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대이동과 교회의 포교 ,프랑크족과 앵글로색슨족의 개종,동로마제국과 이슬람

 

민족대이동과 교회의 포교




  ‘게르만’ 족들은 서로마제국의 영토를 점령하고 거기에 새로운 국가들을 세웠다.  그러나 아직 이교도였던 프랑크족을 제외한 다른 게르만민족들(반달족, 부르군트족, 동고트족, 랑고바르다족)은 거의가 다 이미 4세기에 아리우스파로 개종한 서고트족의 영향을 받아 아리우스주의를 신봉하고 있었다.  아리우스파 교회는 로마교회에서 분리된 교회로서 오직 왕에세만 충성을 요구했기 때문에 자연 아리우스파 군주들은 그들의 국가에서 가톨릭 주민들을 박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516년 남부 갈리아의 부르군트족이 가톨릭으로 개종한데 이어 589년에는 스페인의 서고트족이, 686년에는 이태리의 랑고바르디족이 개종함으로써 아리우스파는 소멸되었다.




  1-11. 프랑크족과 앵글로색슨족의 개종




  4세기에 북부 갈리아에 진출한 프랑크족은 클로비스왕을 맞으면서 그 왕국이 전 갈리아로 확대되었다.  이교인이었던 클로비스는 그의 부인 클로틸다의 권고와 특히 알라만인과의 전투에서 그리스도교의 신의 위력을 체험하게 되자 3천여 명의 프랑크인과 함께 가톨릭으로 영세 입교했다.(496년)




  클로비스의 개종은 교회사적으로, 또 세계사적으로 의미가  크다. 그는 이미 아리우스파로의 개종을 거절했으므로 그의 개종으로 아리우스파 게르만족을 정복하는 일이 쉬웠다.  또 프랑크족은 장차 서양을 지배할 세력이 되기 때문에 앞으로 탄생하게 될 그리스도교적 서구가 탄생할 전제가 마련된 셈이었다.




  로마령 브리타니아(영국의 중남부)는 이미 3세기에 복음이 전해졌었으나 5세기 게르만족의 침입으로 소멸되었다.  이에 그레고리오 대교황(590-604년)은 그 지방에 새로 정착한 색슨족에게 복음을 전할 결심을 하고 안드레아 수도원의 원장 아우구스띠노를 브리타니아로 파견해 켄트왕을 위시하여 만여 명의 세례를 받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로마로부터 계속 선교사들이 파견되었고, 아일랜드에서도 션교사들이 왔다.  곧 전 앵글로색슨족이 그리스도교 신도가 되었다.  영국교회는 7세기에 교회와 그리스도교문화의 전성기를 이룩하였다.




  이웃 아일랜드는 이미 5세기 중엽에 성 파트리치오에 의해 그리스도교화 되어 있고, 이 섬의 교회생활은 전형적인 수도 생활과 잩은 성격을 띄게 되었다.


  교회조직은 외적으로도 많은 수도원과 연결되었고, 이어 온 섬이 수도원으로 가득하게 되었다.  수도원이 교회, 종교생활, 심지어는 교회행정의 중심 역할까지 했다.  수도생활은 6세기에 대단히 유행하였다.


  수도원들은 신심생활의 고등교육기관이었다.  많은 성인과 학자들이 그곳에서 배출되어 사람들은 미구에 이 섬을 ‘성인들의 섬’, ‘박사들의 섬’으로 부르게 되었다.






  1-12.  동로마제국과 이슬람




  서로마제국은 완전히 멸망했으나 동로마제국은 계속 게르만족들의 위협을 받아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고한 국가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 철저한 가톨릭신앙에서 비잔틴 교회와 비잔틴 문화의 전성을 초래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527-565년)는 반달족과 동고트족을 정복하고 이태리에 비잔틴 정부까지 세울 수 있었다.  그러나 곧 랑고바르디족이 침입해 왔고 또한 페르시아, 슬라브, 불가리아 등 새로 등장한 이슬람으로부터 새로운 위협을


받게 되었다.


  헤라클리우스 황제는(610-641년)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기도 했으나 걷잡을 수 없이 침입해 오는 이슬람의 공격을 막기는 어려웠다. 




  아랍인들이 637년 예루살렘을 점령한데 이어 팔레스티나, 이집트, 북아프리카를 잇따라 점령함으로써 지중해는 이 세력에 의해 가로막히게 되었다. 


그러자 자연히 동방교회는 서방교회의 소통이 어려워질 뿐 아니라 상호의 화해가 더욱 어려워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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