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에 대하여(7절)

 

7절


   너희는 힘없는 자의 머리를 땅에다 짓이기고 가뜩이나 기를 못 펴는 사람을 길에서 밀쳐 낸다.  아비와 아들이 한 여자에게 드나들어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힌다.


   。“너희는 힘없는 자의 머리를 땅에다 짓이기고 가뜩이나 기를 못 펴는 사람을 기에서 밀쳐낸다.” – ‘םꗜꕐ(dalim)’이라는 것은 힘없는 사람, 적은 사람, 부자의 반대의 뜻이다. 가난한 사람 또는 작은 사람은 부를 가지고 폭력을 쓰는 사람에게 대항할 수 없는 사람임을 얘기한다.  여기는 기를 못펴는 사람은 꺽인 사람, 눌린 사람, 특별히 폭력에 의해서 눌린 사람이다.  잠언 14,31에 보면 ‘가난한 사람을 억누름은 그를 지으신 이를 모욕함이며 없는 사람을 공경함은 그를 지으신 이를 높임이다’라고 해서 가난한 자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 하는 이것이 창조주에 대해서 어떤 행동을 하느냐 이런 뜻이다.  단순히 윤리적인 차원에서 규명하는 것이 아니라 아모스서나 잠언집이나 같은 생각이다.  이 뒤에는 결국은 하느님께 대해도 올바른 관계를 갖느냐 안갖느냐 하는 신관의 문제도 되는 것이다.  그 외에도 ‘םꗜꕐ(dalim)’을 보려면 잠언 10,15; 22,16; 28,11 참조하라.


   。‘땅에다 짓이기고 길에서 밀쳐낸다’- 결국 그들과 같이 공존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같은 그룹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는 법의 질서, 정의의 질서를 왜곡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아모스가 볼 때에는 정의의 질서는 하느님이 주신 길을 왜곡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부족사회에서부터 바로 이 올바른 인간관계에 관한 법을 왜곡시킨다는 것은 사회를 무너뜨린다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때부터 후손에게도 그런 잘못이 나타나지 않도록 했었다.  이것이 오래된 지혜문학의 근간을 이룬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더 나아가서 인근 민족, 법질서에서 빌려온 대목도 있다.  따라서 이 얘기는 성서에 수용이 되어서 하느님의 말씀으로 다시 각색된 것이지만 본시는 인간 사회를 다스려야 된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출애 23,6참조하라).  왜냐하면 거기에 나오는 계약법전의 책은 이스라엘의 창작품이 아니라 그 이전 부족시대부터 내려오던 것을 모아서 십계명을 앞에다 놓고 거기에 십계명에 대한 자세한 법을 수용했기 때문에 단순한 인간의 법이 아니라 하느님의 법으로 바뀌었다는 것과 오래된 것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지혜문학의 이야기는 다른 민족에게도 또 이스라엘 민족에게도 오래된 전승을 지닌 공통성을 지닌 내용이지 이것을 근거로 해서 아모스가 어디에 매여있다는 것을 얘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즉 아모스가 이러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전통에 근거를 둔 사회정의를 부르짖을 때에는 하느님과의 계약이라는 차원이라는 것이 있고 또 하나는 인간사회에 공통으로 구현되어야 할 얘기를 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이런 식으로 아모스 예언자가 얘기할 때에는 이런 내적인 사회의 멸망 이것과 외적인 부 또는 어떤 행복과는 보는 자의 입장에 따라서는 보일 수도 있고 안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겉으로 볼 때에는 잘된것 같지만 안으로 볼 때에는 그렇지 않다는 아모스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외적인 부와 내적인 멸망이 같이 병행한다고 보지만 그 당시의 집정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가난한 자에 대해서 잘 하는 것은 지은자에 대해서 공경하는 것이고 가난한 사람을 모욕하는 것은 지으신 자를 모욕하는 것이다’를 볼 때에 40년이라는 세월을 두고 이러한 멸망의 요소가 발전해 나갔다가 이것을 실제로 되었다고 확인한 사람은 신명기 역사학자들이다.  그래서 아모스 예언서에 신명기계 요소가 들어있다 할때에는 바로 오랜 기간을 거쳐 멸망의 요소가 드러난다는 것을 확인해 주기 위함이다.  소위 아모스 예언자의 입장에서 이것을 이해한다면 40년후에 신명기 역사학자가 확인해 준 성공 뒤에 있는 이 파괴의 요소를 아모스와 같이 현재의 그 속에 있다고 봐야한다.


   。“아비와 아들이 한 여자에게 드나들어” – 레위기를 보면 그런 것에 대한 자세한 것이 많다.  1) 모녀를 데리고 사는 것에 대한 금지(레위 18,17; 20,14), 2) 아들이 아버지가 관계한 여자, 아버지의 첩, 아버지의 배필이 되었던 사람과는 관계를 하면 안된다(레위 18,7; 20,11; 신명 23,1.3) 아버지가 아들의 부인과 관계를 하면 안된다(레위 18,15; 20,12)에 나온다.  그런데 레위기에 이런 결혼 관계를 근거로 해서 ‘한 사람 또는 두 사람에게 드나들면 안된다’는 것이 있는데 여기 나오듯이 ‘한 여자에게 아버지와 아들이 관계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절대명령으로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안된다는 식(관계설정을 하고 거기에 대한 설명을 하는 식의)의 이런 법들은 나온다.  출애 21,1-17에 보면 ‘아버지가 데리고 있는 노예를 내 보냈을 때에는 거기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이것은 아모스서와는 같지 않다.  왜냐하면 여기의 여자는 ‘결혼을 할 수 있는 일반적인 처녀’를 지칭하기 때문이다.  아모스 예언서에서 이런 얘기할 때에는 모세오경에는 없지만 부족사회부터 내려오는 지혜문학 속에는 있다는 것이고 따라서 굉장히 오래되었다는 것이다.  그 앞에 나온 가난한 사람들과는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은 그 당시의 결혼 적령기에 들어간 여자에 대해서 안된다는 것은 역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부류에 들어 갔던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함으로써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특별히 남녀관계에 대해서는 아모스 예언자가 그 부패성을 지적해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가난한 사람에 대해서 부나 폭력이나 권력으로 대하는 것이나, 결혼 적령기에 있는 여자에 대해서 인간관계를 함부로 하는 것이나 같은 차원이나 사회의 근본을 뒤 흔드는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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