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무의 활동범위
이씨의 무업활동범위는 부여, 서천(舒川), 장항(長項) 등지이며, 배에 관계되는 굿이 나면 안면도(安眠島)까지 다닌다. 또 마을의 관혼상제가 있을 때는 巫祭儀를 집행하는데, 주로 혼인에 관계되는 것이 많다. 그리고 이씨의 수양자는 30명 가량된다.
다. 巫의 社會的 結合
이씨는 巫의 사회단체에는 관여한 일이 없다고 하였다.
Ⅱ. 령동지역의 무속
영동지역에서는 거진, 고성, 강릉과 삼척지역이며, 강원도 내륙지역에서는 춘천, 인제(麟蹄), 양구, 원주 등지이나, 성격적인 면에서 볼 때 서울, 경기지역의 巫俗과 大同小異한 실정이다.
1. 강원도 고성지역
(1) 巫의 身上
윤 을득(尹 乙得)은 25세 때 남편 김 관이(男, 화랭이, 71세)의 소실(小室)로 시집와서 37세 때 神이 내렸다. 윤 을득씨는 남편 김 관이씨에게서 巫를 배웠다.
(2) 成巫過程
가. 降神體驗
윤씨는 37세 때 우연히 시름시름 앓아서 밥을 못 먹고 바짝 말라서 자주 혼수상태에 빠지면서 미친 증세가 일어났다. 占을 해 보니 神이 내렸다하여 42세 때 神굿(降神굿)을하여 神을 받았다. 그러나 굿을 하는 巫가 되고 싶지 않아서 굿을 하지 않으려고 하다가 1개월 동안 7형제중 5명이 병으로 죽고 그 뒤를 이어 나머지 2명도 마저 죽자 이와 같은 현상이 모두 神이 시키는 조화라고 생각하여 巫가 되었다.
나. 巫의 學習
이와 같은 체험을 하면서 윤씨는 神의 뜻을 거역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이듬해인 42세 때부터 남편 김씨의 굿하는 곳에 따라 다니며 굿하는 절차 – 굿 차리는 법, 춤추는 법, 무가사설 -을 배워서 남편 김씨와 함께 굿하러 다니게 되었다.
(3) 신단 및 무구
가. 神壇의 形態
윤씨는 神房을 따로 내지 않고 그들 부부가 거하는 안방의 윗목벽에다 나무 장을 놓고 그 속에 <오구 대왕(大王)>과 <칠성(七星)>의 巫神圖 2매를 걸고 그 앞에 촛대 둘, 옥수단지 둘을 놓았다. 그리고 이 촛대를 놓는 그 선반 밑에 적색 천으로 주렴을 느리고 그 속에 巫具를 넣어 둔다. 巫神圖의 크기나 색채는 앞의 서울 지역과 비슷하다.
나. 巫神像
巫神像은 위에 언급한 대로 <오구 대왕>과 <칠성> 巫神圖 2매가 있다.
다. 巫樂器
굿에 사용되는 巫樂器는 장고, 징, 제팔이(제금), 꽹괄이의 4종이다. 징과 제팔이 그리고 꽹괄이는 앞에서 본 서울 지역의 것과 같다.
라. 巫服
윤씨가 굿할 때 神服으로 입는 巫服은 쾌자와 활옷의 2종이다. 쾌자는 굿의 전 과정에서 사용되나, 활옷을 큰 굿의 과정 – 시준굿, 용신굿 -에서만 입는다.
마. 其他
이외에 윤씨가 사용하는 巫具로는 방울, 부채, 대신칼, 명두, 명두바릿대가 있다. 방울은 굿에서 강신용으로 巫가 손에 드는 것이고, 부채는 巫가 굿에서 가무할 때 손에 드는 것이다. 대신칼 용도는 잡귀를 위협하여 쫓는 것으로 굿의 첫 번째 과정인 부정굿에서 巫가 사용하고, 굿의 맨끝 과정인 거리풀이에서 화랭이가 대신칼을 들고 서서 잡귀를 퇴송(退送)하는 巫歌를 구송(口誦)한다. 명두는 巫占具로 사용하는 것인데, 명두의 사용방법은 명두바릿대(직경 25cm, 높이 13cm의 작은 나무함지박에 참쌀을 가득 채워 놓은 것)에 명두를 꽂아 놓고 축원하면서 소원을 고하고 명두바릿대에서 명두를 뽑아 쌀이 붙어 있는 수를 보고 점괘를 푼다. 이 때 명두 안쪽에 붙어 있는 쌀의 수가 짝수로 떨어지면 不吉하고, 홀수로 떨어지면 吉한 괘(掛)가 된다.

나. 무의 활동범위
이씨의 무업활동범위는 부여, 서천(舒川), 장항(長項) 등지이며, 배에 관계되는 굿이 나면 안면도(安眠島)까지 다닌다. 또 마을의 관혼상제가 있을 때는 巫祭儀를 집행하는데, 주로 혼인에 관계되는 것이 많다. 그리고 이씨의 수양자는 30명 가량된다.
다. 巫의 社會的 結合
이씨는 巫의 사회단체에는 관여한 일이 없다고 하였다.
Ⅱ. 령동지역의 무속
영동지역에서는 거진, 고성, 강릉과 삼척지역이며, 강원도 내륙지역에서는 춘천, 인제(麟蹄), 양구, 원주 등지이나, 성격적인 면에서 볼 때 서울, 경기지역의 巫俗과 大同小異한 실정이다.
1. 강원도 고성지역
(1) 巫의 身上
윤 을득(尹 乙得)은 25세 때 남편 김 관이(男, 화랭이, 71세)의 소실(小室)로 시집와서 37세 때 神이 내렸다. 윤 을득씨는 남편 김 관이씨에게서 巫를 배웠다.
(2) 成巫過程
가. 降神體驗
윤씨는 37세 때 우연히 시름시름 앓아서 밥을 못 먹고 바짝 말라서 자주 혼수상태에 빠지면서 미친 증세가 일어났다. 占을 해 보니 神이 내렸다하여 42세 때 神굿(降神굿)을하여 神을 받았다. 그러나 굿을 하는 巫가 되고 싶지 않아서 굿을 하지 않으려고 하다가 1개월 동안 7형제중 5명이 병으로 죽고 그 뒤를 이어 나머지 2명도 마저 죽자 이와 같은 현상이 모두 神이 시키는 조화라고 생각하여 巫가 되었다.
나. 巫의 學習
이와 같은 체험을 하면서 윤씨는 神의 뜻을 거역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이듬해인 42세 때부터 남편 김씨의 굿하는 곳에 따라 다니며 굿하는 절차 – 굿 차리는 법, 춤추는 법, 무가사설 -을 배워서 남편 김씨와 함께 굿하러 다니게 되었다.
(3) 신단 및 무구
가. 神壇의 形態
윤씨는 神房을 따로 내지 않고 그들 부부가 거하는 안방의 윗목벽에다 나무 장을 놓고 그 속에 <오구 대왕(大王)>과 <칠성(七星)>의 巫神圖 2매를 걸고 그 앞에 촛대 둘, 옥수단지 둘을 놓았다. 그리고 이 촛대를 놓는 그 선반 밑에 적색 천으로 주렴을 느리고 그 속에 巫具를 넣어 둔다. 巫神圖의 크기나 색채는 앞의 서울 지역과 비슷하다.
나. 巫神像
巫神像은 위에 언급한 대로 <오구 대왕>과 <칠성> 巫神圖 2매가 있다.
다. 巫樂器
굿에 사용되는 巫樂器는 장고, 징, 제팔이(제금), 꽹괄이의 4종이다. 징과 제팔이 그리고 꽹괄이는 앞에서 본 서울 지역의 것과 같다.
라. 巫服
윤씨가 굿할 때 神服으로 입는 巫服은 쾌자와 활옷의 2종이다. 쾌자는 굿의 전 과정에서 사용되나, 활옷을 큰 굿의 과정 – 시준굿, 용신굿 -에서만 입는다.
마. 其他
이외에 윤씨가 사용하는 巫具로는 방울, 부채, 대신칼, 명두, 명두바릿대가 있다. 방울은 굿에서 강신용으로 巫가 손에 드는 것이고, 부채는 巫가 굿에서 가무할 때 손에 드는 것이다. 대신칼 용도는 잡귀를 위협하여 쫓는 것으로 굿의 첫 번째 과정인 부정굿에서 巫가 사용하고, 굿의 맨끝 과정인 거리풀이에서 화랭이가 대신칼을 들고 서서 잡귀를 퇴송(退送)하는 巫歌를 구송(口誦)한다. 명두는 巫占具로 사용하는 것인데, 명두의 사용방법은 명두바릿대(직경 25cm, 높이 13cm의 작은 나무함지박에 참쌀을 가득 채워 놓은 것)에 명두를 꽂아 놓고 축원하면서 소원을 고하고 명두바릿대에서 명두를 뽑아 쌀이 붙어 있는 수를 보고 점괘를 푼다. 이 때 명두 안쪽에 붙어 있는 쌀의 수가 짝수로 떨어지면 不吉하고, 홀수로 떨어지면 吉한 괘(掛)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