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과: 성전을 정화하시는 예수님

 

제 22과: 성전을 정화하시는 예수님

1. 말씀읽기: 마태21,12-17

성전을 정화하시다 (마르 11,15-19 ; 루카 19,45-48 ; 요한 2,13-22)

12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시어, 그곳에서 사고팔고 하는 자들을 모두 쫓아내시고, 환전상들의 탁자와 비둘기 장수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셨다. 13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 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드는구나.” 14 그때에 성전에서 눈먼 이들과 절름거리는 이들이 다가오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 15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기적들을 보고, 또 성전에서 “다윗의 자손께 호산나!” 하고 외치는 아이들을 보고 불쾌해하며, 16 예수님께 “저 아이들이 무어라고 하는지 듣고 있소?” 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당신께서는 아기들과 젖먹이들의 입에서 찬양이 나오게 하셨습니다.’ 라는 말씀을 너희는 읽어 본 적이 없느냐?” 17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두고 성을 나와 베타니아로 가시어 그곳에서 밤을 지내셨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성당에 가면 먼저 어디를 가십니까? 사무실에 가십니까?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어 곧장 성전으로 들어가십니다. 예전에 어느 신부님께서 아주 멋진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으십니다. “앞으로 나를 만나러 올 때는 꼭 성당에 들어가 인사하고 오세요. 그리고 가실 때도 인사하고 가세요. 제가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더 중요하시지 않습니까? 성당에 와서 사무실에만 일 보고 가시는 분들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제관에만 일을 보시고 예수님께 인사 안 드리고 가시는 일이 없으셨으면 좋겠습니다.”



12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시어, 그곳에서 사고팔고 하는 자들을 모두 쫓아내시고, 환전상들의 탁자와 비둘기 장수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셨다.

 성전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의 목적지였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모습은 말라기의 말씀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너희가 애타게 기다리는 너희의 상전이 곧 자기 궁궐에 나타나리라. 너희는 그가 와서 계약을 맺어 주기를 기다리지 않느냐?”(말라키3,1).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셔서 단단히 화가 나셨습니다. 이방인의 광장이라고 불러 온 성전 안은 제물로 바칠 짐승의 시장터가 되어 있었고, 그 곳에는 환전상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거룩한 이 성전을 더럽히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상인들을 쫓아내기 시작하셨습니다. 사실 상거래는 하느님의 집에는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어야 합니다. 거래상들과 이 거래를 허용해주고 이익을 챙기는 유대 당국자들은 성전을 도둑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써 뿐만 아니라 특히 행위로써 예언자들의 일을 계속하셨습니다. 이로써 예수님께서는 메시아 시대를 위한 다음과 같은 예언을 성취시키셨습니다. \”그날에는 만군의 주님의 집 안에 더 이상 장사꾼들이 없을 것이다\”(즈카르야 14,21). 즉 하느님을 섬기는 일이 그 올바른 자리로 되돌려지고 재물을 섬기는 일이 배제되는 것입니다.



 도둑의 소굴을 하느님의 집으로 만드신 예수님. 사실 성전에서 장사를 하는 것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외국에 사는 사람들이 성전에 와서 무엇인가를 사서 하느님께 봉헌하기 위해서는 환전이 필요했고, 멀리서 희생제물을 바치러 온 사람들이 먼 거리를 소나 양이나 비둘기 등을 손수 몰고 오기가 그리 쉬운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악용하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었습니다. 또한 제물을 준비하지 않고 가까운데서 사서 봉헌하려는 사람들에게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가지고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만일 우리가 주일마다 봉헌하는 봉헌금을 형식적으로 아이들에게 주고, 주머니에서 형식적으로 꺼내서 봉헌한다면 우리 또한 성전을 도둑의 소굴로 만들었던 사람들의 마음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의 성전정화도 그런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봉헌의 의미를 참되게 하고, 그리고 성전을 기도하는 집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해야 할 몫인 듯 합니다.



 성전 뜰은 이방인의 광장이라고 부르는 하급 광장이었고 그 곳까지는 이방인도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통은 그 곳에서도 항상 엄숙하고 경건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지름길로 지나다니는 일조차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규정은 특히 과월절 전후에는 무시되고 있었습니다. 순례자들이 바치는 제물은 상거래의 구실이 되었습니다. 회랑에 매어 놓은 소, 양 파는 점포, 광장 어디에나 벌려 놓은 환금상 등에 의해 이 거룩한 성전이 소아시아의 색채를 띤 아수라장 같은 큰 장터가 되어 있었습니다. 순례자들은 성전에 바칠 제물(부자의 경우 소 한 마리 혹은 양, 가난한 사람의 경우는 비둘기 한 마리)과 성전세를 마련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성전세는 성전 세겔로 바쳐야 했는데 시중에는 로마 화폐만을 사용했기에 성전에서는 환전상이 필요 했습니다.



 그런데 사제들은 거룩한 곳을 더럽히는 장사꾼들의 상거래를 말리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 상거래를 통해 큰 돈을 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심 깊은 어떤 율법학자는 이렇게 탄식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사제이지만 그의 자식들은 재무관이었다. 그들의 사위는 성전의 검사관이며 그들의 하인들은 우리들에게 달려들어 몽둥이로 때렸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채찍을 만들어 소와 양을 모두 쫓아버립니다.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셨고 그 상을 둘러 엎으셨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이들의 제물로 비둘기를 팔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비교적 친절하게 “이것들을 거두어 가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비둘기장을 열어 비둘기를 놓아 주지는 않으셨습니다.



13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 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드는구나.”

 너무도 당당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지금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작당을 하고 있는데 너무도 당당하게 성전을 정화하고 계시니 말입니다. 그리고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드는구나!”하시며 꾸짖으시니 말입니다.



 쩌렁쩌렁한 예수님의 꾸지람을 들은 상인들은 당황하여 성전에서 물러갔던 것 같습니다. 제자들은 이 모습을 보고 크게 감동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무 거리낌 없이 단행하신 강한 이 정화 행동은 시편 69편 9절에서 “당신 집을 향한 내 열정이 나를 불사릅니다.”라고 한 것의 실현이라고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장사꾼들을 추방하신 것은 성전의 존엄성을 지켜야 할 의무를 지닌 사제와 율법학자들에게 정면으로 시비를 건 것과 똑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시기에, 아버지 하느님과 늘 함께 하시기에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성전을 정화하셨던 것입니다. 그 당당함은 아버지에 대한 사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처럼 그렇게 당당하게 일합시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당당하게 해 나갑시다. 하느님 아버지를 예수님처럼 그렇게 사랑합시다.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예수님의 이러한 열정은 내가 본받아야할 열정입니다. 성전이 기도하는 집이 될 수 있도록 내 열정을 바칠 때 수많은 사람들이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기 위해 성전으로 향할 것 입니다.



14 그때에 성전에서 눈먼 이들과 절름거리는 이들이 다가오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 15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기적들을 보고, 또 성전에서 “다윗의 자손께 호산나!” 하고 외치는 아이들을 보고 불쾌해하며,

 성전을 정화하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당신께 나아오는 병자들을 치유해 주십니다. 눈먼 이들을 보게 하시고, 절름발이들을 제대로 걷게 해 주십니다. 아이들은 메시아 시대에 일어날 일들이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다윗의 자손께 호산나!”하고 외칩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그 때에 소경은 눈을 뜨고 귀머거리는 귀가 열리리라. 그 때에 절름발이는 사슴처럼 기뻐 뛰며 벙어리도 혀가 풀려 노래하리라. 사막에 샘이 터지고 황무지에 냇물이 흐르리라”(이사야 35,5-6) 고 메시아 시대에 일어날 일을 예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예수님께 “다윗의 자손께 호산나!”라고 외쳐야 합니다. 그러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은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16 예수님께 “저 아이들이 무어라고 하는지 듣고 있소?” 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당신께서는 아기들과 젖먹이들의 입에서 찬양이 나오게 하셨습니다.’ 라는 말씀을 너희는 읽어 본 적이 없느냐?”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수님께 “다윗의 자손께 호산나!”하면서 외치는 아이들이나 치유 받은 병자들 모두가 못 마땅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저 아이들이 무어라고 하는지 듣고 있소?”라고 불평을 터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알지도 못하는 갈릴래아의 시골 출신 무지렁이가 자신들의 수입원인 성전에서의 장사를 망쳤기 때문에 화가 나 있었습니다. 또 메시아가 나타났다고 하면 로마 군대는 즉시 반란과 폭동이 일어났다고 생각하고 무력으로 진압을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들이 로마군대로부터 받았던 알량한 권력을 잃을까봐 걱정이 되었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께 불평을 하고 있는 사람들, 예수님의 능력을 통해서 예수님을 알아 뵈어야만 할 사람들이 눈을 감아버리는 불경을 저지르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아기들과 젖먹이들의 입에서 찬양이 나오게 하셨다.”라는 말씀을 인용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찬양을 한다면 알고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찬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알면 알고 있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라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통해서 믿으라는 것입니다.



17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두고 성을 나와 베타니아로 가시어 그곳에서 밤을 지내셨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하루의 일을 마치시고 예루살렘 성을 나와 베타니아로 가시어 그곳에서 밤을 지내셨습니다. 베타니아는 예루살렘에서 15리쯤 떨어진 마을입니다. 베타니아는 나병 환자 시몬이 살고 있었고, 마리아와 마르타의 오빠 라자로가 살고 있는 마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밤에 변함없이 아버지 하느님과 함께 하셨을 것입니다. 당신을 향해 다가오는 죽음을 맞이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예수님께 사랑과 위로를 주셨을 것입니다.



 힘든 하루 일을 마치고 바치는 저녁기도가 신앙인들에게는 큰 위로와 기쁨을 줍니다. 기도는 의무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예수님과 같은 열정을 본받기 위해 노력합시다. 예수님처럼 아버지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합시다.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서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은 무엇이며, 왜 와 닿았습니까?



② 성전을 성전답게 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성당에서 나는 성전을 어떻게 만들고 있습니까? 놀이터로 만들고 있습니까? 기도하는 집으로 만들고 있습니까?



③ 백성의 지도자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해야 그들을 믿음의 길로 인도할 수 있을까요?



4. 실천사항







5.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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