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십자가의 죽음

 Ⅲ.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




 우리는 먼저 성경 상에 나타난 사도들의 언행을 중심 삼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당연한 것이었던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사도들이 예수님의 죽음에 대하여, 공통적으로 느낀 뚜렷한 하나의 정염이 있었으니, 그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죽음을 억울하게 여김으로써 분개하고 서러워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 준 「유대」인들의 무지와 불신을 통분이 여겼으며, 그들의 행위를 패역무도한 것으로 여겨 저주하였다(사도행전 7장 51 – 53절). 그뿐 아니라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기독교 신도들과 같은 심정을 가지고 내려왔던 것이다. 만일 예수님의 죽음이 하나님의 예정에서 온 필연적인 결과였다면, 사도들이 그의 죽음을 서러워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인정이겠지만, 하나님의 예정대로 이루어진 그 섭리의 결과에 대해서 그렇게도 분개하고 저주했을 리는 없는 것이다. 이것으로 보아 예수님은 온당치 않은 죽음의 길을 걸어가셨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에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로 보아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과연 하나님의 예정에서 되어진 필연적인 결과였던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에서 「이스라엘」 선민을 부르시어 저들을 보호 육성하시고, 때로는 그들을 고난과 시련으로써 인도하셨다. 그리고 많은 선지자들을 그들에게 보내시어 위로하시며, 장차 「메시아」를 보내실 것을 굳게 약속하셨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성막과 성전을 지음으로써 「메시아」를 맞을 준비를 하게 하시고, 동방박사 「시몬」, 「안나」, 세례「요한」 등을 보내시어 「메시아」의 탄생과 그의 나타나심을 널리 증거 하셨던 것이다. 특히 세례「요한」에 대해서는 그가 잉태될 때 천사가 나타나서 증거한 사실을 「유대」인들이 다 알고 있었고(누가복음 1장 13절1)), 그가 출생할 때에 되어진 이적은 당시의 「유대」성중을 크게 놀라게 하였다(누가복음 1장 63절 – 66절). 뿐만 아니라 광야에 있어서의 그의 수도생활은 모든 「유대」인들로 하여금 그가 「메시아」가 아닌 가고 생각케 할 정도로 놀랄만한 것이었다(누가복음 3장 15절).


 하나님이 이렇듯 위대한 세례「요한」까지 보내시어 예수님을 「메시아」로 증거 하게 하셨던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유대」인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이 어디까지나 「이스라엘」로 하여금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게 하려는 데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할 「이스라엘」은 그를 「메시아」로 믿어야만 했었다. 만일 저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었다면, 오랜 역사의 기간을 두고 고대해 왔던 그 「메시아」를 누가 십자가에 내주었을 것인가?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십자가의 죽음 길에 내준 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반하여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길을 가시기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음으로 우리는 예수님 자신의 언행으로 보아서, 그의 십자가의 죽음이, 과연 「메시아」로 오셨던 그 전 목적을 이루기 위한 길이었던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하나님의 모든 섭리가 그러했었던 것과 같이, 예수님도 「유대」인들로 하여금 자기를 「메시아」로 믿을 수 있도록 언행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성서를 통하여서 분명히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하고 물었을 때,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요한복음 6장 29절1))고 대답하셨다. 예수님은 또 「유대」인들의 배신행위를 가슴아프게 생각하시고, 호소할 곳이 없어 성을 바라보고 우시면서, 하나님이 2천년 동안이나 애쓰시며 사랑으로 이끌어 온 「이스라엘」선민은 두말할 것도 없고, 이 성마저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겨지지 않을 정도로 멸망해 버리고 말 것이라고 저주하시면서, ꡔ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ꡕ(누가복음 19장 41 – 44절1))고, 명백히 그 무지를 지적하셨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은 ꡔ「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ꡕ(마태복음 23장 37절)라고 하시어, 그들의 완고와 불신을 한탄하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를 위하여 증거하고 있는 성경을 보면서도, 믿지 못하는 그들의 무지를 책망하시면서 ꡔ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 도다ꡕ(요한복음 5장 39 – 40절1))라고 슬퍼하셨다. 그는 또 ꡔ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치 아니하나ꡕ라고 서러워하시면서, 이어 ꡔ「모세」를 믿었다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ꡕ(요한복음 5장 43 – 46절)고도 말씀하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의 불신을 돌이키시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이적과 기사를 보여주셨던가. 그러나 그들은 그 놀라운 일들을 보면서도, 예수님을 「바알세불」이 접한 자라고 비난하지 않았던가(마태복음 12장 24절). 그리고 이러한 비참한 정경을 보시는 예수님은 때로는 ꡔ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ꡕ(요한복음 10장 38절1))고도 말씀하셨다. 그런가 하면 때로는 그들에게 화가 있으라고, 분노를 퍼붓기도 하셨던 것이다(마태복음 23장 13 – 36절1)). 「이스라엘」로 하여금 그를 믿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었기 때문에, 예수님 자신도 이와 같이 저들에게 자기를 믿을 수 있도록 언행을 하셨던 것이다. 만일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그리고 예수님이 원하신 대로 그를 「메시아」로 믿었다면, 누가 그를 십자가의 죽음 길로 몰아냈을 것인가 !


 우리는 위에서 논증한 모든 사실로 보아,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그가 「메시아」로 오셨던 전 목적을 완성하기 위한 예정에서 온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무지와 불신의 결과로 온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2장 8절의 ꡔ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다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하였으리라ꡕ는 성구는, 바로 이 사실을 충분히 증거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라 하겠다.


 만일 예수님의 십자가 노정이 하나님께서 본래부터 예정하신 길이었다면, 그는 당연히 가셔야 할 길을 걸어가시면서 무엇 때문에 할만 하면 그 죽음의 잔을 면케 해달라고 세 번씩이나 기도를 올리셨을 것인가(마태복음 26장 39절).  실상 그것은 인간이 타락된 이후, 4천년 동안이나 하나님께서 이루시려고 애쓰셨던 지상천국이 「유대」인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지 않고,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고난의 역사가 그대로 연장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요한」복음 3장 14절을 보면 예수 님께서는 ꡔ「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ꡕ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민족이 애급에서 「가나안」땅으로 들어갈 때, 광야에서 「모세」를 믿지 않게 되자, 불 뱀이 나와서 그들을 물어 죽이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구리 뱀을 장대 끝에 달게 하여 그것을 쳐다본 사람은 살게 하셨다. 마찬가지로 「유대」민족이 예수님을 믿지 않음으로써 만민이 지옥으로 가야만 하게 되었기 때문에, 장차 예수님이 구리뱀과 같이 십자가에 달리신 후, 그것을 쳐다보고 믿는 사람만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을 예견하시면서 예수님은 서글픈 심정으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었다.


 예수님이 예언하신 대로(누가복음 19장 44절) 그가 돌아가신 후 「이스라엘」선민이 쇠망한 것을 보아도,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서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사야」 9장 6절 이하에 ꡔ한 아이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 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히 이를 이루시리라ꡕ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예수님이 「다윗」왕의 위를 가지고 오셔서, 영원히 멸하지 않을 왕국을 세우실 것을 예언하신 말씀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잉태될 때에도,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ꡔ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ꡕ(누가복음 1장 31 – 33절)는 말씀을 전하였던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스라엘」선민을 불러, 2천년간이나 고난 가운데서 이끌어 나오신 것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보내시어 영원히 존속할 왕국을 이룩하시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이 「메시아」로 오셨다가 「유대」인들에게 몰려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저들은 선민의 자격을 잃어버리고 지리멸렬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민족적인 학대를 받아 나왔다. 이것은 그들이 신봉해야 할 「메시아」를 도리어 살해함으로써, 구원섭리의 목적을 이루시지 못하게 하였던 그 범죄에 대한 벌이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 이후 수많은 성도들이 당하여 온 십자가의 고난도, 예수님을 살해한 연대적 범죄에 대한 형벌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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