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절
다마스커스성의 빗장을 부수고 아웬 평야에 군림한 자, 베데데네서 왕권 잡은 자를 죽이고 아람 백성을 키르로 잡혀 가게 하리라. – 야훼의 말씀이시다.
。5절에 가서 왕 세력에 관한 것 뿐 아니라 그 결과로 아라매아 백성들이 포로로 된다는 것은 백성에 대한 벌 보다도 왕이 자기 백성에 대해서 그렇게 지배권을 행사했지만 막상 벌을 받을 때는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폭로함으로써 지배권이 얼마나 위장되어 왔는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야훼가 그들을 폭로하고 무력화시킬때 야훼와 그 왕들 사이의 관계 뿐 아니라 왕권이 서 있었던 사회적인 측면이 얼마나 무가치했는가를 지칭하는 것이다. 이런 벌을 근거로 해서 아래의 사실들을 우리가 생각할 수 있다. 다마스커스는 이스라엘에 가장 인접한 북쪽국가였다. 역사적으로 예루살렘보다도 먼저 민족간의 접촉을 이루었던 도시이다. 역사적으로 주인공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었던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모스가 볼 때에는 이 다마스커스의 위치란 결코 선망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게는 그 민족이 야훼로부터 벗어나는 민족이 아니라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이스라엘에게 선포되었던 야훼의 길 이것은 다마스커스에게도 유효한 것이었다. 이러한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이스라엘에게도 이 벌은 충격이고 다마스커스에는 물론 커다란 재앙이었다. 선포의 대상으로는 결코, 이 민족을 벌한다고 할 때, 다마스커스가 아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한 것이다. 거기서 바로 선포성을 지닌 신학을 얘기할 수 있다. 그들이 지니고 있던 체계도 아라매아 민족과 비슷한 왕권, 더 강한 잘 조직된 경제적으로 믿을만한 그런 시대였다. 그런데 거기다대고 다마스커스 얘기를 함으로써 이것이 얼마나 의미가 없는가를 얘기함으로써 바로 그때의 체계가 망할 때에는 아무런 의미도 지니고 있지 않다는 선포성을 띄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런 본질적인 내용을 선포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내려왔던 왕권이라든지 제도라든지 이런 것이 임의적으로 수입이 되어서 편안하게 사는 제도로 나타났지만 자체로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신명기 역사학자에게도 파급이 된다. 이런 사회비판적인, 현제도에 대한 비판적인 얘기를 하면서도 현 제도의 약점도 알 게 하는데 백성들이 살 수 있느냐 없느냐, 정말 백성들을 살 수 있게 한다면 백성이 위기를 당할 때 책임을 질 수 있는가 라는 것으로 귀착이 된다. 그런 것을 못할 때 이런 제도는 문제가 있는 제도라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