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시아노주의 Novatianismus

  노바시아노주의  ~主義  Novatianismus

  초대 교회에서는 3가지 주요 죄목이 있었는데 그것은 간음, 살인 그리고 배교였다. 만일 세례 후 이러한 죄를 짓는다면 이에 대한 용서도 매우 어려운 절차를 거쳐야만 하였다. 일반적으로는 교회의 용서를 죽음의 순간에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세례를 죽음의 순간까지 미루는 경우도 있었다. 로마의 황제 데치우스(Decius) 치세 때 일어났던 대 그리스도교 박해로 인한 오랜 공위 기간 후 교황으로 선출되었던 고르넬리오(Cornelius)는 박해 기간 동안 배교하였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필요한 참회의 과정을 거친 후 다시금 교회에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결정을 내렸다.


  카르타고의 주교 치프리아노 역시 거의 같은 시기에 교황이 내렸던 결정과 유사한 결정을 내렸다. 로마의 사제 노바시아노는 치프리아노의 견해와 결정을 지지하였다. 하지만 교황 고르넬리오가 치프리아노 주교처럼 관대한 참회 실천을 결정하자 일단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이에 대해 반발하였다. 이들은 노바시아노를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여 대립 주교로 옹립하고자 하였다. 노바시아노는 교황 고르넬리오가 배교자들에게 용서를 약속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해서, 그리스도인들의 반발을 정당화시키는 데 동참하였다. 이러한 엄격주의를 표방한 무리들은 ꡐ순결파ꡑ에 속하였고, 이들은 거룩함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한 이상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대죄를 범한 모든 죄인들은 교회로부터 축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죄스러운 교회를 거슬러 투쟁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들은 또한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위임하신(요한 20,23)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부인하였고, 가라지와 그물에 대한 비유(마태 13,24 이하; 13,36 이하; 13,47 이하)를 비판하였다. 수많은 추종자들은 노바시아노의 주장을 지지하였고, 지지 세력은 동방에까지 확산되었다. 그러나 7세기에 들어와지지 세력은 소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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