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하깨는 구약의 대예언자 이사야, 예레미아, 에제키엘, 다니엘과 소예언자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디야, 요나, 미가, 나훔, 하바꾹, 스바니아, 하깨, 즈가리야, 말라기 중 하나이다. 바빌로니아에서 돌아와 성전(聖殿)을 재건하는데 큰 영향을 끼친 책이다. 하깨라는 말은 ‘야훼의 축제’라는 말의 축약형으로 ‘축제’라는 뜻이다. 기원전 586년의 성전 파괴 이후 하깨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즈루빠벨이 유다 총독으로 있던 기원전 520년에 활동하였다. 하느님의 뜻을 새겨온 하깨는 ‘야훼의 날’이 임박한 것으로 이해하고 유배와 식민통치로 실의에 빠진 민족이 간절하게 기다리던 메시아 왕국을 선포하고 이를 준비하도록 활동하였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야훼를 민족의 중심에 두는 노력으로서 유배 이후에 시작했다가 중단된 성전을 재건하는 것이었다. 성전 재건 사업에 착수해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지만, 하깨를 통해 야훼께서 평화를 주시는 날, ‘축제의 날’을 준비시키신 대로 드디어 기원전 515년에 성전에 완공된다.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유다인들은 매우 가난했다. 게다가 팔레스티나에 남아 있던 지방민들의 방해로 시달림을 받아 실의에 빠져 있었다. 예언자 하깨는 그들에게 시대의 징표를 해설하며, 귀향한 공동체가 겪는 가난의 원인은 바로 종교적 열성이 저하되고 성전을 짓지 않는데 있다고 지적하며, 이방민족의 왕국이 뒤흔들리는 것은 (하깨 2,7.22 참조) 하느님께서 또다시 당신 백성의 역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신 증거라고 보았다1). 따라서 하깨에게 있어서 중추적 논점은 “성전 재건을 통한 야훼의 영광”이다. 유배 이후 공동체의 큰 관심사는 ‘하느님의 현존 문제’였기에 성전 재건이 야훼의 영광을 다시 찾아오는 계기가 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제 성전은 다윗 왕조의 회복과 더불어 귀환 이후 공동체의 종교적 열정에 구심점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 성전이야말로 하느님의 평화가 깃든 곳이며, 만국이 사모하는 곳이 될 것이며, 또한 뭇민족이 보화를 가지고 그 곳으로 모일 것이다. 하깨는 성전 없는 유다의 부흥이란 있을 수 없다고 보았다. 이제 본문 안에 나타난 성전 재건에 대한 야훼의 말씀을 중심으로 살펴보며, 가견적 성전보다는 그 성전의 중요성에 대해 더 중점을 두고 알아보고자 한다. 여기에서 문헌비판이나 집성 과정을 다루지 않고 야훼의 말씀 안에 나타나는 관용구에 대해 살펴보며 본문을 이해하고자 한다.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언어와 문화, 그리고 사상은 성서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장벽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기본적으로 그때, 그 당시의 역사적인 상황을 알아보고, 사회의 사상적 흐름과 문화, 그리고 당시의 종교적 분위기를 찾아봄으로써 주관적인 오류에 빠지지 않으려 한다.
1.1. 하깨서에 대한 이해
1.1.1 하깨서의 일반적 특성2)
하깨서는 직면한 사건을 4개의 하느님 말씀으로 표현한다(1,1-15; 2,1; 1,10; 2,20). 이것들은 하깨에 의해 전달된 예언적 열정과 훈계에 기초하고 있다. 세 개의 “물결 위에 퍼지는 원의 형식(growth rings)”은 하깨를 통한 예언적 선포이다. 이러한 예언 구조는 문학적 감각 안에서 예언자로부터 유출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자전적인 문체인 ‘나’는 결코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하깨가 출현했을 때의 상황 안에서 기록된 예언자의 말이나 혹은 그들의 영향에 대한 역사(1,12b-13), 혹은 그들에 앞선 역사들을(2,11-13) 하깨의 청중들 중에 반대자들(1,2) 만큼이나 보존하려고 했던 제자들(이사 8,6; 예레 36)의 말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직면한 말씀이라는 사건을 소개하는 서문은 보다 바깥의 원을 이룬다. 이것들은 규칙적으로 발언된 날짜를 단편들의 실제 본문에 첨가한다. 이 서문들은 일반적으로 더욱 더 중점적으로 직면한 야훼의 말씀을 첨가하고 있으며, 말씀의 중개자로서 하깨를 언급한다. 그리고 마침내 예언적 말씀의 수신인이 나온다. 그 이름은 아마도 1,2의 사람들의 저항을 인식한 편집자의 이름이며, 그는 1,4 이전의 더욱 오래된 초기 단편들에서 취했을 것이다. 이것 역시 1,2b는 적합하지 않은 1,2a의 사자의 형식에 의해 제시되나, 단편들의 단어들과 조화를 이룬다. 편집자들은 상황묘사를 위한 서문으로서 1,2를 필요로 했다. 그후에 그는 3절에서 그의 전형적인 형식인 직면한 하느님 말씀이라는 사건을 뽑아 내고, 다시 1절의 단어들과 상응하여 중개자로서 하깨를 언급한다.
하깨서의 기원에 관한 고찰에서 초점은 단편들이 말씀의 수취인으로서 “백성들(1,2, 12b. 13a)” 혹은 “나라의 모든 백성들(2,4)”로 명명하는 한편, 편집자는 유다의 통치자 즈루빠벨과, 대사제 여호수아 그리고 그 후에 “유다의 나머지 백성(1,12a, 14; 2,2 ;2,4)”이라고 강조한다. 2,21에서 하깨의 편집자는 단지 수취인으로서 유다의 통치자 즈루빠벨을 언급하는 반면, 단편들에서는 즈루빠벨을 페르시아 통치자라는 언급없이 야훼의 종으로서 언급한다. “유다의 통치자”라는 이름은 비록 2,2의 편집자의 서문에서 신중하게 언급되고 있는데 비해 단편들에서는 이미 2,4에서 생략되어 있다. 이러한 관찰의 입장에서 단편들과 하깨 편집자 사이의 차이는 몇몇의 문제가 남아 있기는 해도 필요불가결한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단편들에 의하면, 하깨는 점진적으로 사람들을 성전 재건에 도움이 되도록 이끌었다. 그러나 하깨 편집자는 이 책의 네 번째 메시지에서 우리로 하여금 성전 재건이 본질적으로 통치자 즈루빠벨과 귀향한 그의 그룹들에 의하여 자극되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하깨 자신은 마지막 두 번의 출현으로 이러한 결정에 권위를 부여한다.
1.1.2. 예언자 하깨는 누구인가?
하깨는 기원전 520년 후반기에 등장한 예언자로서 열두 예언서의 열 번째 책으로, 하깨는 구약에 단 한 명뿐이다. 이 책에서 그의 이름은 9번 언급되고 있다(1,1.3.12.13 ; 21.10.13.14.20). 그는 즈가리야서와 함께 에즈라서 5,1 ; 6,14 에도 언급된다. 연대기적 순서로 따지면, 그는 12예언자들의 책에서 즈가리아에 앞선 예언자로 처음 언급된다.
구약 세계 안에서 하깨는 인기 있는 이름이었다. 이러한 증거를 히브리 인장들이나, 아람어의 원천에서 그리고 아카디안과 에집트의 병행구들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이름이 널리 퍼졌던 이유는 이름의 의미 때문이다. 즉, ‘축일에 태어난(יꕀꖏ)’은 길조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 이름은 아이의 출생에 대한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우리에게 전해진 구약에서 하깨는 그의 연대기 작가에 의해 “예언자”로 다섯 번 불린다. 그는 역시 에즈 5,1과 6,14에서 아람어권의 연대기 작가에 의해 두 번이나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 하깨의 메시지를 처음으로 전한 사람은 하깨가 이사 44,26과 2역대 36,15에서 오직 예언자에게만 적용된 이름인 “야훼의 사자”였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것이 성전 재건을 위한 그의 열정이 그의 생각을 이끌었을지라도, 그를 ‘제의적 예언자’로 바라보게 하는 이유이다. 성전 건축에 대한 그의 노력은 희망찬 내일의 기대와 함께 지속된다(2,6-9. 21. 23). 그러므로 하깨는 비범한 권위를 지닌 예언자로서 유배 후기 공동체에 강한 인상을 주었다. 그리고 그의 확신과 그의 타오르는 열정은 성공으로 이끌었다(하깨 1,12-14 ; 에즈 5,1 ; 6,14).
그의 활동 기간이나 그가 얼마 동안 존속했는지에 대해선 말할 수 없다. 그의 활동기간 세달 반(기원전 520년 8월-12월)은 확실히 날짜로 기입되어 있다. W. Rudolph는 2절에 기록된 사람들의 주장이 하깨서의 일부로서 초기 선포에 대한 반응이라는 것을 1,2로부터 연역해 낸다. 그러나 그의 연역은 하깨서의 편집 시기가 정확하고 완전하다는 것과, 하깨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단편들을 가지고 하깨의 연대기적 작가에 의해 재구성되었다고 볼 때 불확실한 것이다. 따라서 2,3으로부터 기원전 520년경에 활동했던 하깨가 기원전 587년 성전 파괴를 기억할 수 있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사실 이런 주장은 하깨의 말이 세달 반 이후에는 끊겨 있다는 말은 호기심을 갖게 한다.
1.1.3. 하깨서의 역사적 배경
하깨의 시대는 짧고, 다른 예언자들의 활동 연대와 달리 정확하게 예언들의 날짜가 기입되어 있고, 기원전 520년 후반기의 삼 개월 반 정도에 쓰여졌다. 즉, 다리우스왕 2년의 여섯 번째 달 초하루(기원전 520년 8월 29일)와 같은 해 여섯 번째 달의 24일(9월 21일), 일곱 번째 달의 21일(10월 17일), 그리고 기원전 520년 아홉 번째 달의 24일(기원전 520년 12월 18일)이다.
이 시대는 바빌론 유배의 말기이다. 그러나 기원전 587년 바빌론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되었다. 기초까지 무너진 성전은 아직 돌무덤으로 남아 있었으며 자칼(여우의 일종)들의 무리가 주의를 배회하고 있었다(하깨 1,4, 9 ; 애가 5,18).
바빌론의 포로로서 유대인들은 성전도 없고, 희생 제물도 없었다. 그들은 단지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할 수 있었다 (1역대 8,48; 다니 6,10). 페르시아왕 고레스가 그의 재위 1년에 예루살렘의 성전 재건을 명령하였다. 통치자로서 당시에 그 일을 착수하였던 세스바살(Sheshbazzar)의 작업은 심지어 18년 후에도 참담한 성전의 모습을 변화시키는데 거의 어떤 것도 한 것이 없었다.
더욱이 바빌론 유배로부터 돌아 온 사람들의 대표들은 고레스가 명령했던 성전 재건을 수행하도록 요구받고 있었다. 이 귀향자들의 무리는 아마도 고레스의 아들 캄비세스(Cambyses) 통치 2년 반 정도에 도착했을 것이며, 이는 의심의 여지없이 그의 에집트 종군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며, 혹은 기원전 522-521년에 다리우스 칙령이 변화되는 기간에 예루살렘에 왔을 수도 있다. 그들은 유다의 통치자로 임명된 즈루빠벨에 의해 인도되었다. 하깨와 같은 예언자들은 사람들에게 박차를 가하도록 하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 주었고 성전 재건의 희망은 이로서 한 번 더 빛나게 되었다.
사람들은 역시 페르시아 제국 변방으로부터 들려 오는 소식으로 긴장되었다. 기원전 522년부터 521년까지 다리우스 1세 히스타스피스(Hystaspes 기원전 521-48)는 수많은 반대자들과 싸워야 했고, 그것은 그가 나일강으로부터 인더스에 이르는 광대한 제국에 그의 칙령을 정립하기 1년 이상 전의 일이었다. 그리고 거의 이 시기에 하깨가 나타났다. 한편 많은 강대국들의 갈등은 보다 동쪽에서 일어났었기 때문에 예루살렘은 평화를 누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갈등의 세력들은 전면적인 충돌을 불러 올 수도 있는 예측불허의 긴장 속에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성전 건축의 역할에 대한 페르시아의 속국 유다와 이웃한 사마리아 사이에 부상하는 긴장이 예루살렘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최소한도로 작용케하였음을 의미한다(에즈 4,1-5; 하깨 2,14).
따라서 하깨가 성전 재건이 실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그의 경고는 페르시아 제국의 심장 속에 물결을 일으키게 했다(에즈 5,11-6,13). 솔로몬의 성전이 7년 반을 필요로 했던데 비해, 두 번째 성전은 페르시아의 도움으로 단지 4년 반 동안에 완성될 수 있었다(하깨 1,1, 15ab-2,1 ; 에즈 1,15; 열왕 6,1). 단 몇 달 동안의 예언자의 말이 원대한 결과를 이루었던 것이다. 그리고 비록 짧은 동안의 예언이었지만, 흩어진 백성들을 한 번 더 모을 수 있는 구심점을 찾았으며, 그 효과는 세대를 전환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하깨의 신탁에 있어 초기의 성공은 기원전 515년에서 성전이 완공되기까지 즈가리야의 계속된 신탁으로 보완되었다.
1.2 하깨서 1장 연구의 목적과 방법
구약의 예언자들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던 중 우선은 대예언자들보다 분량 면으로도 부담이 적은 예언자를 찾게 되었다. 열 두 소예언서들 중에 하깨서를 정한 것도 이런 의도의 작은 시도인 것이다. 2장으로 구성된 하깨서 중에서 1장에 나타난 야훼의 성전 재건 에 대한 말씀을 중심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하깨서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하깨서의 일반적 특성과 하깨 예언자에 대해 알아보고, 하깨서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봄으로써 유배 이후 공동체의 관심사인 성전 재건 문제를 살펴볼 것이다.
하깨서 전체 구조를 간단히 보고, 다음으로 1장의 구조를 살필 것이다. 구성 분석보다는 1장에 대한 본문 주해를 해 나가며 내용 분석을 하였다. 그러면서 그 안에 담긴 중요한 관용구와 단어는 사전을 이용하여 그 의미를 정리하였다.
1장에서는 이스라엘 성전을 소홀히 하고 있는 백성들의 게으름을 책망하며, 성전 재건을 권면한다. 성전을 짓지 않는 백성들의 현상황을 숙고하게 하며, 백성들이 이기적인 마음으로 자신들의 일이 풀리지 않는 상황을 열거하고 있다. 13-14절에서는 백성들이 말씀을 받아들이게 된다. 야훼께서 백성들의 영을 움직이시며, 성전 재건에서 오는 온갖 어려움 앞에서 늘 함께 하시는 약 속의 말씀으로 백성들을 격려하신다. 이제 각 절에 나타난 성전 재건에 관한 야훼의 말씀을 따라 가보기로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