Ⅳ. 평가
1. 甑山敎는 時代的 不安을 克服하려는 宗敎的 試圖이다.
증산은 양반 가문의 후손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지위를 뒷받침할 만한 경제력이 없는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로 인해 학업마저 포기하고 머슴살이, 산판꾼 등으로 전전하게 되었다. 사회적․경제적 지위의 불일치로 인한 실조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러한 실조의식은 그의 유력생활을 통해 더욱 고조되었고, 여기에서 사회구조 자체에 대한 비판의식도 함께 성숙되었다.
또한 당시의 시대상황은 국가 정체의 위기를 느낄 만큼 혼란한 상태였다. 외부적으로는 서구 제국의 위협과 내부적으로는 권력투쟁의 암투로 인한 혼란이 가중되고 있었다. 게다가 관리들의 민중수탈로 인해 일반 민중은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되어 신음하던 시대였다. 이러한 국가 정체의 위기와 고통받는 민중을 구하기 위해 일어선 동학이 실패함으로써, 동학으로 인해 한껏 고조되었던 민중의 자아의식은 그 해결책을 찾지 못해 오히려 더 방황에로 접어들게 되었다. 관의 동학교도에 대한 색출과 처형은 삶 자체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와 더불어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목격한 증산은 혼란한 시대에서 방향을 상실한 민중을 구제해야겠다는 결심을 품게 되었다.
그런데 동학의 실패를 보고는 민중구제의 방법을 달리하게 되었다. 즉 현세적인 방법, 무력을 통한 방법으로는 성공치 못할 것으로 알고 종교적인 방법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기성종교는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화석화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더욱이 동․서양의 교류로 인해 세계가 넓어짐으로써 이제는 어느 하나의 종교로는 안되고, 각 종교와 문화의 진액을 뽑아 하나로 뭉쳐야만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신명을 주재하는 도술로써만 가능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유․불․선과 동학, 기독교, 민간신앙 등에 관한 서적을 탐독하고, 도통공부의 완성을 이루기 위해 大願寺에 들어갔다. 거기에서 그는 당시 조선사회의 제반 상황에 대한 나름대로의 철저한 분석과 그 이전의 종교적 경험의 기초 위에서 극단의 종교적 경험을 체험하게 되었다. 그 결과 자신이 구천의 上帝로써 이 세상의 혼란을 구제하기 위해 내려온 존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내부의 심리내용을 외계로 투사(投射)시키는 심리적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심리적 과정은 E. Sapir의 말처럼 혼란한 사회에서 그것을 구제할 수 없는 인간 존재 곧 증산 자신의 무력성을 인정하고, 이 세상을 조건짓고 규제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궁극적이고 신성한 초월자를 경험하고 그 초월자와 자신을 의심없이 비합리적으로 동일시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또한 이 심리적 과정은 세계재건의 환상으로 전환된다. 불만스러웠던 과거는 멸망하고 새로운 유토피아가 전개된다는 생각, 그리고 자기는 그 세계를 향한 어떤 위대한 사명을 가지고 왔다는 생각은 ‘과거의 열등과 우울과 불만에 차 있던 나’를 ‘앞으로 위대한 사명을 지닌 보람찬 존재인 나’로 변화시킨다.
이러한 종교적 체험을 통해 그는 경제적․신분적 불일치로 인한 좌절의식과 실조의식을 극복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아노미적 상황에 빠진 조선이 세계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민족주의적 선민의식과 소명의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이 得道를 하였다고 하며 자신의 카리스마를 강조하는 증산에게 모여든 사람들은 동학혁명의 실패로 심한 좌절의식에 빠져 있던 동학교도들이었다. 그들은 증산의 카리스마를 통하여 동학혁명에서 성취하지 못한 사회구조의 개혁과 자신들의 욕구충족을 달성하기를 희망하였다. 추종자들의 욕구체계는 종교적이라기 보다는 현세이익적(現世利益的)이었던 것이다.
증산은 이러한 추종자들의 욕구를 반영하는 한편, 그 욕구들을 하나의 민중사상(民衆思想)으로 체계화시키는 동시에 종교사상(宗敎思想)으로 연결시켰다. 당시 동학혁명을 통해 민중들이 실현하고자 하였던 平等, 平和, 民族主體의 欲求 등을 平等思想, 平和思想, 民族主體思想으로 체계화시켰고, 이것을 東學에서와 같이 직접적인 사회참여의 방법에 의해 실현시키려고 하기보다는 人存思想, 解寃과 原始返本思想, 選民思想이라고 하는 宗敎思想으로 발전시켰다.
이렇게 볼 때 증산사상의 핵심사상인 人尊思想, 解寃과 原始返本思想, 選民思想 등은 증산의 새롭고 독특한 사상이라기 보다는 당시 일반 민중의 욕구를 종교적으로 體系化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증산교는 時代的 不安을 克服하려는 宗敎的 試圖, 宗敎의 모습을 띤 大衆的인 解放運動이라 할 수 있다. 즉 後三國 時代의 견훤과 궁예의 彌勒革命 思想, 高麗末의 彌勒信仰 運動과 朝鮮時代 여환과 장길산의 彌勒革命 運動 등과 유사하나, 단지 다르다면 물리적 차원을 떠나 非世俗的인 次元인 宗敎的인 性格으로 轉換시켰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