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시기는…

 

대림이란 인류가 수세기에 걸쳐 고통스러운 체험을 하면서 구원에 대한 간절한 열망에 싸여 ‘그분’께서 승리자로서 또한 정의와 평화를 일으켜주시는 분의 모습으로서 이 세상에. 선택된 백성의 역사적 구조 안에 그리고 온 인류의 보편적 계획 안에 오실 것을 기다리며 준비하고, 바라고 희망하는 것을 의미한다.


“형언할 수 없는 행복에 찬 미래를 바라보며 그 특별한 인물-가장 이상적인 왕 다윗의 형상을 자신의 초월적, 해방적, 구원적, 신비적인 인격 안에서 변형시킨 분-을 향한 이러한 영성은 구약성서를 통해 연연히 흘러내려왔으며 인류의 불행스럽고 암담한 역사적 현실과 함께 더욱더 뚜렷하게 발전해 내려왔다. 그리고 인류는 이 영성을 점점더 적대적 현실에 직면하게 되는 신심을 통해 보존해 왔다”(교황 바오로 6세의 담화, 1974. 12. 4).


구약성서 전체를 통해 흐르고 있는 ‘대림’은 미래를 향해 뻗어가는 기다림의 ‘정신’으로서, 이스라엘뿐 아니라 온 인류가 수천년을 기다린 그 신비스러운 인물 즉 그리스도의 오심으로써도 끝나지 않는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역사느 ‘그분께서 우리와 함께 계셨던’(요한1,14참조) 그 유한한 시간에 제한되지 않고, 모든 시대의 인간들이 그분께 대해 갖게 되는 항상 새로운 체험을 통해 마침내 그분께서 영광중에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된다.


그러므로 기다림은 결코 우리 세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더 먼 미래를 내닺보며, 우리 안에서 그리고 역사와 세상과 교회 안에서 성숙되어 나가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매순간 오시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신자는 항상 ‘대림’을 살며 그분을 영접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대림절과 함께 전대미문의 ‘새로운’ 어떤 것에 대한 간절한 열망이 솟아오른다. 이 열망은 이 시기의 그레고리안 성가의 감동적인 격조를 통해서도 잘 반향되고 있다.


그러나 이 전대미문의 ‘새로운’ 것은 이미 일어난 것으로서 우리가 그것과 재일치하고 또한 그것을 다시 체험하기 위해 과거를 향해 마음과 정신을 돌려야 할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일어날 것으로서 하느님께서 계획하시고 또한 우리의 열망과 원이에 의해서 그 어떤 결정적인 순간에 모습을 드러내도록 작정되어 있는 것인지?


이 ‘새로운’ 것은 오랜 세기에 걸쳐 그리스도의 현존이 확산되어 왔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이 ‘새로운’ 것은 바로 그리스도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성 이레네오는 “그분이 오신 뒤에는 우리가 기다려야 할 다른 어떤 새로운 것은 없다”라고 말했다.




모든 역사가 ‘대림’이다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있어 모든 역사가 대림의 ‘연속’인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이전의 모든 기다림의 시간은 ‘대림’이다. 어떤 의미에서 성탄은 그러한 기다림을 끝맺게 한다. 대림시기의 전례는 우리가 구갹성서의 예언자들이 가졌던 괴로움과 간원과 원의로 충만된 자세로써, 또한 마리아가 지녔던 초조함과 부드러움, 섬세함과 모성적인 기다림의 태도로써 그 사건을 생활 속에서 재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좀더 구체적인 면에서 볼 때 대림시기는 우리를 최초의 예수 탄생의 신비를 살도록 이끌어주고 준비시켜주는 시기이며, 또한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의 구세주를 경배하기 위해 출생지인 베들레헴을 향해 가는 목자들과 동방박사들과 함께 여행하게 하는 시기이다.


그렇듯 ‘대림’은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도 감동적인 사건을 반향하지만 우리를 과거의 사건에 대한 회상에만 머물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미래를 향해 가고 있으며 역사는 멈추지 않는다. 우리가 방금 말한 대로 ‘새로운’ 것이 그리스도 자신이라고 한다면 그분 아닌 다른 무엇이 미래에 있어서 우리에게 새로운 것이 될 수 있겠는가? 사실, 그리스도는 첫번째 오심에서 끝난 것이 아니다. 즉 그분이 장차 세상을 심판하러 오시어 그분의 영광스러운 왕국에 우리를 초대하실 때의 결정적인 오심이 있다. 전례에서 “우리는 당신의 오심을 기다리며 당신의 부활하심을 선포합니다”라고 외칠 때 우리의 갈망은 바로 이 결정적인 ‘대림’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 볼 때, 만일 우리가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자비로운 심판을 은근히 예견하고 기대하면서 매순간순간에 복음의 본질을 생활화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이 결정적인 대림을 잘 준비할 수 없다. 대림을 잘 준비한다는 것은 그분의 진실에, 그분의 요청에, 그분의 부르심에 그리고 매순간 살아야 할 그분의 메시지에 대한 완전한 개방을 의미한다. 이렇게 할 경우 그리스도께서는 늘 우리의 생활 속에, 교회의 생활 속에 그리고 이 세상의 생활 속에 오시어 함께하시게 된다.








그러므로 그분의 ‘도래’는 우리가 처하게 되고, 그리스도의 현존으로 채워야 할 상황들이 항상 새롭고 다르다는 의미에서뿐 아니라 그분께 대한 윌의 사랑과 믿음의 증거가 항상 부족하여 우리의 매일매일의 현실에 그분께서 보다 깊이 참여하셔야 할 공간이 남아 있다는 의미에서도 늘 ‘새로운’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대림은, 대림의 근거를 밝혀주는 전례시기를 초월하여 우리 신앙구조의 본질적인 구성요소가 된다고 할 수 있다. 대림은 항상 계속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자신 안에 총괄하시는 분으로서 항상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 바오로 사도는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있다.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또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1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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