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 예언서를 전체적으로 보아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1) 외적인 조건이다. 정치적인 태평성대 그리고 태평성대를 자기들이 믿을 수 있는 근거로 둔 것에 대해서 아모스 예언자가 각성을 시키는 것이다. 단순히 자기를 믿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믿는 근거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이야기 하면서 경신례에 대한 비판과 사회적인 비판을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야훼의 절대성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2) 나중에 신명기 역사가도 아모스 예언서를 많이 재해석했다.
3) 경신례 비판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이것이다. 즉 경신례가 우리로 하여금 교회내의 경직성을 조장하는 도구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가? 야훼의 신 개념을 확장시키기는 커녕 야훼의 신 개념을 축소시키는 것이 아닌가? 그럴 때에는 예수님에 대한 인식을 구약에 바탕을 두지 않고 이 시대에 우리의 도구로 전락시키고 마는 것은 아닌가하는 것이다.
4) 지금 신자들이 성당에 가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고 할 때에 하느님을 만난다고 하는 것의 실체는 무엇이냐? 그럼 그 실체를 조명하는데 역사, 시간이 하느님의 활동 무대였는데 만일 하느님이 활동한 것이 재현되지 않는다면 그때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 축제에 대해서
커다란 축제가 3개(과월절, 무교절, 초막절)가 있었다. 축제의 특성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전부 성소에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요시아 개혁 이후에는 예루살렘에 나타나야 한다). 과월절은 이스라엘의 축제였으나 초막절과 무교절은 농경민의 축제였다. 이 축제야말로 바로 시나이, 가나안, 광야, 출애급을 기억하는 야훼의 축제인데 그것을 싫어한다는 표현은 18절의 야훼의 날에 저주를 받는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