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참회예절과 강론(예) |
1. 시작 성가 : 26번 (이끌어 주소서)
2. 성호경과 평화의 인사
† 사랑과 자비를 베푸시는 성부와 은총과 용서를 내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화해와 일치를 이루시는 성령께서 여러분과 함께
◎ 또한 사제와 함께
3. 기도의 권고와 기도
†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 속에 참회와 속죄의 정을 일으켜 주시도록 간구합시다.
† 주여, 당신의 성령을 우리 가운데 보내시어 우리 모두를 참회의 깨끗한 물로 씻어 주시고 산 제물로 삼아 당신께 바치게 하시며,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은총과 생명을 누리며 언제 어디서나 당신의 영광을 기리며 당신의 자비를 찬양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의 ·······
◎ 아 멘
4. 말씀의 전례
∘ 복음 : 마태 18, 21-35 (형제를 용서해야 용서 받으리라)
∘ 강론 : 예식 설명 · 주의사항
강 론 (例)
「성스러운 예수님의 성탄을 맞이하여,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며 기도하시기 위하여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고백의 성사!” ····· 하면, 누구는 퍽이나 짐스럽게 여기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면, 왜? 고백의 성사가 나에게 그처럼 짐스러운가?
누구는 자기가 진 죄가 너무 부끄러워 고백하기가 어려워서 ···········
또 누구는 생각해 보니, 별로 잘못한 것도 생각이 나지 않아서 ···········
또 누구는, 이렇게 꼭 고백을 하여야 하나? ········· 하는 반문도 하실 것입니다.
루가 3, 3에서 보면, 세례자 요한은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회개하라!” 할 때, 사람들은 모두 요한에게 가서 죄를 고백하고 세례를 받았고 우리에게 일러주고 있다. 또한 마태 23, 37 이하에서 보면, 예수님은 회개하지 않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탄식하시며 회개하지 않음으로써 장차 당할 벌을 마음 아파하시며, 눈물을 흘리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회개” 란? ······· 어느 누가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그 잘못을 뉘우치고,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는 단순한 결심만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을 자기 중심적인 생활에서 하느님께로 향하는 마음과 생활로 바꾸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잘못했으니 고백을 하고/ 용서받고/ 또 가서 다시 자기 나름대로 사는 생활이 아니라!/ 아버지를 등지고 멀리 떠나갔던 탕자가, 이제 자신의 처지를 알고, 아버지의 집으로 가 아버지를 만나는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윤리적인 잘못을 청산할 뿐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찾아 그 분과 화해하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고자 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우리 모두는 개인의 윤리적인 잘못뿐 아니라, 가정에서 부모 모시듯이 하느님 앞에 지난날들을 어떻게 살아 왔는지도 살펴야 되겠고/ 하느님과 어떠한 친분 속에서 자신의 생활을 하여 왔는지도 살펴서/ 하느님께 좀 더 가까이 하는 자기 자신을 만들고자 다짐하는 가운데 은혜도 청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공동 고백! 하면, 개인 고백과는 달리,/ 어떤 큰 명절에 부모님 앞에 모든 형제들이 함께 모이듯이/ 우리 모두가 아버지이신 하느님 앞에 함께 모여, 같이 기도하며, 죄의 용서와 보속을 함께 드리고, 겸손되이 하느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은혜를 함께 청하는 데에 크나큰 뜻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그 무엇보다도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는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의 마음에 평화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평화는 무엇으로 가능하겠습니까? 그것은 우리 서로의 용서입니다.
하느님께 자신의 용서와 축복을 청하면서, 다른 이를 내가 용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스스로의 평화를 막는 것이며, 평화는 불가능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 말씀대로, 우리는 아버지이신 하느님 앞에 이웃을 용서함으로써, 주께서 주시고자 하는 평화 가운데, 이웃과 함께 하는 성탄 축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구세주의 성탄을 알리는 천사들은 노래하기를 “하늘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마음이 착한 이에게 평화!” ·····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크나큰 기쁨의 하나가 바로, 이 평화임을 우리는 다시 한번 되새기며, 오늘의 이 공동 고백을 통하여 우리 모두의! 또한 우리 서로의/ 예수 아기가 주시고자 하는 평화의 은혜를 받으며 서로 베풀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
◦ 공동 참회예절 : 강론 (60항)
◦ 독서 : 1요한 4,16-21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 복음 : 루가 18,9-14 (세리의 기도)
지금 이 시간은 하느님 앞에서 진정한 나의 모습을 드러내는 시간입니다. 하느님 앞에 죄인인 우리가 그분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또 그 분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이웃에 대한 ‘나’ 의 태도를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도시인들인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우리는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과 더불어 ‘나’를 실현시켜 나가고 또 그들 안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나아가서는 그 사람들을 통하여 하느님의 모습을 찾고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렇지만 우리 각자는 각기 처해 있는 상황 속에서 진실 되게 살아가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장들이 바뀔 때마다 단절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일상생활을 통해 우리는 어떤 모습이 참으로 진정한 나의 모습인지를 종잡을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를 설계하면서 희망에 찬 모습이 진정한 나인지, 아니면 주어진 일에 시달리며 동료들에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일 때가 나의 모습인지, 그것도 아니면 일주일에 한번 경건한 모습으로 미사를 봉헌하고 있는 모습이 진정한 나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우리들 각자는 우리 안에 출구 없는 마음의 방들을 만들어 놓고서 자기 나름의 생활을 해 나가고 있지나 않는지요?이 모든 것은 우리 인간들의 죄의 상황에서 비롯합니다.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죄란 하느님을 거슬러 피조물에게로 향하는 것입니다. 좀 더 인간적으로 말해보면 죄란 자신을 자기 안에서 소외시키는 현상으로 드러납니다. 우리들은 죄를 지음으로써 이웃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하느님까지도 멀리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하느님 앞에서 죄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금 전에 읽었던 복음에 잠시 눈을 돌려 봅시다.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성전에서 기도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만납니다. 일상생활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외적 규범을 모두 지키면서 그러한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대견해 하는 한 바리사이파 사람을 만납니다. 또 이와는 반대로 죄스런 처지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며 자신을 하느님 앞에 솔직히 드러내 놓는 한 세리를 만납니다. 한 사람은 교만과 허위에 가득 잠겨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보지 못하는 반면에 또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이 처해진 상황을 직시하고서 겸손되이 하느님께 자비를 청하면서 진정한 자비를 청하면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우리들 각자는 이들 두 사람의 태도 중 어떤 태도를 견지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각자가 놓여져 있는 일상 안에서 안주해 버려 거기에 만족해 버릴 때가 자주 있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타성적으로 처리해 버리고 하루 하루를 살아가기도 합니다. 이렇게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자연스레 나태에 빠져들어 우리 곁에 있는 쾌락의 유혹에 젖어들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참된 나의 모습은 망각하게 되고 하느님과의 관계도 소원해져 버리고 맙니다.
우리가 이러한 죄의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회개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진정 우리들의 이웃과 화해하고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지난날의 잘못을 끊어 버리고 새생활을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고해성사를 통해서 우리와 아버지이신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이 은총의 성사를 지금 이 순간 은혜로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도록 합시다. 그리하여 단절되었던 하느님과의 관계를, 이지러졌던 이웃과의 관계를 회복하도록 합시다.
참회예절 강론(돌아온 아들의 비유) |
우리는 종종 거울에 우리 자신의 외모를 비춰봅니다. 그리고 거울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에서 흠을 발견할 때마다 이를 바로 잡고자 노력합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생활을 되돌아 보고 그 안에서 발견되는 우리의 내적 흠을 바로 잡고자 노력하는 경우는 그리 흔치가 않습니다. 어느 때는 그럴 시간이 없다는 생각에, 또 어느 때는 우리 자신을 비출 내적 거울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그저 지나쳐 버릴 때가 많습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오늘 이 참회예절은 우리 생활을 되돌아 보면서 그 안에 숨겨진 흠을 발견할 수 있게 하는 좋은 기회라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짧은 시간이지만 이 예절을 통해 우리가 지나온 생활을 조용히 반성해 볼 수 있는 여유를 갖는다는 점에서, 특히 방금 들은 “돌아온 아들의 비유”의 복음 내용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볼 수 있는 내적 거울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이제 조용히 우리의 마음을 가다듬고 지나온 우리 생활을 오늘 복음 내용에 비추어 묵상해 보기로 합시다.
한 아들이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내용으로 회개의 전형적인 모습을 들려주는 이 복음 내용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3가지 점을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1) 아들이 지은 근본적인 죄란 무엇인가? (2) 지은 죄에 대한 아들의 태도는 어떠했는가? (3) 아들을 맞아주는 아버지는 어떤 분이신가? 이상의 3가지 점에 대해 먼저 묵상해 보기로 합시다.
(1) 아들의 근본적인 죄: 우리가 표면적으로 볼 때 아들이 지은 죄란 단순히 윤리적인 죄(재산의 낭비, 방탕생활)라 할 수 있겠으나, 이보다 더 근본적으로 아들이 이런 윤리적인 죄를 낳게 한 동기의 죄를 보아야 할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버지로부터 자기 재산을 요구한 아들이 자기 재산을 가지고 아버지를 떠난 사실을 좀 더 깊이 묵상해보면, 우리는 이 아들의 자유분방한 사고와 삶의 방식을 쉽게 알아낼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들의 이런 사고와 삶의 방식은 곧 자기주의,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까지 생각해 볼 수 있게 됩니다.
여기서 잠깐 아들의 심리상태를 분석해 본다면, 아들은 자기 마음껏 재산과 시간과 젊음을 보내고 싶었겠지만 아버지의 관심과 눈길 때문에, 다시 말해 아버지와의 부자관계란 테두리 때문에 그럴 수 없었고, 그래서 아들은 자기 스스로 이 관계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마음껏 생활해보고 자 먼 고장으로 떠난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아들의 자기중심적 사고와 삶의 방식은 그를 방탕의 길로 빠지게 한 동기가 되며, 그래서 아들이 불행과 비참을 겪게 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아들이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고백한 내용이나,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한 내용은 그가 단지 자신의 윤리적 죄에 대한 뉘우침만이 아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죄로써 자기중심적 사고와 삶의 방식으로 부자관계에서 벗어난 죄에 대한 뉘우침의 고백이라 하겠습니다.
(2) 지은 죄에 대한 아들의 태도: 아버지 곁을 떠남으로 비롯된 자신의 불행과 비참을 통해 자기의 근본적인 잘못을 깨닫게 된 아들이,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해 임하는 태도는, 한 마디로 적극적인 태도를 취한다고 하겠습니다.
아들은 자기의 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함으로써 또한 깊이 뉘우치게 됩니다.
그리고 아들은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변명이나 후회에 급급치 않고 아버지께로 돌아가 용서를 청하고자 자기의 죄스런 옛 생활지를 떠나게 됩니다.
곧 아들은 자신의 죄 상태에 머뭇거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그곳을 떠나 자기의 죄를 용서해 줄 아버지께로 발길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아들의 적극적인 태도를 성서는. “어서 아버지께로 돌아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할 자격조차 없으니, 저를 품꾼으로라도 써 주십시오’하고 사정해 보리라”는 내용으로 주고 있습니다.
(3) 아들을 맞는 아버지: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온 아들을 맞는 아버지는 참으로 인간적인 이해와 용서의 차원을 넘는 자비가 풍부한 분입니다.
아들이 자기 곁을 떠남으로써 비롯된 불행과 비참이기에 인간적으로 볼 때 아들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물어봄직도 한 아버지라 생각되지만, 아버지는 한 마디의 물음도, 불평도 없이, 그리고 받아들임에 있어서도 아무런 조건없이, 아들을 본래 아들로 받아주고 있습니다.
특히 아버지의 이런 사랑이 일시적이거나, 순간적이 아닌 항구하고도 넘치는 사랑임을 알 수 있음은, “멀리서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아들을 본 순간 아들에게 달려가 그를 얼싸안고 입을 맞춘 아버지의 태도와,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잘못을 청하는 아들을 위해 큰 잔치를 베풀어 준다”는 성서 내용으로 알 수가 있겠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아들을 맞는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그가 자기 아들이라는 이유로, 다시 말해 아버지와 아들이란 부자관계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아들을 받아주는 자비가 넘치는 분이요, 또한 아버지는 항구하고도 진실된 사랑으로 항상 아들이 자기에게로 돌아오기를 기다린 분이라 하겠습니다.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상의 복음 내용을 통해 이제 우리는 지난 생활을 반성해 봅시다.
① 우리는 그 동안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그분의 눈길과 관심 속에서 생활하고자 얼마나 노력했습니까? 혹시 우리도 이 작은 아들처럼 우리 중심의 생활에만 매이지 않았습니까?
② 지나온 우리 생활에 대해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며, 우리의 잘못에 대해 하느님께로부터 용서를 받고자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습니까? 아니면 단지 잘못에 대한 후회에 급급할 뿐이었습니까?
③ 우리의 아버지로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지금도 우리가 당신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 하느님의 풍요로운 자비를 진심으로 믿고, 이에 우리 자신을 숨김없이 있는 그대로 그분께 지은 죄까지도 모두 맡겨드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나의 잘못은 더 이상 용서받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지금도 죄의 상태에 그대로 머물러 있거나, 또는 어떤 실망과 좌절로 불안해 하고 있지 않습니까?
다시 한번 이상의 점들을 깊이 반성해 보면서, 오늘 이 참회 예절을 통해 우리 각자를 당신께로 부르시는 하느님의 풍요롭고 항구한 사랑의 성사에 회개하는 마음으로 임할 수 있도록, 우리 마음 속에 새로운 힘과 용기주시길 기도하면서 계속되는 이 예절에 참여하도록 합시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