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자와 길 잃은 양

 

목자와 길 잃은 양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이신 하느님께서는 아낌없는 사랑을 당신 자녀들에게 베풀어주십니다. 그 사랑을 알고 있기에 하느님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고,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을 알고 있기에 하느님의 자녀들까지도 사랑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을 알고 있기에 언제나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래야만이 하느님께로 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언제나 “예”하고 응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나를 이끄십니다. 목자가 양을 이끌 듯이 그렇게 이끄십니다. 양들이 목자를 따라갈 때 배불리 풀을 뜯어 먹고, 모든 위험을 피할 수 있는 것처럼, 신앙인들은 목자이신 주님의 말씀에 온전히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여러 가지로1) 표현하는데, 목자와 양과의 관계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얼마나 당신 백성을 사랑하시고 돌보시는지를 알려 주십니다. 그리고 모든 양들을 당신의 우리 안(하느님 나라)으로 모으고 싶어 하십니다. 그 이유는 양들(우리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1.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착한 목자이십니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 놓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의 구원을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목숨까지도 내어 놓으셨습니다.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나는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야 지천에 풀이 널려 있지만 중동지역은 그렇지 못합니다. 너무도 메마르고 척박한 땅입니다. 그래서 목자들은 양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준비해 줍니다. 파란 풀밭도 목자가 돌을 고르고, 물을 대고, 씨를 뿌려 일구어낸 것입니다. 그렇게 준비된 풀밭으로 목자는 양들을 인도하고, 양들은 그곳에서 배불리 풀을 뜯습니다. 그러므로 양들은 목자를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착한 목자이십니다. 목자가 손수 풀밭을 만드는 것처럼, 닫혔던 하늘의 문을 활짝 여시기 위해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예수님을 따르는 이는 누구나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자이신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2. 착한 목자를 따르는 양떼

2.1. 양들은 목자를 안다.

어떤 신부님이 중동에서 양을 치는 목자들과 함께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동지방의 “와디”는 평상시에는 메말라 있다가 비가 오면 커다란 강을 이룹니다. 그래서 비가 조금이라도 오면 동굴 속으로 피신을 합니다. 그런데 동굴 속으로 피신을 하면 여러 목자의 양들이 섞이게 되는데 그 신부님이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당신들의 양을 구분할 수 있습니까?”

목자들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비가 그치면 알게 될 것입니다. 있다가 보십시오.”



비가 그치자 목자들이 하나 둘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목자가 노래를 부르며 나가자 그 목자의 양들만 따라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신부님이 하도 신기하여 그 노래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주어졌을 때 노래를 부르며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한 마리도 안 따라오는 것이었습니다. 목자는 양을 알고,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고 있습니다. 양들은 자신을 사랑하는 목자를 알고 있습니다. 목자가 자신들을 풀밭으로 이끌고 위험에서 구해주는 존재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양들은 목자를 따릅니다.



2.2.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신앙인들

예수님께서는 착한목자로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들 예수님께 구원 사업을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하느님의 마음을 알고 계시는 예수님께서는 당신 양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온 열정을 쏟아 부으셨습니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위하여 목숨을 내 놓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이고, 이것이 바로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어 고백하며 세례를 받아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는 영광 입은 신앙인들은 믿음을 고백하고 목자를 따르는 양답게 살아야 합니다.

① 주님의 크신 사랑에 감사하면서 살아가기.

아무것도 아닌 나의 구원을 위해서 모든 것을 내어 놓으신 주님의 사랑을 어떻게 보답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주님의 사랑을 알고 있다면 그 사랑에 감사하며 보답하는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② 주님의 자녀로서 살아가기.

보잘 것 없는 나에게 하느님의 자녀라는 엄청난 명예를 주셨으니, 그 신분에 걸 맞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주님의 자녀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주님의 자녀와 세상의 자녀는 다릅니다. 주님의 자녀는 주님께 속한 사람이고, 세상의 자녀는 세상에 속한 사람입니다. 주님의 자녀는 주님을 생각하고, 세상의 자녀는 세상을 생각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느님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는지, 관계 안에서 자신의 지위나 사업 등의 번창을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지 모를 정도로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형제자매들을 자신의 사업에 끌어들여 고객으로 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 다단계 판매 등으로 레지오나 구역 전체를 망쳐놓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직장인들의 경우 상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오는 사람들도 있고, 가정에서는 배우자나 부모 때문에 억지로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어떤 경우는 가진 것을 자랑하기 위해서, 자신의 여가를 즐기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려하고, 봉사하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세상의 자녀들은 세상 사람들의 생각으로 신앙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마음에 맞지 않거나, 이익이 되지 않거나, 자신을 알아주지 않으면 등을 돌립니다. 하지만 주님의 자녀들은 주님만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주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③ 죄를 짓지 않으려 노력하기

예수 그리스도께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몸소 수난과 죽음을 겪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수난과 죽음을 헛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죄의 종살이에서 벗어났으니 죄의 유혹에 끌려 다니지 말아야 합니다. 헛된 것들에 마음을 쓰지 말아야 합니다.  죄를 짓는다는 것은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헛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은 죄의 유혹을 끊어 버리겠다고 다짐을 하였습니다. 하느님께로 나아가는데 장애되는 모든 것들을 끊어 버리겠노라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를 짓게 될 때는 즉시 회개하고 고해성사를 통하여 은총지위를 회복하려 합니다. 그리고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들, 나에게 잘못을 하는 사람들을 용서하려 합니다. 왜냐하면 나 또한 용서받으면서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짓지 않으려 노력하는 삶은 다른 이들을 용서하는 삶으로 드러납니다. 그리고 죄를 짓지 않는 삶은 기쁨 안에서 주님께 찬미와 감사와 경배를 드리는 삶으로 드러납니다.



④ 주님만을 섬기기

예수님께서는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습니다. 마귀를 따르면서 신앙생활을 한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2) 하느님을 섬긴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만을 섬기기 위해서 주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오로지 주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께로 나아갈 수 있고, 그래야 마침내 파란 풀밭에서 이 몸을 뉘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갈 때 세상 사람들은 내 모습을 보고, “아하! 하느님의 자녀들은 저렇게 살아가는구나!”하면서 주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



3. 길 잃은 양들

우리는 냉담자라는 말을 듣기를 꺼려합니다. 냉담자라는 말 보다는 “쉬는 교우”, “방학 중” 이라는 말을 듣기를 선호합니다.

뻥튀기 장사를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하루는 아들이 “가족관계 알아보기”라는 숙제를 하면서 아버지에게 직업을 물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직업에 뭐라고 써?” 그러자 아버지는 “뻥튀기 장사”라고 쓰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아버지! 창피하잖아.” 한참을 고민하던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곡물 팽창업이라고 써라!”

또 다른 집이 있었는데 그 집은 붕어빵을 팔았습니다. 그 아버지도 “붕어빵 장수를 붕어빵 장수라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하니?”라고 말했지만 그 아들도 창피하다며 쓰기를 꺼렸습니다. 그래서 그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산업이라고 써라.”

이것은 이러한 자영업자들을 무시하기 위한 유머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살아가자고 만들어진 유머입니다.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쉬는 교우라는 말은 듣기는 좋습니다. 하지만 쉬는 것이 아니라 떠난 것입니다. 그러니 냉담 한다고 하는 것이 더 옳을 것입니다.



길을 잃었다는 것은 먼저 목자(예수님)를 잃어버렸고, 양떼(교회)와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파란 풀밭(생명, 구원)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라갈 힘을 잃었기에 주님을 따르지 못하고, 공동체와 함께 하지 못하기에 공동체를 떠난 것입니다.



3.1. 목자를 잃어버린 양

목자는 양을 알고, 양은 목자를 압니다. 그런데 양이 어느 날, 그 목자보다 더 자신에게 잘해주는 목자(삯꾼, 도둑, 타종교 등)를 만난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목자보다 자신을 더 잘 해 줄 것 같기에 자기 목자를 버리고 그를 따라 나선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구원에 이르는 길, 생명에 이르는 길이 아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양은 목자를 잃어버리고, 결국 구원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이 양은 무엇이 옳은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어디에 이르는 길인지를 모르기에, 그리고 나를 이끌고 계시는 분이 누구신지 모르기에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한 자매가 병원에서 진료를 기다리다가 자신의 옆으로 다가온 열심한 자매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자매의 말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고, 자신이 잘못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자매가 만난 이는 이단자였습니다. 그 이단자의 달콤한 말에 그냥 넘어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이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양의 탈을 쓰고 다가오기에 그가 늑대인지 호랑이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에게 목숨을 빼앗길 때는 알게 됩니다. “아! 이놈이 늑대였구나!” 하지만 그 때는 늦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자의 말에만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공동체의 말에만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또한 세례 때 내가 믿음을 고백한 것 이외의 새로운 가르침이나 믿음은 결코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낯선 타인이 접근하여 잘 해주면서 무엇인가를 요구한다면, 무엇인가 나쁜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그런 계산을 하지 않으십니다. 공동체도 나에게 그런 계산을 하지 않습니다.



3.1. 목자를 떠난 양

① 탕자와 같은 양.

이 양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목자가 원하는 것이 다르기에 참된 목자이신 예수님을 떠난 것입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겠노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떠난 것입니다. 그는 길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 길을 떠났고, 어느 순간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이 구원에 이르는 길이 아님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그 양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마치 탕자가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이 참된 행복임을 모르고 아버지를 떠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처럼 말입니다.



② 스스로 목자를 부정하는 양

이 양은 혼자서도 구원을 이룰 수 있다고 착각을 합니다. 그래서 참된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외면하고 “자신만 올바르게 살면 된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참된 목자이시지만 믿지 않은 이들은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고,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장애물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자신들의 지도자들인 율법학자나 사제들을 따르지 않고, 마침내 참된 목자를 십자가에 못 박았던 것입니다.



가끔은 “나는 성당에는 안 나가지만 열심히 살고 있고, 기도도 잘 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에게 성당 나오라고 하지 마라. 다 때가 되면 알아서 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어떤 이는 “마음만은 늘 성당에 있어!”라고 말하며 성당에 한 번도 안 나오는 이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목자를 부정하는 양들은 결국 목자가 준비해 놓은 푸른 풀밭(구원, 생명)으로 가지 못함을 알아야 합니다.



③ 교만하고 어리석은 양

교만한 사람들은 공동체가 자신에게 사회적 지위에 합당한 대우를 해 주지 않아서 떠나기도 합니다. “내가 사회적 지위도 있고 하니, 나에게 적어도 이 정도는 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면서 말입니다. 어느 신부님께서 청년들과 함께 미사 후에 술을 한잔 하시게 되었습니다. 청년회장이 신부님께 먼저 술을 한잔 따라 드리니 옆에 있던 나이 많은 청년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내가 저 신부보다 나이가 많으니 나에게 먼저 술을 따라 주어야 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할 말이 없게 만드는 사람의 유형입니다.

어느 선생님은 영세 후 자신에게 “형제님! 형제님!”이라는 말이 듣기 싫어서 발길을 돌렸습니다. 왜냐하면 한 생을 “선생님!”이라고 불리며 살았는데, 세례를 받은 후부터는 “형제님!”이라고 부르니 화가 났던 것입니다. “내가 뭐 아쉬워서 시간 내어서 성당 다니겠는가?”하면서 발길을 끊었습니다. 하지만“어디에 내어 놓아도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④ 만사가 귀찮은 양

모든 것이 귀찮은 사람이 있습니다. “날 이대로 그냥 내 버려두세요. 내가 불에 타던지 말든지, 사막에서 맹수에게 잡혀 먹히든지, 말든지, 배고파서 굶어 죽든지 말든지…,”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결국 목자를 떠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메마른 사막으로 변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관심이 있는 곳에 몸이 있고, 마음이 있습니다. 관심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하기 싫습니다. 또한 관심이 없다는 것은 그것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르기 때문에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알려고 하지 않으면 마침내는 알고 있는 것 마저 잊어먹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착한 목자! 양을 사랑하는 목자, 양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내 놓으시는 목자. 그 목자가 바로 착한 목자이시고, 나를 그렇게 사랑하시는 목자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착한 목자의 사랑에 감사하며, 주님께서 이끄시는 푸른 풀밭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오로지 참된 목자이신 주님만을 바라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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