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
① 야훼는 지역신, 민족신, 이스라엘만의 신이 아니라 그 주변국가에도 관심을 가지고 모든 국가에서도 지배권을 지니신 분이다.
② 모든 국가는 (하느님에 대한) 지식정도에 따라 심판받는다. 자신의 행위에 따른 심판을 받는다. 계시내용에 의해서도 심판받는다(1.3-2.3). 이교국가들의 죄악을 열거하고, 도덕적 한계를 넘어서 고발한다. 야훼는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라도 똑같은 원칙에 따라, 원칙을 어기면 심판하신다. 계시가 많을 수록 하느님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하신다고 아모스는 말한다. 계시를 많이 받을수록 더 많은 책임이 따른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더 큰 책임이 있다. 특권은 책임을 갖는다.
③ 당대의 사람들에게는 <야훼의 날> 사상이 널리 유포되어 있었다. 그날이 오면 야훼는 주변국가를 심판하시고 예루살렘이 세계의 중심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모스는 야훼의 날이 오면 이스라엘도 심판을 받는다고 말한다(15.18-20참조). 따라서 야훼의 날이 희망의 날이기보다는 저주의 날이 될 것이다.
④ 아모스서는 야훼께서 정의로우신 분이라고 한다. 정의의 실천여부로 하느님 백성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옳고 그름, 선악의 기준이 있다. 야훼께서는 여기에 근거해 바르게 행위하신다. 하느님이 의로우니 그 백성도 의로워야 한다(에제키엘, 레위기의 정신). 아모스는 법정에서의 불의, 도덕에 대한 무관심을 보고 개탄한다. 하느님은 이러한 것에 대해 참을 수 없고 참지 않으실 것이다. 사제와 경신례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정의를 뒤로하고 이루어지는 것을 반대한다(5.21-27).
⑤ 작은 희망이 나타나 있다. 대체적으로 희망이 작게 나타남. 한 나라가 타락했다면 분명히 심판이 찾아온다(7.7-9).
아모스는 예루살렘에서 몇 마일 떨어진 드고아의 목자 출신으로서(아모 1,1) 유다의 우찌야와 이스라엘의 여로보암2세 때에, 특히, 여로보암 2세(786-746)의 통치가 절정에 달했을 무렵 북부왕조에서 활약했다. 아모스와 베델 성전의 주임 사제인 아마지야의 상봉을 다루는 산문인 7,10-15에서 아모스의 출신 배경이 나타나는데, 그는 유다 출신으로서 목자로 돌무화과 나무를 가꾸는 농부였다고 한다. 이 장면에서 아모스는 자신을 예언자(nabi)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렇다고 예언자들을 경멸한 것은 아니다. 그는 야훼께서 당신 백성에게 경고를 내리기 위해 예언자들을 세운 것을 알고 있었다 (2,11;3,7). 그는 자기 자신을 나단, 엘리야, 미가야 같은 에언자들과 비슷한 신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만, 그가 주장하고자 한 것은 당대의 직업적인 성전 예언자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여로보암 2세때에 시리아는 약화되어 있었고, 앗시리아는 내정문제로 골몰하여 이스라엘은 국가적으로 부흥과 경제적 발전을 누리고 있었으나 사회에서는 사치 풍조가 만연하였고 부정과 불의가 난무하였다. 매음행위와 퇴폐풍조의 만연과 더불어 예배행위도 타락하였다. 8,4-6에서 아모스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돈벌이에 혈안되어 예배는 건성이었다고 한다. 즉 그 시대의 극단을 걷는 퇴폐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앗시리아에서 디글랏빌레셀 3세가 왕위를 찬탈하면서 BC 805년 시리아를 공격한 후 세력을 확장시켜 팔레스티나를 정복하게 된다. 이 사건은 호세아 예언서에 반영되어 있다. 아모스 시대에는 앗시리아의 위협이 아직 수평선에 떠오른 먹구름의 상태였으며 아모스는 그것을 폭풍의 징조로 보았다. 또한 그것을 아모스는, 단지 앗시리아 제국주의적인 야망만이 아니라, 정치무대에서 활동하는 야훼의 의도로 간파하였다.
그러나 사마리아와 유다는 여전히 자만에 빠져 있었고 이에 대해 아모스는 칼의 야만성, 포로, 황량한 도시, 정치적 파탄 등의 강력한 말을 퍼부음으로써 당시 사람들에게 충격적인 파문을 일으켰다. 덧붙여 남부 출신의 예언자가 북부 왕조에 나타난 사실을 보면, 당시 유다와 이스라엘의 분열은 정치적인 것으로서, 이 두 왕국이 공통의 종교적 전승에 의해 여전히 하나의 계약 백성 으로서의 유대를 맺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구조와 내용
가. 이방국가에 대한 심판 신탁 (1,1 – 2,16)
① 다마스커스 (1,3-5)-하느님의 개입과 그 결과가 서술
② 가자와 팔레스틴 (1,6-8)
③ 띠로 (1,9-10)
④ 에돔 (1,11-12)
⑤ 암몬 (1,13-15)
⑥ 모압 (2,1-3)-모압은 에돔에 대해 국제법상의 계약을 위반했기 때문에 심판을 받는다.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으로서 이스라엘 밖에서도 정의를 행하시는 분이다.
⑦ 유다 (2,4-5)
⑧ 이스라엘에 대한 신탁 (2,6-16)
1, 2장을 결론짓는 부분. 아모스의 전형적인 예언형태인 사회에 대한 고발, 여러 민족의 불의를 고발하였지만 그가 강한 어조로 힐난한 것은 가난하고 억눌린 이들에 대한 압제와 불의이며, 그는 사회정의를 깨친 사람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규탄한다. <예언서 특징>
나.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신탁 (3,1-6; 14; 8,4-14; 9,7-10)
ⓐ 선택받은 이스라엘의 책임과 처벌 예고 (3,1-2)
이방국가들이 심판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선택에는 책임이 뒤따름을 지적.
ⓑ 하느님과 예언자의 행동 : 아모스 소명 암시 (3,3-8)
하느님의 부르심앞에서 어쩔 수 없음을 묘사
ⓒ 사마리아에 관한 신탁 (3,9-15)
사회를 고발하는 아모스의 전형적 모습
ⓓ 바산의 암소들 : 사마리아 귀부인들에 관한 신탁 (4,1-3)
ⓔ 겉치레 예배 (4,4-5)-거짓 예배 비난 (5,4-6; 5,21-25; 2,8; 9; 14; 4,4-12)
ⓕ 이스라엘의 위선과 고집 (4,6-12)
ⓖ 야훼께 대한 송가 (4,13)-찬양시 형태로 등장
ⓗ 이스라엘의 만가 (輓歌 : 상여를 메고 갈 때 부르는 노래 : 5,1-3)
ⓘ 생명 또는 죽음 : 살 길을 찾아라 (5,4-6; 5,14-15)
ⓙ 야훼께 대한 송가 (5,8-9)
ⓚ 이스라엘의 죄상 (5,7,10-13)
ⓛ 야훼의 날은 패전의 날 (5,18-20)
ⓜ 겉치레뿐인 예배의 거부 (5,21-25)
ⓝ 향락에 빠진 사마리아 지도자들에게 (6,1-7)
ⓞ 수도 사마리아의 멸망 (6,8-11)
ⓟ 미친듯이 날뛰는 법관들과 허망한 승리 (6,12-14)
ⓠ 빈민을 착취하는 상인들의 탐욕 (8,4-8)
ⓡ 야훼의 날 (8,9-13)
다. 보도기사 (7,1-8; 3; 9,1-4)
1) 다섯개의 현시(7,1-3; 4-6; 7-9; 8,1-3; 9,1-4)
① 7,1-3 : 첫째 현시-메뚜기 떼 : 국가적 재난과 국가적 탄식을 불러일으킴. 예언자가 올리는 중재기도 속에는 민족 탄식시가 암시되어 있다.
② 7,4-6 : 둘째 현시-삼키는 불 : 불은 주로 정화의 의미 (심판때 동원). 국가적 탄식을 유발시키고 가뭄의 재난이나 예언자의 중재 기도로 하느님은 노여움을 푸신다.
③ 7,7-9 : 셋째 현시-연추(납으로 된 추) ꠏꠏꠏꠈ 첫째, 둘째와는 달리 예언자는 용서하지
④ 8,1-3 : 넷째 현시-여름철 과일 바구니 ꠏꠏꠏꠎ 않겠다는 하느님의 심판을 전한다.
※ 야훼의 심판
요엘서-① 구원의 보증과 결과 (하느님의 응답)
② 심판의 선언 (하느님의 개입과 그 결과)
따라서 셋째, 넷째 현시에서 하느님의 개입은 연추를 드리우는 것과 같으며 그 결과는 여름철 과일 바구니가 암시하는 내용으로 종말이 다가왔음을 의미
⑤ 9,1-4 : 다섯째 현시 : 제단에 계신 하느님의 모습-심판의 불가피성
2) 아모스와 아마지야의 대결 (7,10-17)
아모스가 3인칭으로 묘사-아모스에 대해서 전해지는 바를 누군가가 기록함.
아모스는 앞에서의 심판 예고로 베델의 왕실 성소에 있는 사제 아마지야에 의해서 추방당한다. 아모스는 자신의 메시지가 진리임을 선포한다. 그러나 성전 예언자나 직업예언자가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예언을 받아 말씀을 전한다. 즉 자신이 수행하고 있는 일은 성소에 의해서 임을 말한다.
아마지야와 아모스의 대화(7,12-15)에서 그들의 어떻게 예언직과 사제직을 수행하고 있는지 대조적으로 나타난다. 즉 아마지야는 베델의 성전을 왕실 제단으로서 그리고 사제 직분을 왕실 관리로서 취급하는 등 자신의 직분뿐 아니라 예언직까지도 직업으로 간주한다. 이와는 달리 아모스는 예언자는 소명에 의해서 활동하고 움직인다고 주장한다. 아모스는 이것을 강하게 표현하며 “야훼께 붙잡혔다.”라고 까지 하며 예언자적 의식을 드러낸다(필립비 3,12 참조).
여기서의 ‘붙들렸다.’는 하느님께서 붙들었지만 내가 원해서 선택했다는 것으로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된다. 이처럼 아모스는 사제직 예언직을 하느님의 부르심으로 소명감을 가지고 수행했다.
라. 구원에 관한 약속(9,11 – 15)
고대 근동 문헌에서는 심판 예고 뒤에는 항상 번영과 행복의 약속이 있고 그 뒤에 마지막으로 구원이 언급된다. 아모스도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의 마지막 말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임을 암시하는 구절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5,14-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