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유대민족이 예수님을 배반하게 되자, 그들과 전 인류를 하나님 앞에 복귀하시기 위한 대속의 조건으로, 예수님의 몸을 사탄에게 내주시어 그의 육신은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되었다. 따라서 육적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아, 뒷날 재림하셔서 그것을 이루시기로 약속하고 가셨던 것이다(전편 제4장 제1절 Ⅳ). 그러므로 지금까지 지상에서 영 육 아울러 완성되어 무형 유형 두 세계를 주관함으로써, 그것들을 하나로 화동시켜 준 존재는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기준의 완성실체로 다시 오시는 예수님은 영체로 오셔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초림때와 같이 영 육 아울러 완성한 존재로 오셔서, 온 인류를 영육 아울러 그에게 접붙이어 일체가 되게 함으로써(로마서 11장 17절), 그들로 하여금 영 육 아울러 완성하여, 무형 유형 두 세계를 주관하도록 하시지 아니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지상천국을 복귀하시어, 복귀된 전 인류의 참 부모가 되시고, 그 나라의 왕이 되셔야 할 것이었다(이사야 9장 6절, 누가복음 1장 31절). 그러나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인하여 이 뜻을 이룰 수 없게 되었으므로, 장차 재림하셔서 이루실 것으로 약속하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셨다. 따라서 그가 재림하시어서도 초림 때의 사명이었던 지상천국을 이루시고, 거기에서 인류의 참 부모가 되시고 또 왕이 되셔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재림하실 때에도 초림 때와 같이 육신을 쓰시고 지상에서 탄생하시지 않으면 아니 된다.
또 인간의 속죄는 그가 지상에서 육신을 쓰고 있을 때만 가능하다(전편 제1장 제6절 Ⅲ.3).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육신을 쓰시고 오셔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한 구원은 영적 구원뿐이어서, 아직도 우리의 육신을 통하여 유전되어 온 원죄는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것을 속죄하시어 인간의 육적 구원까지 완성하시기 위하여 재림하셔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이 영체로 재림하셔서는 이 목적을 달성하실 수 없기 때문에, 초림때와 같이 육신을 쓰고 오시지 않으면 아니되는 것이다.
우리는 위에서 예수님의 재림은 영체 재림이 아니라 초림때와 같이 육신 재림이라는 것을 여러 모로 밝혔다. 예수님이 설혹 영체로 재림하신다 하더라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안으로만 볼 수 있는 영체가, 물질로 된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것은 더욱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이다. 더구나 그의 재림이 영체로써 공중의 어디에 가 계시다가 어떻게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인가 ? 이에 대해서는 무소불능하신 하나님이 무슨 기적인들 행치 못하실 것인가 하고 되물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스스로 세우신 법도를 스스로 무시하는 입장에는 서실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와 주금도 다름없는 육신을 쓰고 재림하셔야 할 예수님이, 구태여 지구 아닌 다른 어떤 천체의 공간 속에 계시다가 구름을 타고 재림하시도록 하시는, 그러한 비원리적인 섭리는 하실 필요도 없고 또 하실 수도 없는 것이다. 위에서 살펴 온 모든 논증에 입각해 볼때, 예수님의 재림이 지상에서 육신을 쓰고 탄생하시는 것으로써 이루어진다는 것은 누구도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Ⅲ. 구름 타고 오신다는 성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수님의 재림이 지상 탄생으로 이루어진다면,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알기 위하여서는 먼저 구름은 무엇을 비유하였는가를 알아야 할 것이다. 요한계시록 1장 7절에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말씀을 보면,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런데 스덴반이 순교를 당할 때에,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을 본 사람은 영안이 열린 성도들뿐이었다(사도행전 7장 55절).
따라서 영계에 계시는 예수님이 영체 그대로 재림하신다면 그는 영안이 열린 사람들에게만 보여질 것이기 때문에, 결코 각인의 눈이 다 영체로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각인의 눈이 다 재림하시는 주님을 볼 수 있다고 한 것은, 그가 육신을 쓰고 오시기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한편 육신을 쓴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오실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의 구름은 분명코 무엇인가를 비유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또 같은 성구 가운데, 저를 찌른 자도 볼 것이라고 한 기록이 있다. 예수님을 찌른 자는 로마병정이었다. 그러나 로마병정은 재림하시는 주님을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죽어 버린 로마병정이 지상에서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으려면 부활해야 될 터인데, 요한계시록 20장 5절의 부활에 참여할 사람들뿐이요, 그 밖의 죽은 자들은 천년왕국시대가 지나간 후에야 부활할 수 있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말한 ‘찌른 자’는 부득이 비유로 해석하여,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재림하실 것으로 믿고 있다가 뜻밖에 그가 지상에서 육신 탄생으로 재림하시게 될 때, 그를 몰라보고 핍박하게 될 무리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지 않으면 안된다. 이와 같이 ‘찌른 자’를 비유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면, 같은 구절 안에 있는 ‘구름’이라는 어귀 역시 비유로 해석해서 안 될 리는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름은 과연 무엇을 비유하였을 것인가 ?
구름은 지상에서 더러운 물이 증발되어 올라간 것을 말한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17장 15절을 보면 물은 타락한 인간을 상징하고 있다. 그렇다면 구름은 타락한 인간이 중생하여 그 마음이 항상 땅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는 독실한 성도들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또 구름은 성서나 고전에서 군중을 표시하는 말로 씌어졌다(히브리서 12장 1절). 뿐만 아니라 오늘날 서양의 언어생활에 있어서도 그렇게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모세노정에 있어서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한 낮(+)의 구름기둥은, 앞으로 같은 민족의 인도자로 오실 예수님(+)을 표시하였고, 밤(-)의 불기둥은 예수님의 대상존재로서, 불의 역사로써 이스라엘을 인도하실 성신(-)을 표시한 것이었다. 우리는 위의 설명에 의하여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뜻은 중생한 성도들의 무리 가운데서, 제2이스라엘인 기독교 신도들의 무리 가운데서, 제2이스라엘인 기독교 신도들의 인도자로 나타나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위에서도 살펴본 바와같이 제자들이 예수님께 재림하실 곳을 물었을 때에(누가복음 17장 37절), 예수님이 주검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인다고 대답하신 말씀의 본 뜻도, 독실한 성도들이 모이는 곳으로 오시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구름타고 오신다는 말씀과 같은 내용의 것임을 알 수 있다.
구름을 이와같이 비유로서 해석하고 보면, 예수님은 초림시에도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오셨던 분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고린도전서 15장 47절에 “첫 사람(아담)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예수님)은 하늘에서 나셨으니라”고 말씀하셨고, 또 요한복음 3장 13절에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고 한 말씀대로, 예수님은 사실 지상에서 탄생하셨어도, 그 뜻이나 가치로 보아서는 분명히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이기 때문이다. 다니엘서 7장 13절에 초림 때에도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오실것으로 보여주셨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Ⅳ. 예수님은 왜 구름 타고 재림하실 것으로 말씀하셨는가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재림하실 것으로 예언하신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적그리스도의 미혹을 막기 위함이었다. 만일 예수님이 지상에서 육신 탄생에 의하여 재림하실 것으로 밝혀 놓았더라면, 적그리스도의 미혹에 의한 혼란을 막을 길이 없었을 것이다. 예수님이 보잘 것 없는 가운데서 메시아로 나타나셨던 것이었으므로, 어떠한 보잘것없는 사람들일지라도 영적으로 어느 기준에 달하게 되면, 제각기 재림주로 자칭하고 나서서 세상을 현혹케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모든 신자들이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오실 줄로 알고, 하늘만을 우러러보고 나왔기 때문에 이 혼란을 모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때가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다시 지상에서 탄생하실 것을 바로 가르쳐 주시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둘째로는 어려운 신앙노정을 걷고 있는 성도들을 격려하시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은 이 밖에도 하나님의 뜻을 속히 이룰 수 있도록 성도들을 격려하시기 위하여, 전후가 잘 맞지 않는듯한 말씀을 하신 사례가 적지 않다. 그 실례를 들어보면, 마태복음 10장 23절에 예수님은 제자들로 하여금 그의 재림이 곧 이루어질 것으로 믿게 하시기 위하여,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리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고 말씀이 기록되어 있고, 또 요한복음 21장 18절 내지 21절에 기록된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장차 베드로가 순교 당할 것을 말씀하시자, 이를 받아 요한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묻자 베드로에 대하여, 예수님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찌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고 응수하셨다. 이 말씀에 의하여 요한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예수님이 재림하시지나 않을까 하고 고대한 제자들도 있었던 것이다. 또 마태복음 16장 28절에 예수님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제자들은 자기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만날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이와같이 예수님은 곧 재림하실 것으로 말씀하셨기 때문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열망하는 일념에서, 로마제국의 압정과 유대교의 핍박 가운데서도 오히려 성신의 충만한 은혜를 받아서(사도행전 2장 1~4절) 초대교회를 창건하였던 것이다.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 가운데서, 하늘로부터 천사의 나팔소리와 더불어 강림하셔서, 번개 같이 모든것을 이루실 것으로 말씀하신 것도, 많은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고무하고 격려하시기 위함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