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서 연구

 

호세아서




1. 예언자 호세아


  1.1 인물


  1.2 예언활동 시기


  1.3 결혼


2. 호세아서


  2.1 본문의 문제


  2.2 본문 구분


  2.3 신학




결론을 대신하여








창녀와의 결혼으로 스켄들을 일으킨 예언자인 호세아는 이스라엘의 화려한 시대가 종말로 향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예언활동을 시작한다. 그가 본 것은 비슷한 시대 예언자 아모스가 보았던 것과 비슷한 것이었다. 사제들과 예언자들의 타락과 제의의 변질, 백성들의 종교적 혼합주의 그리고 그 만이 독특하게 보았던 것은 정권 찬탈을 위한 폭력, 그래서 무정부 상태처럼 보이는 것과 혼란 상태 등 이었다.


호세아는 관심에 비해서 사적인 자료의 부족으로 더욱 많은 상상을 하게 한다. 그의 예언서도 또한 이러한 문제에 함께 얽혀 있는 듯 하다.


그래서 여기서는 현재 논의되는 학설들을 제시하는데 중점을 두어 서술하게 될 것이다.




1. 예언자 호세아




1.1 인물




호세아(ꘞꚅוֹה)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어근 עꚃꖷ로부터 파생되었고 3인칭, 남성, 단수 완료 hiphil형으로 이해하여, “그(야훼)가 도우셨다, 해방하셨다”라고 번역할 수 있다. 이 이름은 북왕국(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인 호세아(2열왕 17,1)와, 여호수아의 본명인 호세아(민수 13,16; 신명 32,44)와 동일하다.


유일한 북왕국 이스라엘 출신의 문서 예언자인1) 호세아의 배경에 대하여는 그의 아버지의 이름이 브에리라고 하는 사실 외에 호세아서 1장과 3장이 그의 결혼생활과 자녀들에 대해서 전해주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또한 그가 사제계급 출신이었다거나 우리가 9,7로부터 추론해내려고 하는 것처럼 예언자 단체의 일원이었을 것이라는 가정은 확증할 수 없는 추측에 불과하다.2)


오히려 Fohrer의 다음과 같은 추측만이 가능할 것이다.


“그는 과거의 역사적인 지식, 역사와 현재에 대한 비판, 그리고 그의 서술적인 표현법이 가리키는 바와 같이, 높은 교육을 받았던 지식층에 속해 있었다. 또한 그의 언어에 나타난 지혜문학적인 영향을 고려한다면, 구엇보다도 왕궁의 관리들을 위해 교육을 받았던 학파와 일치하는 수업이 전제된다.”3)


분명하게 언급된 것이 아니기는 하지만 그의 활동은 북왕국에서, 주로 북왕국을 대상으로 이루어졌음이 확실하다.




1.2 예언활동 시기




호세아의 활동 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유일한 직접적인 증거는 1,1과 1,4부터이다. 그래서 Ball은 이 구절을 근거로 해서 호세아의 예언활동이 여로보암 2세의 죽음(기원전 747/6년) 이전4)부터 시작하여 사마리아 함락(기원전 722년) 직전까지 계속되었다고 확신하고 있다.5)


Fohrer도 역시 여로보암 2세(기원전 786/82-753/46)에 대한 언급(1,1)과 내적 혼란과 왕의 살해(7,7; 8,4)와 시로-에프라임 전쟁(5,8이하)에 대한 암시, 마지막 왕 호세아의 외교적인 노력들(7,11이하; 12,2)에 대한 언급을 통해서 호세아의 활동시기를 대략 기원전 755/750-725년으로 보고 있다.6)


Wolff는 1,1b와 1,4을 근거로 하여 호세아의 주요 활동시기가 여로보암 2세가 죽기(기원전 747/746) 전의 마지막 시기(최소한 약 5년간)와 일치하고 있다고 보아서 기원전 752년 정도부터 활동을 시작했다고 본다. 그리고 5,8-11은 시로-에프라임 전쟁과 관련된 것이라고 보고 있다. 특징적인 것은 10,14에 등장하는 살만이 앗시리아의 살만에셀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라 티글랏빌레셀 3세가 728년에 자기의 봉신이라고 말한 모암 왕인 살라마누(Salamanu)일 가능성이 더욱 크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본문의 가장 마지막 그룹들의 연대를 725-724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7)


여로보암 2세의 죽음을 비교적 빠르게 보아서 기원전 753년으로 잡고 있는 Gottwald는 호세아 예언자의 활동시기를 여로보암 2세의 죽음(753년)부터 사마리아 함락 직전(722년)까지로 보고 있다.8)


Harper는 호세아의 예언활동 시기를 743년에서 734년이라고 본다. 이렇게 짧게 보는 이유는 그가 호세아서 안에서 ‘시로-에프라임 전쟁’에 대한 어떠한 암시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9) 이러한 Harper의 주장은 지금까지 유지되지는 않는 듯하다.10)


호세아의 예언활동 시기를 설정하는 데 있어서, 이상의 주장들은 다소의 차이를 보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여로보암 2세의 사후 직전에서 사마리아 함락 전까지로 연대를 설정하고 있다. 이 시기의 특징이 되며, 연대 측정의 기준이 될 수 있는 사건들이 공통적으로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① 여로보암 2세의 죽음 ② 시로-에프라임 전쟁(734년) ③ 사마리아 함락(722년).




1.3 결혼




1-3장에 기록된 호세아의 생애의 개인적 사건들을 해석하는데는 특별한 문제들이 따른다. 호세아의 결혼은 이스라엘과 야훼사이의 관계에 대한 그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열쇠가 된다.11) 그래서 호세아서에 있어서 가장 논쟁이 심하고 자주 토의되는 문제이다.


이 사건들은 그의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담고 있다. 1장은 호세아가 야훼의 명령에 따라 ‘매음하는 여자’(םיꗼוּנꖅ תꚆꔞ)인 디블라임의 딸 고멜과 결혼하여 그녀를 통해 세자녀를 얻게 된 경위, 그리고 그 자녀들에게 상징적인 이름들을 부여한 경위를 3인칭 전기형식으로 설명한다. 다른 한편 3장은 1인칭 자서전 형식으로 표현되며 호세아가 하느님께 교훈을 받아 ‘간음한 여인’(ת꘭אָꗺꗱ)을 찾아가서 그녀의 연인으로부터, 또는 노예상태로부터 돈을 주고 사서 자신의 집으로 데려 온 경위와 그리하여 그녀가 한 동안 엄격한 통제 가운데 생활하는 경위를 말해준다. 이 행동은 다시 신적인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호세아의 예언적 말씀이 여기서 그의 개인적인 생애의 세부적 내용들과 불가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해석들은 비록 어떤 일치에 도달하지 못하였으나 그의 생애의 세부적 내용들을 밝히는 일을 오랫동안 추구하였다.12)




여기서 세가지 질문들이 규명될 필요가 있다.




1) 1장과 3장은 과연 실제적 사건들에 대한 기록을 제공하는가. 아니면 이러한 묘사는 단순히 구전적인 또는 문학적인 고안에 불과한 것인가?


① 우선적으로 이에 대한 답변은 이것이 알레고리적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따라서이것은 실제적인 결혼을 보도하기 보다는, 위협문의 문학적인 표현이다.13) 이 기사가 알레고리적이라는 견해는 예를 들면 Jerome에게서, 그리고 Kimchi 와 Aben Ezra와 같은 중세기 유대교 해석자들에게서, 보다 최근에는 Cavin, Henstenberg, Keil, Gressmann에게서 발견된다. E.J.Young은 “메시지 전체가 예언자에게 계시되었고 예언자는 이 계시를 백성에게 전하였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견해는 주로 하느님께서 호세아에게 창녀와 결혼을 하라고 명령하셨다고 가정하는 데 있어서 결부되는 어려움 때문에 제기되었다.14)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세부 내용 중 일부는 알레고리라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 나온다. 우선 고멜의 명칭을 비유, 우의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자서전 적인 문체와 2절에서의 몸값에 대한 기록을 알레고리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15)


② 이것을 실제적인 사건을 보도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견해가 있다.(Hölscher, Wellhausen, Heermann, Van Den Rorn) 이는 곧 고멜의 상태에 대한 질문으로 분화된다.




2) 결혼 당시 고멜의 상태는 어떠하였는가?


① 고멜이 실제상의 창녀는 아니었고 다만 음행에의 경향이 있었을 뿐이라는 견해.(Eichrodt, Soggin)


② 또는 그녀가 단지 음란한 이스라엘 백성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명명되었다는 견해.(Rowley)


③ 1,2은 고멜의 부정에 대한 예시적 견해라는 것, 호세아는 처음에는 흠이 없었던 여인이었는데 다만 후에 자신에게 불성실하게 된 여인과 결혼하도록 명령을 받은 것이라고 많은 학자들은 주장하였다.(Wellhausen, Smith, Robinson, Rowley)


④ 그러나 1,2에 대한 가장 자연스러운 해석은 호세아가 실제로 창녀로 알려져 있는 여인과 결혼하라는 명령를 받았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지지되는 견해는 고멜이 사실은 가나안 풍요제의에 속한 창녀였다는 것이다.(Heermann, Van Den Rorn,  Fohrer, Wolff)




3) 1장과 3장 사이의 관계는 어떠한가?


① 3장은 어떤 의미에 있어서 1장과 평행을 이루지만 결혼 경험의 다른 측면들에 주안점을 주고 있다는 해석이 있다(Ackroyd, Clemens). 이러한 경우에 있어서 3,1에 나오는 ‘다시’(דוֹע)는 편집상의 추가일 수 있다. 또는 ‘다시’라는 용어는 ‘가서’라는 용어를 취하기보다는 “야훼께서 이르시기를”(1,2a에 대한 요약 문구)이라는 용어를 취할 수 있다.


② 1장과 3장은 각각 다른 여인들에 관련되며 3장은 두번째 결혼을 말해준다는 해석(Keil, Fohrer, Rudolph).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이스라엘이 남편으로 삼은 하느님을 거역한 후에 하느님께서는 다른 신부를 찾아 떠나셨다는 견해를 둘러싸고 있는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1장과 3장이 다른 두 여자를 언급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거의 타당성이 없다.16)


③ 두 장은 모두 동일 여인에 관련되며 3장은 1장에 대한 연대적인 속편이라는 해석(스미스, 로빈슨, 로울리, 폰 라트, 볼프). 이 견해에 의하면 고멜은 로암미가 태어난 후 어느 시기에 호세아를 떠났다. 그러나 호세아는 자신의 끊임없는 사랑으로 인하여 그녀를 (아마도) 노예상태로부터 사서 찾아왔다.


역사적으로 볼 때 1장과 3장을 연대기적으로 연속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중간 사건들을 채워주는 것으로 보는 견해와, 아니면 어떤 의미에서 이 두 장은 평행되는 것으로서 동일한 결혼 경험을 다른 관점에서 본다는 견해 사이에 선택이 이루어져야 한다.




2. 호세아서




2.1 본문의 문제




① 호세아 예언서도 아모스 예언서와 마찬가지로 여러 시기에 걸쳐 전했던 신탁들을 호세아 자신이나 아니면 그의 제자들이 결집시켜 놓은 것이다. 따라서 상황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같은 주제가 여러번 반복되어 나오기도 한다. 더우기 호세아 예언서는 아모스 예언서만큼 잘 전수되지 못했다. 4-14장에서는 원형이 손상된 부분이 많아 다른 고대 문헌들을 참조하거나 추측하여 번역할 수밖에 없다.


② 본문적인 문제들과 관련해, 역사적으로 유명한 문헌비평가들이 공통적으로 가졌던 마소라 본문에 대한 극단적인 불신은 이제 별로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17) 70인역은 때로 원본을 재구성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그러나 70인역은 마소라 학자들이 보존한 히브리어 원본에 의거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마소라 본문보다 결코 우수하지 않다. 이런 사실은 시라어 역본에도 해당된다.18) 이러한 본문들의 문제는 단순히 필사상의 오류에 의해서 야기되었을 것이다. 또 다른 면에서 볼 때, 이러한 문제는 사마리아 함락 후 이 예언서를 전수했던 사람들이 북왕국 히브리 방언의 특징들을 지닌 언어를 가졌다는 난점에 의해 야기된다.19)


③ 문체의 특징을 보아서, 호세아의 문체는 아모스와는 대단히 다르다. 그의 예언은 간결하고 핵심적이며, 아모스의 설교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점층법(漸層法)을 사용하지 않는다. 예민하고 정열적인 성격이 그의 어투에 잘 나타난다. 아모스가 격렬하게 탄핵한 곳과 비교 할 때, 호세아는 간청하고 있다. 아모스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무자비하게 심한을 가했고 강철과 같은 인상을 주었다면, 호세아는 그가 선포하지 않으면 안 될 가혹한 심판의 말 대문에 먼저 그 자신이 찢기고 피를 흘린 사람이며, 이점에서는 예레미야와 비슷하다.20)


④ 양식비평적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시도 또한 계속 장애에 부딪쳐 왔다. 양식비평 연구는 때로 몇몇 부분들을 보다 뚜렷한 역사적 초점 속에 가져다 놓는데 성공하였다. 예컨대, 알트(Alt, A.)는 5,8절 이하를 734년에 있었던 시리아-에프라임 전쟁이라는 위기와 관련시켜야 한다는 것에 대한 훌륭한 논증을 제시하였다. 볼프(Wolff, H.W.)또한 예언적인 논박 신탁들의 단편들과 언행록(memorabilia), 심판신탁들 및 예언적 약속들의 단편들을 밝혀냈다.21)


⑤ 이 책의 편집적 발전의 역사도 마찬가지로 당혹케 하는 것이다. 확실히 이 문제를 가장 철저하게 추구한 공로는 Wolff의 것이다. 그는 호세아의 예언이 선포에서 편집까지 어떠한 경로를 거쳐왔는가를 질문하면서, 세 가지 다른 전달 복합체를 주장한다.22)


3,1-5 언행록23)의 1인칭 형태로 미루어 보아 예언자 자신이 문서전승의 한 부분에 참여한 것이 거의 확실하게 드러난다. 2,4-17(2-15)의 주제와 구성형태가 3,1-5과 함께 오래된 문학적 단위를 이루었다는 것을 가정하게 한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1,2-6 · 8f의 3인칭 보도에서 상당히 명백하게 상이한 손질의 증거를 볼 수 있다. 즉 여기에서 호세아의 제자들 중에 하나가 언행록(3,1-5)의 형식과 똑같이 그의 예언활동의 시작을 제시한다. 아마도 같은 제자가 2,18-25과 2,1-3로 호세아 본인의 저술(2,4-17; 3,1-5)을 확장했을 것이다. 그것은 2,18-25과 2,1-3이 1,2-6 · 8f의 언행록과 비슷한 구성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1,2-6 · 8f와 2,1-3,5이 이 책에서 최초의 전승 복합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두번째 커다란 전승 복합체는 극소수에 불과한 본서의 공식문 표지 가운데 두 개인 4,1a의 “들어라, 야훼의 말씀이다”(הוהי־רꔨꕎ וּעꗱꚄ)라는 말과 11,11bβ의 신탁의 형식인 “야훼의 말씀이다”(הוהי־םꔡꘁ)라는 말로 소개되며, 결말이 지어진다. 이것은 전달된지 얼마 안되어 호세아의 제자집단 안에서 케리그마적 단위들로 기록되었다.


세번째 복합체는 12-14장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은 예언자 자신에게까지는 거슬러 올라가지 않지만, 그의 제자 집단에게서 생겨난 것이며 북왕국의 마지막 시기로 그 연대가 정해진다. 이 세 가지 복합체는 후에 표제를 첨가하고 몇몇 문단들을 “새롭게 고친” 신명기적 편집에 의하여 전달되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복합체는 모두 고발과 심판에서 구원약속으로 옮아가고 그리고 이들 각각은 상이한 저자들에게서 유래한다고 볼 수 있지만, 그들은 모두 호세아 시대의 추종자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이었고,  또한 그들은 신명기 운동의 선구자들이었다. 이것은 곧 호세아 전승과 그의 언어 그리고 신명기의 신학 사이에 상당한 연결에 의해 지시되어진다.24) 즉 언어학적인 면에서 그리고 개념적인 면에서 신명기 사상과 현저한 유사성을 보인다는 것이다.25)


끝으로 1,7과 3,5의 확장부들은 초기의 유대적 편집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26)


일부 학자들은 호세아가 원래 말했던 것은 심판에 대한 예언부분뿐이고, 회복되리라고 하는 희망을 말을 하는 부분(1,10-11; 2,14-23 등)은 후기 편집자의 산물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27)


⑥ 호세아의 메시지는 이스라엘 전승 가운데 확고하게 뿌리내리고 있다. 우선 호세아는 자기가 모세에까지 소급되는(12,14) 이스라엘 예언의 전승 가운데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6,5; 9,7; 12,11). Wolff는 호세아가 당대의 이스라엘 신앙의 가나안화에 반대하여, 모세의 야훼신앙에 속한 고대 출애굽 전승들이 확고하게 서 있는 북왕국 레위인 예언운동에 속해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의 “호세아가 이스라엘의 참된 사제의 모습을 명백하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4,6; 6,6; 8,12이하).


이러한 것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호세아를 이러한 집단에 구체적으로 얽어매는 것이 필요한 것같지는 않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종교에 대하여 진지한 관심을 가졌던 이러한 류의 모든 집단들이 그 전승들을 잘 알고 있었으리라는 것”28)을 우리가 가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분명 호세아는 출애굽과 광야 방랑, 야훼와 이스라엘 계약의 고대 전승들을 취하여 사용한다. 특별히 계약으로서의 관계의 관념은 8세기 예언자들보다는 후대의 견해라는 것, 그리고 8,1은 후대의 첨가로 간주되어야만 한다는 것이 주장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불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호세아는 이스라엘 역사의 흐름 가운데 확고하게 서 있는 다수의 다른 고대의 전승들에 대해 언급한다.


신명기와 호세아의 관련성은 특히 현저하다. 예를 들어 양자 모두 사랑의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연결점으로 보며(3,1; 11,1 · 4; 14,5; 신명 6,5; 7,8), 양자 모두 모세를 예언자로 간주하며(12,14; 신명 18,15), 양자 모두 지혜자이신 하느님을 잊어버리도록 하게 하는, 하느님의 선물들에 대한 만족의 위험을 강조한다(13,5이하; 신명 8, 11-20). 이러한 관련성은 신명기가 호세아를 의지하여 집필되었다는 것을 가정함으로써가 아니라, 호세아가 신명기에 나타난 이스라엘 전통의 특별한 흐름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봄으로써 설명된다. 이러한 견해는 신명기에 대한 이 정도로 이른 초기 연대를 입증해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견해는 신명기 안에 있는 많은 전승들이 분명 매우 고대의 것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이스라엘 왕권에 대한 호세아의 견해는 전승의 보다 새로운 측면에 대한 그의 입장을 보여준다. 에언자는 한결같이, 하느님에 의해 선택되지 않았기 때문에 부적합한 그의 시대의 북왕국의 군주정치에 대해 비판적이었다(8,4). 흔히 가정되고 있듯이 호세아가 과연 이같이 왕권을 비판했겠느냐 하는 것은 논쟁점이 되고 있다(9,9 · 15). 적어도 판관시대의 지도력의 전승을 지속하고 있는 북왕국의 ‘카리스마적인’ 왕권에 대한 견해와, 다윗 가문과 연관되어 있는 남왕국의 ‘왕조적인’ 왕권에 대한 견해 사이를 예리하게 구분해야 하느냐 하는 것은 의문시된다. 오히려 구약은 하느님에 의하여 선택된 왕들과 그렇지 못한 왕들 사이를 구분하며 호세아도 이러한 견해와 노선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는 유다의 다윗 왕권을 ‘모든 이스라엘’을 위한 유일한 합법적 통치로 간주하였겠는가? 이러한 주장은 2,2 및 3,5과 같은 구절들에서 취하여진 견해에 따라 죄우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가 호세아 자신에게로 소급된다는 것이 불가능하지도 않다.




2.2 본문 구분




이 책에 명백한 순서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도 우리를 계속 당황하게 만든다. 특히, 4-14장과 관련해서는 대체적인 구분선들을 확정하려는 노력조차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킨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예언서를 두개의 불균등한 단원들로 구분하다. 즉 1-3장과 4-14장으로 구분하다. 1-3장은 이 책 전체를 읽을 수 있는 주석적 열쇠를 제공해 준다. 4-14장은 이제 무엇보다도 죄를 고발하여 재앙을 알리는 류(類)의 커다란 신탁수집이며, 거기서 정수를 이루는 것은 호세아 예언자가 말하는 논쟁의 양 주요주제들이다. 즉 ① 제의, 특별히 가나안이나 가나안적인 영향을 받은 제의에 대한 비판과 ② 왕국의 인간적인 힘의 수단에 근거하는 정치에 대한 비판이다.29) 이 전체 수집은 여러 작은 수집들이 합쳐진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러한 구분은 다음과 같이 세분될 수 있다.




1.  1-3장           호세아의 결혼


    1)  1,2-2,3      고멜과의 결혼(희망의 말씀  2,1-3)


    2)  2,4- 25     법적인 변론(희망의 말씀  2,18-25)


    3)  3,1-  5     여인을 다시 집으로 데려 오라는 명령(희망의 말씀 3,5)


2.  4-14장          이스라엘에 관한 신탁


    1)  4, 1-10     이스라엘의 죄와 사제들의 유죄


    2)  4,11-19     이스라엘의 방종과 우상숭배


    3)  5, 1-7      사제,왕,백성의 더러워짐


    4)  5, 8-6, 6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한 위협


    5)  6, 7-11a    이스라엘의 계약파기


    6)  6,11b-7,7    이스라엘의 사악함


    7)  7, 8-16     열국들과 바알에게 향함


    8)  8, 1-14     거짓된 예배와 거짓된 왕들


    9)  9, 1-9      부도덕하고 우상숭배적인 예배


    10) 9,10-14     바알브올에서의 이스라엘의 배교


    11) 9,15-17     길갈에서 시작된 이스라엘의 사악함


    12) 10,1-8      송아지와 왕의 몰락


    13) 10,9-15     기브아에서 시작된 이스라엘의 사악함


    14) 11,1-11     야훼의 부성애와 그의 죄지은 아들      


    15) 12,1-15     야훼의 공박, 야곱으로 더불어 시작함


    16) 13,1-11     야훼로부터의 이탈, 그로 결과된 죽음


    17) 13,12-14,1   도래할 처벌에 대한 최종적 포고


    18) 14, 2-9     회개와 돌아올 것은 호소함, 그의 은총약속


    19) 14,10       결어




2.3 신학30)




호세아 예언서 전체의 초점은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이다.31) 이러한 관계를 호세아는 결혼관계로 비유하여 말하고 있다. 이스라엘에서 계약을 결혼에 비유하여 해설한 예언자는 호세아가 처음이다.32) 이스라엘은 그의 남편인 야훼를 떠나서 바알 및 국가의 군사력과 동맹국들에게 의존함에 따라 창녀와 같이 되었다. 그에게 있어서 죄의 본질은 이스라엘이 국가를 유지하고 인도하는 데에 하느님이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호세아는 모든 종류의 우상숭배를 가혹하게 비난했다.33)




호세아의 신학에서 두 가지의 중심 용어는 히브리어 ‘헤세드דꘑꖒ’(信實한 사랑)와 ‘다이트 엘로힘םיꕙꗟא תꘞꕈ’(하느님에 대한 지식)이다.




헤세드는 애정관계에서 있어야 할 충성과 헌신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이 용어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의 자세(2,21)뿐만 아니라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바라는 응답에도 역시 사용되고 있다(4,1; 6,4 · 6; 10,12; 12,7).34) 하느님의 확고부동한 사랑은 그 백성의 사랑의 결핍과 대조를 이룬다. 이상적 관계(2,21이하)가 현재로서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 때문에, 또한 비록 야훼께서 그의 백성을 구원하기를 원하시나 그들이 그러한 사랑을 지니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7,1; 10,13;이하) 심판은 도래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심판은 사랑의 심판이기 때문에 이 심판이 이야기의 결말은 아니다. 호세아는 도래하는 심판 너머로 회복, 구원, 깨어진 관계의 갱신을 바라보았다. 호세아는 하느님의 백성의 죄가 아니라 그의 값없이 베푸시는 은총이 최후의 언어가 되는 그러한 하느님을 선포한다.35)




하느님에 대한 지식은 두 가지 측면에서 살필 수 있다. ① 가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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