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혼인 강론의 여러 가지
1. 김수환 추기경
2. 노기남 대주교
3. 김정진 신부
4. 김몽은 신부
5. 정달용 신부
6. 이기명 신부
7. 오태순 신부
8. 홍성만 신부
9. 참고
10. 서정필 목사
11. – 30.
⑴ 혼인 미사 강론 —————- 김수환 추기경
오늘 신랑( )와 신부( ) 두 분의 혼인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두 사람을 위해서 더 할 수 없이 기쁜 일이요. 부모, 형제, 친척들을 위해서도 경사스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혼인은 그렇게 큰 기쁨을 당사자들에게 줍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참으로 조건 없는 사랑으로 두 사람이 맺어지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아내에게-아내는 남편에게 남김없이 자신을 줌으로써-두 사람이 진정 한 몸이 됩니다.
인간은 그 본성에서 이렇게 한 쌍의 남녀가 서로 사랑하며, 서로 주고받으며, 서로 의지하며 살고 그럼으로써 서로 성숙과 완성에 이르고 사회와 세계가 발전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이 뜻하시고, 또한 하느님이 축복해 주시는 거룩한 일입니다.
교회 안에는 성직자, 수도자와 같은 독신자들도 있습니다.
이것 역시 하느님이 뜻하시고, 또한 하느님이 축복해 주시는 거룩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현세에서 보다 깊이 그리스도를 닮는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아서,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는 보편적 사랑에 자신들을 남김없이 바치기 위해서입니다.
사회와 인류는 모든 인간의 사랑의 화합과 일치를 위해서 곧 하느님 나라가 임하시기 위해 이런 사람들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외적인 경우이요, 자연에 따라서는 혼인의 길을 가는 것이 정상입니다.
저는 독신 생활을 위해서나 혼인 생활을 위해서나 참으로 하느님이 뜻하신 대로, 사랑 속에 살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도우심, 은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조건 없는 사랑을 살도록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 분은 오늘 어른들과 친척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느님 앞에서 서로 다음과 같이 엄숙히 서약합니다.
“나 ○○는 여기 있는 ××를 나의 남편, 또는 아내로 맞아 들여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하거나 병들거나 일생동안 사랑하고 신의를 지키기를 약속합니다.” 이 말을 깊이 생각하면 참으로 당연하면서도, 엄청난 것입니다. 부부는 당연히, 그런 사랑으로 맺어져야 합니다.
하지만-나 라는 연약한 인간이, 나와 같이 연약한 인간을 그의 장점만 아니라, 단점까지 포함하여, 완전히 받아 드린다는 것, 또한 내가 어떤 처지에 있든, 상대가 어떤 처지에 있든, 성하거나, 병들거나, 기쁠 때나 사랑한다는 것, 이 구체적인 한 사람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의 모든 마음과 정성과 힘을 다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연약합니다. 변덕스럽기조차 합니다. 참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은총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저는 그 때문에, 두 분이 항상 기도하기를 권합니다.
인간의 힘만 믿으면 – 너무나 부족합니다.
특히 모든 가치가 흔들리는 오늘에 있어 그러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가능하면 둘이 함께, 하루에 잠시 시간 5분이라도 함께 기도하기를 부탁합니다.
하느님은 분명히 두 분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아울러 부탁하고 싶은 것은 사랑이 혼인을 지켜 준다기 보다도, 혼약이 사랑을 지켜 준다는 것을 명심해 주었으면 합니다.
우리의 혼인의 운명을 감정적 사랑에 내맡기면 그것은 조만간 식어질 것이고 그러면 혼인 생활은 위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에 감정적으로 사랑을 느끼든 아니든 관계없이, 서로 사랑하기로 약속하였다는 것을 즉, 혼약을 맺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이것이 또한 나의 자유 의사로 전 인격적인 결단에 따라서 하였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이것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면, 불이 꺼져가던 사랑도 마음에 다시 불붙고, 그리하여 사랑이 더욱 깊이 질 것입니다.
참 사랑은 누구나 경험하듯이-시련을 함께 넘을 때-깊어지고, 참되어 집니다.
⑵ 혼인강론 노기남 대주교
오늘 하느님과 교회와 일반 앞에서 결혼예식, 혼인성사를 받는 신랑 신부 두 분은, 지금 이 자리에서 두 분이 맺는 이 혼인성사가 어떤 계약이며, 어떤 일인가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두 분이 맺는 이 결혼 계약은, 즉 혼인성사는 우리 인간이 제정한 계약이 아니고, 바로 인간과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계약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한꺼번에 당신 친히 모든 사람을 만들지 않고, 한 남자와 한 여자를 친히 만드셔서, 그들로 하여금 부부가 되어서, 즉 결혼을 하게 하고 이 두 부부로 하여금 온 인류가 이 세상에 번성하고 유지하게끔 만드셨습니다.
오늘 두 분이 맺는 계약은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 창조사업을 계속하는데 협력하는 가장 거룩하고 엄숙한 일입니다.
세상 사람들 중에 부부를 통하지 않고, 즉 결혼을 통하지 않고 태어난 사람은 인류 원조 아담 에와 두 사람 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오늘 전세계가 수십 억에 달하는 모든 인간이 다 결혼, 즉 부부를 통해서 세상에 태어났고, 지금 천당에 계신 성인 성녀도 다 부모를 통해서 났다가 착히 살고 성인 성녀들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 인간의 결혼은 아주 큰 일이고, 엄숙한 일이며 신성하고 거룩한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세상에 계실 적에 친히 결혼 장소에 나가셔서 새로 결혼하는 신랑 신부를 축복하고, 갈릴레아 가나촌에 혼인잔치에 초대받고 친히 그 자리에 나가셔서, 신랑 신부의 잔치 집에 술이 없음을 알고, 아직 기적을 행할 때가 오지 않았다고 하시면서도, 신랑 신부를 위하여 그 잔치 집에 물이 술이 되게 하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께서도 결혼을 축복해 주셨고, 보통 인간들의 자연적인 결혼을 거룩한 일로, 즉 7성사 중에 하나로 승격해 주셨습니다.
사도 바오로도, 남녀가 서로 결합하는 이 결혼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와 결합되는 것에 상징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남자는 아내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는 바로 그 정신으로 사랑하라고 하셨고,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처럼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사도 바오로는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오늘 두 분은 가장 엄숙하고, 거룩하고, 위대한 인간의 결혼성사를 받게 됩니다. 깊은 신앙으로 하느님 앞에 꿇어, 또 완전한 자유의사로 이러한 계약을 하는 것을 고백하여야 하겠습니다.
두 분이 결혼하여 부부생활을 하는데 가질 필요한 조건은, 서로 사랑하고, 신임하고, 서로 믿고 도와주며, 서로 마음이 상했다가도 화해하고, 이해하며, 다시 사랑으로 결합되는 진실한 사랑! 변치 않는 사랑! 서로 인격을 존중하며 믿는 신의가 절대로 필요합니다.
오늘 두 분은 하느님 앞에 완전한 자유의사로 결혼함을 약속하며, 또한 변치 않는 사랑과 신의를 지키며, 하느님의 뜻으로 결혼생활을 하며, 또한 두 분 사이에 태어날 자녀들을 하느님의 뜻대로 교훈하며, 그리스도의 정신대로 교훈해서 착한 사람을 만들고 또한 끝까지 천당의 시민을 만드는 부모의 책임을 완전히 할 것을, 하느님께 굳게 약속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부부의 책임을 완전히 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힘만으로는 부족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깊은 신앙으로 하느님 앞에 꿇어 기도 바치고, 두 분 자신 두 분 가정을 위해서 두 분은 깊은 신앙과 열심한 기도로서 항상 하느님께 의탁하고, 부부생활을 계속해야 되겠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도, 그리스도께서 가나안 혼인 잔치에서와 같이, 두 분의 결혼을 축복해 주실 것이고, 참여한 모든 이가 다 같은 뜻으로 기도하며, 두 분의 결혼과 두 분이 새로 시작하는 가정을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⑶ 혼인강론 김정진 신부
지금 이 자리에 신랑 신부 두 분은 나란히 나와서, 세상에서 가장 신성하고, 가장 신중을 기하여야 할 결혼의 계약인 혼인성사를 엄숙한 가운데 받으려는 순간입니다. 양가 가족을 비롯해서 친지와 내빈이, 이 자리에 많이 참석한 것은, 이 두 사람의 결합을 축복하며, 또한 기쁨을 같이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신랑 신부 두 사람은 하느님 대전에서 한 평생을 사랑으로 살아가려고 굳게 서약하는 것입니다. 이 같은 혼인의 계약은, 하느님의 섭리 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하느님께서 두 사람을 절대로 갈릴 수 없도록 굳게 맺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인간이 풀 수 없다는 것을, 깊이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하느님은 진정 혼인성사로 창조사업의 한 몫을 담당케 하시며, 인류 존속 사업에 협력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청춘 남녀가 결혼하여 건전한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음으로서, 하느님의 이 같은 원대한 사업에 협력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혼인성사의 깊은 뜻이 있습니다.
부디 혼인성사를 정성되이 받음으로써,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을 많이 받으시기를 기도하여 마지않습니다.
신랑 신부는 잘 들으십시오! 예수님은 오늘도 내일도, 우리 신자들의 혼례를 축복해 주시며, 부부의 가정생활을 사랑으로 감싸주시며 단란하게 해 주십니다. 예수님이 교회를 사랑해 주시듯이, 남편된 사람은 아내를 극진히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그리스도를 공경하고 순종하듯이, 아내된 사람은 남편을 위해 드리고 잘 따라야 합니다.(에페 5,21)
부부의 결합은 하느님의 특별한 섭리이며 안배입니다. 신자들의 혼인은 하느님께서 맺어 주시는 것이며, 남남이었던 한 남자와 한 여자를 신앙과 사랑의 끈으로 묶으시어, 그들로 하여금 사랑의 열매를 맺으며, 경건한 가정을 이루도록 도와주십니다.
이같이 하느님의 축복을 받으며 결합되는 남녀는 한 쌍의 비둘기와 같이 귀엽고, 한 쌍의 원앙새와 같이 사랑스러운 신랑 신부로써 우리들 앞에 나타납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 안에서 부부간에 사랑과 봉사의 희생심을 배우며, 화목한 가정, 명랑한 가정, 기도하는 가정, 천상 가정을 이루어 나갑니다. 그들은 또한 아기자기한 애정으로 가장 행복하고, 단란하고 모범다운 보금자리를 꾸며 나갑니다.
이러한 가정에는 늘 기쁨과 평화가 깃들며, 웃음의 꽃이 활짝 피게 됩니다. 일반인들은 이러한 가정의 행복과 신앙을 보고서, 우리가 섬기고 공경해 드리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 가를 알아보게 됩니다.
하느님 앞에서 사랑과 축복을 받으며, 혼인성사를 받는 신랑 신부는 하느님의 차원에서 혼인의 계약을 맺는 것이며, 또한 하느님의 세계에서 새 살림으로 새 출발을 하는 것입니다.
태초에 하느님께서 아담과 에와를 창조하시고 나서 “남자는 부모를 떠나 제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루리라”고 하신 말씀을 예수님은 재삼 강조하시면서,(마태 19,5) 부부는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라고 못을 박아 놓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부부일신이란 말과 같이, 몸이 하나라고 하지만, 무엇보다도 마음과 정신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 손을 맞잡고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험준한 인생의 여정을 무난히 헤쳐 나가며 고해와 같은 한 많은 세상을 끄떡없이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어른들과 선배들의 경험으로도 잘 알 수 있겠지만, 부부생활에도 어느 날에는 권태기가 올 적이 있을 것이며, 기쁨과 슬픔, 건강과 병고, 쾌락과 고통, 순경과 역경, 성공과 실패가 교차되는, 대단히 복잡한 인생 항로를 걷게 되는 수가 많습니다.
그러기에 부부는 모든 불행과 고통과 시련을 같이 참아 가는, 동고동락하는 결심이 서야 할 것입니다.
신랑 신부가 남남끼리 모여서 짝이 되었다 하더라도, 혹은 혼인성사를 받았다 하더라도, 백년을 한집에서 같이 살고, 돕고 지낸다는 것은 얼마나 고상한 일입니까? 부부 서로 사랑하고, 위로하고, 존경하고, 신의를 지키며,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그야말로 부부일체가 되어 행복하고, 이상적인 단란한 가정을 이룬다는 것, 세상에서 이 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더구나 배우자의 행복은 곧 나의 행복, 상대방의 불행은 곧 나의 불행이라는 사고와 사상은, 다른 데서는 찾아볼 수 없는 진선미라 하겠습니다.
여태까지는 혼자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에 옮겼지만, 부부는 한 몸인 만큼 이제부터는 둘이 같이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이 순간부터 두 분은 혼인성사의 정신을 따라, 사랑과 희생의 정신으로 가정의 화목과 행복과 평화를 이룩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하느님의 축복 받는 가정이 될 것이고, 날이 갈수록 두 분의 사랑은 더욱 깊어지고, 강하게 성장할 것입니다. 아멘.
⑷ 혼인강론 김몽은 신부
친애하는 교형 자매 여러분, 우리는 신랑 ( )군과 신부 ( )양의 결혼을 축복해 주기 위하여, 주님의 성전에 한 가족으로 모였습니다. 우선, 바쁘신 가운데도 이같이 왕림해 주신 내빈 여러분께 신랑 신부를 대신해서 감사드립니다.
신랑 신부 두 분께서는, 이런 영광되고 기쁜 자리를 마련해 주신 하느님과, 이 기쁨이 있기까지 노력해 주신 부모님, 친척, 친지 모든 은인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려야 하겠고, 이 감사의 정은 이 순간만이 아니라, 두 분의 일생을 통한 결혼생활을 통해서 항상 보답하는 길로 엮어 나갈 수 있기를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지금 우리가 창세기에서, 또는 복음에서 본 바와 같이 우리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태어났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하신 분이고, 진리이시며, 생명이요, 무엇보다도 사랑 자체이십니다.
하느님이 우리 인간을 당신과 비슷하게 창조하셨다는 것은, 이점에서 그렇습니다. 특별히 우리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을 따라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서로 상부 상조하면서 살아 나가는데 그 특징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인간 생활 전체가 주고받는 것이고, 사랑하고 사랑 받는 것이고, 섬기고 섬김을 받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렇게 인간은 사랑의 대상을 발견하고, 서로 사랑하며 의지하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결정적인 사랑의 결합이 바로 혼인이요, 결혼입니다.
결혼으로서 두 남녀는 두 생명이 아니라, 두 몸이 하나의 생명으로 살아갑니다.
결혼이란, 남녀가 결합하여 한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이룩하고, 서로 사랑하겠다는 전인격적인 약속이요, 계약입니다. 그러므로 조금 후에는 이 같은 사실을 하느님과 여러 어른들 앞에서 약속하게 됩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을 하면서, 여러 계약을 하며 살아갑니다. 물물교환으로부터 시작하여 돈, 토지, 매매계약이라든가, 그 밖에 여러 계약 등을 체결합니다.
혼인도 일종의 계약이요, 약속입니다. 그런데 다른 계약과는 그 성질, 그 내용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다른 계약에 있어서는 물건과 물건을 교환한다던가, 혹은 돈과 물건을 바꾼다던가, 따위의 계약행위를 내용으로 합니다마는, 이 결혼계약은 물건을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남편에게, 혹은 사랑하는 아내에게 일생을 바치겠다는 계약입니다.
일생동안 조금도 남김없이, 자기자신을 상대방에게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이같이 중대한 계약을 두 분께서는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혼인의 계약 내용을 다시 한 번 묵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두 분은 서로 신의를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없는 불신 사회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예를 들어 부모는 자식을, 자식은 부모를, 제자는 스승을 믿어야 하겠고, 스승은 제자를 믿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기초 위에서만이 참으로 행복한 사제지간, 부부지간, 더 나아가서는 사회의 윤리 도덕이 성립될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결혼생활에서도 남편은 아내를 전적으로 신임하고, 또한 아내는 남편을 전적으로 믿어야 합니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만이, 참 행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중요한 것은, 일생동안 서로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인격적인 사랑을 해야 합니다. 인격적인 사랑: – 그것은 사랑하는 남편에게, 또는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 자기의 전존재를 바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말로만, 입으로 혹은 혀로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말이나, 입이나, 혀로만의 사랑은 피상적인, 이기적인, 타산적인 사랑입니다. 흔히 이 세상 사회에서 보면, 이같이 피상적이며 타산적이고 이기적인 사랑을 많이 맺고 있습니다.
즉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 그와의 관계에서 나에게 얼마나 이익이 있는가를 계산하는 것입니다.
만일 어떠한 이익이 없다면, 그 인과관계를 맺지 않았다던가, 포기한다던가 합니다. 그러나 혼인에 있어서의 사랑은 이기적이며, 피상적인, 일시적인, 찰나적인 사랑이 아니라, 자기의 전존재를 사랑하는 남편, 사랑하는 아내에게 바치는 사랑입니다.
“누가 벗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바치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으며, 그분은 우리 인류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십자가상에 희생제물이 되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랑이라야 참다운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두 분께서는 그리스도의 이와 같은 사랑을 본받으셔야 하겠습니다.
또 이와 같은 신의와 사랑을 간직한다면, 두 분께서는 참으로 행복된 가정을 영위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의 아가를 두 분께 간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