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운의 신 개념- 한울님의 특성

 

한울님의 특성


「하염 없는 이것들아, 날로 믿고 그러하냐, 나는 도시 믿지 말고, 한울님만 믿었어라. 네 몸에 모셨으니 捨近取遠하단말가. 나 역시 바라기는, 한울님만 전혀 믿고, 해몽 못한 너희들은, 書冊은 아주 廢코, 修道하기 힘쓰기는, 그도 또한 도덕이라」 <용담유사 교훈가>


이렇게 동학은 한울님만 믿으라고 힘주어 가르친다. 이 한울님은 오직 하나인 어떤 절대적인 존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고 우리 인간과 어떤 인격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어떤 인격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이러한 한울님만 믿으라고 애써 가르치는 동학은 아주 뚜렷한 一神敎(Monotheism)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동학이라는 어떤 특정한 종교에서 믿음의 대상으로 삼는 한울님은 그 이전의 한울님과 실질적으로 다소 다를 수 있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이 자연적으로 믿어오던 한울님과 일신교적인 특성을 갖춘 동학이 믿는 한울님이 실질적으로는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은 일찍부터 한울님을 믿어 왔다. 단군신화에 나타나는 桓因은 「한울님」을 한자로 나타낸 말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 後漢書 東夷傳에 夫餘國에서는 「12월에 祭天한다」라는 말이 보인다. 이것은 우리 민족이 한울님에게 제사지낸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단군신화는 우리 민족이 처음으로세운 部族國 가운데 하나인 古朝鮮의 건국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민족은 대체로 서기 전 10세기 이후에 청동기를 쓰기 시작하였다. 이 금속문화로 말미암아 우리 사회의 변동도 커지게 되어 처음으로 부족국가들이 나타났다. 古朝鮮, 夫餘, 濊, 臨屯, 眞番,辰國 같은 나라들은 서기 전 4세기 쯤에 중국에까지 알려질 만큼 커졌다. 이러한 부족국가의 시대에 이미 우리 민족은 한울님을 믿고 있었다.


동학은 한울님을 뚜렷이 그 믿음의 대상으로 삼는 독특한 종교다. 그것은 한울님을 믿어온 우리 민족의 자연적인 심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동학이 믿는 한울님은 어떤 특정한 신일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상제・천・데우스(Deus)와는 다른 어떤 특정한 신이다. 따라서 한울님이라는 말은 알라(Allah)나 야훼(Yahweh)와 같은 하나의 고유명사일 수 밖에 없다. 그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우리 민족의 자연적인 심정 속에 있었던 종래의 한울님과도 다소 다를 수 밖에 없다. 동학은 이러한 한울님의 특성을 직접으로나 간접으로 애써 밝히고 있다.


「天恩이 망극하여, 庚申 四月 초오일에, 글로 어찌 기록하며, 말로 어찌 形言할까. 萬古 없는 無極大道, 여몽여각 得道로다. 기장하다 기장하다, 이내 운수 기장하다. 한울님 하신 말씀, 개벽후 五萬年에, 네가 또한 첨이로다. 나도 또한 개벽이후, 勞而無功하다가서, 너를 만나 성공하니, 나도 성공 너도 得道, 너의 집안 운수로다」 <용담유사 용담가>


「개벽후 오만년에 네가 또한 첨이로다」라고 한 한울님의 말씀은 그동안 한울님을 뚜렷이 믿는 우리 민족적인 종교가 없었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 민족의 자연적인 심정에 따르면 한울님이 만물을 내고 또 만물을 다스린다. 그런데 그동안 사람들은 한울님을 제대로 위하지 않았다. 이것을 한울님의 쪽으로 보면 「수고만 하고 보람이 없었다」(奴而無功)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수운의 결정적인 종교체험은 결국 한울님만 믿는 새로운 민족적인 종교를 위한 마음의 다짐이라고 볼 수 있다. 한울님을 아주 믿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 구체성이 더욱 요구되었다. 수운은 직접 그 귀로써 한울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증언한다. 이로써 한울님의 구체성이 매우 강조되었다. 다시 그는 한울님의 그 말씀으로써 사람들을 가르쳤다고 증언한다. 이렇게 한울님의 인간적인 특성을 말함으로써 한울님의 구체성이 그 절정에 이르렀다. 결국 한울님을 가장 구체화하려면 그것을 인격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학에서 믿는 한울님이 어떤 인격적인 존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한울님은 인격적이라는 점에서 본래 인격적인 우리 인간과 그만큼 가까운 존재다. 그러나 한울님이 인간과 가깝기만 할 수도 없다. 동시에 한울님은 인간을 아득히 넘어선 어떤 절대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곧 한울님은 우리 인간과 가장 가깝기도 하고 가장 멀리떨어져 있기도 한 서로 아주 엇갈린 두 특성을 가지고 있다.1)


「한울님만 恭敬하면, 我東方 三年 怪疾,죽을 念慮있을 소냐」 <용담유사 권학가>


「개 같은 倭賊 놈을, 한울님께 造化받아, 一夜間에 멸하고서」 <용담유사 안심가>


한울님만 공경하면 아무리 무서운 병이 돌아도 죽을 염려가 없다는 것이다. 한울님의 造化만 받으면 저 극성스러운 왜적도 하룻밤 사이에 쳐 없앨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조화란 우리 인간이 아득히 미칠 수 없는 놀라운 힘을 말한다. 이렇게 한울님은 어떤 절대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다.


「天意 人心 네가 알까, 한울님이 뜻을 두면, 금수 같은 세상 사람, 얼풋이 알아내네」 <용담유사 몽중노소문답가>


「아서라 저 사람은, 네가 비록 暗詐하나, 한울님도 모르실까」  <용담유사 흥비가>


한울님은 사람들이 남몰래 마음 속에 감추고 있는 것까지 어느덧 알아낸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한울님은 그 知力에 있어서 우리 인간을 초월해 있다. 이렇게 한울님은 초인간적인 全能과 全知를 갖추고 있으므로 천지만물을 다스릴 수 있다.


「대저 아득한 옛날부터 봄과 가을이 어김없이 갈아들고 네 철이 변함없이 제 때를 만났다가 사라져간다. 이것도 또한 한울님의 造化의 자취가 天下에 뚜렷하다는 본보기다.」  <동경대전 포덕문>


자연계에는 정연한 질서가 있다. 온갖 사물들이 끊임없이 생성 변화하는 복잡한 과정 속에 어떤 불변적인 理法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수운은 이것을 한울님의 조화가 자연계를 지배하고 다스리고 있는 증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천지 만물을 다스린다고 보면서도 수운은 한울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대저 生靈 草木 群生, 死生在天 아닐런가」  <용담유사 안심가>


「대저 人間 草木 群生, 死生在天 아닐런가」  <용담유사 권학가>


풀・나무・벌레・새・짐승・사람의 나고 죽는 것이 한울님에게 달려있다고 수운은 거듭 말하고 있다. 곧 생물의 생사가 한울님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고 생물을 한울님이 창조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天生萬民하였으니, 必授其職할 것이요, 命乃在天하였으니, 죽을 염려 왜 있으며, 한울님이 사람 낼 때, 祿없이는 아니 내네」  <용담유사 교훈가>


여기서도 한울님이 만물을 창조했다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이렇게 한울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면 한울님의 전지 전능과 천주교의 천주의 전지 전능은 실질적으로 상당히 다르다고 볼 수 밖에 없다.2)


수운은 한울님이 우리 인간과 가깝기도 하고 멀기도 하다는 것을 밝혀내려고 애썼다. 한울님의 인격화를 통해 우리 인간과 가깝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했다.


「한울님만 恭敬하면, 我東方 三年 愧疾, 죽을 염려 있을소냐」  <용담유사 권학가>


「한울님만 恭敬하면, 自兒時 있던 身病, 勿藥自效 아닐런가」  <同上>


한울님은 그를 공경하는 마음을 알아주는 인격적인 존재라면 우리 인간과 가장 가까울 수 있다. 우리 인간이 한울님을 공경하기만 하면 한울님과 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측면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한울님을 공경하는 방법으로서 예컨대 정성스러운 마음을 생각할 수 있다.


「그렇게 되는 까닭을 잘 살펴보니 精誠을 다하여 지극히 한울님을 위하는 사람은 번번이 效力이 있고 道德에 따르지 않는 사람은 모조리 效力이 없었다. 이것은 靈符를 받는 사람의 精誠과 恭敬에 달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  <동경대전 포덕문>


여기서 靈符는 한울님의 조화의 한 본보기다. 이 영부를 통해 한울님의 조화로 어떠한 무서운 병도 고칠 수 있다. 이 영부를 얻기 위해서도 이 영부의 효력을 위해서도 우리 인간은 한울님과 인격적으로 통하기 위해서는 정성스러운 마음이나 도덕에 따르는 마음 같은 것이 요구된다. 이러한 倫理化는 결국 우리 인간이 도덕적인 노력만 하면 한울님을 위하는 종교적인 노력은 필요치 않다는 입장에 이르고 만다.


이에 대해 한울님이 우리 인간을 초월해 있다고 하는 측면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한울님의 전지전능이 강조되어 한울님이 천지 만물을 다스린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울님은, 至公無私하신 마음, 不擇善惡하시나니」  <용담유사 도덕가>


우리의 지성은 천지 만물의 정연한 질서를 요구한다. 한울님이 「지공무사 하신 마음」으로 천지 만물을 다스린다고 보아야 한다. 천지 만물을 다스림에 있어서는 선악을 가리지 않고 오직 한결같아야 한다. 곧 일률적인 理法에 따라야 한다. 이렇게 한울님의 超越化는 결국 천지만물의 이법 이외에 어떤 인격적인 존재를 인정하지 않게 된다. 이렇게 동학의 한울님은 倫理化와 超越化라는 두 가지 매우 어려운 문제를 동시에 품고 있다. 이것은 모든 일신교적인 종교에 공통되는 어려움일 것이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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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한울님의 특성

    「하염 없는 이것들아, 날로 믿고 그러하냐, 나는 도시 믿지 말고, 한울님만 믿었어라. 네 몸에 모셨으니 捨近取遠하단말가. 나 역시 바라기는, 한울님만 전혀 믿고, 해몽 못한 너희들은, 書冊은 아주 廢코, 修道하기 힘쓰기는, 그도 또한 도덕이라」 <용담유사 교훈가>

    이렇게 동학은 한울님만 믿으라고 힘주어 가르친다. 이 한울님은 오직 하나인 어떤 절대적인 존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고 우리 인간과 어떤 인격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어떤 인격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이러한 한울님만 믿으라고 애써 가르치는 동학은 아주 뚜렷한 一神敎(Monotheism)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동학이라는 어떤 특정한 종교에서 믿음의 대상으로 삼는 한울님은 그 이전의 한울님과 실질적으로 다소 다를 수 있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이 자연적으로 믿어오던 한울님과 일신교적인 특성을 갖춘 동학이 믿는 한울님이 실질적으로는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은 일찍부터 한울님을 믿어 왔다. 단군신화에 나타나는 桓因은 「한울님」을 한자로 나타낸 말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 後漢書 東夷傳에 夫餘國에서는 「12월에 祭天한다」라는 말이 보인다. 이것은 우리 민족이 한울님에게 제사지낸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단군신화는 우리 민족이 처음으로세운 部族國 가운데 하나인 古朝鮮의 건국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민족은 대체로 서기 전 10세기 이후에 청동기를 쓰기 시작하였다. 이 금속문화로 말미암아 우리 사회의 변동도 커지게 되어 처음으로 부족국가들이 나타났다. 古朝鮮, 夫餘, 濊, 臨屯, 眞番,辰國 같은 나라들은 서기 전 4세기 쯤에 중국에까지 알려질 만큼 커졌다. 이러한 부족국가의 시대에 이미 우리 민족은 한울님을 믿고 있었다.

    동학은 한울님을 뚜렷이 그 믿음의 대상으로 삼는 독특한 종교다. 그것은 한울님을 믿어온 우리 민족의 자연적인 심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동학이 믿는 한울님은 어떤 특정한 신일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상제・천・데우스(Deus)와는 다른 어떤 특정한 신이다. 따라서 한울님이라는 말은 알라(Allah)나 야훼(Yahweh)와 같은 하나의 고유명사일 수 밖에 없다. 그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우리 민족의 자연적인 심정 속에 있었던 종래의 한울님과도 다소 다를 수 밖에 없다. 동학은 이러한 한울님의 특성을 직접으로나 간접으로 애써 밝히고 있다.

    「天恩이 망극하여, 庚申 四月 초오일에, 글로 어찌 기록하며, 말로 어찌 形言할까. 萬古 없는 無極大道, 여몽여각 得道로다. 기장하다 기장하다, 이내 운수 기장하다. 한울님 하신 말씀, 개벽후 五萬年에, 네가 또한 첨이로다. 나도 또한 개벽이후, 勞而無功하다가서, 너를 만나 성공하니, 나도 성공 너도 得道, 너의 집안 운수로다」 <용담유사 용담가>

    「개벽후 오만년에 네가 또한 첨이로다」라고 한 한울님의 말씀은 그동안 한울님을 뚜렷이 믿는 우리 민족적인 종교가 없었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 민족의 자연적인 심정에 따르면 한울님이 만물을 내고 또 만물을 다스린다. 그런데 그동안 사람들은 한울님을 제대로 위하지 않았다. 이것을 한울님의 쪽으로 보면 「수고만 하고 보람이 없었다」(奴而無功)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수운의 결정적인 종교체험은 결국 한울님만 믿는 새로운 민족적인 종교를 위한 마음의 다짐이라고 볼 수 있다. 한울님을 아주 믿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 구체성이 더욱 요구되었다. 수운은 직접 그 귀로써 한울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증언한다. 이로써 한울님의 구체성이 매우 강조되었다. 다시 그는 한울님의 그 말씀으로써 사람들을 가르쳤다고 증언한다. 이렇게 한울님의 인간적인 특성을 말함으로써 한울님의 구체성이 그 절정에 이르렀다. 결국 한울님을 가장 구체화하려면 그것을 인격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학에서 믿는 한울님이 어떤 인격적인 존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한울님은 인격적이라는 점에서 본래 인격적인 우리 인간과 그만큼 가까운 존재다. 그러나 한울님이 인간과 가깝기만 할 수도 없다. 동시에 한울님은 인간을 아득히 넘어선 어떤 절대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곧 한울님은 우리 인간과 가장 가깝기도 하고 가장 멀리떨어져 있기도 한 서로 아주 엇갈린 두 특성을 가지고 있다.1)

    「한울님만 恭敬하면, 我東方 三年 怪疾,죽을 念慮있을 소냐」 <용담유사 권학가>

    「개 같은 倭賊 놈을, 한울님께 造化받아, 一夜間에 멸하고서」 <용담유사 안심가>

    한울님만 공경하면 아무리 무서운 병이 돌아도 죽을 염려가 없다는 것이다. 한울님의 造化만 받으면 저 극성스러운 왜적도 하룻밤 사이에 쳐 없앨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조화란 우리 인간이 아득히 미칠 수 없는 놀라운 힘을 말한다. 이렇게 한울님은 어떤 절대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다.

    「天意 人心 네가 알까, 한울님이 뜻을 두면, 금수 같은 세상 사람, 얼풋이 알아내네」 <용담유사 몽중노소문답가>

    「아서라 저 사람은, 네가 비록 暗詐하나, 한울님도 모르실까」  <용담유사 흥비가>

    한울님은 사람들이 남몰래 마음 속에 감추고 있는 것까지 어느덧 알아낸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한울님은 그 知力에 있어서 우리 인간을 초월해 있다. 이렇게 한울님은 초인간적인 全能과 全知를 갖추고 있으므로 천지만물을 다스릴 수 있다.

    「대저 아득한 옛날부터 봄과 가을이 어김없이 갈아들고 네 철이 변함없이 제 때를 만났다가 사라져간다. 이것도 또한 한울님의 造化의 자취가 天下에 뚜렷하다는 본보기다.」  <동경대전 포덕문>

    자연계에는 정연한 질서가 있다. 온갖 사물들이 끊임없이 생성 변화하는 복잡한 과정 속에 어떤 불변적인 理法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수운은 이것을 한울님의 조화가 자연계를 지배하고 다스리고 있는 증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천지 만물을 다스린다고 보면서도 수운은 한울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대저 生靈 草木 群生, 死生在天 아닐런가」  <용담유사 안심가>

    「대저 人間 草木 群生, 死生在天 아닐런가」  <용담유사 권학가>

    풀・나무・벌레・새・짐승・사람의 나고 죽는 것이 한울님에게 달려있다고 수운은 거듭 말하고 있다. 곧 생물의 생사가 한울님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고 생물을 한울님이 창조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天生萬民하였으니, 必授其職할 것이요, 命乃在天하였으니, 죽을 염려 왜 있으며, 한울님이 사람 낼 때, 祿없이는 아니 내네」  <용담유사 교훈가>

    여기서도 한울님이 만물을 창조했다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이렇게 한울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면 한울님의 전지 전능과 천주교의 천주의 전지 전능은 실질적으로 상당히 다르다고 볼 수 밖에 없다.2)

    수운은 한울님이 우리 인간과 가깝기도 하고 멀기도 하다는 것을 밝혀내려고 애썼다. 한울님의 인격화를 통해 우리 인간과 가깝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했다.

    「한울님만 恭敬하면, 我東方 三年 愧疾, 죽을 염려 있을소냐」  <용담유사 권학가>

    「한울님만 恭敬하면, 自兒時 있던 身病, 勿藥自效 아닐런가」  <同上>

    한울님은 그를 공경하는 마음을 알아주는 인격적인 존재라면 우리 인간과 가장 가까울 수 있다. 우리 인간이 한울님을 공경하기만 하면 한울님과 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측면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한울님을 공경하는 방법으로서 예컨대 정성스러운 마음을 생각할 수 있다.

    「그렇게 되는 까닭을 잘 살펴보니 精誠을 다하여 지극히 한울님을 위하는 사람은 번번이 效力이 있고 道德에 따르지 않는 사람은 모조리 效力이 없었다. 이것은 靈符를 받는 사람의 精誠과 恭敬에 달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  <동경대전 포덕문>

    여기서 靈符는 한울님의 조화의 한 본보기다. 이 영부를 통해 한울님의 조화로 어떠한 무서운 병도 고칠 수 있다. 이 영부를 얻기 위해서도 이 영부의 효력을 위해서도 우리 인간은 한울님과 인격적으로 통하기 위해서는 정성스러운 마음이나 도덕에 따르는 마음 같은 것이 요구된다. 이러한 倫理化는 결국 우리 인간이 도덕적인 노력만 하면 한울님을 위하는 종교적인 노력은 필요치 않다는 입장에 이르고 만다.

    이에 대해 한울님이 우리 인간을 초월해 있다고 하는 측면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한울님의 전지전능이 강조되어 한울님이 천지 만물을 다스린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울님은, 至公無私하신 마음, 不擇善惡하시나니」  <용담유사 도덕가>

    우리의 지성은 천지 만물의 정연한 질서를 요구한다. 한울님이 「지공무사 하신 마음」으로 천지 만물을 다스린다고 보아야 한다. 천지 만물을 다스림에 있어서는 선악을 가리지 않고 오직 한결같아야 한다. 곧 일률적인 理法에 따라야 한다. 이렇게 한울님의 超越化는 결국 천지만물의 이법 이외에 어떤 인격적인 존재를 인정하지 않게 된다. 이렇게 동학의 한울님은 倫理化와 超越化라는 두 가지 매우 어려운 문제를 동시에 품고 있다. 이것은 모든 일신교적인 종교에 공통되는 어려움일 것이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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