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빠스카 시기
‘주일’은 주간의 정점이며 모든 날들을 성화시키는 근원적인 축일임을 전에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 기원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날에 있음도 함께 살펴보았다. 이렇게 부활날은 주일의 기원도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전례주년의 핵심을 이루기도 한다.
그리스도교의 전례력은 겉으로는 대림시기로 시작하여 성탄과 공현 그리고 사순시기와 부활시기, 연중시기의 마지막 주일인 그리스도왕 대축일을 지냄으로써 마감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비록 그 시작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시기이지만, 실제로 이 모든 시기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빠스카이다. 이 빠스카를 중심으로 전례 주년이 형성되는데, 여기서는 그리스도의 빠스카를 중심으로 가장 먼저 형성된 빠스카 삼일과 빠스카 기쁨을 변함없이 동일하게 경축하는 50일간의 빠스카 시기 그리고 40일간의 빠스카 준비 시기의 유래와 그 의미, 전례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사도시대 이후 그리스도의 부활을 매주 기념하던 그리스도인들은 유다인이 지내던 빠스카를 자신들의 것으로 받아들였다. 받아들이는 과정에 있어서 아시아의 교회들은 유다인의 빠스카날에 단식을 하지 않으면서 그리스도교화한 반면, 다른 교회들은 주일의 의미를 살리면서 유다인의 빠스카날 다음에 오는 첫 주일을 빠스카날로 지냈다. 3세기 초에 로마 교회는 후자를 받아들였다.
3세기 초에 이르러 그리스도의 부활기념은 50일로 연장되었고, 4세기 이후로는 50일의 마지막날을 성대하게 지냈으며, 빠스카 삼일이 나타났으며, 이후에 성주간 전례가 형성되었다. 한편 빠스카 전례는 아주 일찍부터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의 날에 단식하도록 하였는데, 이 단식 기간이 40일로 발전되면서 빠스카를 준비하는 시기(사순절)가 되었다.
초기 빠스카 전례는 본질적으로 하루 내지 이틀 또는 여러 날 동안 엄격한 단식을 하고 성찬례로 끝맺는 밤기도 모임을 가지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밤기도에 참석하는 것은 의무였으며 단식 또한 의무적이었다. 단식은 완전한 단식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빠스카의 준비와 정화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빠스카를 향한 단식은 또한 죽음에서 생명에로, 슬품에서 기쁨으로 넘어가는 것이었다. 이렇게 단식에서 축제로 넘어감, 이것이 바로 빠스카라고 할 수 있다. 초기 빠스카 전례의 기본 요소들은, 단식, 신자들이 모임, 기도와 독서로 밤을 지샘, 성찬례 거행, 아가페를 가지는 것이었다.
로마교회에서 빠스카 전야는 사순절을 마치는 순간이면서 세례가 베풀어지는 위대한 밤이었다. 이 시기는 또한 입교성사를 준비하는 예비자 교리교육과 신비교육의 황금시기였다. 로마교회의 빠스카 팔부 세례 예식은, 세례샘으로 행진 – 세례수 축성 – 후보자 옷벗김 – 침례와 신앙고백 – 크리스마 기름을 바르고 흰옷을 입힘 – 견진 – 빠스카 만찬 참석의 순으로 아주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이런 전례는 성인 입교예식에서 특히 온전하게 표현되는데, 성인 세례가 예외적인 경우가 되면서 이런 전통도 사라지게 되었다. 다만 세례수 강복과 새 영세자에 대해 자주 언급하는 빠스카 팔부 양식문만이 보존되었다.
불을 켜는 것은 기쁨과 안전의 표지였다. 빠스카 전야에 켜는 초는 바로 세상의 빛이신 그리스도를 표상하는 것이었다. 그 빛을 성부께 바치고 부제가 감사 찬가(Exsultet, 부활찬송)를 하는 가운데 빠스카 기쁨을 선포하였다. 로마에서 Exsultet은 7세기에 불려지기 시작했고 11세기에 이르러 교황청 전례에 들어가게 되었다. 부활찬송은 빠스카 전야가 담고 있는 신학적 내용을 가장 뛰어나게 보여주고 있다.
빠스카 전야는 죽음과 부활이 만나는 시간이며 동시에 빠스카 삼일의 마지막 날이면서 50일간의 빠스카 시기의 첫째날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이날을 성삼일과 빠스카 시기로 나누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밤은 구약 백성의 출애급의 기억, 주의 죽음과 부활의 기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교 입교성사를 지내는 신약 백성의 모임에 현존하심, 오랜 세월 그가 빠스카 밤에 오실 것이라고 믿어왔던 백성이 그분의 재림을 기다림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것이 빠스카 전야의 내용이다. 부활찬송이 바로 이런 것들을 연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빠스카 전야의 기원과 발전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러나 빠스카 전야가 계속해서 발전만 거듭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역사를 거쳐오면서 빠스카 전야가 어떤 위기를 겪었고, 어떻게 보존되었는지 살펴보기로 하겠다.
빠스카 전야 예식은 그 예식 시간을 점점 앞당겨 행한 결과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이미 7세기에 빠스카 전야를 지내지 않고 오후 2시에 전례를 시작하였는데, 이는 빠스카 전야의 모든 상징들을 왜곡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그래서 많은 지역에서는 빠스카 전야보다는 주일 아침기도에 참여하는 관행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더욱이 비오 5세가 미사를 오후에 드리는 것을 금함으로써 빠스카 전야제에 타격을 주었고(1566), 마침내 울바노 8세 때(1642) “거룩한 날들”을 의무축일 목록에서 삭제하기에 이르렀다.
20세기에 들어와 전례 쇄신 운동의 여러 분야가 구속 신비에 초점을 맞추어 접근함으로써 빠스카 신비와 이 신비를 기념하는 빠스카 전야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1934년 O.Casel의 「‘교부시대 교회에서의 빠스카 축일’에 관한 연구」는 빠스카 전야를 전례주년의 정점으로 복구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드디어 1951년 교황청은 빠스카 전야 전례의 거행을 허가하였으며, 4년 후에는 이 전례 거행이 의무가 되었다.
1951년의 예식서는 빠스카 전야의 제자리를 찾아주었고, 예식을 정돈하고 단순하게 만들었다. 이때 성당 밖에서의 새 불의 강복과 초를 들고 하는 행진이 복구되었고, 독서의 수는 4개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세례수 강복과 세례식과 세례 신앙서원 갱신이 계속되었다. 1970년의 미사경본은 세례를 강론 다음으로 옮겼고, 7개의 독서를 정했으며, 행렬과 세례 서원 갱신을 그대로 보존하였다.
빠스카 전야는 밤에 지내는 전례이다. 그러므로 해가 지고 나서부터 시작할 수 있으나 동이 트기 전에는 마쳐야 한다. 밤은 일정 지역의 신자들이 모임을 갖고 신앙을 드러내기에 적합한 범이며 세례를 베풀기에도 적합한 밤이다.
백성은 우선 성당 바깥에 불을 중심으로 모이고, 불의 강복이 이어진다. 빠스카 초를 준비하고 “그리스도의 광명”을 노래하면서 성당 안으로 들어간다. 이 행진은 히브리 백성이 사막에서 불기둥을 따라 걸어간 것을 상기시키기도 하지만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을 것이다”(요한 8,12)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상기시킨다. 행렬이 끝나면 “부활찬송”을 노래하는데, 이 노래는 하느님께 초를 바치는 기도이자, 빠스카를 선포하는 심오한 시적 표현의 기쁨에 넘친 감사 기도이기도 한다.
이 밤에는 구약에서 7개의 독서를 하는데 이는 유다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유다인들은 세상 창조의 밤, 아브라함의 제사의 밤, 출애급의 밤, 메시아 재림의 밤 등 “네 밤”을 기념하였는데, 7개의 구약독서 역시 창조, 아브라함의 제사, 홍해를 건넘, 이사야서의 종말론적 본문을 읽는다. 나머지 세 개의 독서는 세례와 더 관련이 깊다. 신약독서 역시 세례에 관한 것이고 이어서 복음이 낭독된다.
구약독서가 끝나면 대영광송을 노래하는데, 이는 탁월한 그리스도교 빠스카 노래로써 오랫동안 교회는 이 노래를 빠스카 전야 때만 불렀다. 묵시록이 천상의 노래라고 말한 알렐루야 역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악한 함에 대해 승리를 얻게 되리라는 확신을 갖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의 여정 중에 부르는 노래이다.
세례식은 호칭기도로 시작하며, 이어서 세례수 강복이 뒤따른다. 세례수 강복 기도문에서는 최초의 물, 홍수, 홍해를 건넘,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 십자가 예수의 옆구리에서 나온 물, 부활하신 주님이 사도들에게 주신 복음 전파의 사명을 순서대로 상기하고 있다. 세례수 강복을 마친 다음 악마를 거부함, 신앙고백, 세례가 이어진다. 후에 견진을 받을 이에게는 크리스마 기름을 발라준다. 주교가 있다면 당연히, 주교가 없더라도 사제가 집전하는 견진이 이어진다. 세례 다음에 회중의 세례 서원 갱신이 뒤따른다. 마지막으로 성수 예절로 끝맺는다.
이어서 보통 때와 마찬가지로 성찬례가 이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