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절
나 야훼가 선고한다. 이스라엘이 지은 죄, 그 쌓이고 쌓인 죄 때문에 나는 이스라엘 벌하고야 말리라. 죄없는 사람을 빚돈에 종으로 팔아 넘기고, 미투리 한 켤레 값에 가난한 사람을 팔아 넘긴 죄 때문이다.
。‘이스라엘을 벌하고 말겠다.’ – 원문에는 ‘이스라엘도 아끼지 않겠다.’, ‘이스라엘이라고 봐주지 않겠다.’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야훼가 이스라엘에 대해서 심판을 한다는 것, 공정한 심판을 하시겠다는 것은 다른 민족에 대해서 단죄를 하는 것 못지 않게 이스라엘에게도 심판을 하겠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죄없는 사람을 빚돈에 종으로 팔아넘기고’ – 죄없는 사람은 의로운 사람의 의미이다. ‘קיꕑ(tsadik)’는 보통 글자 그대로는 ‘의로운 사람’이라고 얘기하지만 여기서는 의로운 사람과 가난한 사람과 구별해서 생각하는 데에는 지나치다. ‘무죄한 자를 빚돈에, (종으로) 팔아넘기고’ 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들이 전통적으로 내려왔다. (출애 21,9; 레위 25,39; 신명 15,12; 이사 50,1; 느헤 5,8)등을 보면 이 법은 사회를 지탱하는 법으로서 옛날부터(부족사회부터) 지금까지(느헤미야 시대, 귀향후의 지금까지) 계속 이스라엘 사회를 유지하는 법으로 알려져 왔던 것이다. 모세오경이 쓰여지기 이전(야휘스트 이전시대) 부족사회부터 알려진 것이다. 그러므로 무죄한 자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를 팔아넘기는 인신매매는 금지되어 있다. 특별히 출애 21,16; 신명 24,7에서 단순한 인신매매를 생각할 수 있다. 또 하나는 ‘קיꕑ’(tsadik)에 국한해서 볼 때에는 ‘의로운 사람을 빚돈에 넘긴다’는 것은 의로운 사람에 대해서 올바른 판단을 하지 않는 재판의 전승을 배경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럴 때에는 재판관이 뇌물을 받고 의로운 사람을 오히려 죄인으로 선포하는 잘못을 암시하고 있기도 하다. ‘의로운 사람을 빚돈에 종으로 팔아넘기고’로 보아서는 아모스 예언자 자신이 그 당시의 노예제도 자체를 반대해서 아무도 노예로 팔아넘기거나, 노예로 취급하거나 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를 띈 것은 아니고 노예로 팔아넘기면 안될 사람을 노예로 팔아넘기는 데 문제가 있다는 쪽으로 얘기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얼핏 보면 아모스 예언자가 노예자체를 반대하는 것보다도 노예를 국한시켜서 잘못하면 안된다는 식으로 얘기한것이 노예자체를 반대하는 것보다도 가벼운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도 않다. 왜냐하면 이 뒤에는 아모스 예언자가 노예 자체를 반대하지 않았지만 그리고 노예로 팔아넘기면 안될 사람을 팔아넘기는 데에 국한시켰다고 하지만 이것은 강자가 자의로 무엇을 한다는 그 자체, 옳은 사람에 대해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이런 자기 권력에 대한 잘못된 생각에 대해서 도전한다는 것을 볼 때에는 오히려 사회의 기본적인 현재의 상태는 놔두고도 그 뿌리를 건드리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권력에 대한 이해 자체에 도전하기 때문이다.
。‘미투리 한 켤레 값’ – 이것은 그 당시에도 굉장히 값싼 것이었다. 거기다가 ‘가난한 사람을 팔아넘긴다’라고 할 때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여기에서의 가난한 자는 ‘ןוֹיꔩꔟ(’ebyon)’으로 쓰인다. 이 ‘ןוֹיꔩꔟ(’ebyon)’은 일반적으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 ‘םꗜꕐ(dalim)’은 작은 사람(부자와 반대. 잠언 10,15; 22,16; 28,11참조). 아나빔은 꺽인 사람, 내려 눌려서 꺽인 사람, 말하자면 짖밟힌 사람,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과 반대되고 거만한 사람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지금의 ‘ןוֹיꔩꔟ(’ebyon)’ 즉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오히려 그 당시에도 싸다고 생각하는 ‘미투리 한켤레 값에 팔아넘긴 죄다’라고 표현을 하는데 이렇게 얘기하는 가운데 이런 배경을 볼 수 있다. 하나는 의로운 자(결코 팔아넘기면 안될 사람)를 재판의 배경으로 생각하자면 법과 삶의 길을 왜곡시키는 것이다. 그 다음에 미투리 한 켤레 값에 가난한 사람을 팔아넘기는 것은 앞부분의 그와같이 공정한 길을 왜곡시키는 것이고 그래서 이것은 앞에 ‘심판을 하고 말겠다’는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부족사회로부터 죄없는 사람을 빚돈에 팔아넘기고 그래서 심판을 잘못하는 것은 사회의 근본을 이루는 옛날부터 후대에 이루기까지 반복된 것이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을 벌하는 것이 얼마나 심판의 대상이 되느냐 하는 것은 이러한 병행구를 보아서 결코 용납할 수 없음을 드러내고 있으며, 언제고 이것이 문제가 되는 내용이라는 것을 일러주고 있다. 팔아넘긴다는 거기에는 이득을 본다는 의미가 나와 았다. 그래서 이 잘못이 상대에게 도움을 줘야 할 의무를 포기한다는 그런 것이 들어 있는 것이다(오히려 이득을 보기 때문에). 그런 여러가지 배경을 통해서 사회의 근본이 뒤틀려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가야할 길이 뒤틀려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단순히 외적으로 나타나는 의로운 자와 가난한 자의 대조는 그 사회의 근본이 뒤틀려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모스의 이런 표현을 통해서 그 당시 태평성대라고 생각하던 그 사회가 결국은 40년 후에 망하게 되는 이유가 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가난한 사람과 ‘ןוֹיꔩꔟ(’ebyon)’에 대한 이러한 행위는 하느님의 창조에 어긋나는 것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볼 수가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