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교에 대한 가톨릭적 관점

증산은 동학의 기운이 무르익던 1871년 11월 1일, 동학의 중심지였던 전라도 고부(古阜) 지방에서 태어났다. 혼란한 시대에서 동학의 영향을 받으며 자라났다고 볼 수 있는데, 자신의 失調意識의 극복과 억압받는 민중을 구해야겠다는 召命意識에 의해 새로운 종교창립을 시도하였다. 


그 방법으로써 그는 모든 종교의 교리와 儀式을 연구하는 한편, 급변하는 시대상황을 관찰하기 위해 全國 遊歷의 길을 떠났다. 유력생활을 통하여 그의 사회적․종교적 체험은 더욱 넓어지고 체계화되었다. 그것은 사회개혁을 이루어 민중을 구제하는 방법은 물리적인 힘이나 기성종교로는 안되고, 神明을 부릴 수 있는 道術로써만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증산은 道의 완성을 보아 자유자재로 신명을 부릴 수 있는 능력을 얻기 위해, 31살 되던 해인 1901년에 전주 모악산에 있는 대원사에 들어가 道를 닦기에 주력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 해 7월 5일(음력) 도를 깨달았다고 한다. 


도(道)를 깨우쳤다는 그의 주장에 의하면 그는 자신이 모든 신명들의 요청에 의해 혼란에 빠진 세상을 구하기 위해 내려온 天․地․人 三界의 대권(大權)을 지닌 主宰者, 彌勒佛, 玉皇上帝이다. 


증산은 세상을 구하기 위한 방법으로 天地公事라는 의식을 사용하였다. 증산교에 의하면 천지공사는 신명계와 인간계, 그리고 자연계의 기존 운행질서를 새롭게 개편하는 작업을 말한다. 우주의 여름과 가을이 바뀌는 때에 우주의 주재자가 인간으로 강림하여 相克의 이치가 지배하는 선천시대의 불합리한 운행질서를 바로 잡아 후천선경을 열 수 있는 새로운 질서와 법을 제정한 작업을 일컫는다. 즉 三界大權의 절대적 권능으로 하늘과 땅의 질서를 통일하고 예로부터 인간 가슴속에 맺혀온 원한을 풀어 천지와 인간을 동시에 구원하여 인류의 새시대를 여는 전무후무한 작업을 말한다. ‘후천 소프트 웨어’라고 비유하는 천지공사에서 증산이 하늘과 땅을 뜯어 고쳐 물 샐틈도 없이 도수를 짜 놓았으니 제 한도에 돌아 닿는대로 새 기틀이 열린다고 했으니, 지상선경은 오고야 만다는 것이다.


그런데 천지공사는 증산의 카리스마적 권능에 의해 그 도수가 짜여져 있지만, 지상선경은 道通 공부를 통한 엄격한 수련과 기도, 그리고 후천개벽시대에 적절한 새로운 윤리규범의 실천이 병행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한다.




증산은 그에 대한 추종자들의 회의가 증가하는 가운데 9년간의 천지공사를 마치고 1909년 8월 9일 39세의 일기로 사망하였다. 증산교에서는 이것을 화천(化天)이라고 한다. 증산이 이처럼 억눌려 핍박받는 민중을 구제하기 위해 종교적 구도의 길을 걸었지만, 그러나 이미 살펴본 대로 증산교는 


첫째, 時代末的 不安을 克服하려는 宗敎的 試圖이다. 


둘째, 韓國 社會의 宗敎混合的 傳統의 延長이다. 


셋째, 現世中心的 性格으로 인해 ‘人間의 窮極的인 恨’인 ‘죽음’을 해결하 지 못함으로써 한계점을 드러낸다. 증산이 제시하는 구원은 완전하고 궁극적인 구원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증산교에 대해 그리스도교 복음의 접함점은 해원(解寃)에 있다. ‘한으로부터의 해방’에 있다. 그리스도는 ’죽음이라는 최대의 恨‘으부터 인간을 구해주시는 “解寃者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결국 신흥종교가 병든 사회, 병든 종교로 인한 사회불안의 산물이고 절박한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민중의 몸부림이기도 하다면, 복음선포의 사명을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교회는 이러한 민중의 몸부림들을 받아들여 줄 수가 있어야 하고, 그들의 아픔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인간의 참 주인이신 하느님께로 그들을 이끌어 줄 수 있어야 한다. 하느님이 아닌 인간을 쫓아가다 스스로 인간소외의 벽에 부딪쳐 버린 인간은 창조주 하느님께로 방향을 바꿀 때 비로소 참 인간으로 우뚝 서게 될 것이다. 이에 교회는 늘 말씀 안에 깨어 있으며, 스스로의 부단한 자기 쇄신을 기해야 함이 마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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