 등등의 비슷한 얘기는 있지만 그러나 기본적인 천둥, 번개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천둥, 번개가 치고 비바람이 불면 화산과 기근이 생긴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2절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본시 그 찬미가로부터의 변형을 볼 수 있다. 4) 하느님이 부르짖을 때 그 출발점이 시나이가 아니라 시온(예루살렘)임을 볼 수 있다. 5) 결과로 봐서도 보통 승리하시는 하느님의 군대, 주인으로서 오실 때에는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목적으로 하느님의 현현이 나타나는데 여기에서는 오히려 단죄(벌하는 하느님)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2절은 전승된 야훼 현현의 찬미가와 기본적으로 비슷한 점이 있기는 하지만 현재 여러가지 첨가된 요소(1-5)를 봐서는 고유한 신학적인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그런 신학적인 의도는 1) 단순히 ‘온다’라기 보다도 ‘부르짖는다’라고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든지, 양떼풀, 가르멜산 이런 자연의 결과가 뒤바뀐다든지 하는 데에 있다. 즉 그러한 형상적인 언어를 통해서 아모스는 야훼를 통해서 하는 이 말이 절대적인 효과나 결과 그리고 결정적인 의미가 있기를 바라는 신학적인 의도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결정적인 의미는 이것은 시온이라든지 예루살렘, 유다왕 등을 포함하여서 이미 그 시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서술당시 이후에도 청중에게 굉장한 효과가 있었다. 또 하나는 이러한 신학적인 경향을 보아서는 아모스의 예언서는 그시대(기원 전 750년경)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요시아 시대에 와서도 굉장한 절박성이 있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2) 고유한 전승적인 야훼의 현현의 찬미가를 이용해서 하느님이 나타나신다는 것은 – 심판을 위해서라고 하며 찬미가를 이용한다. 기존 찬미가는 항상 구원과 같은 긍정적인 것만 있었다 – 따라서 이런 심판이 결정적인 힘이 있다는 것을 얘기한다고 볼 수 있다.
。2절은 나중에 집성된 것인데 요시아때에는 신명기의 요소들이 요시아를 통해서 집성되었다고 보여진다. 신명기 역사학파는 바로 이 신명기에 근거를 두고 귀양시대의 역사를 쓴 것이다. 이러한 집성적인 의도는 2절을 앞에 넣음으로써 신학적인 의미뿐 아니라 문학적 의미도 있다. 개별적으로 알려졌던 환시(7.8.9장)를 집성단계에서 앞에 넣음으로써 문학적으로 아모스 예언의 중요한 내용으로 표현하려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